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에 무슨 경계선이 있습네까?"
북한 침뜸, 민간 침구인 전통의술 계승..현대적 의학으로 발전시켜
손중양(jyang) 기자
▲ 남쪽의 침뜸명의 침구사 김남수 선생이 지난 2월 침과 뜸쑥을 가지고 평양을 방문, 주진구 통일연구원 부원장을 통해 전달면서 침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보건의료 전체 가운데 침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환자의 60% 이상을 침이나 뜸으로 진료한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이 경제사정 때문에 신약이 부족하여 고려의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적어도 침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북쪽 고려의사 이야기다. 신약은 몸에 해로운 것이 많이 있으나 침뜸은 몸에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널리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의사(양의사)들도 대부분 침을 놓고 있다. 침을 배우지 못한 신의사들도 시간을 내어 배우고 있으며, 의사가 침을 시술할 줄 모르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신망을 잃게 된다. 사람들을 가장 많이 치료하는 리·군·도(시)급의 의사들이 침을 놓을 줄 모르면 큰 수치로 여긴다.
신의사가 신약 처방은 할 줄 몰라도 되지만 침을 놓을 줄 모르면 아무리 치료를 잘 한다해도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 일반적으로 용하다고 소문난 의사들은 대부분 침뜸을 잘해 유명해진 경우라고 한다.
북한은 병원제도는 리-군-도(시)-중앙병원. 제일 하부단위가 리 진료소이다. 위경련이라든지 체기를 진단 받았을 때 진료소장이 신의학을 배웠다고 건위 알약을 처방하는 것과 곧바로 침을 놓아 체기를 떨구는 것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만일 약을 주면 환자는 그 자리에서 나와 다시 침을 놓는 사람을 찾아간다. 그 후부터는 알약 처방을 해준 신의사는 찾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젠 신의사들도 침뜸치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정원이 300여명 정도인 도급 고려병원. 고려의사 자격자와 신의사자격자의 수가 거의 같은데 모두 다 침뜸을 잘한다. 같은 의사라 해도 나이나 근무연한에 관계없이 병원당국에서는 환자 많은 선생은 병원의 여러 잡무와 행사에 참가시키지 않고 오직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 나이 먹은 선생들도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침뜸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한다. 국가가 관심을 돌리고 있고 '인민'들이 선호하니 자연스럽게 침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 침구인을 제도권으로
북한에서도 정규 교육을 받지 않는 이른바 '무자격증 침구인'들이 대단히 많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자기만의 특기를 가지고 비록 자격증은 없지만 병원 의사들을 능가하는 의술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고 많은 병을 치료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민간 침구인들에 대해 '당일군, 안전일군, 보위일군 등 영도계급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치료를 선호하니 자연히 민간치료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국가에서도 이런 민간에서 이름을 날리면서 치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제도권으로 끌어들인다. 이들 민간 침구인들을 제도권으로 진입시킨 역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다.
해방 직후에는 북한에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침쟁이라 불리는 침구인과 약방이 거의 마을마다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이들을 개인 업을 못하게 하면서 6개월∼1년짜리 공부를 시켜, 병원에 근무하게 했다. 지금의 고려의학 교육은 이들을 재교육하는데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국영 고려병원이 생긴 것도 이 때쯤이었다.
남한에서는 50년대 약방 하던 사람만 한의사 검증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침구인들에 대하여서는 제도권 진입의 기회를 한번도 주지 않았다. 60년에야 마련한 침구사 시험제도조차 62년 군사정부가 폐지해 버리는 바람에 한 사람의 침구사도 배출하지 못한 채 남한 제도권 의료에서는 전통침뜸의 맥을 끊었다. 반면 북한에서는 민간의 침구인들에게 제도권 진입의 기회가 널리 보장되었고, 동의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이들 침구인들의 활약은 오늘날 북한 보건의료 전체에서 침뜸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러한 민간 침구인들의 제도권 진입은 90년대 들어서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보건성에서는 95년 정규 교육기관을 나오지 않아서 동의치료의 자격은 없지만 침술과 뜸치료에 능한 사람들을 신청을 받아 따로 일정한 재교육을 하여 중등보건의 자격을 주고, 보건의료 인적 자원으로 널리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북에서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을 두고 있는데 중등보건의는 3년제 학교를 나온 준의사나 4년제를 나온 부의사, 조산원, 보철기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증자격 받은 중등보건의는 침술 등 해당 인증자격을 받은 범위 내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분야나 또는 몇 개 분야에 대한 특기를 인정하여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제도는 민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전통의술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려는 노력이다.
