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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0;27-31. 힘들고 어렵고 넘어져도 일어나야하는 이유. 2024. 10. 13.
한번 실수를 하고, 한번 넘어지면 그렇습니다. 더욱이 비중이 있는 사람의 삶이나 모습이 현장에서 넘어지고 실수를 하면 주위에서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아마추어는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거나 시도도 하지 않지만, 프로는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그런데 일어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바로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져 가고 있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기독교와 우리 비전 교회, 우리의 사업장 우리의 공동체, 우리들이 처한 상황들을 봅니다. 내일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서 낙심하고 원망하기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고 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프로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지금의 현실로 실족하는 것은 아마추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연 주님만 바라보는가?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인가? 지금의 시련과 시험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고난과 고통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프로니까요! 여러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넘어짐과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하려는 마음, 다시 일어나는 의지입니다. 끝까지 소망과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이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 한 쪽 문이 닫히면 하늘 문을 여십니다. 하늘 문이 닫히면 사람을 보내십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적인 하늘 문을 닫으시고 간접적인 이사야를 보내십니다. 한 쪽은 포로로 고생을 하고 한쪽은 이사야를 통해서 축복과 회복을 말씀합니다. 이사야는 예수님 탄생 기점으로 주전 750년경의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기 약 150년 전의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예례미야 선지자보다 약100-150년 전의 사람이었으며 , 바벨론의 포로를 예언한 선지자는 예례미야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인의 삶을 이어가지 못하면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전반부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범죄로 인하여 포로 된 바벨론의 비참한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아픔이 있고 절망과 비극과 고통의 삶입니다. 그런데 40장부터 66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넘어지고 쓰러져서 주위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40장은 때가 차면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약속한 땅으로 귀환시키며 내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위로와 소망을 주는 회복과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쓰러지고 넘어지는 그래서 손가락질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위로와 용기와 격려를 하십니까?
1. 어떠한 경우에도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는 쓰러지고 넘어졌는데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이것이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야 할 내용입니다. 한국의 제주도에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곳이 있는데 사라봉입니다. 관광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안 가는 곳입니다. 해변 가와 산과 들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곳 가운데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고, 밑은 바다로 연결된 낭떠러지입니다. 그 바위에 크게 새겨져 있는 글씨가 있는데,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세요. 왜 한번만 다시 생각하라는 글귀가 있을까요? 그 바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제주도에서 가장 많습니다. 괌에 가면 자살 바위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갈대아 여러 강변에서 울었습니다. 아하와 강변에서 울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 혀가 입천장에 붙었습니다. 그래서 27절에 야곱아 네가 어찌하며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 보거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 아니냐? 강한 팔로 다스릴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현실이 어렵고 힘이 들어 쓰러지고 넘어지지만 우리들의 가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일 만엔짜리 지폐가 구겨지고 찢겨 진다고 천엔이 됩니까? 현실 때문에 자학하거나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프니까 인생이고 넘어지니까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영국의 역사를 바꾼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가 상원의원에 출마했습니다. 당당히 이기리라고 모두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낙선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상하여 두문불출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피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서 벽돌공의 날렵한 손놀림을 주시하게 됩니다. 벽돌공은 벽돌 한 장을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발랐습니다.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더니 한참 후에 견고하고 거대한 담벼락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처칠은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는데, 인생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는 작업이다. 인생 여정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 다시 한다. 그 날 벽돌공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처칠은 다시 정치계에 뛰어들어 평생 지치지 않고 활동하는 성공적인 인물이 됩니다. 여러분, 의학적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우울증과 무기력증의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사회문제와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공황 때문에 모든 사람이 우울증 환자가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초점을 잃어버린 동공이 하늘만 쳐다봅니다. 자포자기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 수 십 명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삶에 지쳐 있는 모습입니다. 의욕이 없고, 오랜 병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일을 해도 결실이 없기 때문에 지쳤습니다. 인간관계가 복잡하여 지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회의와 아픔과 고통으로 인한 무기력증 환자와 우울증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27-30절에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지쳐있고 넘어져서 일어날 기운조차 없는 백성들에게 앞으로 70년이 지나면 해방되어 다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주고, 위로와 격려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끝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나요? 70년이 마치는 그 때에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나라의 왕, 고레스를 통해서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향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되돌려 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과 절망과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는 사랑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9절.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달프고 낙심될 때에도 힘을 더하시고 능력을 더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일으키십니다. 아멘
2.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아픔과 고통과 고난을 주실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과 비전교회를 강한 자로 키우시고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언제나, 늘, 자기 백성이 새 힘을 얻어 신앙 안에서 강한 자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강한 훈련을 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한 훈련이 이 후에 어려움을 견디게 하며 어떤 시험도 거뜬히 넘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준에 맞는 주님의 일꾼이 되도록 훈련하시고 시험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고, 지친 것 때문에 결코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일까요?
