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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농암 최낙인 선생님이 올리신 여행 수필 중에 터키(튀르키예)의 쿠데타 당시 공항에서 겪은 내용이 있습니다.
하여, 제가 예전에 웹소설 플랫폼인 '문피아'에 올렸던 '황제의 꿈'에 나오는 관련 부문을 옮겨 봅니다.
(그 쿠데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꾀하며 자작한 친위 쿠데타로 분석됩니다)
104. 크림반도 7 (친위 쿠데타)
“지금 우리 잠수함이 골쿡 조선소 도크장에 있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위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에게 물었다.
아직 214급 잠수함이 정식으로 해군에 인수가 안 된 상태라서 국방부장관보다 독일 HDW사에 돈을 줘야 하는 재무장관이 현황을 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닙니다. 지금은 AIP 시험한다고 키프러스 근해에서 잠항하면서 물 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정도면 바로 사용해도 되지 않겠어? 어차피 규격 조금 미달일 건데 말이야. 작전 끝나고 HDW에 마저 손보라 하고, 돈 더 달라면 더 주면 되지.”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렸으니 214급 잠수함은 준비가 된 셈이다.
이제 그 잠수함을 그리스 잠수함 S121 함으로 위장하여 ‘마르마라’해에 갇힐 러시아 함정을 공격하면 되는데, 남은 문제는 지휘할 작전 책임자와 승조원을 정하는 일이다.
“그, 그러면 이제.. 그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지휘관을 잘 정해야 되지 않겠어요? 믿을만한 장교는 있어요? 아카르 장관!”
‘을드름’ 전 총리가 얼른 나서서 국방장관에게 작전을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는 있느냐고 물었다.
젊고 패기찬 정보부장 ‘피단’의 작전 제안에 대해 줄곧 삐딱한 시선으로 꼬투리만 잡으려던 전 총리다.
이제는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본인의 소신을 쉽게 바꾸는 걸 보니 역시 정당대표 출신다운 처신술이 돋보인다.
지금은 대통령제로 바뀌어서 총리 직책이 없어졌지만, 대통령인 에르도안이 창립한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당대표를 맡고 있으니 자기 딴에 자부심은 대단한 것 같다.
“아, 예. 제가 알기로는 214급 잠수함의 정상적인 운용은 장교 5명에 승조원 22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전의 목적상 절반 이하의 인원으로도 충분하겠지요?”
국방장관 ‘아카르’가 ‘을드름’의 질문은 무시하고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해도 되겠느냐며 정보부장 ‘피단’을 쳐다봤다.
‘훌루시 아카르’ 국방장관은 3년전에 현역으로서는 최고 직함인 방위참모총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2016년 7월 15일 밤에 쿠데타가 일어나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합동참모사령부를 습격한 쿠데타 군대에 의해 구금되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쿠데타군에 가담하길 거부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공로로 지금 국방부장관으로 승진되어 대통령과 함께 국가의 장래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럼요! 오히려 꼭 필요한 절대적인 인원만 추려서 작전에 투입하는 것이 보안상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우리 정보부 인원도 한 명 참가시키겠습니다.”
정보부장 ‘피단’이 예의를 갖추고 감사한 표정을 지으며 국방장관에게 자기 의견을 말했다.
그런데, 국방부장관이 새파란 ‘피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상의하는 걸 보니까, 역시 터키에서도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할 수 있는 실세 정보부장의 위상이 군부의 최고위층보다 실제로 더 높은 것 같다.
“그래요? 잘 알겠소. 이 작전은 전투 기술력보다는 보안이 더 중요하니까, 함장으로 내가 믿을 수 있는 해군 대령을 한 명 찾아보겠소. 나머지 대원들은 그 함장이 알아서 선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육군출신 국방부장관으로서 당연한 얘기인 것 같다.
“거, 장관자리에까지 오르면서 해군에 심복하나 심어두지 않았어요? 쿠데타 후에 군 내부의 정화는 제대로 되었는지 걱정되오. 음, 흠.”
