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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3일 수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참으로 복되고 귀한 수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경기와 중부지방은 마른 장마철이 되고 무더위가 환경을 힘들게 할 수 있지만, 믿음의 인내와 소망으로 잘 참아 견디어 보시기 바랍니다.
- 혹시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이기고자 한다면,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연약한 자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간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새로운 힘을 얻고, 사명의식을 회복하고 좌절과 절망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오늘도 폭염으로 건강에 리듬이 깨질 수 있으니 각별한 관리에 유념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열왕기상 19장 1- 8절 }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제 목 ◑◑◑◑
◗◗ 호렙산에 피신하는 엘리야 (영적 침체기)
◑◑◑본문 이해와 요약 ◑◑◑
◗ 19장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은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영적 전쟁에서 번제단 불과 비를 내리게 하므로 완전한 승리로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살아 계심을 몸소 체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담대하게 믿음의 확신으로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 엘리야는 이세벨의 보복 소식의 말 한마디를 접하고서는 공포에 충격을 받고 있는데, 엘리야의 모습은 갈멜 산에서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연약한 인간임에는 틀림없는데, 그는 그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었으나 이 모든 것을 망각하였던 것입니다.
- 그는 오직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남유다의 최남단인 브엘세바에까지 도망하였고, 이것도 부족하여 혼자 네게브 광야로 하룻길을 더 나가서 마침내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쉬던 엘리야는 너무나 낙심한 나머지 다 포기하고 죽기를 간구하였습니다.
- 엘리야의 마음에는 현실을 초월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이세벨의 증오만이 보였던 것이고 현실에 집착하여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단정하였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듣고 계셨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다메섹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면서, 그에게 3가지 임무를 주셨습니다.
- 첫째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 둘째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과 셋째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죄악 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바알 숭배에 제동을 걸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알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신실한 백성들이 엘리야 말고도 7,000명이나 더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 이 소식은 엘리야에게 크나큰 용기와 위로를 받게 되었으니,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환경이나 환난 속에서도 좌절이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 결론적으로 갈멜산에서 영적 싸움으로 승리를 거두었던 엘리야가 당당해야 하는데,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면서 자기를 죽이려 하는 이세벨의 음모를 피해 연약하여 도망치게 모습입니다.
- 하나님은 인간의 말 한마디에 두려워하고 좌절이 되어 있는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먹이고 마시게 하시고 힘과 소망을 주셨고, 사명의식을 회복시켜서 다음세대를 위한 엘리사를 그의 후계자로 삼도록 명하셨습니다.
-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와 로뎀 나무 아래에 있는 엘리야의 모습은 너무나 상반되는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불신앙적인 태토를 갖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엘리야를 위로하셨으니, 이는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분명하게 표현된 것이기에 엘리야는 엘리사를 준비시키는 사역을 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연약함을 고백하면 업고 가신다. (열왕기상19장3,4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하나님께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면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 3,4절을 살펴보면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도저히 대 선지자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하여 사명의식을 상실한 엘리야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친히 어린아이의 부모처럼 연약함을 아시고 등에 업고 목적지를 향해 걸아가십니다.
- 지금까지 아합 왕이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부인 이세벨에게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으로 추종하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기손 강에서 다 처단됨을 백성과 함께 보았다고 보고하는 모습을 봅니다.
- 그러므로 인간의 완악한 마음을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변화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 그런데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간담이 녹아서 풀이 죽어 사명을 접어 버리고 엘리야가 도망을 간 것입니다.
- 도피한 곳으로 언급 된 브엘 세바는 남쪽 유다 땅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치우쳐 있는 곳이기에 애굽 땅이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가나안 전체를 일컬을 때 보통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고 표현합니다.
- 단은 이스라엘의 최북단이고,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 이로써 엘리야가 굳이 이곳까지 도피한 이유가 분명해 지지 않습니까?
