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TV 내무반 신고합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특정 부대의 현역 장병과 그 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제와 오늘을 돌아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20~30년 만에 옛 부대를 찾은 예비역들은 한결같이 “격세지감이다” “요즘 군대 참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는 조금 돌려 표현하자면 “요즘 군대는 군기가 많이 빠졌다”는 걱정과 질타로 이어지기도 한다. 20~30년전 군생활을 한 예비역들의 걱정은 “요즘 군대처럼 편하게 생활해서야 전쟁이나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1982년 예편한 한 예비역 소장은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의 생각은 도통 알 수 없다. 혹시 군대 안에서도 머리에 염색하고 휴대전화로 게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과연 그럴까. 현역 군인들의 항변도 만만찮다. 그들은 오히려 “옛날 주먹구구식 군대와 지금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옛날 군대, 오늘 군대’라는 주제로 예비역 장교와 현역 장교들의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이선호 간단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1955년 군 간부후보생으로 임관해 해병대에서 약 22년간 장교생활을 하다 77년 대령으로 예편했습니다. 해병대의 특성상 격·오지 근무도 많이 했고, 월남전에도 참전했습니다. 전역 후에는 국방대학원에서 강의했고 요즘에는 한국군사학회와 군사평론가협회 소속으로 국방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군에 대한 애정이 많은 선배로서 솔직히 요즘 군대의 모습을 보면 일견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 일반 사병 병영지침에서 앞으로 선임병은 후임병에게 명령 및 지시를 할 수 없게 규정하는 것까지 나오더군요.
물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지시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폭력은 물론 폭언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것은 너무 군의 특성을 등한시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행동을 규제하거나 엄격한 제재를 가한다면 자칫 상명하복의 관계가 분명해야 할 군의 특성을 약화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요즘 병영을 일명 ‘신세대 병영’이라고 부르고, 장병들이 개인주의적이고 고참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고 편해 자기 개성만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박무춘 저는 육사 40기 출신으로,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지난해 12월까지 중부전선 최전방에서 대대장을 수행하면서 병사들과 직접 몸으로 부닥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위 신세대 병사들이 밖에서 보시는 것처럼 그렇게 나약하거나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대단히 현명하고 합리적입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가혹행위나 구타도 없습니다. 선임병이라고 막무가내로 강요하는 것도 어렵죠. 물론 개성은 각자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체 군의 기강을 흐트러뜨릴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선호 그럼에도 요즘 뉴스를 보면 군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보초병이 불량배들에게 총을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총을 들고 탈영하는 사고도 빈번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군인의 모습이 아니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염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어요.
군 문화의 변화는 우선 병영 시설의 현대화에서부터 시작됐다. 1970년대 훈령병들이 식사후 식판을 닦고 있다.
최근 ‘빈발하는 듯한’ 군 사고, 언론 개방 추세 탓
장영순 저는 육사 39기 출신으로, 현재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그런 지적에 대해 저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요즘 들어 군 내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만큼 요즘 군대가 외부에, 특히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개방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전의 군대는 군 내에서 벌어진 일들은 가급적 덮어 두고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 솔직히 하나의 관습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사고가 나면 밝힐 것은 다 밝힐 수밖에 없죠. 그래서 예전보다 좀 많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요즘 병사들이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확실히 예전보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습니다.
반면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다 보니 사이버 공간을 통해 활발한 의견 개진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다소 왜곡된 군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될 소지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아마 전체 통계치로 보면 사건 사고의 수는 예전에 비해 오늘날 오히려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취사병으로 들어가는 것이 장땡
이선호 솔직히 말하면 요즘 군에서 먹고 입는 문제로 힘든 것은 없잖아요? 우리 때와는 비교가 안 되지. 물론 우리 경제 수준이 올라간만큼 군대 환경도 올라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래도 요즘 병사들은 식당에서 밥을 잘 안 먹는다면서요? PX에 가서 군것질도 많이 한다죠? 예전에는 취사병이 최고 인기였어요. 취사병 하면 일단 일은 힘들어도 먹는 것은 실컷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니까.