핫바지 당대표인 전 총리가 자기 위상에 맞춘답시고 또 한마디 하고 지나간다.
작년만했어도 총리 밑에 장관이니까.
군부 책임자인 참모총장이 제대로 못해서 3년 전에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질책도 섞여있다.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불순분자가 군에 남아 있겠습니까?”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이 끼어들며 한마디 했다.
에르도안은 쿠데타 후에 ‘알바이라크’를 최고군사평의회 위원으로 임명했었는데, 최고군사평의회에서는 군 장교들의 임명과 승진에 관한 권한을 쥐고 있다.
에르도안은 작년 2018년 7월 9일에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2015년부터 에너지 장관이던 사위 ‘알바이라크’를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2017년에 국민투표에 의해 헌법을 개정해서 대통령이 입법과 사법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되어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나이 40세인 대통령의 사위가 재무장관에 임명되자 터키의 리라화 가치가 연초 대비 25%나 폭락하여 환율이 급등했고, 리라 약세와 경기 과열 조짐으로 물가상승률은 한 달도 안돼서 15.8%를 넘어서 15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심섹’ 부총리의 연임을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심섹’ 부총리는 투자은행 출신으로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
지난 2004년 에르도안의 딸과 결혼한 ‘알바라이크’는 미국 뉴욕의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하고 ‘칼릭 홀딩스’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가 2015년 의회에 입성했다.
같은 해 말에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된 ‘알바라이크’는, 에르도안 정부에서 대부분의 고위 관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지랖 넓은 행동으로 여당인 정의개발당(AKP) 내부에 반발을 불러일으킨 일도 있다.
권력자의 측근에 의한 이런 좋지 않은 일들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잘 발달된 요즘에는 금방 널리 퍼져서 세간에 알려지고, 그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의 현정부에 대한 반감이 암암리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정부의 전복을 꾀하는 특정 세력이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데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 그럼요. 제가 장관자리에 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군부 내부의 불순 세력에 의한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국방장관 ‘아카르’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핫바지 ‘을드름’의 잔소리를 눌러버렸다.
그런데, 터키에서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國父)의 뜻에 따라, 헌법에 규정된 ‘세속주의(자유로운 민주주의)’가 침해 받는다고 판단되거나 정국혼란이 이어지는 경우 ‘공화국의 수호자’로 자부해온 군부가 나서서 정권을 장악, 새 정부를 구성하게 한 후 민간정권에 이양하는 식의 쿠데타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일어난 적이 있다.
부패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무너뜨리고 근대적 개혁을 하겠다며 1913년 ‘청년 투르크’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는 터키공화국 창건의 바탕이 됐다.
1960년과 1971년, 1980년에도 군이 나서서 정권을 장악했다.
가장 최근의 쿠데타는 1977년에 일어났다.
당시 복지당을 이끌던 ‘에르바칸’ 총리가 세속주의 원칙을 깨고 이슬람주의를 추구하자, 군 지도부가 국가안보위원회를 구성하고 ‘에르바칸’의 연립정권을 무너뜨린 뒤 권력을 접수했다.
군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지만 물리적 충돌이나 유혈사태는 없었다.
이 사건은 당시 쿠데타를 주도한 ‘데르비쇼울루’ 장군의 표현대로 ‘포스트모던(신선한) 쿠데타’라 불렸다.
쿠데타 뒤 복지당은 정교분리 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산됐으며, 1999년 총선이 치러져 군부는 민간에 정권을 이양했으며 ‘에제비트’ 총리가 취임하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군부가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가 안에 존재하는 세력이라는 뜻의 ‘딥 스테이트(deep state)’로 불리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3년 전 2016년 7월 15일 밤에 군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는 과연 어떠했는가?
현지 시간으로 밤 11시가 되어갈 무렵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총성이 들리고 군용 제트기가 저공비행을 했다.
