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대로에 갔다.새로 길을 닦는 토목공사장이었다. 쌍용동.조반도 먹지 않았는데 햇살은 얼굴을 발갛게 달궈놓는다. 수건에 물을 적셔 머리에 쓴 고니와 매품팔러 평양영문 앞에 가 알궁둥이를 까발린 흥부의 엉덩이 같은 흙산에 올랐다. 흙은 육십도 경사에서 계속 미끄러져 내려오고, 말없이 검은 비닐을 굴리고 바늘대신 전선을 묶을 때 쓰는 검은 묶음도구를 가지고 흥부 엉덩이에서 서서히 내려온다. 멀리 토목공사장의 따다다다 돌을 캐는 포크레인의 소음이 들려온다. 낯선 도시, 깎여 나간 산언덕의 포크레인 자국, 캐내어 놓은 거대한 돌, 그리고 거대한 토산 위에서 검은 비닐을 묵으면서 밧줄에 의지해 산을 타는 등산가처럼 급한 경사면을 타고 내려온다. 구불구불 똬리를 튼 구렁이처럼 생긴 검은 비닐 보퉁이를 들고 흥보 엉덩이처럼 생긴 거대한 토산에서 서서히 비닐을 잡고 내려오면서 흥부 바지를 꿰맨다. 이미 꿰매어 놓은 곳은 얼룩덜룩 가난한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영락없는 흥부바지다. 흥보 매품을 팔려고 왔지만 매품도 못 팔고 하릴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얼룩덜룩 기운 바지가 씰룩씰룩 흔들린다.
산을 허물고 거대한 산이 있던 자리는 아파트를 지을 공간으로 변해간다. 바람이 흔들고 가는 비닐소리, 멀리 돌을 캐는 포크레인 소리, 그리고 흙더미를 싣고 신발을 씻은 채 야적장으로 향하는 트럭들의 질주음이 들려온다. 건축 공사장과 달리 토목공사장은 사람들의 말소리 대신 모든 일을 대신하는 기계음만이 거대한 성처럼 변해버린 벽을 맞고 돌아온다. 작열하는 태양, 오묘하게 찢겨나간 검은 비닐 속의 구멍들, 말아 쥔 채 밧줄을 만들듯 육십 센티미터 간격으로 묶고 조이며 내려오는 흙더미 경사면 위에서 말없이 두 사람이 매달려 있다.
흙이 묻은 차의 타이어를 향해 쏟아지는 물이 땡볕 속에서 눈부시게 차바퀴에 맞고 주위로 흩어진다. 바퀴 청소기, 토산에 묶어놓은 검은 비닐천으로 인해 산은 묘한 표정을 갖게 되었다. 흙을 관리하는 토건회사는 흙에 거대한 옷을 입히고 있다.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때다. 사람들은 휴가철을 맞아 어디론가 떠나고 있지만, 고니와 영보는 마치 태양에 매달린 사내들처럼 얼굴에 희미한 화상을 입어가면서 땡볕 속을 걸어다닌다. 도시의 아파트들이 내려다 보이고 조립식 사무실 주변에서는 장마철 내내 웃자란 풀을 배는 키 큰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서서히 넓은 광장처럼 변해가는 공사장 한 가운데 폐기물들이 놓여 있는데 폐기물을 덮은 검은 비닐이 벗겨진 채 바람에 흩날린다.
멀리 도시의 아파트들과 간간히 눈에 들어오는 높은 빌딩, 그 너머의 높은 산과 중계탑들을 둘러보면서 안전모 대신에 밀집 모자를 눌러쓰고 벼랑 같은 비탈을 따라 내려온다. 오르고 내리는 일, 엉덩이에 난 골짜기 선처럼 차들이 흙을 퍼올렸을 길을 따라 검은 비닐을 매고 오르는 두 사람은 마치 자신의 모습을 멀리서 자신들이 지켜보기라도 하듯 관조한다. 희미한 바람, 땡볕 속으로 걸어가 소머리 국밥을 먹고 돌아와 수없이 물을 들이키면서 물에 적신 수건을 매고 흥부 엉덩이에 오른다. 흥부 바지는 서서히 기워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찢어진 구멍은 매꿔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땜질을 하듯 자투리 비닐을 가지고 구멍이 있던 자리에 길고 네모난 직사각형의 기둥을 박아 넣는다. 묘한 형상이라니, 그건 연출한 것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다음날에도 공사중인 건물의 지지대 안에서 잠이 든다. 바람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받치고 있는 쇠파이프들 사이로 불어온다. 망치소리, 콘크리트 쏟아붓는 레미콘차의 기계음, 간간히 급하게 물건을 찾거나 타워 크레인에 묶인 거대한 자재들이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빠르게 이동한다. 눈을 감으면 주위의 소리가 더 가깝다. 세상은 끝없이 소음소리와 함께 살아 있다. 게임장의 쇳소리나 폭발음, 그리고 고함소리처럼 공사장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온갖 효과음들이 생생하다. 태평양 첨성대에서도 살짝만 문을 열어놓으면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시장 바닥의 소리를 모았다 한꺼번에 풀어놓은 것만 같다.
흙산 위에서 흥부 바지를 기울 때도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 눈을 감을 때도, 들려오는 건 낙타소리였다. 끝없이 달려 바닷가로 향하는 두 남녀가 서로에게 빠져들어가 참을 수 없는 숨길로 섹스를 나누던 장면처럼, 자동차는 길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창 밖으로는 매마른 땡볕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목마른 낙타처럼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찾아 지치도록 물길을 찾아 달려갔다. 서서히 피부가 벗겨지는 사내들, 얼굴에 화상을 입은 채 벌개진 얼굴로 땀을 닦아내기도 하고 흑인종처럼 검어진 얼굴로 휙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하안거에 들어간 스님처럼 그들은 말이 없다. 그저 물을 마시고 수건을 물에 적셔 머리에 쓰고 끝없이 걸음을 옮긴다. 그들은 묵언수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