- 이세벨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엘리야는 오직 이세벨의 세력권으로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더 멀리 도망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하여 그는 이세벨이 다스리는 북 이스라엘을 떠나는 것은 물론 남 유다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한 브엘세바를 일차 도피처로 정하였던 것입니다.
- 한 번 상상해 보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850 :1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둔 영웅이 왕비의 협박하는 말 한마디에 황급히 도망쳐 국경을 넘고 국토의 한구석에까지 가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말입니다.
- 이 얼마나 초라하고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엘리야가 크고 놀라운 대승리를 거둔 갈멜산으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만 보아도 대략 250km나 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위대한 선지자의 황급한 도주 장면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간은 역시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 엘리야 같은 위대한 신앙의 인물도 이처럼 연약해질 때가 있었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 평소에 강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한 번 두려움의 물결 속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 한편 인간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만 약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재물의 유혹에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또한 쾌락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명예와 권력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도 힘겨운 것입니다.
- 그래서 육신적 삶의 위기와 두려움의 고통 또한 인간을 연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 그러므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던 욥은 인간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욥기14장 1,2절에서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 머물지 아니 하거늘”이라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 물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처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또 깨닫게 된다 하여도 도무지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 그리하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대자연의 지배자니 하는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인간들만의 힘으로 마치 낙원을 이루기라도 할 것처럼 스스로 자만하기도 합니다.
-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 그리하여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 같은 사람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자임을 드러내려 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완강히 부인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로마서6장 19절에서 “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범죄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것은 연약함을 감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 자인 것처럼 위세를 부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향하여서 진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누구든지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과 같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 현대 사회에서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도시나 국가일수록 우울증으로 자살률이 높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 최근에 배우 전미선씨와 같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함으로 인하여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 누군가 믿음의 사람이 옆에서 진지하게 그 울고 있는 마음을 열어줄 수 있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 상대적으로 인간을 강하게 돋보이게 할 것 같은 경제력 등 물질문명의 혜택들은 실제로 사람을 강하게 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 왜냐하면 인간이 연약해진 이유는 자기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데 있기 때문입니다.
-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 분과의 교제를 다시 회복하지 않는 한 본래적인 연약함을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내가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이기고자 한다면,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연약한 자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간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새로운 힘을 얻고, 소명의식을 회복하고 절망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 소명의식을 잃어버리고 탈진이 된 엘리야가 그를 억누른 것은 깊은 좌절감과 절망이었습니다.
- 엘리야의 마음과 생각은 아합 왕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의 부인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 회개 운동이 일어나며,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기대했는데 전혀 먹히지 않고 오히려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좌절감과 절망이 몰려 온 것입니다.
- 그래서 이처럼 엘리야가 이제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은 사람을 좌절과 절망 속에 빠뜨리게 됩니다.
- 사실 이러한 일은 누구나 인생을 사는 동안 한두 번쯤 겪게 마련입니다.
- 노력하고 힘써 싸웠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을 때에 탈진상태와 소명의식을 잃어버린다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지는 것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일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노력하고 수고한 결과보다 더 어렵고 힘이 들어 절대적 위기 앞에 눌려서 탈진과 사명의 손을 놓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그리고 이런 문제는 나 같은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과 절망에 갇혀있지 않는지? 또한 나의 가족과 이웃과 형제들이 이런 상태에 있다면, 내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과 주변을 확인해 봅시다.
- 하나님은 연약함을 고백하면 언제든지 손잡아 주시고 힘주시므로 능력의 손을 내밀어 봅시다.
- 히브리서4장 15,16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연약함을 탓하지 않으시며, 탓하기는커녕 나의 연약함을 싸매어 주시고 등에 업어 주시며 먹고 마시게 하여 강하게 하사 다시금 소명의식을 회복케 하십니다.
-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부르시는 음성을 이사야 선지자는 41장10절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것이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이며, 힘이요, 능력이기에 이 위로에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해 봅시다.
- 그러므로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연약하고 나약한 성정도 갖고 있으므로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 했듯이 오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내가 연약한 존재이지만, 크고 강하신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