이어서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이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대교들은 통행이 금지됐고 이스탄불 중심가의 탁심 광장도 군인들이 장악했다.
탁심광장은 2013년 에르도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군중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당시 에르도안 정부는 시위를 유혈 진압해서 세계의 비난을 받았었다.
그러고 한 시간쯤 뒤 자정에 쿠데타를 주도한 군인들이 국영 TRT TV 방송을 통해, 수도 앙카라와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주요 국가시설들을 장악했으며 이제 정부를 대신해 국가를 운영하게 될 “평화위원회”가 군법에 따라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군인들이 TV에 직접 출연하는 대신 아나운서를 통해 읽게 한 성명에서 “현 정부는 민주적이고 세속주의적인 법의 지배를 무너뜨렸다”면서 새 헌법을 공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의 독재와 이슬람화를 막기 위해 군부가 나섰다는 얘기다.
‘CNN 튀르크’는 앙카라의 합동참모사령부에서 헬기 총격이 일어났으며 군인들을 태운 버스 두 대가 TRT 방송국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TRT 방송의 정규프로그램은 모두 중단되고 일기예보만 내보내졌다.
이스탄불 경찰 사령부에서도 총성이 들렸으며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밖에는 탱크가 주둔했고 모든 항공편이 취소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쿠데타가 일어난 그 시간에 대통령 에르도안은 휴양지인 ‘마르라리스’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기들과 헬기가 앙카라 경찰본부에 2차례 사격을 가했다는 국영 ‘아나돌루통신’의 보도와, 쿠데타 과정에서 경찰 17명이 숨졌다는 ‘휴리에트’의 미확인 보도가 계속 전해졌다.
현지 언론들은 군 최고사령관인 ‘아카르’ 장군이 군 사령부에 인질로 구금되어 있고, 앙카라의 사령부 건물은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들이 장악했다고 전했다.
육군참모총장의 행방도 불분명한 가운데 정부군의 육군 제1사령관 ‘위미트 뒨다르’는 이스탄불 주지사에 연락을 취해 “육군 제1사령부의 소규모 그룹”이 봉기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터키 최대도시 이스탄불에 위치한 1군사령부가 터키 군부의 핵심이다. 수도 앙카라는 2번째 규모의 대도시이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한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몇몇 장교들의 소행이 아니라 군부 내 실세들이 결합된 잘 조율된 쿠데타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휴가지 ‘마르라리스’에서 페이스타임을 통해 “나는 터키 국민들이 공공 광장과 공항에 모여 집회를 하기를 촉구한다. 민중의 힘보다 더 높은 권력은 없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쿠데타 발생 다섯 시간만인 7월 16일 새벽 4시쯤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비행기로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하였고,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공항 밖에 모인 가운데 티브이로 방영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오전 5시18분에 ‘아타튀르크’ 공항이 완전히 재탈환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경찰이 터키군 본부에 있는 쿠데타 주동자를 포위했다.
6시30분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호원도 없이 공항 밖으로 나와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했는데,
“터키에서 무장한 군대는 나라를 지배하지 않으며, 나라를 이끌지 않는다. 그들은 그럴 수 없다.”
고 말하고, 미국에 망명중인 정적 ‘팻훌라흐 귈렌’을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하고 맹 비난했다.
오전 6시와 8시 사이에 작은 전투가 벌어졌지만 ‘아카르’ 합참의장의 부재중에 제1군사령관 ‘뒨다르’가 합참의장 대리로 임명되어 쿠데타는 진압되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된다.
게다가 쿠데타 초기 과정에서 계획을 주도한 ‘세미흐 테르지’ 준장마저 부하에 의해 사살당하자, 쿠데타 군은 더 이상 단일한 작전본부에 의해 통제되지 못하고 약하게 연결된 여러 집단이 불협화음을 내는 형상으로 진행되었다.
