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
아베 신조와 박근혜의 공통점: ‘철의 여인’ 숭상
By Yuka Hayashi in Tokyo and Alastair Gale in Seoul
아시아에서 부흥기를 맞고 있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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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는지 모르지만, 대처와 대처리즘은 아시아에서 일종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신임 일본 및 한국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대처를 영웅이자 롤모델이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의회 정책연설에서 대처를 언급하며, 1980년대 대처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영국령 포클랜드섬을 무력방어했던 것과 자신이 중국을 상대로 동중국해에서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을 동일시했다.
한편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대처를 꼽는 박근혜 한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아시아의 ‘철의 여인’으로 묘사됐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대처를 선호하는 것은 대처가 펼친 민족주의적, 반공산주의적 외교정책이 어필했던 것과 큰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요즘 아시아는 날로 커져만가는 북한의 핵야망과 중국의 급속한 경제∙군사적 부상으로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감한 규제완화조치를 통해 부진한 영국 경제를 회생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대처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역시 한때 강력한 경제대국이었으나 침체를 반복해 온 일본과 ‘한강의 기적’을 이어가기 위해 고전하는 한국에 매력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2월 총리직에 오른 후 대처를 거듭 언급했다.
강경주의 외교노선으로 알려진 그는 1월말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메릴 스트립 주연의 2011년 영화 ‘철의 여인’을 보다 두 번 울었다고 말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결과(영국의 승리와 사망자들에 관해)를
보고하는 하원 연설 장면과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출삭감을 추진하는 장면에서 였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대처 총리 영화를 DVD로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레미제라블’을 보고는 울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부 관리들은 아베 총리가 2월 28일
의회 연설에서 대처를 언급한 것도 영화의 영향이었다고 전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본 국민들의 생명과 번영, 일본의 영토와 영해, 영공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구체적으로 중국을 거론하지는 않은 채
일본을 상대로 한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나서 포클랜드 전쟁을 돌아보는 대처의 1993년 회고록에서
한 문장을 인용했다.
“우리는 전세계가 중시하는 근본 원칙을 옹호한 것이다…침략 행위가 성공해선 결코 안될 것이며, 국제법이 무력 사용보다 우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관측통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파문이 일었다.
중일간 영토분쟁을 암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1,000명의 생명을 잃고서야 영국이 포클랜드섬을 다시 장악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영유권을 주장하며 점점더 자주 정부 선박과 항공기를 보내왔다.
외교관 출신인 보수 성향의 오카자키 히사히코는 “포클랜드를 센카쿠와 비교한 것은 중요하고도 타당한 결정이었다”며 “전세계 역사를 둘러봐도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을 것”이라고 아베 총리의 발언을 지지했다.
반면 수기타 앗스시 호세이대 정외과 교수는 대처의 말을 인용한 것은 국제법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군사력 사용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우리가 말할 수 없지만 포클랜드 전쟁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부적절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 것만은 확실하다.”
아베 총리가 대처에 대한 존경을 표한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저서 ‘아름다운 나라를 향해’에서 아베 총리는 다섯쪽에 걸쳐 대처 정부의 교육개혁을 칭송했다.
덕분에 세계 2차대전 후 수년간 경제 부진으로 사기가 저하된 영국의 국가적 자긍심이 회복됐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검열 강화 등 민족주의적 특성이 가미된 교육개혁은 아베 총리 정책아젠다의 핵심이다.
한편 2월 취임한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는 지난 수년간 언론 논객들에 의해 영국 유일의 여성 총리인 대처에 비교돼 왔다.
박 대통령 역시 2007년 연설에서 “한국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리더쉽은 바로 대처리즘”이라며 대처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측은 다분히 가부장적이고 재계와 정계 여성 롤모델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강하고 성공적인 여성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대처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려했다.
심지어 박 후보는 재킷 가슴 왼쪽 한참 위에 커다란 브로치를 다는 등 옷 입는 스타일까지 대처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대처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이나 권력을 쥔 남성들에게 압도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부친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암살당했을 때 그녀가 “국경은 안전한가?”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북한의 침략위협을 걱정하는 이들은 이런 점 때문에 그녀를 존경한다).
청와대에서 가진 첫 TV 연설에서도 박 대통령은 정부 조직개편계획을 방해한다며 야당 정치인들(대부분 남성)을 심하게 질책했다.
최근 박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새로운 위협을 받고 있다.
북한은 이달 초 한반도 정전협정 백지화를 공언했으며,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히 보복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러자 북한은 박 대통령에 대해 “독기어린 치맛바람” 운운하며 대응했다.
아베 총리의 경우처럼 박 대통령과 대처의 연관성은 정치적 반대파들의 공격수단으로도 사용돼 왔다. 대선 기간 중에, 대처의 경제원칙을 도입하려는 박 후보는 사회∙경제적 약자와 노동자 계층을 소외시킬 거라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대처의 일부 정책원칙을 지지하고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박 대통령의 경제원칙은 복지비용을 늘리고 산업정책을 정부가 가이드해야 한다는 기조를 띠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대처를 향한 비난 중 하나였던 ‘이데올로기적 몽상가’로 비쳐지지지 않기 위해 보다 포괄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려 애써왔다.
조홍식 숭실대 정외과 교수는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대처와 같은 ‘철의 여인’을
롤모델로 삼는다는 것을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런 이미지는 민주적 소통, 사회적 조화 등과 상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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