장영순 예, 맞습니다. 저도 어릴 때 어른들에게 그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들 군대 보낼 때 이왕이면 취사병으로 가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15년 전 처음 소대장을 할 때만 해도 행정병을 하고자 하는 병사들이 많았어요. 훈련 안 받고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지요. 그렇지만 요즘 병사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보직은 바로 취사병과 행정병입니다. 일반 병사들은 주어진 업무 시간에 훈련받고 일과 후나 휴일에는 휴식이 철저하게 보장되니까요. 그런데 취사병이나 행정병은 일요일도 없고 일과 후에도 업무가 이어질 수 있으니 싫어하죠.
박무춘 선배님 시절에는 장교들도 군에서 돈까스나 카레 같은 것 먹기 힘들지 않았습니까. 요즘 군은 식단에도 엄청 신경 많이 씁니다. 다들 입맛이 서구형으로 바뀌어서 말이죠.
이선호 아, 그래요? 돈까스·카레, 그런 것도 나옵니까. 라면이나 냉면 나온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정말 많이 달라졌군요? 확실히 복지 시설 및 환경은 몰라보게 좋아진 것 같습니다.
박무춘 글쎄요. 단순히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해 12월까지 최전방 격·오지 근무를 했습니다만 격·오지에는 예전 선배님이 군생활하던 1960~70년대 시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열악한 환경 탓에 좁은 내무반에서 ‘칼잠’을 자며 군생활하는 병사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개탄을 쓸 정도였으니까요. 요즘 사회에서는 조개탄이 뭔지도 잘 모를 것입니다.
이선호 저도 격·오지 근무의 어려운 점을 잘 알죠. 격·오지에서는 특히 겨울 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때는 겨울철 내의 속에 이가 많아 DDT가 인체에 유해한지도 모르고 이를 잡기 위해 온몸에 마구 뿌려대기도 했죠. 겨울철에 몸도 잘 못 씻는데 빨래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겠어요? 그 때는 장교, 사병 할 것 없이 다들 그랬죠. 그 때는 조개탄도 무척 귀해서 병사들 시켜 산에서 잔솔가지들 모아 오게 해서 불을 때고 했죠.
장영순 선배님들은 “예전에 비하면 요즘 군대는 호텔”이라고 말씀들 하시는데, 단순히 과거 군대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런 말은 좀 그렇습니다만, 그나마 사병들에 대한 배려에 비하면 장교들이나 부사관 등 직업군인에 대한 배려는 더욱 열악합니다. 제가 서글픈 일화 하나 소개할까요? 군부대 근처에서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낡고 지저분한 군인아파트를 가리키며 자녀들에게 “너도 공부 못하면 이 다음에 저런 곳에서 살게 돼”라고 말하는 것을 한 장교 부인이 우연히 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가슴아팠습니다.
박무춘 기혼 간부들 가족 숙소도 열악하지만 미혼 초급간부의 병영내 숙소인 이른바 BOQ 또한 너무 낙후한 수준입니다. 아마 선배님 때만 해도 간부들은 1인1실 기준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만, 요즘에는 5평 정도의 방을 2~3명이 함께 사용하는 실정입니다.
