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0: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 본 구절에서 구체적 도착 시간은 언급되지 않고 욥바로부터 출발한지 이특째 되어 가이사랴에 도착했다고 언급되었다. 그런데 30절에 따르면 고넬료가 환상을 체험했던 그때와 어느 정도 일치함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후 3시를 전후해서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것이다.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 이는 고넬료가 환상을 굳게 믿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동시에 형제 사랑과 신앙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준다. 만약 그에게 그 사랑과 열정이 없었다면 자기 가족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친족과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으며 함께 구원의 은혜에 동참하고자 원했다.
[행 27: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시돈에 대니 - 시리아 해안의 조류는 북쪽으로 흐르는데, 바울 일행을 태운배는 이 조류를 따라 약 23시간 가량 걸려 시돈에 도착한 것이다.. 친구들에게다...허락하더니 - 본절과 43절은 백부장 율리오의 특별한 친절을 보여 준다. 아마 베스도는 바울을 율리오에게 넘겨주면서
다른 죄수들처럼 다루지 말고 관대하게 대우하도륵 특별히 지시을 하였을 것이고, 율리오도 바울의 언행과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의 극진한 시중을 보고, 결코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을것이다. 아마 배는 짐을 내리거나 싣는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따라서 율리오는 이 시간 동안에 바울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여기서 친구들은 스데반의 순교 후에 각지로 흩어진 성도들 가운데 시돈에 자리잡고 복음을 전파하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하르낙에 의하면 본문의 '친구'라는 명칭은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던 칭호였다고 한다. 황제앞에서의 재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고,또한 항해를 하는 중 어떤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한 여정가운데서도 성도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커다란 위안과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마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 열매에 의한 나무 판단의 교훈은 이미 7:17, 18에서 본 바 있다. 한편 본문을 이중적 구조로 이해하여 첫번째 등장하는 나무와 살과를 성령을 힘 입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치유에 의한 선한 결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등장하는 나무와 실과를 스스로 악히기 나무 때문에 성령을 훼방하는 말 열매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바리새인들의 행각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실로 나무는 필연적 인과 관계에 있는 것으로 좋으면 둘다 좋고 나쁘면 둘 다 나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내고 정의를 외치는 예수의 실과는 결국 그 근본 나무가 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너무도 분명한 예수의 실과를 부인하지 못하였으니까 대신 예수의 나무를 비방했는데, 그들의 허구성이 이제 논리로 격파당한 것이다.
예수는 근본과 결과를 모두 선한 교사이신 동시에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소개,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의 교사이기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