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 2021.9.3.토
■ 코스: 만인의총-남원중
학교 옆-왕재산(205M)-전
북인재개발원-기린봉
(238.9M)-성원고등학교-복음산(120M)-왕정동 행
정복지센터-만복사지(택
시로 원점회귀: 택시비/ 3,300원, 버스도 있으나 배차 시간 간격이 길어서 포기)
■ 구간거리/평균속도:
10.2KM/2.7KM
■ 후기: 4일만에 남원쪽
이 비가 안온다기에 홀로 나섰습니다. 낮은 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
였는데, 산행 중에 약간의 땀은 났지만 적당한 바람
과 그늘진 코스로 이어지
고 낮은 고도라서, 별로 힘
들다는 느낌없이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중간에
왕재산~기린봉 사이와 기린봉~복음산 사이 구간
이 접속도로와 이어져, 1~
1.5KM 정도 차도를 건너
야 했지만, 횡단보도가 있
었고 남원 시내를 벗어난 변두리라서, 차도 별로 안
다녀서 안전상 문제는 없
었습니다. 복음산 접근 중 에 일기 예보가 빗나가 이
슬비 보다는 약간 더한 비
가 내렸지만, 우의를 걸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본 코스는 트레킹 삼아 다
녀올만 하지만, 복음산 접
근시 100여 M 구간이 등
로가 묵어 길 찾기가 애매
합니다. 그마저도 따라가
기를 안하면 길 찾기가 더 어렵기도 합니다.
다행히 하산 후 버스를 타
려고 지나가는데, 왕정동
행정복지센터 옆 마당에 콸콸 나오는 수도 꼭지가 있기에, 염치 불구하고 머
리를 감고 세안을 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하
필 동사무소 직원이 한분
도 나와보지 않아서 차분
히 씻을 수 있었습니다.
만복사지는 마치 경주 왕
릉을 보는 듯, 웅장한 고려
시대의 찬란한 유적이었
습니다.
오늘부터 산행 등 차량 이
동 중에, 제 애마가 지난 8.
30(월) 에어컨 고장이 난 후, 10.8(콤프레서 고장으
로 독일에 오더 후 1달 이
상 소요) 수리 예정일 까지 문을 열고 다녀야 하는데, 오늘 운행해 보니 다행히
여름 혹서기가 지나서 비
오는 날만 아니면, 에어컨 가동없이도 운행할 수 있
겠습니다.
■ 차기 산행지: 충남 공주
월성산~철마산~주미산~지막곡산 + 공산성(백제시
대 성곽, 세계문화유산) 트
레킹 연계 코스(2021.9.4.
토)
■ 산 소개:
○왕재산(205M)은 만인
의총과 남원중.고등학교 뒷산이다.
만인의총 사적 제272호 뒷
쪽에 자리한 산으로, 왕재
산 정상에 쇠기둥 1개가 있으며 삼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누가 어느시대 박
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
래 부분에는 남원읍성 사
적 제298호가 있으며, 정
유재란 때 이곳에서 군ㆍ
관ㆍ민이 합심하여 굳게 뭉쳐 5만 7천의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열하게 순국한 곳이다.
또한 이곳은 남원 시민들
이 즐겨차는 곳이며, 많은 등산 애호가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기린봉(239m)은 교룡
산과 함께 남원의 서쪽을 수호하는 산이다. 교룡산
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가 기린의 긴 목처
럼 생겼기 때문에 얻은 이
름이다. 공무원교육원과 남원역이 기린봉 산자락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복음산(120M)은 만복
사지와 왕정동 뒷산이다.
○전북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고려 문종 때 지어서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탔다고 전해진다. 많은 건물의 흔적이 발굴되었으며, 현재 5층 석탑, 불상 좌대,당간 지주, 석불 입상 등이 남아 있다. 사적 정식 명칭은 ‘남원 만복사지’이다.
남원 만복사지(南原 萬福寺址, 사적 제 349호)는 7차에 걸친 전북대학교 박
물관의 발굴조사(1979~
1985년)로 여러 건물터가 확인되고 다수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고려시대 오층석탑(보물 30호), 석조대좌(보물 31호), 당간지주(보물 32호), 석조여래입상(보물 43호)과 석인상 등의 유물과 건물의 초석(礎石) 등 많은 석조 유물들이 남
아 있다.
또한 만복사는 김시습이 지은 소설 금오신화(金鰲
新話)에 실린 '만복사저포
기(萬福寺樗蒲記)'의 배경
이 되기도 하였으나 1597
년 정유재란 때 왜적이 남
원 서문을 통과하여 이 절
에 와서 방화하여 거의 모
두 불타버렸다.
고려시대의 절터 만복사지
에는 오층석탑 등 석조유
물들이 남아 천년의 세월
을 증언해 주고 있다.
남원 만복사지는 기린산을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넓
은 평야를 둔 야산에 위치
한 만복사터로 고려 문종
(재위 1046∼1083) 때 지
어진 것으로 전한다.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높이 35척(약10m
)의 불상이 있었다는 기록
이 있다. 당시에는 대웅전
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과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
는 큰 절이었으나 정유재
란(1597년)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타 버렸다고 한다.
고구려식의 절 배치를 따
르고 있으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절 중에 하나로 의의가 크다. <출처; 문화
재청>
●따라기기: 아래
https://m.tranggle.com/istory/view/20217031211?tp=pc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