이선호 예비역 해병대 대령·장영순 중령
“공부 못하면 저런 데서 살게 된다”
이선호 (웃음) 요즘 군복무하는 후배들에게 조언과 충고를 해 주려고 왔다 오히려 하소연만 듣는군요. 맞아요. 힘든 상황에서 묵묵히 군복무하는 장교들의 수고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때는 군 장교라고 하면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대접받는 위치였고, 또 지도층으로서의 자부심도 있었는데, 요즘 후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박무춘 저의 경우가 군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극에서 극으로 급변하는 3단계 시절을 다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육사에 입학할 때인 1979년만 해도 주변에서는 다들 부러워했습니다. 가족들의 기대도 컸고요. 저 또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교로 임관한 이후인 1980년대말 90년대초 초급장교 시절은 제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군은 마치 모든 비리로만 뭉친 집단으로 사회에서 인식되었잖습니까. 군복을 입고 사회에 나가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경기가 한창 좋고 주식투자 붐이 불었을 때는 주변 친구들이 “뭐 할 것 없어서 직업군인을 하느냐”는 시선도 있었죠. 그런데 오히려 IMF 이후 요즘에는 군인이라는 직업이 제자리를 되찾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제 주변에서도 다들 군의 전문성과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그래도 가장 안정되고 전문화된 직장이 아니냐”며 부러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이선호 정말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면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지난 30년 간의 오랜 군사정권의 폐해를 뒤늦게 여러분들이 많이 봤을 것 같습니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그래도 군이라는 조직만큼 부정부패가 상대적으로 덜하고 모든 진급이나 평가가 깨끗한 곳도 없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김홍석 이 자리에서 제가 가장 연소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육사 46기 출신으로, 현재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386 세대에 해당합니다. 제 친구들이 86학번이니 그 시대에 치열한 대학생활을 한 셈이죠. 제가 육사를 선택한 당시 몇 년 간은 일반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 단절감 비슷한 격차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회에서 친구들을 접해도 전혀 그런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제 군이라는 조직도 많이 열렸고, 앞서 박중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만, 하나의 전문 조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분위기를 느낍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군인은 보수적이고, 사회 친구들은 진보적이고 하는데, 이러한 식의 획일화된 이분법적 잣대는 이제 구태의연한 말 같습니다.
이선호 요즘 군 후배 장교들을 보면 다들 세련되고 학식도 아주 풍부한 것 같아 좋습니다. 여기 나와 계신 분들도 모두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우수한 장수는 지(知)와 덕(德)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용맹함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맞게끔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하고 강한 정신력과 투철한 국가관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점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합니다.
장영순 솔직히 말씀드려서 오늘날의 장교들이 학력이나 여러 가지 객관적 자질은 과거에 비해 더 우수하지 않을까요?(웃음) 다만 선배들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과거 한국전쟁이나 월남전쟁 등을 직접 치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장교들이 과연 실질적인 전투 상황에서 제대로 지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일 것입니다. 또한 국가에 대한 충성심 혹은 상관에 대한 복종심이 투철한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 변화에 따른 신세대 병영이라는 말이 사병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젊은 장교들도 과거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무기 체계와 전투 형태도 이제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육군만 해도 정보화, 과학화를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선호 장교 간의 군기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엄격합니까. 예전에는 그야말로 고참은 하늘이었습니다. 물론 1960~70년대 옛날 얘기이고, 또 우리 해병대는 워낙 장교들 사이에서도 군기가 엄격하니 또 좀 다르겠습니다만…. 내가 중위 시절이었는데 밥이면 밥, 술이면 술, 고참이 모두 책임지고 사주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월급이 그 고참의 손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내 월급으로 고참이 제게 밥과 술을 사준 셈이죠. 그런데도 저는 한 마디 말도 못 했습니다.
‘아, 여기 부대는 원래 이것이 전통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죠. 우리 때는 장교들끼리도 구타와 얼차려가 무척 심했습니다. 장교라고 해서 어깨에 힘이나 주고 거들먹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중령이나 대령쯤 되어야 계급 대접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요즘 군사병식당의 모습/군도 현대전의 개념에 맞춰 정보과학군으로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군은 첨단 정보화 교육 분야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개밥 먹으며 지원금 저축, 카드빚 범죄 안타깝다”
장영순 여기 개인적으로 제 후배인 김소령이 있지만 내가 단돈 1만원 한 장 빌린 적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것은 특히 군 내에서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것이 하급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계급사회이다 보니 사회에서는 직장 동료끼리 자연스럽게 부탁할 수 있는 것도 여기서는 대단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 회식도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반드시 1주일 전부터 각자 의견을 모아 공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당일 갑자기 상급자가 “오늘 회식하자”고 하면 회식이 불가능합니다. 각자 개인적 사정이 있게 마련이고, 또 그것을 밝히고 다 빠지니까요.
이선호 얼마 전 보도를 보니 군 간부들 사이에서도 카드빚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방부 차원에서 ‘전력손실’이라며 대단히 우려했다고 합니다. 우리 때는 그 박봉에도 월급의 70% 이상은 무조건 저축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군인들이 저축률 1위였죠.
