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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동 舊約聖經 유적지-레바논 |
<기획특집> 中東 대탐험 ‘아랍의 어제와 오늘!’ |
▲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킬 때에 비참한 종말을 맞은 두로!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을 뿐이다. |
구약성경 언급된 백향목 산지로
항구도시 두로와 시돈이 옛배경
고대 페니키아 지역 무역․ 염료․ 조선술 발달 / 파피루스 주산지 ‘그발’ 바이블 용어 태동지 / ‘두로왕 히람’ 솔로몬 왕 당시 성전건축 조력 / 사르밧’ 선지자 엘리야가 과부에 기적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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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성과 살상 속에 戰禍가 멈추질 않고 있는 ‘레바논 공화국’(Lebanese Republic).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 남쪽은 이스라엘과 접하며 서쪽은 지중해에 닿아 있는 레바논은 구약성경과 매우 밀접한 인연을 맺어왔다.
고대 해상국가로서 중계무역의 제1전진기지로서 화려한 명성을 구가한 레바논의 오늘날 현실은 무척 유감스럽게도 고통과 신음 그 자체이다.
1958년부터 촉발된 정부군과 반군과의 길고긴 내전에다 1970년 이후 한 세대 가까이 계속된 팔레스타인과 이슬람 게릴라들과 이스라엘과의 무장투쟁 등이 뒤얽힌 가운데 전 국토가 황폐화 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2006년 7월에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과 응징으로 이스라엘군에 의해 레바논의 주요 도시들이 초토화 되는 등 그 상흔은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아물지 못하고 있는 딱한 실정에 있다.
▽ 구약에 소개된 ‘백향목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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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무려 70번이나 등장하는 소나무과 상록수인 백향목! 추운 곳에서 자라기에 재질이 무척 단단한 백향목은 높이가 보통 40m에 줄기 지름이 무려 3m에 이르는 웅장한 침엽수다. 사자를 응당 동물의 왕으로 간주하듯, 구약시대 사람들은 백향목을 수목의 왕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수명 또한 2000~3000년에 이르는 레바논 백향목은 레바논 국기에도 그려질 정도로 레바논인의 삶과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이다. 팔레스티나 북서부 지중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레바논 산맥! 바로 이 레바논의 산들이 백향목이 주요 서식지라는 것은 기록만으로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이사야 2:13)
고대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오로지 레바논 지역에서만 산출되는 레바논 백향목은 어릴 때는 피라미드 모습을 일단 유지하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지가 굵어져서 윗부분의 끝이 수평이 되면서 우산 같은 형태로 변모한다.
어려서는 연두색, 성장하면 갈색, 다 자라면 암갈색으로 색깔을 바꾸는 백향목은 내구력이 뛰어난데다가 짙은 향기에 벌레마저 찾아들지 않아 예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이, 어디 하나 일절 흠잡을 데 없는 백향목은 귀중한 건축재로 쓰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백향목을 선박재로 썼고, 미라를 만들 때 관재로 사용했다. 또 옛날 로마 귀족들은 백향목에서 수액을 채취하여 시신 방부제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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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레바논 백향목은 구약시대의 다윗 왕과 솔로몬왕 시대에 궁전과 성전 건축에 있어 핵심 자재로 아낌없이 투입되었다. 다윗과 솔로몬은 성전과 궁궐의 건축을 위해 레바논에서 다량의 백향목을 수입했다.
“두로 왕 히람(Hiram)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사무엘하 5:11) 특히 솔로몬왕은 석공에 조예가 깊은 히람의 성전건축 기술자들을 대거 초빙했다.(열왕기상 5장) 에스라가 성전을 수리할 때에도 레바논 백향목을 빼놓을 수 없었다.(에스라 3장 7절)
구약성경에서 백향목은 영광과 아름다움과 의인의 상징으로서 극적 묘사된다.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우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같이 뻗고”(시편 80편 10절) 라고 표현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은유하였는가 하면, 시편 저자는 의인의 번영을 레바논 백향목에 비유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시편 92편 12절)
▽ ‘시돈’ 노아의 증손에 의해 건설
오늘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방 약 48㎞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안 항구도시 ‘시돈(Sidon)’은 고대 페니키아(Phoenicia, 성경은 베니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BC 3000년대에 역사에 등장하면서 그 후 1,000년 동안 번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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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Tyre) 북쪽 약 40㎞ 지점에 있는 이곳 시돈 항구는 성경에서 매번 두로와 같이 소개되기 때문에 베니게(페니키아)의 쌍둥이 항구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소위 두로의 어미 시돈이라 할 만큼 두로에 비해 훨씬 앞선다.
