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먼 옛날, 한 젊은이가 고봉준령(高峯峻嶺)으로 유명한 적악산(치악산의 옛 이름) 자락을 넘고 있었는데, 커다란 먹구렁이가 장끼(수꿩) 한 마리를 휘감아 집어삼키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젊은이는 재빨리 등 뒤의 활을 꺼내 뱀을 겨누어 쏴 죽이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놓인 장끼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어둑어둑해진 날이 완전히 저물려하매 젊은이는 서둘러 가던 길을 재촉하였으나 이내 해는 지고 어둠속을 헤매던 중 저 멀리 인가 한 채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내달려 대문 앞에 서서,
“이라오너라” 하니, 깊은 산 속에서 보기 드문 예쁜 처자가 나와 젊은이를 친절히 안내했다.
심산을 헤매느라 지쳤던 모양인지 젊은이는 금방 곯아 떨어졌고, 한참을 자다가 무엇인가가 옥죄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커다란 먹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는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까 산중에서 네놈의 화살에 맞아 억울하게 죽은 뱀의 아내이다. 나와 내 남편은 하늘에서 큰 죄를 지어 인간들의 세상으로 내쳐졌고, 용이 되어 다시 승천하려면 땅에서 뱀으로 천년을 살아야한다고 해서 그 긴긴 세월을 서로를 의지하며 보내왔는데, 오늘이 바로 꼭 천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네놈이 내 남편을 죽였으니, 나는 너를 죽여 내 남편의 원수를 갚고 새벽을 알리는 종이 치기 전에 용이 되어 승천을 할 것이다.”
무서운 기세로 젊은이를 잡아먹으려하는 순간,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젊은이를 잡아먹으려하던 뱀은 급히 도망을 갔고, 젊은이는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동이 트고 젊은이는 간밤에 종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가보니, 그곳에는 어제 목숨을 구해줬던 꿩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젊은이는 그곳에 절을 세우고 중이 되었다. 이 절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200미터)에 있는 사찰인 강원도 원주의 ‘상원사(上院寺)’이다.
사람들은 또 그 뒤부터 적악산(赤岳山)을 ‘雉, 꿩 치’자에 ‘岳, 큰 산 악’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사실의 근거 없이 그저 민간에서 구전되어 온 전설일 뿐이다. 하지만 이 짤막한 이야기가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는 가히 작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도 배은망덕(背恩忘德)을 밥 먹듯 하는데, 하물며 한낱 미물이지만 자기의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 죽음으로라도 보은을 한다는 뜻 깊은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전설인 것이다.
보생이사(報生以死). 즉, 생명의 은혜는 목숨 바쳐 보답하고, 복사이력 인지도야( 服賜以力 人之道也 ). 즉, 베풀어주심에는 힘으로써 보답함이 인간의 도리이다.
은혜를 모르는 흉악한 사람의 비유로 ‘효경(梟獍)’이란 다소 생소한 단어가 있는데, 이는 어미 새를 잡아먹는다는 올빼미와 아비를 잡아먹는다는 짐승이라는 본디의 뜻을 가진 말이다. 은혜는커녕 낳고 길러준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폭행한 패륜아의 소식들이 이따금씩 보도될 때에는 ‘한마디로 말세구나!’ 싶다.
효경과는 상반된 개념으로 ‘자오(慈烏)’란 단어가 있는데, 은혜 갚음할 줄 아는 새라는 뜻으로, 까마귀를 달리 일컫는 말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안갚음’이라고 한다.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 중의 하나인 《당서(唐書)》의 기록에 의하면, 까마귀는 새끼가 깨면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데, 그 까마귀가 자라나면 역시 60일 동안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길러 준 은혜에 보답한다고 한다. 이것을 ‘돌이킬 반’자에, ‘먹일 포’자를 써서 반포(反哺)라하며, 우리에게 유명한 고사인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유래이기도 하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예부터 부모의 은혜와 더불어 스승의 은혜와 나라님의 은혜를 중시해왔는데, 현실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참으로 통탄해 할 일이다.
나라의 근간이 뒤흔들리고 상하와 좌우의 구분을 못하게 됨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의 처지에 놓인 가장 큰 원인은 한마디로 교육의 뿌리가 썩었기 때문이라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에서 양질의 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는 나무한테 어찌 훌륭한 실과(實果)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