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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우리 대한민국, 우리 한민족은 정말 보잘것없는 나라, 정말 힘없는 민족이었습니다. 5000년 넘는 한민족의 역사상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렸던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장수왕 때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민족은 한반도 북쪽을 넘어 중국대륙 전역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고 정말 세계가 벌벌 떠는 한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세 나라로 갈라졌던 우리민족은 고구려가 아닌 남쪽 조그마한 나라였던 신라에 의해 통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자기 실력으로 정복했으면 그 기상으로 대륙까지 품고 초강대국같이 지역을 호령할 수 있었을텐데 통일과정에서 중국 당나라의 힘을 빌어 고구려를 무너뜨리며 통일을 이뤄냈으니 통일이후 고구려 영토 대부분이 중국의 영향권에 넘어가 대동강이남의 권역만 차지하는 약소국이 되었습니다. 그 후 바뀐 왕조 고려, 그 뒤를 이은 조선, 이 두나라도 강력한 국력을 가지지 못하고 대륙을 차지한 나라들에게 사대주의 굴욕외교를 당하며 중국의 속국같은 느낌으로 한반도의 권역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며 중국의 제도를 따라하고 중국의 굴욕적인 지도를 받으며 중국 문화와 중국글자를 쓰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였습니다. 정말 내세울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다 구한말 근대화로 강력해진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영토도 잃고 언어와 문화도 말살되며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로 36년간 힘들게 살았습니다. 드디어 1945년 독립을 이루고 잘 살 수 있을까했더니 남과 북으로 나눠진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 6.25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가 초토화되어 폐허가 된 나라에 국민 모두 거지꼴을 면치 못한 나라였습니다. 1950년대, 1960년대 이 대한민국은 완전히 폭삭망한 거지나라였습니다. 이 당시 이 한국은 정말 보잘 것 없는 나라, 보잘 것 없는 민족, 우리끼리 싸워서 만신창이인 나라였습니다. 더욱이 수 천년 역사동안 쉴새없이 주변 강대국에 두들겨 맞으며 주권을 지키기도 힘든 그런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한민국, 우리 한민족은 하나님께서 복주셔서 지금은 정말 이런 역사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성장한 나라, 정말 작은 영토에서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엄청난 국가, 뛰어난 민족으로 인정받으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과 이 나라를 찾아오셔서 우리는 변화되었습니다. 생각과 가치관이 변하고 태도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우리끼리 아옹다옹지내며 사소한 일에 격분하며 지내다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이신 우리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비전이 생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도 이 당시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보잘것없은 민족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패망하였고 그나마 조금 버티고 있던 남쪽 유다마저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지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다 끌려가고 성벽도 파괴되고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포로로 끌려가 타국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왕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그의 결단을 통해 이스라엘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 ‘스룹바벨’이라는 총독과 ‘여호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지는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종교적인 책임을 지는 ‘여호수아’가 예루살렘에 돌아와보니 정말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보잘 것 없는 땅,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어떻게 나라를 재건해야할 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학개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사용하셔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독려하고 함께 성전재건의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파괴된 성전을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변화시키실 것이고 이 땅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오도록 하실 것이다’라며 학개에게 스룹바벨 총독과 여호수아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찾아가 큰 소리로 말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성전 재건을 명령하셨을까요? 이 성전재건을 통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보잘 것 없는 민족에서 뛰어난 민족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을 통해 이 나라와 민족에게 복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하나님께서 세우길 원하시는 찬 신앙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성전을 다시 세우며 신앙을 다시 세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기를 원하시는 신앙, 첫째는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학개 2장 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본문 말씀에서 선지자 학개는 백성들에게 “굳세게 해라”는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건축을 위한 마음을 단단히 하라’는 뜻입니다. 성전건축을 하다가 마음이 흐트러지고 결국 16년간이나 성전건축을 내팽개쳐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다시 성전재건을 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제 성전재건의 사업을 다시 시작할 때 이제는 정말 ‘단단히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해라’는 뜻입니다. 경상도 말로 ‘단디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똑바로 마음을 잡고 틀림없이 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단단히 마음먹고 우리의 맡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의 열정으로 가능할까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 ‘그래 열심히 하자’,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도록 노력하자’라고 한다고 해서 그게 가능할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왜 처음 성전건축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갑자기 어느 한 순간 힘이 빠지고 일을 놓고 지낼 수밖에 없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학개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굳세게 해라’라고 명령하시지만 결국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우리의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뒷부분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 학개 2장 4절의 뒷부분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신앙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할 때 결국 우리는 삶의 의욕도 잃어버리고 사역의 목적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분의 백성들과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어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될 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을 신앙가치관중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 오늘 말씀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회복되기를 원하는 신앙,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또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가 방금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의 삶을 보살피는 것입니다.
