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무등산 편백나무 숲
일 시 : 2024.07.04(목)
참 가 : 강공수 김상문 김영부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이용환 장휘부 등 9명
불 참 : 윤정남(착각)
회 비 : 90,000원
식 대 : 74,000원(김치찌개 2(9,000), 애호박찌개 5(9,000), 매밀전병 1(10,000), 공기 1(1,000)
금일 잔액 : 16,000원
이월 잔액 : 518,000원
총 잔 액 : 534,000원
우천불구(雨天不拘)라는 메시지를 보내었기 때문에 오늘 불참할 회원은 없을 것으로 전제하고 부곡정으로 갔다. 와 있어야 할 윤정남이 없어서 전화를 하였더니 오늘이 수요일인 줄 알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오늘 불참자는 1명뿐이라는 것을 짐작하였다.
날씨가 매우 무더웠다. 이미 광고하기를 오늘부터는 편백나무 숲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10시가 넘어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별 설명 없이 박남용과 편백나무 숲으로 앞서 가고 있는데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강공수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지질공원 사무실 앞에 있는 정자에서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올 것이라 하였다.
내 계획은 오늘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가기 전,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능선 길로 올라갔다가 ‘쉼터’에서 쉬었다가 서쪽으로 난 중 산간 길로 얼마쯤 갔다가, 편백나무 숲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박남용이 능선 길은 가팔라서 자기는 힘들 것 같다고 그냥 바로 편백나무 숲으로 직행하려 한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나 혼자서 능선 길을 올라가야 하였다. 강공수에게 왜 뒤따라오지 않느냐고 전화하였더니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뒤따라 갈 것이라 하였다. 나는 혼자서 능선 길을 올라갔다.
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속도를 내서 올라갔다. 이 정도의 속도면 능히 무등산 정상까지는 못가더라도 <중머릿재>까지는 오를 만한 능력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그 이유는 요즘 맨발걷기를 하러 가는 길이 오르막길인데, 그곳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만 하였는데, 요즘은 끌지 않고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시국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학동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증심사 버스 정류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었는데 코로나 시국의 위축된 생활을 겪으면서 운동을 게을리 하였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 능력이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노화는 조금씩 앞당겨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혼자서 능선 길을 올라가 쉼터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서쪽으로 뻗은 ‘중 산간 길’을 지나 편백나무 숲으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혼자 앉아서 쉬고 있는 박남용 만 눈에 띄었다. 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사범학교 동창생으로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박기홍이 지병(척추)으로 귀국하여 부산에 있는 세계적인 척추수술 권위자인 최대정원장의 집도로 수술을 마쳤는데 경과가 아주 좋다고 하였다. 그와 통화를 시도하였지만 불발이었다.
박기홍은 사범학교 1~2학년 때 같은 반으로 비교적 친하게 지낸 사이였지만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여 먼 나라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11시 반이 지나서 다시 음악정자로 내려가서 합쳐졌다.
뒤늦게 김상문이 어김없이 참석하였는데 그의 손에는 또 선물봉지가 들려 있었다. 오늘은 ‘팥 양갱’을 가져왔다. 오늘 참가한 9명에게 한 사람 앞에 2개씩을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남아서 나중에 식당 아주머니들에게도 하나씩을 주고도 남았다. 그는 고마운 사람이다. 항상 감사하고 있다.
음악정자에서 강공수가 악보를 나누어 주면서, 오늘의 노래는 <긴 머리 소녀>와 <구름>이라고 하였다. 악보를 보았더니 많이 들어 본 노래였지만 부르기에는 어려운 노래였다.
‘긴 머리 소녀’는 1970년대 포크듀오 전성기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던 <둘다섯>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며, 한국 포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자 국민 애창곡이었다. 당시 작사가인 ‘손철’은 소년시절을 보낸 칠갑산자락의 긴 개울이 있는 장곡리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서울 광교의 작은 음악다방인 <태평양>에서, <긴 머리 소녀>의 노랫말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 가사는 소녀와의 우연한 만남과 이별, 그리움과 추억을 담은 가사 내용이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손철이 고향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야기가 노랫말로 탄생되어 동요 같은 대중가요로 7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작곡과 노래를 불렀던 <둘다섯>은 1970년대 대학생 가수라는 이미지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풋풋한 사랑얘기가 담긴 노랫말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대학가의 여대생과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는 긴 생머리가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던 가수의 이름을 <둘다섯>이라 한 것은 ‘이∘∘’과 ‘오∘∘’이란 사람의 성씨를 숫자로 표기하면 ‘2와 5’였기 때문에 이 숫자를 우리의 말로 표현하면 <둘과 다섯>이어서 듀엣의 이름을 <둘다섯>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 노래가 많이 불려 졌던 시대에서 지금까지 50여년이 지나고 나니까 우리가 귀로 들었던 음감이 많이 쇠퇴되어 악보를 보고 부르면서도 쉽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씩을 불러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였다.
이어서 정근 작사에 이수인 작곡의 <구름>도 들을수록 아름다운 곡이었지만, 따라 부르기에는 음폭이 넓고 고음이 있어서 듣기는 아름다웠지만 부르기는 어려웠다.
강공수가 다음 주에는 ‘어린이 대공원’ 안에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2024 여름 특별전으로 <한국미술명작전>을 감상하기로 하였다.
부곡정으로 가서 장휘부와 합류하였다. 점심을 먹으려는데, 박남용이 박기홍과 통화에 성공하였다. 전화기 너머로 박기홍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60년 전 옛날 소년시절의 목소리였는데 지금 병중이어서 힘이 없었다. 그도 나와의 기억이 희미할 것이다. 내가 옛날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는 장흥 출신이었다. 그래서 학창시절 그와 조금 친밀하게 지냈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도 가끔씩 어울리곤 하였기 때문에 그도 나를 잘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어서 먼 나라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76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와 긴 통화를 못하고 박남용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더니, 박남용이 우리는 매주 여기에 모여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데, 오늘도 9명의 동창생들이 나와서 이렇게 모여 있다는 상황설명과 함께, “자네의 귀국을 환영한다.”는 함성을 직접 그에게 들려주었다. 아마 그는 매우 큰 울림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에는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2024 여름 특별전’으로 <한국미술명작>전을 관람하기로 하고, 점심을 먹은 뒤 헤어졌다.
첫댓글 재미를 찾는다면 주위에서얼마든지찾을 수있다. 등산하는재미도 쏠쏠하고 다정한친구끼리 모여 밥을먹는것도 즐겁고 그보다 더 재미가잇는것은 등산후기를 쓴 양수랑회장의 글솜씨이다. 어찌나 눈으로 보듯이 ,아니 옆에서 듣는듯이 아니면 직접 말하듯이 쓰는 글솜씨즞 타에 불허한다. 나는 심장도 않고 신장도 좋지않다. 그래서 등산을하고싶어도 할수없다. 그게 나에게 불만이다. 동행할 수없다는게 여간 불만이다. 그렇지만 등산후기를 읽음으로써 다소 그불만을 잠재울 수있다. 건강하면 오직좋으랴! 그런데 건강은 맘대로 되지않는다. 그렇지만 참여는못해도 대신 역할을해주는 양회장의 후기가 있어 팜으로 즐겁다. 고맙다.
산행 후기 쓰느라 참 수고가 많은 게 보이는듯 하네 덕분에 친구들이 오늘의 산행을 뒤돌아보며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갖을 수 있도록 해준 우리 회장께 늘 감사한 마음뿐이네, 오늘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