북한의 관계당국자는 95년 이후부터는 침시술은 이러한 중등보건의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까지만 허용을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민간 침술사들의 활동은 여전하다는 것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뜸요법은 민간요법으로 널리 활용할 것을 당국에서도 적극 권장한다. 민간요법서적에는 뜸요법이 대단히 많이 소개되어있다.
'고려의사는 침뜸의사입니다'
전통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을 북한에서는 동의사라고 부르다가 93년부터는 고려의사라고 명칭을 바꾸며 그 주체적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의 체질과 생활습성에 맞게 쭉 써오던 동의학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 동의사 또는 고려의사라고 하면 침뜸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이다. 북한에서는 70년대 말부터는 각 진료소에도 동의사를 두기로 했다. 진료소에서는 침·뜸으로 진료하는 비중이 환자의 80% 이상이라고 한다. 고려약 처방은 100명 환자 중 한두명에 불과하다는 것.
도급 고려병원에서 3년여 근무한 한 고려의사는 환자에게 고려약을 처방한 경우는 불과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고려의사는 남한의 한의사 같은 탕약사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오직 침통이 저의 무기였고 치료수단이었다"며 "고려의사들은 침구를 가지고 환자치료를 하지 약으로 하는 환자는 불과 몇 명 안 될 것"이라고 전한다.
거의 모든 고려의사들은 왕진을 나갈 때 침통 하나 몸에 지니고 갈 뿐 다른 것을 가지고 가는 의사가 없다는 것. 또 북한에서는 환자들도 99%가 침을 맞고 뜸을 뜨러 고려의사를 찾지 고려약을 찾는 이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고려의학은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을 통합한 의학으로 보고있다. 이 같은 전통은 1950년대 민간침구인들을 재교육하면서 '맥만 보고는 안 된다'며 혈압도 재고 청진기로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이들에게 현대의학을 익히도록 하여 국영병원에서 일하게 하면서부터다. 전통의학을 발전시키는 데 복고적으로 하지 않고 현대의학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며, 진단에서도 신의학적인 진단을 고려의사들이 자유자제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에서는 의술의 경계가 없다. 고려의사만 고려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사들의 임상의학부과정 안에도 고려의학을 배우고, 진료현장에서도 침뜸치료를 다 한다. 신의사가 쓴 의학서적에도 치료부문에는 고려의학적 치료가 다 들어가 있다.
의사 자격은 대학을 졸업할 때 신의사와 고려의사로 정해져 나오지만 이것이 임상에서 전공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려의사 자격을 가지고 병원에 배치됐지만 현대의학이 부족하여 현대의학 신경과에서 근무를 하면서 재교육 1년 받으면 신의사 수준으로 올라간다. 이는 또 고려의학부를 졸업한 사람만 고려의사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학부를 졸업했더라도 고려의학에 대하여 능숙해지면 고려의사로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남한에서는 전통의학은 한의사가 배타적 독점하도록 되어 있고, 현대의학은 한의사들이 넘보지 못하는 영역으로 하여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어 있다.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전통 침뜸은 한번도 수렴과정 없이 금지하고 침구인들에 대해 제재조치만 가하였으며, 제도권 전통의료는 '돈벌이' 잘 되는 한약처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남북의 통일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의료제도의 차이는 풀지 않으면 안 되는 큰 숙제이다.
