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죽음과 열매 (23. 2. 19 구야교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김천 부항에서 목회하다 아마존 밀림에 부부 선교사로 파송받아 헌신하시던 허운석 사모님이 폐암으로 병마와 싸우면서 마지막으로 행한 설교를 모은 책이 <내가 왕 바리새인입니다>라는 설교집입니다. 그 책에서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위해 헌신했지만 실은 자아가 하늘에 닿았던 왕 바리새인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내려놓기 힘든 것이 바로 자아입니다. 비록 아마존 밀림처럼 험한 선교지에서 헌신 봉사했어도 그 일조차 도리어 자아를 드높이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험하고 힘든 곳에서 선교했노라는 자부심을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못 박는 일은 자아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 봉사했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나의 자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고 고백한 사도처럼 아무리 헌신 봉사했을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은혜 가운데 사는 자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약함을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진정한 십자가란 헌신과 희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있습니다.(잔느 귀용) 자아가 죽은 사람에게는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부심도 품지 않습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는 길이요 많은 열매를 맺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먼저 우리 자아를 죽게 하신 죽음입니다.
자아가 살아서 자신을 주관하면 성령을 거스립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요8:50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대신 무의식적으로 자아의 영광을 구합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도 자아의 눈은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웬만해서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헌신이나 수고 봉사에 대해 은연중에 자부심을 품는 사람들은 자아의 생각을 무심코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고나 헌신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에게는 자신은 보이지 않고 다만 영광의 주님만 보일 뿐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우리가 믿음으로 받은 하나님의 의는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우리의 노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사는 자는 자기 수고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신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행위 가운데 사는 자와 은혜 가운데 사는 자는 사고의 방식이 다릅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자아가 살아나서 자신의 수고나 헌신을 바라보며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 순간부터 변심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 섬김의 길로 가신 예수님과 더 이상 동행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자아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오직 주님의 기쁨과 영광만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수고나 괴로움이나 아픔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구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12:26
주님께서 가신 곳에 나도 가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나도 함께 못 박힙니다. 주님께서 가신 곳이면 어디든 따라갑니다. 이 길만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는 은총의 길입니다. 2023. 3. 2 장기옥 목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