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시 9:1-1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윗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이름 없는 목동이었던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다니던 다윗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광야로 도망을 치기도 하고, 동굴에 숨기도 하고, 너무 다급하여, 골리앗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도망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다윗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했고, 아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라고 말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어도 은혜가 되지만, 특별히 시편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됩니다. 시편을 읽다가, 어느 순간, 말씀이 와 닿을 때, 힘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은혜가 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까이 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림의 떡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직접 먹음으로, 우리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떡이요, 생명수입니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은혜가 되고 복이 됩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게 됩니다.
“먹어야 산다“라는 말이 있는데, 지쳐 쓰러진 사람도 먹어야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음식이라고 해도, 먹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직접 먹어 보지 않으면, 그 참된 맛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여수 오동도 근처에 있는 이순신광장에 가 보니, “3대 여수딸기찹쌀떡” 본점이 있었습니다. 가게 벽면에 “1968년 오사카에서 처음 전수받으신 1대 외할머니의 손맛 그대로 2대 어머니, 3대 손녀로 이어온 정성껏 제대로 만드는 수제 모찌 전문점입니다.”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딸기 찹쌀떡을 사기 위하여 줄을 서 있었습니다. 줄도 길고, 다른 일도 있어, 그냥 지나쳤는데,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그곳에서도 비슷한 딸기 찹쌀떡을 파는 매장이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사 먹으려고 들어갔다가, 3개 들어있는 것이, 15,000원이라고 써 있기에 그냥 나왔습니다. 딸기 하나에 5천원이라니, 사 먹기에 너무 비쌌습니다. 좌우지간, 유명하다고 하는 여수딸기 찹쌀떡 맛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진열되어 있는 찹쌀떡만 보고 왔는데. 다음에 가게 되면, 큰 맘 먹고 사 먹을 수 있겠지요. 그래야 그 맛을 알겠지요. 정말 맛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여수딸기 찹쌀떡 사 먹으려면, 3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영영 못 먹을 수도 있습니다. 3시간이면,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먹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은 다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숨어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사울과 다윗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사울왕은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을 둘째 딸 미갈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았습니다. 왕의 사위이기에, 다윗은 왕궁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왕의 식탁에 앉아, 의무적으로 식사를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불편해도, 다윗은 사울왕 곁에 늘 있어야 했습니다.
사울왕의 입장에서 보면, 눈에 가시 같은 사람, 반드시 제거해야 할 사람이,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울왕은 딸 미갈과 나란히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사위 다윗을 보면서, 겉으론 미소를 짓으면서도, 속으로는 “저 녀석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을까? 내 자리를 넘보고 있을텐데, 조금만 방심하면, 저 녀석이 왕의 자리를 차지할텐데”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편한 자리입니다. 왕의 사위가 되어, 공주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지만, 늘 불안합니다. 사위이기에, 그 식사 자리를 빠질 수도 없습니다. 다른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댈 수도 없습니다.
어느 날에는, 다윗이 사울왕 앞에서 수금을 타고 있을 때, 사울왕이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사이에, 어쩌면, 창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창을 들고 서 있는 병사들에게, “다윗을 죽이라”라고 명령할지도 모릅니다. 왕궁 안에서, 왕과 함께 산해진미가 가득한 식탁에 안아 식사를 하지만, 어쩌면 돌 씹는 기분일지도 모릅니다.
여차여차하여, 다윗은 왕궁을 떠났습니다. 왕자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도망을 쳤습니다. 다윗이 도망친 것을 알고, 사울은 그를 잡으려고 친히 군사를 이끌고, 뒤쫓았습니다. 매일 불안하고 두려운 날들이었습니다. 이러한데,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요? 원망이 터져나오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굴속에 숨어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오늘은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사울왕에게 쫓겨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데, 감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비록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일주일 동안 감사한 일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감사의 제목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교통사고가 나 길가에 세워져 있는 차량들을 보게 됩니다. “교통사고가 왜 일어날까?” 운전할 때, 기본 질서만 잘 지켜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신앙의 기본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도망다닐 때, 산해진미가 차려진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시편 23편을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4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셨다”라는 말은 “원수들이 보는 알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주셨다”라는 말입니다.
다윗을 죽이고자 추격하는 원수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얼마나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하여 먹었겠습니까? 어쩌면, 아주 급하게 준비한 주먹밥 정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다윗은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일들, 즉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매주일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부족한 입술로 주님을 찬송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합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편 57:1-2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다윗은 거듭거듭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끈질기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였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를 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까? 한 마디로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가까이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의 눈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평안하게 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입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 기도와 찬양의 자리로 나오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아주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 품에 안기면 안길수록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가까이함으로 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망의 문, 죽음의 문, 절망의 문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것이 가장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바울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기도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켜 주옵소서. 낙심과 절망의 문에서 일으켜 주옵소서. 실패의 자리에서 일으켜 주옵소서.”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의 고통을 돌아보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죽음의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그 고통을 돌아보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10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반드시 축복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통을 주님께서 돌아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시 10:14)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으로 우리의 재앙과 원한을 갚아 주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보고 계실 것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무슨 은혜가 필요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보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이미 보셨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의 사정과 형편, 문제, 질병, 고민, 갈등, 우리의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보셨습니다.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의 찬양하는 모습을, 주님께 은혜를 구하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보셨습니다.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주님께서는 이미 보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이미 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형편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우리 가정과 자녀들의 삶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우리 교회의 모든 사정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여러분! 감사와 찬양과 기도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를 죽음의 자리, 멸망의 자리에서 일으켜 주옵소서.
우리의 형편을 살펴 주옵소서.
변함없는 은혜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