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갑성 시집 『풍경소리』
예미 / 2018년 7월 31일 발행 / 128면/ 판형 130mm*210mm*8mm / 값 12,000원 /
ISBN 979-11-964106-0-5 03810
[책 소개]
시인이자 네트워크 업무에 종사하는 직장인인 박갑성 시인이 시집 『풍경소리』를 출간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며 멈춤과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끝없는 생존경쟁 속에서 모조품이 되어 꿈을 잃은 개인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편화되어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고통스럽게 직시하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를 통찰한다.
[시인 소개]
박갑성
평범한 직장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써두었던 일기 낙서와 주말 소소한 풍경 여행을 통해서 지인들에게 문자로 보냈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
SK텔레콤에서 네트워크 업무를 하면서 문학과는 낯설다. 2004년도에 『들꽃아 피어라』라는 한 권의 시집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사내 창작대회와 독후감 경진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던 경험과 열정을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살면서 한 번쯤은 미쳐야 한다. 미친다는 것은 타자의 삶이 아닌 오로지 내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하는 시집 『풍경소리』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생존경쟁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가까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시는 우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차례]
엄지 족
노부의 대화
봄의 권유
그
어느 날 아침의 단상
가슴앓이
사랑합니다.
바래길
현기증
춘(春)
성(城)
천명(天命)
어떤 꿈
분양사무실
1/2
가을편지
꿈을 잃은 물고기
사랑초
늪
다이어리
나는 수험생 아버지입니다
Morning Calm
논술고사장
눈 사랑
섬
꽃잎사랑
첫사랑
생각
봄 앓이
매미
방하착(放下着)
한가위
부부싸움
그리움
한계령을 넘다가
삶의 절반을 넘어
인연
겨울나무
꽃비
풍경소리
출근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을밤
노숙자
여름날의 꿈
옛 생각
눈꽃
낙서
자바섬 워트프란
포장마차 가는 길
꿈을 꾸었어
기다림과 그리움이 진다
항주에서
눈물 꽃
나는 가짜야
모래 사다리
낯설기
손을 가슴에 대고 한 말
사유
Comma
밥벌이
설국
겨울 잎새
사랑
외로운 새 한 마리
사직서
거울 속에 핀 꽃
차창에서
수호천사
12월의 스케치
인사이동
당신의 아들은 나쁜 놈이지요.
들꽃
가을
길
고향 친구
개똥철학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이방인
[출판사 리뷰]
“너와 나 우리는 인연을 붙잡고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끝없는 생존경쟁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곧 우리들의 이야기
시인이자 네트워크 업무에 종사하는 직장인이기도 한 박갑성 시인이 시집 『풍경소리』를 출간했다. 시집을 펼치면 처음 네 편의 시가 우선 눈에 띈다. 첫 번째 시에서 “엄지로 사랑의 꽃씨를 심으면/사랑의 꽃말로 날아와/엄지족 얼굴에 꽃이 핀다/…/부호화되어 허공을 수놓는/사랑의 밀어를 엄지족만이 알고 있다”(「엄지 족」)고 시작하지만 곧바로 두 번째 시에서는 “두 노부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지하철 네줄서기 앞에서/두 눈을 감고/부록의 삶을 저울질하고 있다”(「노부의 대화」)며 첫 번째 시를 뒤집는다. 