군부가 쿠데타를 시작하기 전 처음으로 점거한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대교에서는 군인 50여명이 무기와 탱크를 버리고 손을 들고 걸어 나왔고, 군사본부를 점령했던 200여명의 군인도 무장을 해제하고 나와 경찰에 투항했다.
터키 군용헬기를 타고 그리스 동북부 지역에 도착한 남성 8명이 망명을 신청했다고 그리스 경찰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는데, 이중 7명은 군인이고 1명은 민간인 신분으로 알려졌다.
터키 관영 뉴스통신사 ‘아나돌루아잔시’는 익명의 군 정보통신을 인용해 ‘메흐멧 쾨제’ 대령 등, 소위에서 대령까지 37명이 주동자라고 보도했다.
‘쾨제’ 대령은 육군 법무자문관을 맡았으나 최근에 보직이 해임됐다고 전해졌다.
주모자가 불확실한 이 군부 쿠데타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306명, 부상 1,440명인데 사망자 중에 정부군 측은 군인 114명, 경찰 41명이고 쿠데타 군 측은 병사 104명이며 2,839명이 체포되었다.
쿠데타에 항의하여 저지하던 민간인 사망자도 47명이나 되었다.
쿠데타 발생 불과 닷새만인 7월 20일까지 쿠데타 관련 혐의로 4만5천명의 군인, 경찰, 판사, 공무원들이 체포되거나 정직되었는데, 이 중 판사가 2,700명, 교사가 15,000명이 포함되어있고 대학교의 학장도 정직됐다.
쿠데타 발생 1년쯤 뒤인 2017년 8월 1일부터 주동자들에 대한 재판이 개시됐는데, 주동혐의자는 221명이며 이 중 27명이 장성출신이었다.
피고들 선두에는 전 공군사령관인 ‘아킨 오즈트루크’ 대장이 세워졌다.
이번 쿠데타에 전투기가 여러 대 동원된 점이나 최고사령관인 ‘훌루시 아카르’ 방위참모총장이 공군기지에 감금돼 있었다는 발표 등에 미뤄, 공군의 최상층부가 이번 쿠데타에 주도적으로 가담했을 것으로 초기부터 예상됐었다.
이 쿠데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체제 인사와 언론에 대한 탄압 등으로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터키가 정치적인 혼란을 겪는 가운데 발생했다.
이 정도의 상황이 진행되면 이번 터키 쿠데타의 성격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설프게 진행돼서 이해하기 어렵게 소멸된 쿠데타 기도를 빌미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오히려 친위쿠데타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친위(親衛) 쿠데타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던 국가지도자가 합법적인 수단을 통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입법부를 해체하거나 헌법을 무효로 하여, 정상적 상황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극도로 강력한 권력을 쟁취하는 체제 전복 행위를 말한다.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자기 수족을 희생시키는 일종의 고육지계, 고육지책인 셈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지도자는 독재자로 변신하게 마련이다.
“그럼요! 장관님이 어떤 분이신데 감히 군부에서 다시 엉뚱한 생각을 갖겠습니까? 지난번 쿠데타 때 놈들에게 연금되시고도 끝까지 가담 못한다고 버티신 덕분에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는데요.”
‘피단’ 정보부장이 국방장관 ‘아카르’를 치켜세웠다.
“민망하게 왜 그러시오? 하하. 내가 아무리 버티고 있었어도, 각하께서 아타튀르크 공항에 일찍 도착하지 않았으면 다 끝장날 뻔 했지요. 지금도 각하의 그 대단한 결심에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아카르’ 국방장관이 아부성 발언으로 그 당시의 창피스러웠던 자기의 처신을 카무플라주 했다.
“자, 그럼 국방장관은 서둘러 그 함장을 선정해서 만나보도록 하고, 오늘 회의는 이만 마치기로 하지. 정보부장은 할말이 있으니까 좀 남아있어.”
에르도안 대통령의 한마디로 터키정부의 대 러시아 흑해함대 작전 회의는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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