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들락거리는 집앞에 무표정한 할머니 한 분이 피라밋의 스핑크스나 동네
어귀의 장승처럼 우뚝허니 버티고 있는 앞을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치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은 물론 아니다.
도대체 말씀이나 표정의 변화가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아무런 방도가 없다.
말씀이 없으시니 대꾸할 필요가 우선 없을 터이고 그러하니 미리 말을 걸 이유 또한
없으니 무러 그리 뇌세포 죽여 가면서 신경을 쓰냐구요?
오뉴월 염천 복날에 솜바지 겹겹이 껴 입고 털벙거지 모자 쓰고 다니면 어떻게
되게요?
더위에 떠서 긴 혀를 빼 물고 헉헉 거리다가 탈진해서 죽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옆에서 지켜 보는 넘이 속 디비져서 뒤로 자빠지는 일은 왕왕 있습니다.
여자 아이 둘이서 내 옆을 지나치면선 젊은 오빠!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곤
할머니 옆을 지나칠 땐 다정하신 친할머니에게 대하는 듯한 태도로 할머니! 안녕
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니 또렷한 표준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답변하는 소리가 거짓말
처럼 내 귓전을 두드린다.
언능 현관문을 열고 들어 와서 우당탕탕 하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 메리야쓰에 오줌
튀기는 불상사는 갠신히 면했다.
그로부터 할머니 모습이 영 보이질 않는다.
문을 두드려서 안부를 묻기도 뭣해서 내심 궁금한 마음으로 한 보름 지난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가 예의 그 의자에 모습을 나타 내신다.
노친네들은 가랑잎과 같다고 하더니 약 보름 사이에 무척이나 수척해 보이시고 손에는
스핑크스가 질문한 어릴 땐 네발로, 커서는 두발로, 늙어서는 세발로 다니는 것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볼 수 있도록 한손에 지팽이를 힘겹게 부여 잡은 모습이 무척이나 안스럽게
보였다.
출입을 할 때마다 꼬박 꼬박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길 한 열흘 하고 난 어느 날 저녁이었
다.
복도를 걸어 나가니 할머니 댁 현관문 후랫쉬 도어가 약간 열려 있고 안쪽에서 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검버섯 핀 할머니 손이 보이길래 발소리를 죽여서 엘리베이터 앞에 와서 슬쩍
고개를 돌리니 지난 번처럼 소리없이 그 자리로 황급히 오시는 모습이 보이길래 처음으로 고
개를 숙이면서 안녕하세요? 하면서 말로 인사를 건네기 바쁘게 정상인처럼 또렷한 시선을 던
지면서 지난 번 아이들이 인사를 건넸을 때 처럼 아주 정확하신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하면
서 의자에 몸을 의탁하신다.
아무런 연유도 없이 전율이 온 몸을 휘 감는 걸 느꼈다.
한번은 할머니 댁 앞을 지나치면선 본의 아니게 그 댁에서 큰소리가 나는 걸 듣기도 하였
다.
애써 외면은 했으나 빼갈 한 독꾸리를 엽차잔에 부어서 원샸을 한 것처럼 쏙이 그리 편한
건 아니었다.
예전에는 부모 병구완 삼년에 효자 엄따는 말들을 했었나 본데 시방은 부모님 드러 누웠다
는 핸펀 폴더 덮기 바쁘게 즉빵 불효자로 전락한다더만요.
이제 할머니를 만나는 일이 이력이 나니 싫거나 무섭다는 생각보단 할머니와 만나는 인연과
그 할머니는 나에게 또 어떠한 배움을 던져 주실 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되었다.
오래 전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 한토막이 자꾸만 떠 오른다.
재산을 탕진한 한 사람이 최후의 수단으로 악마가 운영하는 카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열잔의 술잔을 앞에 두고 본인이 선택한 한잔을 마시고 죽지 않으면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게 되는데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디어 헌터란 영화에 나오는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물론 그 열잔 중 한잔에는 독이 든 독배가 놓여 있다.
거금을 받아 나와선 당연히 며칠 내로 흥청망청 쓰고 나선 어쩔 수 없이 그 카페를 또 찾아
가게 되는데 이젠 아홉잔 중에서 선택을 하게 되므로 확률이 높아 지니 자연 당첨금(?) 액수
가 반비례하여 높아 진다. 리스크가 높아 지니 댓가 또한 상승하게 되면서 들이 키고 나서
뒤로 발라당 자빠져서 꼴까당 하지 않으면 그 쾌감 또한 무척이나 쏠쏠할 터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이 악마의 카페를 찾아 가서 또 한번의 승부를 걸 싯점엔 이제 겨
우 세잔만 놓여 지게 되자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게 된다.