두 시의 이러한 관계는 세 번째 시 「봄의 권유」에서 하나로 만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첫 번째 연에서 ‘봄’은 “첫사랑처럼 다가와/엄동설한 오랜 침묵과 기다림의 절정을/꽃으로 피워내는 새순들의 반란과 같다”고 말한 이후에 두 번째 연에서는 ‘봄’은 “어젯밤 첫사랑의 꿈처럼 짧기만 하여라/꽃잎 한 잎 한 잎 떨어질 때 줄어”든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의 역설”(「추천사」)과 “삶의 밑바닥과 꿈 사이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탐닉하는 한 인간의 독백 같은 저울대 위에 평행을 유지하려는 추의 떨림 같은 팽팽한 긴장감”(「책 머리에」)은 이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를 창출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울고 싶어도/차마 울 수 없었던/그 눈물 참아내며//내 삶은 없고/네 무늬를 흉내 내느라/마음속 길은 열두 갈래”(「천명」)가 되어 “내가 아닌 너의 무늬로 살면서/모조품처럼 아주 천천히 잊혀지는/나는 가짜야”(「나는 가짜야」)라고 자기고백하면서 “한없이/낙하하는 생활의 저변에서/나는/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차창에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자신이 “늦은 밤/길 위에서 꿈을 잃었다”(「어떤 꿈」)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한때는 푸른 꿈을 꾸었지 심해를 유영하던 물고기 수평과 수직이 자유롭던 은빛처럼 마알간 영혼을 가졌었지 어느 날 두꺼운 유리 벽에 갇혀 자유를 꿈꾸다가 유리 벽에 머리를 박고 깨지고 비늘이 벗겨질 때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뜬다 … 살기 위해 살갗이 벗겨지도록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그 폭풍의 시간을 잊고 마는 자유를 유린당한 수족관에서 유린당한 자유마저 익숙해질 때쯤 수족관과 바깥세상 사이에서 꿈을 꾼다 꿈을 꾸다가 꿈을 잃은 물고기(「꿈을 잃은 물고기」 부분)
하지만 이것을 스스로에 대한 포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인은 “살면서 한 번쯤은 미쳐야 한다. 미친다는 것은 타자의 삶이 아닌 오로지 내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그 분량만큼 시간을 땅속에서 살다 나와/세상의 빛을 처음 본 순간/가느다란 바늘잎 같은 울음으로 울었다/생에 남은 시간은 일곱 날/굼벵이로 살아온 세월을 잊지 않겠다고/한여름 열대야보다 뜨겁게 운다/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이라서/죽음을 기억하는 한 생은 유지된다며 목청껏 운다(「매미」 부분)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는 생존경쟁 속에서 “익숙함과/무관심으로/늘 그렇게 살아”(「현기증」)오면서 파편화되어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그럼에도 그 인연을 붙잡고 “에스프레소 진한 커피 향 같은/그런 사람이 되”(「가을편지」)어 “오늘 그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할까/내가 만약 그 사람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말없이 그에게 다가가 들꽃처럼 피고 싶다”(「들꽃」)는 소망이다.
시인은 우선 “세상은 자욱한 물안개 고장 난 시스템처럼 환청을 들어야 한다. …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내 문제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속에 누군가의 힘겨웠던 독백이 새벽녘 유리창에 성에로 내려앉는다. … 때론 목적지를 잊고 살아야 하는 날들이 많아진다. 안경을 끼고 세수를 하는 물속 같은 삶. 과속 페달을 밝고 서서 제어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나 위로해줄 수 없는 서로의 눈길이 멀다”(「어느 날 아침의 단상」)라고 인정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게/이동통신은 밥이었고 업(業)이었으나/진화하는 변화에 떠밀려/기다림과 그리움 같은 신(神)의 언어는/잊은 지 오래”(「기다림과 그리움이 진다」)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러한 통찰력은 시인이자 직장인, 직장인이자 시인인 저자의 경력과 떼어놓을 수 없다. 직장인으로서 시인은 “인사이동이 시작되고/줄서기는 가재미 눈처럼 번거롭다/정제되지 않은 낱말들이/날파리처럼 허공을 날아 떨어진다/…/평생 경쟁하고/학습하고/순위가 매겨지는 세상/외줄서기/꼭 잡고 있다”(「늪」)라고 고백한다. 그러하기에 “넌 나를 밟고/난 너를 밟고서 줄을 선다/한때는/수평으로 꿈을 꾸던 우리/…/색바랜 다이어리/첫 장에 쓰인 초심을 붙잡고/길 잃은 십이월/가슴앓이를”(「12월의 스케치」)하는 것이다. 이 시집에는 특히 ‘직선과 곡선’, ‘수평과 수직’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아이들의 곡선과 어른들의 직선 사이에서 평행선은 계속되었고 상처로 가슴 아픈 날들이 많았다(「논술고사장」 부분)
