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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믿음(히 11:5-6)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앙의 모델이 되는 믿음의 조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최초의 믿음의 조상인 아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첫번째 믿음의 영웅입니다. 이처럼 믿음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배생활입니다.
예배생활에 성공하면 믿음생활에 성공합니다. 예배는 바로 나의 창조주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배생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 믿음의 모델인 에녹을 통해서 매우 귀한 신앙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에녹은 가장 타락하고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했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만난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산채로 하늘로 들림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처럼 아주 어둡고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다시말하면 죄악이 관영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던 시대였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렇고 도덕적으로도 너무나 퇴폐한 시대였습니다.
그 가운데 살면서도 에녹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에녹은 그 당시 사람들보다 짧은 생애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을 거꾸로 산 사람입니다. 당시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살을 특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에녹의 삶에 특별한 사건도 없었습니다. 별로 감동스러운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평생 주님을 향해서 온전하고 순수하게 충성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 에녹의 삶가운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삶의 원천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 신앙적인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에녹은 과연 어떤 믿음의 사람이었습니까?
1.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믿음
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의 이야기의 시작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공포는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한 후 죄와 사망의 법에 사로잡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고 하늘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절망의 실체인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삶이었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행복한 인생이 아닙니다. 이 에녹은 죽음으로부터 승리하고 죽음을 넘어서서 산채로 하나님의 품으로 바로 갔습니다. 성경에 이 사람과 엘리야, 두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휴거된 사람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특별히 이 기록이 감격스럽게 보이는 것은 많은 조상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창세기 5장에 나타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죽었다는 말만 나옵니다. 아담도 죽었고 아벨도 죽었고 가인도 죽었고 셋도 죽었고 계속 죽었다는 말이 되풀이 됩니다. 5백년을 산 사람도 죽었고 7백년을 산 사람도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이 장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운 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창조할 때부터 영원한 존재로 창죄되었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함으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인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면 우리가 말하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죽음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는 둘째 사망인데 이는 영원 지옥형벌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영원히 어디서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에녹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사는 믿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복락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사로의 무덤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에녹이 받은 축복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얻은 축복입니다. 사도바울도 (골 1:13)에서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옮기웠다는 말은 죽음을 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요 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에서도 옮겼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앞으로 옮겨질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에녹은 신비롭게 옮겨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우리들은 이처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워졌던 에녹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주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이미 죽음 문제를 극복한 성도들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우리는 에녹이 체험한 축복을 이미 약속받은 성도들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울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확실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던 삶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물론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늘 하나님앞에서 사는 경건한 사람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며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이땅에서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의 관심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300년동안 자녀를 많이 낳았을 것입니다. 그 자녀들을 키웠다는 것은 그의 삶은 평범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에녹은 드러난 것이 없었으나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큰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끗한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에녹의 어떤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길은 그가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자기 돈으로 자기 지식을 의지하고 살 때 에녹은 오직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의 믿음의 내용은
1)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요, 하나님을 찾는 자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이 살아있으면 믿음의 사람을 살고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 진정으로 믿음으로 사는 길은 깨어서 기도하는 삶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분별하고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힘으로 믿음을 지킬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오직 깨어서 기도해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없이 신앙생활하는 것은 그 영혼이 죽었거나 병들은 상태입니다. 날마다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에녹이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실제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게 나아오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고 계시며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시며 지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계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패역한 시대에 아무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때에 그만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믿으면 그 신앙의 자세는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믿으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에녹은 언제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배시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가운데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믿음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신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운동경기장에서 상받는 일, 얼마나 기분좋습니까? 내가 기도하면 주께서 응답하시고 주께서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리면서도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불신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기도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의식과 하나님의 상주심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믿음의 삶이 있었습니다. 1)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2)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의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3)하나님께서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창세기 5장 22절.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에녹은 365년을 살았습니다. 기억하기 쉽게 말하자면 오늘 읽은 말씀도 신약 성경 365페이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년 365일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라고 일부러 365년, 365페이지를 강조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에녹이 365년을 살았는데 65세에 에녹을 낳은 후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동행의 기점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그의 이름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그해에 그에게 신앙적인 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에녹이 신앙을 가졌다는 기록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면 65세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유다서 1:14,15절을 보시면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에녹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 당시에 세상에 경건치 않는 자들로 가득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모른 채 노아시대처럼 죄악이 관영하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세상 욕망에 푹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에녹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심판을 알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므두셀라인데 그 뜻은 "창을 던지는 자"라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파수꾼으로 창을 제일 잘 던지는 사람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과 마을이 전쟁을 할 때에 한 마을을 정복하는 가장 첫번째 전략은 마을 입구를 지키는 창던지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만 죽이면 마을은 쉽게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을사람들로서는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인 창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므두셀라라고 하는 이름은 그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에녹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실제계산해보면 므두셀라가 죽던 해 노아홍수심판이 이땅에 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평생에 놓치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심판을 선포하며 이름을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무슨 뜻을 가졌을까요?
1)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진리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무엇보다도 그뜻앞에 순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반드시 부딪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뜻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엇이든지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말은 여러 말을 표현하지만 실제로 내 뜻대로 안될 때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나쁩니다.
하나님마저 내 뜻대로 움직이기를 원하는 것이 부패한 우리 인생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땀방울이 번져서 핏방울이 되도록 밤새도록 한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밤새도록 하신 기도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도록 원하는 기도였습니다. 인생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자신을 맞추어 사는 삶입니다. 이 인생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광을 누리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2)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삶속에 누리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믿으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3)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나의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분이 없으면 진정한 내 영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손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안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늘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하나님과 주야로 교제하면서 하나님을 철저하게 닮아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에녹을 보시고 하나님은 에녹이 너무 사랑스러워 하나님께서 하늘로 산채로 옮기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녹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면 살았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이 종말의 시대에 에녹을 주목합니다. 에녹은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그는 이 세상에서 보상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원한 보상을 기대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만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