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재 옛길은 전남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목란마을 입구에서 전북 정읍시 입암면 등천리 군령마을까지다.
안 쉬고 걸으면 왕복 2시간이면 가능하다.
출발 위치는 전남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산 39-2번지이다.
목란마을 입구 길 오른쪽에는 南陽 洪氏 世葬山(남양 홍씨 세장산)이라고 쓴 석비가 있다. 이 산이 홍씨들이 대대로 묘를 쓰는 선산인 모양이다.
또 길가 바위에 장성부사 비를 두 기 새겨놓았다.오른쪽은 "府使 金 侯 瀗秀 淸白善政碑(부사 김 후 헌수 청백선정비),壬辰 五月 日(임진 오월 일)이라고 새겨놓고 왼쪽은 府使 李 公 堣 沒世不忘碑(부사 이 공 우 몰세불망비),六季居官 惠澤旁流(육계거관 혜택방류),辛未 八月 日(신미 팔월 일)이라고 새겨 놓았다.
목란마을 입구 길 왼쪽에는 한 바위에 "원덕2구 목란" 이라고 마을 이름을 새겨놓고 노란 색으로 칠을 해 놓았다.장성군이 "옐로우 장성군"을 추구하는 까닭이다.또 다른 바위에는 "토굴젓"이라고 빨간 색으로 적어놓았다.흙굴 안에서 젓을 숙성시킨다고 한다.
50m정도 오르막길로 가니 길 왼쪽에 "갈재길 정상 1.31km"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반대편에는 붉어져 가는 옛날 감이 먹음직스럽게 달려 있다. 길가의 단풍나무는 잎을 붉그레하게 물들이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250m정도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보면 갈재길 입구를 알리는 종합안내판이 나타난다.목란마을→갈재→폐철도길→군령마을까지 3km정도의 산길을 걷는다.
옛길 입구에 이름모를 열매가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반긴다.그 뒤에는 쉼터 건물이 보인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길 오른쪽에 푸르름을 자랑하며 자라고 있다.
나무널판으로 맹근 쉼터가 두 개 보인다.
가다보니 안내판에 시가 적혀 있어 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장성 갈재 넘으면
최일환
종착역을 아직 묻지 않아도
장성 갈재 넘으면
긴긴 여행은 끝나는 것 같다.
쫓겨 온 듯 지난 길을
이제 비로소 되돌아보며
죄 있어 잡혀도 안심인 듯
행여 잘못 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리
뭘 하고 오느냐고 묻지 않아도
장성 갈재 넘으면
지난 것은 모두 잊어버린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껑충 뛰어
어머니 품인 듯 내리고 싶은 곳
어딘들 사립문들이 열려 있어서
된장국 냄새 확 코를 찌른다.
해목 최일환(1939~2005)
전남 해남 출생.서울문리사대,명지대학교를 나와 한국문인협회,한국기독교문회협회 회원을 지냈고 시집 <푸른색 웃음이><새벽 그 시간에> 등이 있음.
올라가다보니 나무 널판 쉼터가 차례로 네 군데나 나란히 있다.
이제 산허리를 돌아서 샘터까지 왔다. 오른쪽에는 샘터가 있고 가운데는 샘터 안내판과 나무 널판 쉼터가 있다. 왼쪽은 "갈재길 정상 430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안내판을 읽어 본다.
길객의 오아시스
샘터
그 옛날 길객들의 메말랐던 목을 축여 주었을 옹달샘.갈애바위 전설에 나오는 주막집 딸 갈애가 목욕도 하고 축였을 샘.조선 숙종때 전염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숙빈 최씨(동이)에게 용흥산 스님이 살길이라 알려준 곳이 장성 갈재.네가 살려면 장성 갈재 샘터로 가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동이는 이곳 갈재로 온다.그리고 거지 형상의 동이가 샘터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던중 나주부사로 부임하던 민돈중의 눈에 띄어 서울까지 가게되고 그후 숙종의 총애를 받아 인현왕후도 구하고 자신도 숙빈 최씨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샘터이다.