제가 장교 시절 운이 좋아 미국에 유학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각국의 유학생 장교들에게 지원해 준 돈이 월 150달러였어요. 그런데 대만은 국가에서 100달러를 별도로 지원했어요. 또 당시에는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던 브라질·아르헨티나 장교들은 국가에서 1,500달러를 지원했죠.
당시 우리나라는 한 푼도 지원이 없었어요. 같은 처지의 유학장교들 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가난한 셈이었죠. 그렇지만 아마 저축은 우리 한국 장교들이 제일 많이 했을 것입니다. 돈 한 푼 안 쓰고 150달러를 꼬박꼬박 저축해 본국으로 돌려보냈으니까요. 심지어 개밥으로 사용하는 통조림을 먹기도 할 정도로 말이죠. 그만큼 절약 정신이 강했습니다.
박무춘 한때 일부 군 간부들 중에서 카드빚 때문에 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역에 연고가 깊은 부사관들 사이에서 많았습니다. 그런데 군 장교들의 저축 정신은 선배님 때나 지금이나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면, 제가 저축을 많이 못 하는 편입니다. 한 20% 정도. 그런데 제가 간부들 중에서 제일 꼴찌입니다. 다른 장교들은 대개 50~60%씩 다 저축하는 것으로 통계가 나왔으니까요.
이선호 저는 사관학교 출신이 아닙니다. 저희 때는 사관 출신과 비사관 출신의 갈등도 참 많았습니다. 어쨌든 사관 출신은 가만히 있어도 대령까지는 그냥 진급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상대적으로 비사관 출신들의 진급은 대단히 어려웠고 불이익도 많았습니다. 저도 같은 나이의 사관 출신에 비해 엄청 진급이 늦었습니다. 여기 세 분은 모두 사관 출신인데 지금도 여전히 비사관 출신들과의 갈등 관계는 남아 있겠죠?
박무춘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밖에서 더 사관·비사관 등의 출신 구분을 따지시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희는 그런 출신 구분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배님께서 한 가지 잘못 알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육사 출신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절대 중령·대령 진급 못 합니다.(웃음) 저희가 대령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절반이 탈락해야 합니다. 5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선호 아, 그래요? 많이 달라졌군요. 그럼 반대로 육사 출신들이 불만이 많을 수 있겠군요?
장영순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군도 결국 진급 문제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주의 국가란 어차피 능력 본위의 사회 아니겠습니까. 능력순으로 진급시킨다는데 거기에 이의를 달거나 불만을 제기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출신에 상관 없이 오로지 능력 위주로 공정하게 평가된다면 그런 갈등 관계는 불필요하겠죠.
박무춘 선배님께서는 요즘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하십니까. 아마 선배님의 장교 시절과 다른 또 하나의 풍속도는 장교들이 엄청나게 운동을 많이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장교들을 대상으로 매년 한 차례씩 실시하는 체력검정 때문이죠. 그런데 그 기준 통과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1.5㎞를 6분에 들어와야 하니까요. 대개는 윗몸일으키기에서 많이 떨어지는데, 1분에 40개 이상을 해야 합니다. 10% 정도가 불합격합니다. 또 불합격하면 진급이나 여러 면에서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이런 체력검정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부사관과 장교간 기선 잡기 갈등 심해
이선호 저는 평소 등산을 하고 꾸준히 많이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합니다. 과거 군 시절에는 워낙 훈련도 많았고 구보도 많이 했기 때문에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군에서 운동은 구보와 축구가 제일 흔한 것 아닙니까. 그나저나 요즘에는 군 내에서도 골프가 무척 저변화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대위들도 골프를 친다면서요? 우리 때는 골프 자체가 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영관급 장교들도 골프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1974년 포항에서 대대장을 하던 시절 낙하 훈련장을 개조해 골프장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것도 장군들 차지였지 영관급은 감히 골프채를 쥘 수조차 없었죠.
