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진에 담긴 인물들은 미국 영화감독 조지 큐코어(George Cukor, 1899~1983)의 1944년작 영화 《개슬라이트(가스라이트; 가스등; Gaslight)》에 출연한 (왼쪽부터) 프랑스 출신 미국 영화배우 찰스 보이어(샤를 부아예; Charles Boyer, 1899~1978), 스웨덴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1915~1982), 미국 배우 조지프 커튼(Joseph Cotten, 1905~1994)이다.
1938년 런던의 리치먼드 극장(Richmond Theatre)에서 초연된 잉글랜드 작극가·소설가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 1904~1962)의 영극대본(극본; 희곡) 《가스라이트(개슬라이트; Gas Light)》에서 유래했고, 이것을 영화대본(시나리오)으로 각색한 큐코어의 영화에 편승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이른바 가스라이팅(gaslighting; 개슬라이팅)이라는 외국어나 외래어가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범죄학용어나 언론방송용어로서 빈용(頻用)되기(자주 사용되기; 잦게 쓰이기) 시작했다.
암기식·주입식 교육, 세뇌(洗腦; brainwashing; 심리조종; 心理操縱; 마인드 컨트롤; mind control), 최면, 개심, 회개 따위를 연상시키는 이 용어는 좁게는 인심(人心)이나 인정(人情), 즉, 타인이나 타집단의 심정·심리를 조종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대로 조종될 수 있도록 조련하는 수법(심리조련술; 인심조련술; 人心調鍊術; 심정조련술; 心情調鍊術)의 일종을 뜻하고, 넓게는 인간과 동물을 막론한 거의 모든 생물의 타개체나 타집단의 감각·감정·심신을 조종하려는 개체나 집단의 의지대로 조종될 수 있도록 조련하는 수법(감각조련술; 감정조련술; 심신조련술; 心身調鍊術)의 일종을 뜻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심지어 과일, 견과류, 곡물 같은 작물들을 출산하여 동물들에게 취식시켜 씨앗을 유포시키는 식물들의 ‘기발한 궁여지책’처럼 보이는 번식전략전술도 가스라이팅하려는 의지(意志)와 유사한 의지에서 파생했을 성싶게 보인다.
뭐, 어쨌거나, 이런 협의(狹意)들과 광의(廣意)들이 아울러 감안되면, 그리고 이런 의미들의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이 차치물론(且置勿論)되면, 가스라이팅하려는 의지의 원시형(原始型)이나 맹아(萌芽), 과도형(過渡型), 변종은 모조리 예시될 수 없을 만치 중다(衆多)하리라고 추산될 수 있리라.
이런 맥락에서 가스라이팅의지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의지가 모든 사이비종교, 모든 미신, 모든 무속의례, 모든 종교의례, 모든 주문·기도·설교·설법(☞ 참조), 모든 교육·훈육·정훈(政訓)·교련(敎鍊), 모든 시험(試驗), 모든 이념(이데올로기; 이될로기), 모든 주의(主義; 이즘; ism), 모든 관습·체면(☞ 참조), 모든 선전·선동·광고·홍보, 모든 연설·강연·선거유세, 우민화(愚民化)와 혜민화(慧民化)를 막론한 모든 계몽, 모든 언론·방송·출판(☞ 기레기 참조), 모든 사기행각과 사기극, 모든 야바위와 돌팔이약장사, 모든 多段階업체, 모든 신입사원연수, 모든 업계의 장황하고 착잡한 약관(約款)에도 많게든 적게든 함유되었다고 후루룩 뚝딱 총평될 수 있다.
☞ 한국에서는 갑질해도 제품을 잘 팔아먹는 명품업체의 ‘호갱’된 소비자들
☞ 뒷담화나 험담을 일삼는 인간들을 다루는 지혜로운 대처법
☞ 사기꾼들이 부지불식간에 일삼는 두 가지 미세한 행동패턴
그런데 이 모든 심신조련술에, 특히 모든 사기극과 야바위에, 이용되는 여러 수단 중에도 최선용(最先用)되고 최빈용(最頻用)되는(가장 먼저 가장 자주 이용되는; 맨 먼저 가장 잦게 쓰이는) 것이 하필이면 언어이기 때문에 그런 조련수법들에 당했다고 감지하거나 인지하거나 자각한 개체들과 그런 수법들의 폐해를 우려하고 비판하거나 극혐하는 개체들의 언어무용론과 맹목적 침묵주의가, 언어허망론과 맹묵주의(盲默主義)가, 여태껏 특유한 히스테리반응을 동반하여 빈번히(자주; 잦게) 발증박작했으리라.
☞ 언어 자본; 언어무용론, 자본무용론; 헛것론, 허망론, 허무주의의 내막
☞ 말(言)의 창세와 말세 ㅡ 언어 종교 역사
☞ 야바위 정치 심리 돌팔이 약장수 민심 표심 여론
☞ 언어와 침묵; 사용자들의 모순된 인정투쟁 심리
아랫그림 2편 중 첫째것은 독일 화가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1794~1872)의 1860년작 〈예수의 산상설교(山上說敎; 산상수훈; 山上垂訓; 산상보훈; 山上寶訓; 세르모 몬타누스; Sermo montanus)〉이고, 둘쨋것은 미국 화가 조지 벨로우스(George Bellows, 1882~1925)의 1915년작 〈설교(Preachi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