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신부님의 웃음
교구 문화홍보국 차장 / 이재근 레오 신부
초등학생 때 서울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곳 성당에는 총 세 분의 신부님이 계셨다. 우선 나이가 가장 많으셨던
주임 신부님은 카리스마가 대단하셨다. 그리고 가장 어린 막내 신부님은 항상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셨고
함께 놀아주셨다. 문제는 중간 신부님이셨는데, 뭔가 모르게 어중간했다. 주임신부님과 같은 가리스마도 없고
막내 신부님과 같은 따뜻함도 없다 보니 어린 내가 보기에도 삶이 억울해 보이셨다. 게다가 내성적이셔서 그런지
초등학생인 우리가 곁에 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미사 복사를 서게 될 때 제발 중간
신부님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던 적이 있다.
그럼 이 세분 신부님 중에서 현재 사제가 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누구일가? 놀랍게도 중간 신부님이다.
뭔가 모르게 어중간하셨고 항상 억울해 보이셨지만 미사를 집전하실 때 내가 참 좋아했더 모습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실 때 항상 신자들을 보녀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멍청해 보일 정도로 너무나
해맑았다.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점점 그 웃음이 좋아졌고
닮고 싶어졌다.
17년 가까이 사제생활을 하면서 어느 본당에 가든지 그곳 주일학교 학생들이 나를 보면 꼭 따라 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그것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하며 손을 벌리는 내 행동이다. 그러면서 꼬 바보처럼 웃는 시늉을
함께해 준다. 어떤 아이들은 대놓고 신부님 너무 멍청하게 웃는다고 말한다.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중간 신부님의
웃음이다.
우리는 일주일 중에 6일 동안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지쳐간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도 근심 걱정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주일 미사 때만큼은 근심 걱정 없이 쉬다가 갔으면
좋겠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강론과 생각을 없애버리는 바보 같은 나의 웃음으로 골치 아픈 생각들은 잠시 잊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멍청한 웃음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예수님은 지칠 때 어떻게 쉬셨을까? 분명한 건 휴식 후 다시 힘을 내셨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쉼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미사 중에는 잠시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과 함께 그냥 쉬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고 나면 다시 힘을
내서 일주일을 보냈으면 좋겠다.
대구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