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면 내소사는 인파로 제법 붐빈 다. 선운사보다야 아직은 양반이지만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한가로웠던 정취는 잃어 가는 느낌이다. 벌써 주차장에는 대형 버스 몇 대와 소형차량이 많이 와 있다. 입장료 또한 만만치 않은 1인 2,600원 단체는 300원 할인 혜택이 있어 2,300원, 주차비가 4,000원이나 된다. 서너 명의 아저씨들이 일주문 앞에서 그냥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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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느낌을 주는 내소사 전나무 숲길
일주문을 지나 내소사 경내로 들어서면 시원한 전나무길이 한결같이 우리를 반긴다. 일주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보여 그 길을 걸을 때만큼은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부처님의 세계를 향해 오르는 구도자의 기분을 청량하게 해 주는 이 전나무는 침엽수에서 나온다는 "피톤치드" 성분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른다. 전나무 숲이 끝나는 곳의 왼쪽으로 부도밭이 있는데 옛날에 왔을 때와는 달리 왕릉의 곡장처럼 담을 둘러쳐서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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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숲길 끝에 있는 내소사 부도밭
잘 정돈되어 깨끗하고 정갈한 맛이 돋보이는 부도밭이지만 자연과 어우러지는 느낌은 덜하다. 절집에 가면 중창불사를 탓하는 답사인 들이 많다. 번쩍번쩍하고 으리으리한 건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만들었던 우리 옛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놓은 경우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탓하는지 모른다.
내소사는 일요일이면 연인들이 손을 잡고 오는 데이트코스로도 빠지지 않는다. 더욱이 변산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던 사람들이 채석강과 모항을 지나 대부분 이 내소사에 들려 절 집을 구경하고 가는 일이 통례이기 때문일러라.
이 때문에 내소사는 없었던 담도 둘러놓고 천왕문 우측에는 세운지 얼마 안된 "탑비"가 있는데 특히 귀부가 강력한 모습으로 비신 등에 지고 있다. 내소사 분위기와 맞지 않는 탑비이기는 하지만 모두 이 절에서 수도하다 입적하신 스님의 공적을 적은 것이니 너무 탓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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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천왕문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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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봉래루
천왕문을 들어서면 옛 정취가 풍기는 봉래루와 고려동종이 있고 봉래루를 지나면 대웅보전의 자태가 한가롭게만 느껴진다. 어떤 이는 못 하나 안대고 만든 집이라서 건축학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집이라고도 하고,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가 하도 예뻐서 카메라 셔터 만 연신 눌러대기도 하고, 공포에 관심을 가지고 다포의 화려하며 예술적인 포작에 관심을 두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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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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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에서 만나는 꽃 창살
그렇지만 나는 내소사에 오면 대웅보전을 한바퀴 둘러본 후 이 건물을 세운 목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 콘크리트 파일을 박아 기초를 다지고 철근을 엮어서 거푸집을 만들어 벽돌을 쌓아 뚝딱 지어버리는 개성 없는 요즘 건물에 비한다면 모든 일을 손으로 다듬고 대패로 밀고 기초를 다지며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올리고, 공포를 만들며 지붕 기와를 올리는 일까지 어느 하나라도 직접 손이 가지 않은 즉 정성을 들어가지 않은 곳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기 때문에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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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의 아름다운 공포
내소사는 인공미 미가 약간은 가미된 절집이지만 "入海出松"(들어가는 입구가 멋있는 절집은 해인사요, 나오는 곳이 멋있는 곳은 송광사라는 뜻)이란 말이 있듯이 이곳도 일주문을 지나 들어가는 입구의 약 500-600미터 늘어선 전나무 숲은 참으로 인상적이며 내소사의 그 무엇보다도 좋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이 있어 매번 찾는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봄은 봄대로 여름, 가을은 그 계절대로 또 가장 멋있는 눈 내린 겨울의 내소사 전나무 숲은 사계절 중의 백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든지 일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분위기의 절집
개암사는 내소사와 그리 먼거리는 아니지만 아직은 덜 알려져 있는 절집이다. 아직 변변한 주차장도 없고 입장료 또한 받지 않는다. 몇 해전 세운 듯한 일주문의 고압적인 자태와 화려한 용조각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지만 그 문을 지나 조그만 다리를 넘어 개암사 마당에 이르면 누구라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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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학이 날아와 앉은 듯한 개암사 대웅보전
사진을 못 찍는 사람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울금 바위를 배경으로 대웅보전의 시진을 찍으면 일류 사진작가가 되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은 마치 한마리 학이 날아와 앉은 듯한 대웅보전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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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금 바위와 어우러진 개암사 대웅보전
사람에 따라 느낌은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초심자라 해도 좋은 경치와 개암사의 조용한 분위기를 보면 금새 환한 미소를 자기도 모르게 머금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내소사보다 개암사를 더 좋아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손때가 묻으면 자연에서 멀어진다는 느낌과 순수를 동경하는 것은 사람의 심리인가?
그렇다고 내소사는 사람이 많고 여기저기 뜯어 고쳤기 때문에 개암사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절집의 분위기가 개암사는 포근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대웅보전 건물을 지은 연대가 내소사나 개암사가 거의 비슷해서 그런지 분위기도 해남의 미황사 대웅전과도 꼭 닮아 있다. 그러나 개암사 대웅보전의 정면 공포 사이에 삐죽 튀어나온 두개의 도깨비 모양의 상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절집 분위기와는 다소 맞지 않는 감이 있지만 아마도 우리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지나 않은지... 엄숙한 불전에 도깨비의 해학. 무슨 이유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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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대웅보전 도깨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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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대웅보전 꽃 창살(내소사 대웅보전 꽃창살과는 다르다)
보는 관점(point of view) , 관심을 두는 부분에 따라 답사 당시 느낌도 다르게 오며 계절적인 분위기나 답사지에 온 횟수, 같이 온 사람들 , 또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로 느낌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라도 보고 자신만의 느낌을 갖는다 라면 답사의 목적을 절반 이상은 달성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