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마켓(과부시장/2차세계대전 참전으로 그 지역의 많은 남성가장들이 죽자 과부들이 모여서 장사를 시작한 것에서 출발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여성들만이 시장에 입점할 수 있다.)
어메이징 K-컬쳐! 동북인도 오지에서 만난 한국응식!
임팔 이마마켓(과부시장)에 갔더니 어떤 분이 나를 보더니만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걸음을 멈추고 그 분을 바라보았다. 5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TV에서 배웠다'고 하였다. 길거리에서 가끔 청년들이 "언니 안녕"이라고 해서 K-컬쳐 바람을 의식했는데 금번에는 50대 아주머니의 인사는 K-컬쳐의 유행을 실감케 만들었다.
어느 시골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스카프의 디자인의 소재는 분명 한글 자음과 모음이었다. 쇼킹했다!
물바이페이의 한 야외 까페의 사장의 따님은 "언니 또오세요.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같이 간 일행들이 그가 한국에 가려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귀뜸해주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서 들어간 식당 메뉴는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김밥, 특라면, 신라면, 김치볶음밥과 비빔밥이 있었고 김치를 작은 용기에 넣어서 팔고 있었다. 볶음밥도 비빔밥도 먹을만 하였다. 김치는 양배추를 사용했지만 맛이 괜찮았다.
저녁에는 흐웨이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그 곳 또한
세 가지 한국 음식을 팔고 있었다. 김밥, 신라면, 짜장면이었다. 김밥과 짜장면을 주문하였다. 김밥은 야채가 부족하였지만 간이 맞고 맛이 좋았다. 짜장면은 짜장면 면이 아닌 라면 위에 짜장 양념을 올려 놓았는데 맛이 우리 짜장면과 같았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K-컬쳐를 곳곳에서 접하며 오늘 한국인으로서 가슴 벅찬 하루를 보냈다.
1994년 8월 마니푸르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사람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나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나라'라는 설명을 입이 아프도록 했었다. 간혹 한국을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이 우리에게 "노오쓰 코리안"이냐고 먼저 물어서 실망을 했다. 정말 드물게 "사우쓰 코리아"을 아는 사람을 만나서 기뻐했는데 그가 한국을 "남북전쟁으로 망한 나라"라고 언급하였을 때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그러나 31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한국 영화, TV드라마, 유행가를 잘 안다. 대부분 사람들의 집에 한국산 가전제품이 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한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로 손에 꼽힌다.
31년 사이에 한국에 대한 동북인도인들의 인식이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왔는가? 누가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 무엇이 한국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의 나라로 이끌었을까? K-컬쳐에 무관심하던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메스미디어들이 떠드는 K-컬쳐를 실감하였다. 오늘의 한국을 만든 모든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옛날에 안드라푸라데쉬 데칸고원을 순회하며 "제가 여기서 죽도록 수고하며 고통과 고난을 받겠으니 한국을 불쌍히 여기시고 축복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았다. 지금은 죽도록 수고하며 애쓰고 힘쓸 일이 없다. 그래서 "저희가 아시아의 다양한 난민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한국을 살려주십시오. 부디 한국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바친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며 살아있는 날 동안 계속 한국과 한국교회를축복하며 세계 평화의 리더로 세워지길 간구할 것이다.
2025년 11월 27일 수요일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