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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시는 주여,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과 같이, 또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과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아멘. (시 123:1-2) |
[서 론]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은 복된 자리에 잘 오셨습니다. 옆 사람과 함께 인사를 나눕시다.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곳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 설교 제목은 ‘칠병이어의 기적’ 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칠병이어의 기적’ ‘칠병이어’(七餠二魚)란 ‘ 떡 일곱과 생선 2마리를 말합니다. 오늘 성경에 그 말이 나옵니다. 5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또 7절을 읽어볼까요?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칠병이어를 가지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8-9절을 읽어볼까요?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칠병이어로 4천명이 먹고도 7광주리를 거두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시간에는 칠병이어로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려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론]
1.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사람들은 없는 자보다 가진 자에게 더 관심을 갖습니다. 고통받고 있고, 헐벗은 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2000년에 인천에서 장애인전국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장애인을 돕겠다고 후원자로 3656명이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월 5000-1만원을 후원금으로 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1300명(3/1)이 1년 7개월이 지나도록 단돈 1원도 내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한국복지재단이 이들 후원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후원금을 보내주도록 호소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것은 없는 자나, 약한 자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당시 가진 자보다 없는 자, 배부른 자보다 배고픈 자에게 더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곧 그들의 문제 곧 괴로움과 고통을 잊지 않습니다. 1-2절을 읽어볼까요?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오늘 사건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각지 사방에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사흘이나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지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3일이나 광야(4절)에 함께 있었으니 그 열정이 대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일까요? 음식 문제입니다. 1절을 읽어볼까요?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3일씩이나 먹을 것을 준비헤 온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먹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배고픈 자들의 문제를 모른척 했습니까? 배고픈 자들이 각자 문제를 해결하도록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먹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자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1-3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를 굶겨 보내면 길에서 쓰러질까 하노라! 이 말들은 배고픈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찾아온 자들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누거보다 먼저 그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닮는 사람일까요? 예수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돌아보는 자입니다.
[교통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은 1급 장애인 김정숙씨(한마음애집 원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시력을 잃은 뒤 남편과 함께 서울을 떠나 시골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밭에 버려진 배추를 주어다 만두를 빚어 이웃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6년 동안 만든 만두는 대략 50만개로 사방 곳곳의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군부대장병 등 10만여명에게 전달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오늘 음식이 떨어져 배고픔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의 모습! 이들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느날 ‘문제’ 라는 검은 불청객이 찾아오지는 않습니까?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까?
그런 문제들이 찾아올 때 기진맥진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는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무당이나 점술가나 신접자들을 찾아가지 마십시오. 그런 자들을 찾으면 찾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황폐해집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길 때 우리는 사람을 찾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사람을 찾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사 31:1)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은 여러분의 어려움을 알고 계시며,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삶의 문제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고통받는 것을 알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예수님은 삶의 문제로 힘들어 하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약속을 합니까?
오늘 배고픈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 그것은 우리의 문제를 알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거든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그 분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으로 여러분의 괴로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8-9)
2.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예수님
오늘 예수님은 배고픈 자들을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마음으로만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마음으로만 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문제, 곧 음식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그들의 배고픈 문제를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4절을 읽어볼까요?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은 지금 이곳은 광야인데 어디서 떡을 구할 수 있으며, 이 수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할 만큼 떡을 어떻게 한번에 구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그들의 음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5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제자들이 현재 갖고 있는 떡이 7개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물고기는 몇 마리를 갖고 있었습니까? 7절에 보니 “작은 생선 두어마리가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그 광야에 3일 동안 함께 사람들은 대략 얼마나 된다고 했습니까? 9절을 보면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로 성인 4천명을 먹일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의 음식밖에 안되는 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작은 음식(떡과 생선)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6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또 7절을 읽어볼까요?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축사, 축복’은 감사기도를 말합니다.