샘터에는 파란 바가지가 하나가 옆으로 헤엄치는 새우랑 지키고 있다.
가다가 마지막 나무 널판 쉼터가 햇빛을 받으며 따사롭게 있다.
이제 정상이 보인다.왼쪽에는 쉼터 정자와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다. 안내판을 읽어본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 갈재 갈재는 해발 276m(갈재길 고개는 220m)의 야트막한 산이나 예로부터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호남평야와 전남평야 곡창지대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고 지금도 국도 1호선,호남고속도로,호남선 철도,고속철도가 관통하고 있어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옛날 수많은 선인들이 인생의 애환을 간직하고 넘었던 길.때로는 기쁜 일로,때로는 슬픈 일로 넘어야 했던 숙명의 길.과거 보러 가는 과객도,청산과부도,소장수도,봇짐장수도,신혼의 새색시도,귀양살이 가는 이도,새로운 부임지로 가는 이도 넘어야만 했던 운명의 길이다.갈재 암벽의 글은 장성부사 홍병위의 불망비이다.
※장성부사 홍병위
장성군지에 1871년 5월 3일 부임하여 1872년 12월 15일까지 근무했다고 기록돼 있음.
정상은 원래 높이 4m정도의 암벽인데 그것을 홍병위 부사가 사람들과 같이 깨어 길을 낮춘 것 같다.
암벽 왼쪽에는 "府使 洪 侯 秉瑋 永世不忘碑(부사 홍 후 병위 영세불망비),壬申 九月 日(임신 구월 일)"이라고 새겨놓았다.
북쪽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어온다. 이제 고개 넘어 내리막길이다.한결 걷기 좋다.
저멀리 마을과 철길과 산길과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껍질이 새카무레한 나무들이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내가 이래 살아왔다고...
오래된 전봇대가 길을 가로질러 눕어 있다.잠시 앉아서 쉬어가라고...
바람이 불때마다 잎들은 하늘거리며 추락을 즐긴다.잎은 어느새 옛길에 수북히 쌓여 푹신한 길을 맹글어준다.
누런 잎을 가진 작은 나무들이 모여 길을 밝히고 있다.
이제 입암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라고 나무기둥에 밧줄을 끼워놓은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새로 맹근 길은 경사가 심하다.나무계단도 보인다.
쇠기둥을 한 곳이 나타나고 또 다른 길이 저 아래에 보인다.
옛날에 기차가 다닌 길이라고 한다.지금은 철문으로 닫아놓았다.
아름드리 삼나무숲길이 나타난다.나무냄새가 좋다.
이제 산길을 거의 다 내려왔다.이정표와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읽어 본다.
호남선 입암 옛철길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설립되어 1987년까지 사용되다가 지금은 철로와 침목 등이 모두 철거되고 경치 좋은 길로 손꼽히는 호남선 옛 철길입니다.폐 철로가 놓여있던 수려한 곡선 길이 주위의 가로수들과 함께 아름다운 탐방로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당시에 뚫린 2개의 터널은 1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즐거운 상상력을 줍니다.제 1터널은 321m,제2터널은 945m나 되는데 터널을 지나며 만나는 서늘한 바람은 한여름에도 등줄기의 땀을 가시게 할 정도입니다.
가다가 넓은 길가에 쉼터가 보인다.
조금더 내려가니 드디어 군령마을이 나타나고 오른쪽에 터널도 나타난다.
하얗게 빛나는 억새가 흩날리는 마을이 참 포근하다.
뒤돌아보니 억새밭이 가슴을 흔들고 있다.
터널이 나타난다.시원한 바람이 먼저 반긴다.철문이 활짝 열러 있으니 들어오라는 표시가 아닐까? 반대편 구멍이 쪼매하다.
터널 가운데쯤 가서 사진을 찍으니 쪼맨 빛은 어느새 광채를 뿌리며 온 터널을 삼킨다.나도 빨려 들어간다.무아지경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