이를 지켜 보던 악마가 의미 심장한 미소를 띄우면서 한마디를 던진다.
넌 이미 여섯잔을 선택하는 게임에서 독배를 마셨다는 것이다.
아침이면 샤워를 하게 된다.
언제 보아도 탄력이 넘치는 근육질 몸매가 눈이 부실 지경이고 복숭아처럼 발구레한 뺨따구
니에 돋아 난 뽀송 뽀송한 솜털이 나날이 그 완성미를 더해 간다. 웬쑤같은 딸년만 엄쓰면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총각이라고 그럴터이다.
잠자리에서 눈만 뜨면 고심을 하게 된다.
눈땡이처럼 감당 못하게 쌓여 가는 이 넘의 돈을 오늘은 어디 가서 진탕 쓰고 내일은 또 어
디 가서 대형 선풍기 틀어 놓고 확 뿌려 뿔까 하고 말입니다.
전 이렇게 건전한 심신으로 보람찬 인생을 한치의 낭비없이 알차게 살아 가는 이 시대의 모
범임을 늘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아무런 말씀없이 정신없이 헤롱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절 보고 던진 그 무표정
한 염화시중의 미소는 과연 무었일까요?
야! 이 넘아 인생 나이 삼십대 후반을 넘기면 이미 저승길 입구로 내려 꽂히는 청룡열차를
탄기야.
동네 꼬멩이들이 여직도 만나면 젊은 오빠라며 인사를 건네길래 삼십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전 결코 많은 나이인 줄은 결단코 몰랐습니다. 히 히.
의학계에선 사람의 피부를 내장의 거울이라고 한다.
한사람이 일평생을 살아 온 이력은 어쩔 수 없이 오롯한 모습으로 얼굴에 표출되게, 아니
미어 터져 나오는 화산처럼 분출되게 마련이다.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있은 불이상 수상식에서 여러 대덕스님과 내외귀빈들의 맑디 맑은
모습을 뵈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옥련암 노스님은 우리 스님으로 부터 간간이 귀동냥을 한게 전부인데 처음으로 뵙기는 정향
사 개원 하던 날 후원 공양칸에서 였다.
아주 앳띠게 보이는 동자스님(?)을 모시고 여기 저기 돌아 보시다가 나박 물김치를 국자로
한모금 떠 잡수셨다. 예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이시곤 자리를 뜨신다.
속가로 말하면 고이 키운 따님이 시집을 가셔서 처음으로 맞은 큰일에서 저 정도 정성과
맛이면 됐다는 의미인 듯 했다.
우리 스님께서 수상식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옥련암 노스님과 은사 스님을 거론하시면서
눈밑이 많이 붉어 지셨다.
화련한 미사여구는 무색해 질 수 밖에 없는 순간이다.
난 아직 도나 깨달음 같은 건 요원한 수준이다. 냄새나 맛도 모른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하
다.
여러 스님들의 법문도 들어 보았고 아산병원 법당에 비치된 많은 불서들도 건성이나마
많이도 보았다. 밤송이 까지도 않고 혀를 갖다 대었으니 결과는 뻔한 일이다.
불이상 수상식날 우리 스님이 뿌리신 몇방울의 눈물과 뭐라 표현킨 어려운 노스님의 얼굴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으로 인생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 겠다는 작심을 하고 또 하였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심에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아쟈! 우리 스님 홧팅.
정향사의 영원한 젊은 오빠 돌삐 합장드립니다.
카페 게시글
불자님 글방
인생 외나무 다리를 건널 때. (후편.)
돌삐
추천 0
조회 58
06.07.16 12:30
댓글 5
다음검색
첫댓글 거사님 雨中에 잘 계시는지요. 어여쁜 따님도 잘 지내지요. 신라호텔 지홍스님 시상식장에서 두분 모습 반가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정에 불은이 충만하십시오.....()
수상식장에서 못다한 (?)얘기 나누려 했는데 따님 때문 이었을 까..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그러나.. 이건 또.. 뭔.. 삼십대 후반 영원한 젊은 오빠 돌삐.. 는.. 무리수이고.. 나이듦을 사랑하면서.. 이곳에서 자주.. 많이..등장하시어..호탕한 법문(?)을 기대합니다.. 히히히~이..
홓 돌삐 님 덕분에 우중충한 오늘 ...자알 웃고 갑니데이...
거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이쁜 따님도 함께자리해주시여 무어라 흐흐흐흐흐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돌삐님 지도 그날 참으로 서늘했답니다. ㅋㅋㅋ 미인따님을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