배고픈 자는 4천명! 하지만 현재의 가진 것은 ‘떡 7개와 물고기 2마리! 감사기도가 나올 수 있는 환경입니까? 우리의 생각으로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내게는 베풀어 주신 것이 별로 없고, 또는 적어서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내게 있는 모든 것(산업, 자녀, 건강, 가정, 물질, 재능, 권세)은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불행은 감사를 모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감사가 없는 삶에는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원망과 짜증만 생깁니다. 감사가 없으면 미움이 생기고, 욕심이 더 생깁니다. 그 욕심 때문에 죄를 짓고 싸우게 됩니다. 결국 불행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불평하는 자보다 감사하는 자를 사랑합니다. 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작은 떡과 물고기를 갖고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예수님의 손에 있던 떡과 물고기는 7개와 2마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때 그 떡과 물고기는 4000명을 먹이고도 7광주리가 남는 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메튜 헨리는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습니까? 나에게는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예수님이 가지신 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를 기억하십시오. 그 분은 그런 하찮은 것, 아무 도움도 안될 극히 작은 것을 갖고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것이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것을 가질 때만 감사하려고 하지 마십시다. 생각을 바꾸어 내가 가진 작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려 보십시다. 그런 감사의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더 큰 감사와 행복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이런 감사의 詩가 있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많이 맞고 깊은 옥에 갇히고, 차꼬에 채워 있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도 원망 대신 감사를 했습니다. 곧 한밤중에 감사의 찬송와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람이 생각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그리고 다음날 두 사람은 당당히 그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결과입니다.]
3. 풍성하게 주시는 예수님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할 때가 많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는 인색하고, 가진 자나 힘있는 자에게 풍성하게 줍니다. 그래서 힘없는 자에게는 수고의 댓가도 제대로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 달 동안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댓가를 요구하는 시위도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데 종종 배고파서 시위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든 것을 차지하려고 시위하는 잘못도 있습니다,
[대기업의 노조들의 시위가 그러합니다. 그들은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회사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시위하는 동안 그 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하청업체,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정당한 댓가를 주지 않으려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 하나님은 풍성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져온 음식은 단지 떡 7개와 생선 2마리였습니다. 한 사람의 음식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드린 후 제자들을 통하여 그 떡과 생선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6-7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떡 7개와 생선 2마리로 몇 사람에게나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 아주 적게 쪼개어 나누어줘도 몇 사람에게 나눠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했습니까? 4천명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8절을 읽어볼까요?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배고픈 자들이 배불리 먹고도 7광주리나 남은 음식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평소보다 더 많이 먹습니다. 그러니 배고픈 그 무리들은 얼마나 많이 먹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불리 먹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있어 거두었더니 “7광주리” 나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것은 눈속임수도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숨겼던 음식도 아니요, 돈 주고 사온 음식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은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주판알을 튕겨 가면서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넘치도록 후히 주시는 분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집에 가셨을 때 일입니다. 그 혼인집에 손님을 대접하는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머니의 부탁을 받아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때 포도주를 얼마큼 만들어 주셨습니까? 조금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집에 커다란 돌항아리 6개가 있었는데 그 항아리의 아귀까지 포도주로 채워 주셨습니다. 얼마나 넘치게 주셨습니까?]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음식을 먹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한 자들이 배부르게 먹은 것입니다. 예수님께 오지 않은 사람들이 배부른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 자기를 경외하는 자,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넘치게 주십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9-10)
그러므로 여러분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3일 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풍성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오늘 광야에서 떡 7개와 생선 2마리로 배고픈 4000명을 넘치도록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떤 모습! 곧 하나님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과 상처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자들의 어려움을 알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2절) 하나님은 여러분이 문제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것을 알고 불쌍히 여기시고 해결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작은 것 앞에서도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6절) 우리도 내게 있는 것이 비록 작고, 적을지라도 감사하며 사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감사하는 나의 삶속에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배고픈 자에게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4천명의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도 7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8절)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풍성하게 넘치도록 주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배고픈 4천명을 배부르게 하신 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9절을 읽어볼까요?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예수님은 배고픈 자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배부르게 하신 후에 돌려 보냈으니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이십니까?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이런 축복과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은 겪고 있는 어려움과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부족함을 채워주고도 남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적과 축복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 하나님을 힘써 섬기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