김홍석 글쎄요. 위관급 장교들은 아무래도 골프를 치기가 좀 어려울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못 했고, 또 주변에서 본 적도 별로 없습니다. 병영 밖에서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친다면 모를까요. 영관급 장교들은 많이 칩니다. 체력 강화 훈련으로 골프가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선호 부사관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저는 처음 소위로 임관했을 때 고참에게 이런 교육을 받았어요. “부사관이 너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무조건 반말로 하고, 큰 소리로 명령하고, 기선을 제압하라”고 말이죠. 그래서 당시 내 부사관이 나보다 여덟 살이나 위였는데 일부러 큰 소리로 반말하고 엄하게 막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했고, 장교와 부사관 간에 트러블이 좀 많았던 편이었죠.
박무춘 부사관과의 갈등은 저도 초급장교 시절 많이 느낀 점입니다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한 것 같습니다. 즉, 장교와 부사관 간에 명확한 업무 분담이 되는 겁니다. 예전에는 부사관들 하는 일이 주로 허드렛일이 많았잖아요? 물건 운반이라거나 작업 인솔이라거나 하는…. 그런데 이제는 모든 부사관들이 하나씩 전문 주특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작전 지휘 통제는 장교가 하지만, 각 분야의 실무 교관 역할은 부사관이 맡아 합니다.
장영순 과거에는 소대장과 선임하사가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병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다 보고 있잖습니까. 요즘 사병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그리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입니다. 계급의 사회도 어느 정도 알고 말이죠. 소대장이 계급만 내세워 부당한 지시를 한다거나, 반대로 부사관이 나이와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소대장을 무시하고 대든다면 병사들에게 먼저 무시당합니다. 내무반 내에도 엄연히 하나의 여론은 형성되는 법이니까요.
이선호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했지만 그래도 역시 군의 첫번째 존재 목적은 전쟁 수행 능력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최근 우리 군의 전투 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 관심과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습니다. 지금의 군으로 과연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 말이죠. 과연 월남전과 같은 그 치열했던 전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죠.
박무춘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현대전은 과거 한국전쟁이나 월남전 같은 재래식 무기의 전쟁이 아니다 보니 이제 훈련에 대한 개념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지난해부터 육군의 기본 지침이 훈련을 무조건 많이 하는 것보다 질 위주로 하라는 방향이었습니다. 훈련 방식도 과거에는 미군의 각 전술을 그대로 교재로 도입해 전투 임무 위주 훈련을 했는데, 요즘 훈련은 다릅니다.
평시의 숙달된 훈련을 통해 전시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가시키는 데 중점을 둡니다. 즉, 평시에도 단순히 부여된 임무에만 국한하지 않고 장차 예상되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응용 능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 단위의 집중 순환식 훈련, 과목형 과제 단위 훈련, 체력 강화 훈련 등을 병행합니다.
장영순 실질적인 예를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01년에 있었던 서해교전만 해도 우리 신세대 장병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싸웠습니까. 그리고 동티모르와 아프간·이라크 파견 병력도 모두 전장을 방불케 하는 현지에서 당당히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 자원자 부모들 “제발 우리 아들 좀 빼 달라”
박무춘 해외 파병 문제가 나왔으니 지금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말씀드리죠. 지금 사병들이 이라크 파병에 지원하겠다며 엄청나게 지원자가 몰리고 있습니다. 5대 1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도 좀 놀랐습니다. 간부와 같은 직업군인도 아닌 일반 사병들이 왜 이렇게 위험한 임무를 자청하고 나서겠습니까. 과거 월남전처럼 돈을 벌 목적으로 그런 위험한 곳을 택하겠습니까.
저는 신세대 병사들의 호기심도 있고, 자기 자신을 직접 한번 시험해 보고 싶은 도전 정신과 모험 정신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사병들의 집에서 전화가 엄청나게 많이 걸려옵니다. “우리 아들이 이라크 파병 지원을 했다는데, 제발 대대장님이 좀 말려 달라”는 부모님들의 당부 전화입니다. 실전 경험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우리 장병들의 국가관이나 작전 수행 능력이 취약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선호 전쟁이란 명확한 주적 개념을 바탕으로 해야 훈련이나 작전 수행이나 모두 명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군은 명확한 주적 개념이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아직도 국방백서가 안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군 지휘부가 흔들리고 장교들이 흔들리면 병사들도 자연히 혼란스러워 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장영순 다소 예민한 사안이기는 합니다만, 현역 영관 장교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큰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적 개념은 확고합니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도 없고, 걱정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큰 혼란도 없습니다.