"신의사도 침대 걸망에 넣고 왕진갑니다"
고려의학 종합병원 정통의학과 허익근 과정 인터뷰
"병 고치는 데는 침뜸이 으뜸"
북한은 의료정책의 주요 목표에서부터 전통의학을 고려의학이라고 하여 '주체의학'으로 존중하고 장려한다. 그 존중하는 정도는 국가과학원 산하에 민생에 직접관련이 있는 학문분야로 4대 연구기관을 두고 있는데, 농업과학연구원·수산과학연구원·의학과학연구원과 별도로 고려의학과학원을 두고 있었다. 이 고려의학과학원은 최근 고려의학 종합병원으로 바꾸고 각 도 단위의 고려의학병원의 중앙병원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다음은 허익근 과장은 고려의학과학원 당시에는 산하 침구연구소 소장을 맡은 바 있고, 현재 고려의학종합병원의 정통의학과 과장을 맡고 있다.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조선신보>의 평양 특파원 김지영 기자가 허 과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 원래 직업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린 처음에 현대의학을 배웠습니다."
- 침·뜸을 가지고 치료하는 범위가 어느 정도입니까?
"에이즈라든가 이런 것은 없으니까 그동안 그런 것은 다 놔두고 지금 한 300여 가지는 침·뜸이 좋습니다. 다른 고려의학도 좋지만 질병치료에서는 침이나 뜸이나 부황을 쓰고 약을 안 쓰는 치료법의 비중이 높습니다. 치료효과가 우선 빠르고 또 약도 안 쓰기 때문에 요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치료해도 거의 다가 침이나 뜸이나 손으로 만진다든가 이런 식으로 하는데 생활력(효력)이 실제 높습니다. 외국에 가서도 여기서 약을 지고 갈 수는 없으니까 다 침·뜸 치료를 합니다."
- 어느 정도의 환자를 침뜸으로 치료합니까?
"제일 말단은 진료소인데 매 마을에 진료소가 다 있습니다. 진료소에서는 고려의학이 한 80%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진료소나 이런 데서는 갑자기 우황을 걸망에 넣고 가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이 침·뜸입니다. 약이라는 것이 어디 가서 얻어와야 되고 상당히 불편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도 제일 무난한 것이 즉석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침·뜸입니다. 지금 큰 병원들도 고려의학을 많이 씁니다. 그리고 사람들 자체가 대부분 고려치료 봉사를 요구합니다. 차 사고가 나서 부러졌다 하면 수술을 해야 되겠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고려치료를 합니다.
우리는 현대의학의 림상의학부에도 고려의학과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북한) 의사들은 누구든지 침을 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격이 없는 의료행위를 한다 이렇게 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신의사도 침쯤은 다 놓을 수 있고 침대를 걸망에 넣고 다닙니다."
- 의사 한 사람이 치료하는 경우에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의 수는 얼마입니까?
"침이나 뜸 놓는 사람은 하루에 15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연구사업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치료도 하면서 연구합니다. 침 연구하는 과가 따로 있고, 뜸 연구하는 과가 따로 있습니다."
- 앞으로 고려의학 부분에서 남조선과의 교류·협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거야 우리가 한민족끼린데 응당히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나가자고 하는 것은 조선 사람이 다 같은 심정입니다. 여러 가지 제한조치들이 많아서 잘 안 되어서 그런 것이지 다른 것 없습니다. 아무래도 서로의 특색이 있을 수는 있는데 교류하면 좋지요.
그런데 우리 고려의학이 남조선처럼 복고주의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의학과 현대의학을 결합해서 발전시키는 이런 방침을 갖고 있고, 이전부터 과학적인 체계의 토대를 쌓아서 오늘까지 왔기 때문에 이런 이론적, 현실적 측면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검토해야할 것입니다. 결국 형태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그래도 공동 연구할 수 있고, 합작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과학 토론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금강산에 버스 타고 들어오는 판인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