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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와 인연 원문보기 글쓴이: 사자 왕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14호
명 칭 한산모시짜기(韓山모시짜기)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67.01.16
소재지 충남전역
※ 본문설명
모시는 오랜 기간동안 이용되어 온 직물로서 일명 저포·저치라고도 하며, 모시나무가지를 꺾어 그 껍질을 벗긴 것을 재료로 한다. 통일신라 경문왕(재위 861∼875) 때 당나라에 보낸 기록으로 보아 외국과의 교역품으로 이용되었다. 모시풀은 다년생으로 뿌리쪽 줄기가 황갈색으로 변하며, 밑의 잎이 시들어 마를 때 수확한다. 보통 1년에 3번 정도 수확하는데 5월∼6월초, 8월초∼8월하순, 10월초∼10월하순이며 두번째 수확한 모시가 품질이 제일 좋다.
한산모시는 한산에서 만드는 모시로 예로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서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하여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어 왔다.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순이다. 우선 재배하여 수확한 모시를 훑고 겉껍질을 벗겨 태모시를 만든 다음 하루쯤 물에 담가 말린 후 이를 다시 물에 적셔 실의 올을 하나하나 쪼갠다. 이것을 모시째기라고 한다. 쪼갠 모시올을 이어 실을 만드는데, 이 과정을 모시삼기라 한다. 이 모시삼기의 과정은 실의 균일도가 가름되는 과정으로 한산의 모시삼기기술은 우수하여 균일도가 일정하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실을 체에 일정한 크기로 서려 담아 노끈으로 열 십(十)자로 담아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모시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짠다. 마지막으로 모시표백은 물에 적셔 햇빛에 여러 번 말려 백저포, 곧 흰 모시가 된다.
모시는 보통 7새에서 15새(보름새)까지 있는데 10새 이상을 세모시라 하고 숫자가 높을수록 고운 최상품으로 여긴다. 1새는 30㎝ 포폭에 80올의 날실로 짜여진 것이다. 모시는 습도가 모자라면 끊어지기 쉬우므로 더위에도 통풍이 안되는 움집에서 짜야 하고, 바람이 불거나 비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근래에는 염소표백을 하여 흰 모시를 만들기도 하며, 섬유공업의 발달과 함께 수요가 줄어들어서 이 지방의 모시짜기 기술도 점차 쇠퇴하고 있다.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옷감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아 제작기술을 보호하고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현재 한산 모시짜기 기능보유자로는 문정옥, 방연옥이 인정되어 있다.
※ 보충설명
모시는 기호지방에서도 짜는 곳이 여러 곳이나, 예로부터 한산지방의 모시가 이름이 있었다. 한산지방의 부녀자들은 대개가 모시를 짤 수 있는 기능을 지녔고 그와 같은 기술집단 가운데서 문정옥의 솜씨가 두드러진다.
모시는 다년생인 모시나무의 가지를 꺾어 그 껍질을 벗긴 것을 재료로 하여 짠다. 심은 그해나 다음해부터 수확하여 쓸 수가 있으며 5월 말에서 6월 초에 초수(初收)를 하고, 8월 초순에서 8월 하순에 이수(二收)하며, 10월 초순에서 하순에 삼수(三收)하여 한 해에 세 차례를 벤다.
잎과 옆가지를 따고 원대를 모시칼로 껍질을 벗긴다. 모시톱으로 외피를 훑어내면 이것을 태모시라 한다. 태모시는 물에 담갔다가 볕에 바랜 다음 모시올을 이빨로 쪼개낸다. 이것을 쩐지에 걸어 놓고 밑쪽과 끝쪽을 무릎에 비벼 맞이어 날줄과 씨줄로 한다. 이를 삶아서 모시올의 굵고 가늘기에 따라 새가 결정된다. 일곱새에서 보름새까지 있는데 모시올 10올을 1모라 하고 8모가 1새가 된다. 10새쯤 되면 머리카락보다 더 가늘고 곱다. 새가 결정되고 난 다음에는 날을 세운다. 열올의 실끝을 젓술대 구멍에 꿰서 날틀에 하나하나 걸어간다. 8새를 나르려면 날틀 한 끝에서 한 끝까지 서른두 차례를 돌아야 한다. 모시올이 바디에 꿰어지고 한 끝은 도투마리에 고정된다. 다 맨 모시올은 도투마리와 더불어 베틀로 옮겨진다.
베틀 앞에는 앉을개가 놓이고 거기에 올라 앉아서 모시를 짠다. 토끝이 걸린 매듭대를 앞에 안고 허리의 붓태줄로 매듭대 끝을 동여매고 바딧집, 바디, 잉앗대, 눌림대, 비경이, 사침대, 말코, 도투마리 등의 순으로 정리하고 짜기 시작한다. 모시를 짜는 데는 습도의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에 때때로 물줄개로 날줄의 마른 부분을 적신다. 10새 이상의 세모시는 통풍이 잘 되는 방이나 마루에서는 짤 수가 없다.
습도가 모자라면 끊어지기 쉬우므로 삼복 더위에도 통풍이 안되는 움집에서 짜기 마련이다. 잘 짜는 솜씨면 4∼5일이면 한 필을 짤 수 있으며 모시 한 필에 소용되는 모시의 양은 약 1, 312g(350문)에서 약 1, 500g(400문)이 드는데 세모시는 375g(100문)이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끝에서 손끝으로 짜는 모시의 수요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현대사회의 복식문화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첫댓글 모질고 모진
인고의 삶이 곧바로 다가옵니다.
자식 키우며 부모 모시고
농삿일에다 밤 늦은 물레질...
그토록 모진 고난들을 세월이라 한다면
그분들의 행복은 무었이었까요.......,
제겐
아픈 기억이 먼저 떠올라
올리신 취지에 어긋난다면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사진(여인들의 옷차림)을 보니 한산모시 홍보용 글입니다
옛날 모시 짤 때는 저런 옷을 입는다는 것은 꿈일 것입니다
어려웠던 옛날이 생각납니다
저도 어릴적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사라져가는 우리것을 보고 예전의 어른들을 생각해 봅니다.^^
저가 댓글을 올린 이유는
<봉두 총각님>께서 한산모시를 홍보한다는 뜻이 아니고
위 글과 사진을 당초 작성한 분께서
한산모시의 상업적 홍보보다는
"한산모시를 우리 민족 정서에 맞춘 한산모시 홍보용의 글과 사진"이라고 봅니다
오해가 없어시기 바랍니다
한산모시의 민족적 홍보 사진 중에서 여인들의 옷차림을 보시면
직접 모시를 만드는 분들이 아니라는 것이 엿보이는 듯한 사진으로
여인들의 작업 중의 옷이 깨끗하고 좋은 옷이라는 것입니다
민족 정서에 맞는 그 당시 길쌈하는 여인들의 옷차림은
(땀내 나는) 남루한 옷차림이 맞지 않을 까요???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일할때 모습을 그대로 사진에 담았더라면 더 좋았을건데
사진 찍는사람이 온다니까 할매들이 옷을 다 곱게 차려입고 오셔서 시연을 하셨지 싶습니다.
모시란 무엇이며 모시를 짤때의 과정을 소개한것 같습니다.
어릴적에 본적도 있는데 이렇게 모시짜는 광경을 보기는 처음이라서 올린것입니다.
오해라니요? 전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