밤이 밑바닥 꿈을 꾼다/벌레 먹은 꿈이 기어서 간다/그는 오르려고 발버둥 치고/나는 내려오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현수교를 지탱하는 곡선의 케이블이 팽창한다/평생 경쟁하고 줄을 서면서/나는 온갖 긍정의 말씨들을 빨래처럼 늘어놓았고//그는 아픈 마음을 등 뒤로 숨기는 날들이 많았다//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닿고 싶어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꿈을 꾼다/나는 품속에서 명함을 만지작거렸고/그는 명함이라도 가져봤으면 좋겠다고 했다//사유는/동적에서 정적으로 옮겨가고/지구별에서 꿈을 꾸다가 직선으로 줄을 선다/와르르 무너지는 모래 사다리 붙잡고 있다//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모래 사다리」 전문)
박갑성 시인은 「낙서」에서 “그 안에 네가 있다/욕망이 살아서 꿈틀거린다/회색도시 벌레 먹은 꿈이 기어서 간다/내 꿈이 네 꿈을 밟고 서 있다”면서도 “그 안에 내가 있다/사랑이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손익계산서 아가페의 사랑이 울고 있다/네 아픔이 내 아픔을 덮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라는 “언어의 조각들로 빛나는 우주”이다. 그래서 시인은 “내가/네 마음을 아프게 한 것처럼/내 마음은 너무나도 아팠어//네가/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처럼/네 마음은 울고 있겠지//…//우린/너무나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하나 되지 못한 마음은/얼마나 시리고 아플까”(「외로운 새 한 마리」)라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사람과 사람/생각과 생각 사이에는/섬이 존재한다/그 섬들을 가슴으로 이을 수는 없을까//일과 일/경쟁과 경쟁 사이에는/섬이 존재한다/그 섬들을 사랑으로 안을 수는 없을까//이제는 그 섬에 가 닿고 싶다”(「섬」)는 바람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이 시집의 첫 네 번째 시 「그」에서 “훈민정음처럼 낮으면서도 찬란한 빛과 같”은 “노모의 삶”으로 구체화된다.
노모의 등은 기역(ㄱ)이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의 직선은 보지 못한다/그 시선은/돌과 흙과 풀의 가장 가까운 경계에서/일흔일곱의 생애가 영원히/유턴할 수 없는 으(ㅡ)로 지고 있다/자음과 모음으로 살아온 노모의 삶은/훈민정음처럼 낮으면서도 찬란한 빛과 같다(「그」 전문)
“생의 하중과 일상의 번다함을 도거리로 맡은 채”(「추천사」) 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박갑성 시인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추천사]
단어(어휘)는 각각 자신만의 정전기적 인력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 언어(대화)는 그들의 정전기적 결합에 의해 일견 단단하고 익숙하게 서로가 교환된다. 이것은 관습적이란 측면에서 역사가 길고 내재적이란 측면에서 부지불식간에 형성되는 힘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이 이런 원리에 의해 나열되고 때론 상투로 전락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시편들을 숙독하며 종래의 정전기 극성을 바꿔버린 주인공은 박갑성 아닌가 생각했다. 그의 문장과 관점은 익숙한 배열에서 반발한다. 뒤섞으며 시를 엮어나가는 묘미가 있다. 바보처럼 웃는다, 행복하게 웃는다(「엄지족」)는데 낙서를 지우개로 지우는 첫사랑처럼 다가와(「봄의 권유」) 설핏 흔들리기도 하면서 물속 같은 삶(「어느 날 아침의 단상」)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힘든 하루하루 꽃향기를 맡으며(「사랑합니다」) 버텨낸다. 버리고 싶어도/쉽게 버려지지 않는/잊고 싶어도/쉽게 잊혀지지 않는/현기증(「현기증」) 때문에 다시 또 시작하는 생의 역설이 새뜻하다. 에스프레소 진한 커피향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가을편지」)지만 인사이동이 시작되고 줄서기는 가재미 눈처럼 번거(「늪」)로운 것이 되면서 생의 평정이 흐트러진다. 가장 긴 시가 「꿈을 꾸었어」인 것처럼 박갑성 서정의 본류가 직장이라는 것을 재확인해주는 증거다. 그는 직장인이다. 그러나 박갑성은 시에 종신직으로 재취업할 것이다. 그가 가진 태생적 그리움은 시라는 화물차를 달리게 하는 연료가 될 것이다. 생의 하중과 일상의 번다함을 도거리로 맡은 채 지구 끝까지 달리는 화물차 말이다. 그리움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그리움」) 한다니까 그를 환영할 일만 남았다. 독자는 그도 비슷한 화물을 실었더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생은 유사하지만 박갑성의 음률과 서정을 음미하는 일은 독특하다. 그가 펼칠 여정을 기대하면서 응원한다.
전영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