베니게는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로마 제국의 연속적 지배를 받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시돈은 노아의 증손 시돈에 의해 건설되었다 한다.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창세기 10장 15절) 또한 이 지역은 모세의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 입성하면서 이들 민족이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이 암초에 부딪치자 함께 거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사사기 1:31∼32)
현재 이곳은 알자누브(남레바논) 주의 행정 중심지이자 어업과 교역의 요충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부터 연결된 길이 1,720㎞의 트랜스아라비아 송유관의 지중해 쪽 종착역으로서 대형 저유 탱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자주색 염료와 유리제품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베니게는 당시 조선술과 금, 은, 주석, 구리 등의 중계무역으로 지중해의 해상로를 장악했다. 들 민족은 땅 끝이라 불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까지 무역로 확장했다.
특히 이곳에서 무수하게 발견된 뼈고둥 껍질의 거대한 패총(貝塚)은 자색 염료 공업이 고대 시돈의 중요 산업이었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자색 염료는 뼈고동을 통해 채취되었는데, 약 1만개의 뼈고둥을 벗겨야 겨우 1g 정도의 염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한다. 당시 자색 염료는 금값 이상으로 이집트에 수출되었다. 또 하나의 명물로는 규석 성분이 다량 함유된 모래의 주산지로서 세계 최초로 유리 만드는 기술을 확보한 민족이다.
신약시대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시돈과 두로를 찾았는데, 이때 흉악히 귀신이 들린 자신의 딸을 치유해 달라고 간청하는 가나안 여자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마15:21~28) 그리고 사도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어 가던 중 잠시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백부장 ‘율리오’의 선대로 친구들에게 대접받는 것을 허용 받은 곳으로(서도행전 27:1~3) 바울 기념교회가 있다.
▽ 히람왕이 세운 ‘두로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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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돈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항구가 바로 두로(Tyre)이다. 두로는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소아시아, 애굽을 소통시키는 교통의 요충지요, 무역의 중심 거점이었다.
레바논의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40㎞ 되는 곳에 소재한 항구도시 두로는 現 이스라엘 국경에서 불과 20㎞의 짧은 거리에 위치해 있으나 이스라엘에서 레바논으로의 국경이 없어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거치거나 요르단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다윗과 교분이 두터웠던 두로 왕 히람은 백향목과 함께 목수와 석공들을 보내 다윗이 왕궁을 짓는 것을 적극 도왔다.(사무엘하 5:11) 또한 두로는 솔로몬왕 시대에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 산에서 벌목한 백향목을 뗏목으로 만들어 지중해 남쪽에 있는 ‘욥바(Joppa)’로 보내는 수출 항구였다. "우리가 레바논에서 당신의 쓰실 만큼 벌목하여 떼를 엮어 바다에 띄워 욥바로 보내리니 당신은 수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리소서 하였더라"(역대하 2장 16절)
두로인들은 해상무역의 융성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국방을 강화하는 한편,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다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극하였도다.”(에스겔 27:25)
두로에서 불과 6㎞ 떨어진 곳에 ‘카브르 히람’이라 부르는 두로 왕 히람(Hiram)의 석관이 길가에 놓여 있다. 두로 항구의 옛 방파제가 현재 수면 밑 15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이 방파제는 히람왕에 의하여 BC10세기에 축조되었다. 그 길이가 897m이고, 두께는 9.8m이다.