‘탁구계의 여왕’ ‘집념의 승부사’라는 별명을 가진 전 국가대표 탁구감독 , 현 대한탁구협회부회장인 현정화씨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한국 국가대표 탁구선수로 선발된 이후 계속 승승장구했던 전설적인 탁구선수입니다. 1987년 인도의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복식 우승, 2년 뒤 독일 도르트문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혼합 복식 우승,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고 그 당시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면 세계 여자 탁구 역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인 최고 실력을 자랑하던 1992년 허리부상을 당해 의사로부터 이제 탁구선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은퇴를 결심하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일반인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때, 국가대표선수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며 온 몸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흥분시켰다고 현정화 감독은 표현했습니다. ‘그래 내가 허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뛰어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생겼고 고통을 참으며 뛰어서 가까스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기하다 죽을 수도 있을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며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이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현정화선수는 허리가 아플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기대하며 자신을 붙들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이를 악물고 연습했고 이를 악물고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1993년 스웨덴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에 출전하여 한 게임 한 게임 경기에 임했습니다. 모든 경기가 힘들었지만 어렵게 어렵게 준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준결승상대는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였고 육신의 고통 또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힘든 경기중에 그는 ‘이것이 어쩌면 마지막 시합이 될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이를 악물고 끝까지 뛰었습니다. 결과는 역전승 준결승을 통과했습니다. 결승은 상대적으로 준결승보다 쉬운 상대를 만나 세트스코어 3대0으로 완승하며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드디어 세계 탁구 역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습니다. 일본 지바에서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하나님께 “하나님,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무릎꿇고 울며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전국민도 함께 울었습니다. 탁구선수의 생명으로는 치명적인 허리부상에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굳세게 만들어주시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기든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결과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맡깁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신앙 회복, 그 첫 번째 항목은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임마누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기에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경험하며 굳건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기를 원하시는 신앙, 둘째는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학개 2장 5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을 계속 기억하며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보잘것없는 노예생활을 하며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이끌어 가나안땅으로 가서 살게 하시면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보배와 같이 세워주시겠다”라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지배를 받으며 430년동안 노예생활을 하였지만 그렇게 끝날 민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고생했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고생하다가 끝나는 민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나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백성은 비록 작고 비록 힘없고 비록 가진 게 없어도 위대한 민족, 큰 나라로 만드실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영원히 불변하시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그들에게 화를 내리실 것이다”라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언약입니다. 선택받은 민족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살아가고 복이나 화나 별 상관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살든 그냥 무관심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하나님께서 항상 관계하시며 생사화복의 모든 주권가운데 우리들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다 이뤄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며 복된 결과를 발견하게 될 것을 이미 시내산에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학개선지자를 통해 이 신앙을 회복하라는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하면 복을 받게 되니 지금 하나님께서 성전재건의 명령을 주셨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여러 여건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약속을 믿고 실행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결과는 그 말씀대로 분명히 이뤄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몇 주간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 학개서에서의 이스라엘의 형편은 분명 어려운 형편일 수 있습니다. 도무지 성전재건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모든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언약하신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방금 읽은 본문 학개 2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중에 하나님께서 항상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항상 동행했다는 것을 그 모습을 통해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말씀 학개 1장 14절에서 16년간 멈춰있던 성전재건의 역사를 다시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감동시켜 한 마음이 되도록 만들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어져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야 일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지는 것, 사람들의 재물을 모아 일이 되게 되는 것, 사람들의 능력이 함께 모아져서 일이 완성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다시 지난 주 봤던 말씀 학개 1장 14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학개 1장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는 이방민족 왕의 마음도 움직이셨고 이방민족 왕의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갈팡질팡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이용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두려움과 걱정에 빠져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하나되어 다시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어려운 상황, 힘든 형편을 다 내려놓고 한 마음이 되어 뜨거운 열정으로 다시 성전재건의 역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움직여 사업을 완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와 같은 시대 인물이었던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성전 건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 4장 6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의 모든 일이 인간의 힘, 인간의 노력, 인간의 지식, 인간이 가진 생각들로 이뤄져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성전재건을 진행하고 있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분명한 신앙의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그 신앙은 바로 하나님 언약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뤄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언약을 믿고 언약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대로만 살아가는 것이 참 신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언약만 소망하며 말씀대로만 순종하는 신앙으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기를 원하시는 신앙, 마지막 셋째는 성전의 영광 회복입니다.