이선호 요즘 젊은 장교들이나 신세대 병사들은 분명히 북한을 주적 개념으로 하는 데 반대하는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조건 그냥 윽박지르는 식으로 묻어 두고 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군에 입대하는 나이가 20세 이후인데, 그 정도 나이면 이미 자기 나름의 가치관은 어느 정도 서 있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군에 간다고 해서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 아니겠어요?
박무춘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신세대 병사들 얼마나 솔직하고 자기표현이 분명합니까. 가끔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하고 일부는 혼란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힘과 성원으로 존재하는 우리 군의 임무와 목적을 차근차근 설명하면 거기에 모두 순응하고 동의합니다. 요즘 병사들 정말 대단히 합리적이고 현명합니다. 일부에서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약하다고 걱정하시는데, 제 경험으로는 과거 병사들보다 훨씬 우수한 자질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선호 이번에 또 군납 비리가 터지면서 군에 대해 불신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남겨지고 말았죠. 아무리 군을 정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도 여전히 군 내부의 비리 인사들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살기 좋아졌고, 군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비리 인사들이 암세포처럼 조직 내에 기생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애써 쌓은 좋은 이미지라도 이런 사건이 한번씩 터지면 “아직도 군은 안 돼”로 다시 되돌아가고 맙니다. 장교들은 항상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장영순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저희도 선배님같이 군에 관한 칼럼을 쓰시는 분들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솔직히 아주 극소수 아닙니까. 그런 비리 인사들은 어느 조직이나 한둘씩 꼭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극소수의 행태가 마치 군의 오래 된 관행인양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좀 바로잡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런 문제가 터지면 일반 국민들께서 “국방비 올려줘 봐야 다 빼돌린다”고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애꿎은 저희 같은 일반 장교들이나 사병들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선호 국방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국방비 예산은 현재 수준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저도 군 출신이고 여러 후배님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무작정 국방비 증액을 말하기에 앞서 현재의 돈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현재 8대 2의 비율인 인력 관리와 전력 증강 예산이 그것입니다. 인력 관리 비용은 좀 더 줄이고, 그 돈으로 전력 증강 사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군의 감축이 필요한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장영순 저희도 앞으로의 군대가 ‘정보과학군대’로 가야 한다는 점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이 시대적 대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군 감축은 군의 정보화, 과학화가 어느 정도 선행된 후에 서서히 추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감축은 자칫 전력의 손실과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또 현재의 병영 자원 부족으로 앞으로 자연스럽게 병력은 감축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선호 그나저나 여기 나와 계신 후배 장교들의 나이를 보니 전체적으로 장교들의 연령이 예전에 비해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군요. 여기 두 분은 40대 하고도 중반인데 아직 중령이군요. 격·오지 근무를 하게 되면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을 텐데, 고생스럽죠?
박무춘 한때 강의를 들었던 한 대학 교수님을 얼마 전에 찾아가 인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교수님이 저를 보시더니 “자네, 아직도 중령인가” 하고 놀라시는 겁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제 대대장에게는 당번병도 없습니다. 선배님 때는 대대장이면 관사병 한 명은 있지 않았습니까. 보일러병도 별도로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운전병 한명 뿐입니다. 자녀들의 학교 문제로 식구들이 따로 떨어져 있는 대대장들은 본인이 직접 관사에 퇴근해 시장도 보고 청소도 하고 옷도 다림질하고 그럽니다.(웃음)
이선호 여러 현역 후배 장교들의 말씀을 통해 저도 오늘날 군의 실상에 대해 새로운 내용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했던 부분들에 대해 안도하는 면도 있고요. 아무튼 열심히 군생활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