2-1.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외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여러분, 영원이 무엇입니까? 지금, 현재와 끝이라는 의미와 비교되는 표현 아닙니까?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신앙인은 인생을 길게 보아야 합니다. 조급하거나 현재만 보면 아니 됩니다. 현재와 지금만 보면 내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현재, 이 시간 속에서도 언덕너머를 보고 구름 위를 보고, 내일을 볼 수 있고 또 다른 무엇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안목이 있으면 여유가 있습니다. 어떤 아빠가 3살 난 아들을 데리고 동물원구경을 갔습니다. 사자우리 앞에 섰습니다. 사자가 어린아이 앞으로 다가 오더니 입을 딱 벌리고 으르렁거립니다. 아이는 외마디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왜? 저 사자 좀 봐요. 그 때 아빠가 너는 사자만 보지만 사자와 너 사이에 창살이 있단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의 포로 될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사야의 대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칩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바벨론을 좀 보세요. 그러나 이사야는 너희들은 바벨론만 보고 있지만 나는 바벨론과 너희 사이에 있는 하나님도 보고 있다. 그 분은 영원하신 분이라고 외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는 문제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영원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과 현실에 대하여 낙심하거나 지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이 끝이 아니고, 지금의 현상이 다가 아닙니다.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기죽을 필요가 없고,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조급해할 일도 없습니다. 멈추기엔 너무나 이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있을 때 뒤에서 애굽의 전차 군대가 쫓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 홍해와 뒤의 애급 군사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였느냐고 모세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앞의 홍해, 뒤에 애급 군사만 본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 긴박한 순간에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그 하나님을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됩니다. 그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고,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2-2.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며, 막힌 것을 뚫으시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땅 끝까지 창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고 만들어지고, 창조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4:17-22.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여러분, 없으면 있게 하시고 안 되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결코 지칠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나의 삶과 환경을 위하여 창조하십니다.
2-3. 하나님은 지치지 않고 곤비치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여러분, 우리는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입니다. 그 분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한 여름에도 까만 양복에 까만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시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통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하시딤을 창설한 이는 바알 쉠 토브입니다. 그가 그렇게 큰일을 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토브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 토브야!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너를 돌볼 수가 없구나. 나의 시대는 이제 끝난다. 나는 너를 떠나지만 하나님은 너를 떠나지 않으신다. 네 평생에 네가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은 평생 너를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너는 세상에 누구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을 붙들고 굳세게 살아라.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렇게 유언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토브는 아버지의 유언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늘 자기를 지키고 계심을 믿고 살았습니다. 지칠 때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피곤치 않으시고 곤비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지키는 전통을 이어가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3. 고난과 고통과 아픔의 상황을 하나님은 독수리로 비교합니다. 왜 그럴까요? 독수리는 새 중의 왕입니다. 독수리는 강한 훈련을 받습니다. 집은 절벽 끝 낭떠리지와 높은 곳에 둥지를 칩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훈련할 때 둥지에서 새끼를 밀어냅니다. 먹이를 줄 때도 둥지 앞에서 위험하도록 줍니다. 그래서 어린 새끼가 입을 벌리다가 둥지 밖으로 떨어지도록 합니다. 어린 독수리가 공중에서 날개에 힘이 없어 아래로 떨어질 때 어미 독수리가 날아와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내는 훈련을 통하여 날개에 힘을 키웁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훈련을 시키시는가?
3-1. 지혜를 소유하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28-29.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명철은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때 그 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 지혜는 모든 상황을 영적으로 판단하게 합니다. 신앙인의 삶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결정이 됩니다. 독수리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두루미입니다. 두루미는 매우 떠들기를 좋아하는 새입니다. 날아갈 때 많은 소리를 내며 날아갑니다. 그런데 가장 큰 소리를 내는 두루미가 독수리의 정확한 표적이 됩니다. 그런데 노련하고 지혜로운 두루미는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나르기 전에 항상 입에 돌을 물고 나릅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지혜가 있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주어집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시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여러분, 로마의 개선문을 아시지요?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쟁취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에 장군 뒤에서 계속 외쳐 대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입니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오묘한 뜻입니다.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이었습니다.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전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합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러나 화려한 금빛 마차에는 열광 속에 가린 숨은 그림 하나가 있는데, 개선한 장군이 손을 들어 시민들에게 화답하는 동안, 장군 뒤에 탑승한 사람이 큰 소리로 계속 외치는 장면입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언젠 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승리에 도취된 장군을 향해 준엄한 하늘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메멘토 모리에는 세 가지 철학적 가치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이고, 두 번째는 주시고 허락하신 삶의 여정을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이고, 마지막으로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주신 삶을 사랑하라! 현재에 충실하라는 이 세 경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삶의 태도이면서 삶의 지혜입니다.
2-2. 능력과 힘으로 훈련을 시키십니다. 28-29.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힘을 주시면 지치지 않게 됩니다. 힘과 능력을 주시면 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올라가게 하시고 달려가게 하십니다. 여러분, 리빙스턴은 이 말씀 하나를 붙들고 아프리카를 정복하였습니다. 날마다 힘을 주시고 지혜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새 힘을 주신다는 말씀을 곧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 지도자 연구센터가 있는데, 그 곳에서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과 성공한 사람들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연구결과 세 가지 공통점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큰 비전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끈기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해도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끈기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젼 꿈을 가지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고, 나의 분깃을 지키십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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