학개 2장 7절 말씀입니다.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금 이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있고 새롭게 건축되고 있는 성전은 성전 건축이 중단된 지 15년이 지나 16년째가 되는 때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성전이 완공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암담한 현실속에서 폐허가 된 성전이 눈앞에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의 완공을 축복하십니다. 이 성전의 회복을 말씀하시면서 성전이 지어졌을 때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이 세워지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상태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이런 구절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학개 2장 9절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전’이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지금 세워질 스룹바벨 성전 이전이라는 말일 텐데 스룹바벨 성전 이전에 어떤 성전이 있었나요? 예 그렇죠. 솔로몬 때 지은 성전, 솔로몬 성전이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열왕기상 6장의 기록으로 보니 2층 높이의 긴 건물인데 일반적 2층 높이가 아니라 약 15미터 정도의 높은 건물을 2층 구조로 만든 것입니다. 그 안에는 정금과 백향목등의 재료로 덧입혀져서 웅장함과 화려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성전기공식에 친히 임재하시며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는 영광의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성전, 우리가 후일에 일명 “스룹바벨성전”으로 부르게 될 성전에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큰 영광을 나타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스룹바벨 성전을 지칭하며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 영광보다 더 큰 나중의 영광이 되는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오늘 본문이 지칭하는 궁극적 성전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상징하는 성전, 우리의 생명을 상징하는 성전, 우리의 완벽한 성전되신 그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성전은 새로 지어지고 있는 성전 스룹바벨 성전을 뛰어넘어 진정한 성전인 우리 주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19~21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루살렘에 있던 첫 성전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의 침공과 성전파괴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고 있는 새로 지어지고 있는 성전 일명 ‘스룹바벨 성전’과 예수님 당시 헤롯왕에 의해 증축되는 ‘헤롯성전’등으로 계속 재탄생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헐라고 하신 성전은 ‘헤롯 성전’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일으킬 성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방금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한 완전한 성전회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외형적인 교회뿐 아니라 성전인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온 몸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몸, 우리 인간의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이 되어야 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는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생각하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데 간혹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몸을 우상화하고 우리의 몸을 치장하고 우리의 몸의 외형과 건강만 관리하려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이 성전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가 충만하여야 하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성전을 더럽히지 않고 세상적 욕망이 성전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가득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 우리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무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생활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우리의 인생,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학개 2장 9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에는 평강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학개 2장 9절을 읽어볼까요?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성전에서 ‘평강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힘든 일들, 어떤 어려운 형편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곳은 평안이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형편, 어떤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믿는 자에게 주는 가장 큰 복은 평안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평안을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왕이면 뭘 하고 재벌의 총수이면 뭘 하고 양쪽 어깨에 별을 네 개 씩 단 장군이면 뭘 하고 박사 학위가 몇 개씩 되어 대학강의를 하는 교수면 뭘 하겠습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지옥과 같은 마음의 상태라면 재산이 수억이 된 들 뭐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뭐하겠습니까? 매일매일 고통으로 죽고 싶은 심정인데 젊고 예쁘고 멋있고 인물이 잘 나면 뭐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난 유명세를 가진 사람이 되면 뭐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키실 신앙으로 우리가 삶가운데 참 성전의 영광을 가지시고 인생에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으로 삶이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성전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평안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진정한 평안으로 하루하루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지금 코로나이후에 사회 어디나 지금 불안한 요소가 많습니다. 특히 교회는 코로나를 거치며 비대면의 생활화와 각종 사람들간의 접촉의 우려하는 행사진행으로 인해 예배와 각종 모임이 사라진 곳이 많습니다. 교회들마다 구역모임, 전도회모임, 주일학교예배, 식탁의 교제등이 무너졌고 이제 코로나상황이 안정되면서 이제 다시 새롭게 세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미 생각이 다 흩어졌고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함께 모여서 뭘 하자고 하는 것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고 말을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개인이 알아서 하는 개인주의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니 코로나상황의 가장 큰 피해는 아마 교회라고 생각이 듭니다.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이 신앙인데 이제 나 혼자 각자 알아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다시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기뻐하실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고 이 모양대로 그냥 살아가자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성전을 새로 세울 것을 말씀하시며 성전이 세워질 때 일어날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학개 2장 9절에 있는 구절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리라”라는 말씀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성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신앙은 이전보다 더 창대하고 이전보다 더 영광스러울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복할 신앙으로 깨닫게 하신 것,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신앙’,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을 믿고 따르는 말씀순종의 신앙’, ‘하나님께서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영광의 성전으로서의 생활속의 성전신앙’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삶가운데 임하는 것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