“부귀영화가 일장춘몽일 것이며 그물 말리는 한적한 어촌이 되리라”(에스겔26:13~14)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적중한 것일까? 부의 상징이었던 옛 항구 터는 사라지고 파도만이 넘실거리고 있다. 바벨론 제국이 유다를 초토화 시킬 때에 두로는 동시에 비참한 종말을 맞고 무역의 왕자 자리를 시돈에게 내주었다.
▽ 바이블 어원이 태동한 ‘그발’
오늘날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북쪽 40㎞ 지점의 지중해변에 있는 그발! 구약성경 속의 ‘그발(Gebal)’은 시돈과 두로와 함께 페니키아의 3대 도시국가 중 하나였다. 헬라 제국 때 ‘그리스인들’은 종이의 원료인 파피루스를 많이 수출한다 하여 그리스어로 종이(Paper) 또는 책을 뜻하는 ‘비블리온’이라는 말을 첫 사용했다. 후에 비블리온이란 용어는 ‘책 중의 책’을 의미하는 바이블(성경)이라는 단어로 고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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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발은 BC 2800년경 애굽의 식민지가 되어 레바논의 백향목을 애굽에 제공했다. 이어 BC 1200년경 애굽의 라암셋 2세 때에는 애굽의 국경 요새지 역할을 했으나 BC 1194년 애굽을 향해 진격하던 해양인들에게 파괴되었다. 이 해양인들은 오늘날의 ‘팔레스틴’에 정착하여 성경 속의 ‘블레셋’ 민족이 되었는데, 팔레스틴은 블레셋의 헬라어인 ‘팔라이스티네(Palaistine)’를 라틴어로 옮긴 것이다.
이곳 그발인은 석공과 목공으로 유명했다.(열왕기상 5장 18절) 따라서 그발은 석재 산업이 발달한 도시답게 돌을 많이 사용하여 성채를 쌓았다. 1887년 고대 이집트의 텔엘아마르나에서 발견된 BC 15~BC 14세기의 외교 문서로서 당시 오리엔트의 국제 관계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사료인 ‘아마르나(Amarna) 서판’에도 그발로 언급되어 그 유구한 역사성을 재차 확인시키고 있다.
1921년 ‘피에르 몽떼(Pierre Montet)’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고대의 성벽과 신전의 화려한 유적이 드러났다. 이곳 바알(Baal) 신전 터는 BC 19~16세기경 페니키아인들이 주신(主神)으로 섬겼던 곳이다. 바알신 숭배는 팔레스틴의 이스라엘에게까지 급속도로 전염되었다. 특히 아합왕의 왕후인 ‘이세벨(Jezebel)’은 이곳 페니키아 출신으로 바알신 숭배를 이스라엘에 확산시킨 악성 장본인이었다.
▽ 엘리야가 기적 베푼 ‘사르밧’
‘사르밧(Zarephath)’은 지중해 북쪽 오늘날 레바논의 해안 항구인 시돈과 두로 중간 지점에 소재하는 소도시이다. 시돈에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사르밧이 산 중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옛 이름이 사르밧이었던 것을 헬라인들은 ‘사라판드(Sarafand)’라고 불렀다.
이곳은 선지자 엘리야가 신실한 과부에게 기적을 베푼 장소이다. 엘리야가 아합왕 때에 이방신 바알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 야훼께서 내린 혹독한 응징으로 인해 3년 반 동안의 극한 가뭄에서 한 과부의 집에서 신세를 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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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르밧의 과부는 양식이 고갈 직전에 있었음에도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성심껏 대접을 베풀자, 가루와 기름이 고갈하지 않는 기적을 베풀어 계속하여 이 과부의 생활과 시름을 달래주었다.(열왕기상 17장 8~24) 이외에도 레바논 ‘베카 계곡(Bekaa Valley)’에 위치했던 ‘소바(Zobah)’ 왕국! 다윗왕은 소바의 왕인 ‘하닷에셀( Hadadezer)’과 싸워 이들을 멸절시키면서 많은 전리품을 획득했다.(사무엘하 8:3~9)
http://www.womansense.org/sub_read.html?uid=17640§ion=sc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