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여러 과목을 선택한 적이 있다. 일반선택과목으로 ‘영어독해와 작문’을, 진로선택과목으로 ‘영어권문화’를 선택했다.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영어를 배운다는 생각이 기대가 부풀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영어 독해와 작문’에서는 수능특강 part1(유형편)을, ‘영어권문화’에서는 수능특강 part2(주제·소재편)를 두고 수업했다. 수능특강 문제풀이나 하려고 그렇게 고심해서 과목을 선택했단 말인가. 국어도, 사회도,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였다. 왜 맨날 수업시간에 수능특강 문제만 푸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입시판이 이 모양이니 어쩔 수 없어. 다 네 입시에 도움되라고 하는거야!"
대학 입시가 무엇이길래 학교 수업을 망가뜨렸을까. 대입 제도는 바뀔 수 있을까? 내년 2월에 2028 대입제도 개편안이 나오고,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다. 교육계에 큰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내실있는 선택 과목 운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고교학점제에 따른 대입제도의 개편이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해 놓고 똑같이 입시 공부만 시키는 괴리가 발생할 것이다. 입시제도가 수업을 바꾸는 우리 교육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할까?
대입제도, 규제보다 유도 정책으로 전환해야
정책국의 스터디 도서 <대입제도> 마지막 챕터의 주제는 ‘대입공정성 강화방안’과 ‘대입제도의 개편 방향’이다. 교육부 장관과 EBS 이사를 역임한 저자 서남수 장관은 대입제도의 방향을 몇 가지 제시한다.
스터디 후기 1주차에서 대입제도를 지지하는 3가지 기둥을 소개한 적이 있다. 바로 공정성,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이다. 기본적으로 세 원칙이 상호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대입제도를 개편할 것을 강조한다.
먼저, 현재 ‘규제 중심’의 대입제도 정책을 ‘유도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교육부는 2014년부터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2022년 기준 90개 내외 대학을 선정하여 총 575억 원을 지원했다. 이를 대폭 확대하고 시행방법을 개선하여 대학의 변화를 통해 대입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입제도의 발전을 위해선 먼저 선발 주체인 대학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원 규모를 560억에서 연간 2조로 확대
* ‘대학 입학 전형 시행계획’ 심사 철저
* ‘결과적 공정성 입증 지표’ 개발
또한 각 전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변화를 제안한다. 전체적으로 수능 축소, 학종 확대, 대학별 고사 점진적 확대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능 | 학생부종합 | 대학별고사 |
수능 시험 성적의 영향력 낮추기 발전된 학력고사 성격 회복 9등급 절대평가 방식 ‘자격고사’로 전환 서술형 평가를 도입 가능성 응시 영역 통일 | 생기부 기재 반영 비중을 확대 내신=절대평가 성취도+상대평가 석차 입학사정관 전형 점진적으로 확대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 교장·교사 추천서 부활 검토 | 대학별 고사 점진 확대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 배제를 통해 편법 억제 |
고교학점제, 가짓수 늘리기보다 통합 교과목을 강화해야
무엇보다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 맞춘 대입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 선택과목이 여러 개로 나뉜다. 예를 들어 국어 과목에서 공통과목은 공통국어1,2이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목 중 일반선택은 화법과작문 · 독서와작문 · 문학, 진로선택에 주제탐구 독서 · 문학과 영상, 융합선택에 독서토론과 글쓰기 · 매체 의사소통 등으로 나뉜다.
저자는 선택과목 종류와 성격이 불분명하고 너무 많아 일반선택, 진로선택, 융합선택을 모두 합치거나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일반고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염두해두고 있다는 점에서 ‘진로 선택’ 과목을 대학에서 가르치는 기초학문 분야와 연계하고, 추후 ‘대학 학점 선이수 제도’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세분화된 교과목을 많이 늘리는 것보다 통합적 교과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함을 강조한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2028 대입제도 개편은 올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정책의제다. 저자는 다시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대입제도, 신분 제도인가? 교육 제도인가?’ 대입제도는 사회적 지위를 나누는 신분제도이자, 학교 교육의 연장선인 교육체제로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기에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대입제도를 고민하는 이유는 치열한 고민과 토론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 책 덕분에 대입제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입시를 치른 수험생 때와 달리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흐름과 이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험생일 때는 그저 입시에서 갑자기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내용이 줄거나 수업시간에 수능특강을 푸는 게 불만일 뿐이었다. 이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대입공정성강화방안(2019)’와 같은 대입제도가 사회적 요구와 여론에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가히 대입 정책을 위한 기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올해 정책대안연구소에서 2028 대입개편을 준비하기 전에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교육정책과 대입제도를 고민한다면 이 책을 먼저 읽으면서 제도의 변천사와 현재의 중요 쟁점을 고찰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