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알.작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
이진희
1.
왜 그를 진작 읽지 않았을까. 독서광이던 누나 덕분에 어려서부터 여러 책을 어깨너머로 접할 수 있었다. 종종 누나는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때로는 나 스스로 누나 책상에서 몇 권의 책을 발견하여 읽기도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작가 중 한 명이 ‘조정래’였다. 지지리도 길고 지루했던 ‘태백산맥’, ‘아리랑’을 연신 읽어대는 누나를 따라 나도 몇 권을 도전했지만 아직 어린 나에게 생소한 과거의 이야기와 한이 서린 우울함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재미로 읽어야 할 소설의 무거움은 나로 하여금 조정래를 피해야 할 작가 목록에 넣게 했다.
20여 년이 지났다. 아직 청춘을 살고 있는 나이지만 나름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하며 조금 더 깊고, 넓은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황홀한 글 감옥> 속에서 발견된 조정래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쉬웠다. 조금 더 빨리 그를 발견했다면 어느 독자의 말처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텐데…' 나에게는 비슷한 몇 번의 아쉬움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강아지 똥>의 권정생 선생님이 우리 교회종지기였고, 대학시절 <독서>의 김열규 선생님과 4년을 같은 건물에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작가는 관심 밖의 존재들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문학과 소설에 대한 오해였다. 그러나 <황홀한 글 감옥>은 그 오해를 완전히 무너트린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2.
50년 작가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시작부터 나를 울린다. ‘작은 디딤돌이 거나…' 첫 문장이다. 참언론을 위해 뭉친 그들<시사IN>을 위해 작은 보탬이나마 되기 위해 이 글을 쓰셨단다. 자그마치 50년의 작가 인생을 녹인 이 자전적 글을 말이다. 그는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5백여 가지 질문을 받고 그중 84가지를 간추려 답하는 형식으로 책을 썼다. 그 속에는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 그리고 전기가 담겨있어 책을 통해 진정한 문학, 소설, 작가의 삶의 무엇인지를 깊이 엿볼 수 있다. 또 그의 대표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대한 뒷이야기와 해설도 곳곳에 녹아있어 그를 알고 읽은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이고, 그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시작점이 된다.
3.
이 책에서 3 가지 인상적인 것이 발견된다. 소설, 역사, 그리고 작가의 삶이다. 소설에 대한 그의 인식은 깊고, 엄중하다. 그는 말한다. 소설은 단지 재미를 위해 쓰이는 ‘일회용 반창고’가 아니다(17). 시시한 것이 아닌 인간사에 남겨지게 되는 중요한 기록 중 하나이다(107). 저자 가지고 있는 글의 무거움이다. 대학시절 그는 ‘어떻게 쓸 것인가’ 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고민의 결론을 내리고, 한반도 역사에 눈 돌린다. “저는 남달리 이 척박한 역사의 땅에 태어남과, 문학이라는 것의 특이한 의미와, 글로 써서 남겨져야 할 가치를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소설은 연애 이야기나 쓰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써야 하는 존엄한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입니다."(101)
저자는 소설을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라 말한다(15). 여기서 소설과 역사의 연관성이 생긴다. 인간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결국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학과 역사에는 차이가 있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이되,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 간추려 엮어 놓은 기록이다.” 반면에 문학은 역사가 다루지 않는 역사까지를 포괄한다. 그래서 세계 문화사가들은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다.'라고 정의했다(25). 산소란 진실을 의미한다. “사회적 진실, 역사적 진실, 인간적 진실을 옹호하고 육성하고 지키는 일, 그것이 바로 산소 역할입니다” (34). 그러니 소설은 엄중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자신의 확신에 따라, 남들이 한 번 쓰기도 어렵다는 대하소설 3부작을 완성한다.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한강> (10권)이 그것이다. 그의 3부작에는 한국 근대사 100년이 담겨있다. <태백산맥>은 해방 후 한반도의 좌파와 우파의 사상 대립과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고,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루며, <한강>은 1959년 이후부터 광주민주화 운동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각 소설을 통해 저자는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근대사의 가려진 부분까지 객관적으로 드려내려 애쓴다. <태백산맥>을 통해서 빨치산운동의 근원을 보이고, <아리랑>을 통해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고발하고, 남한에서는 가려진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까지 언급한다. <한강>은 연좌제, 해외 근로자 파견, 베트남 파병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대부분 다룰 뿐만 아니라, 그의 이중성으로 역사적 평가가 어려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균형감있게 기록하고 있다.
이 소설들을 쓰기 위한 저자의 삶은 치열했다. 그의 표현으로 20년의 시간을 ‘글 감옥’에서 보낸다. 5만 장이 넘는 원고지를 손수 기록하였고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전국을 넘어, 수교도 맺지 않은 타국의 땅을 탐험했다. 매일 16시간씩 하루의 30매를 목표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지켜왔다. 도중에 스트레스로 인한 기침병, 위궤양, 엉덩이 종기, 극심한 몸살, 오른팔 마비, 탈장의 고통을 견뎠다. 이런 고통 속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경찰과 검찰 수사가 함께 진행되었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그는 글을 썼다. 극우파들의 위협과 군부정권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도 그의 글쓰기는 멈출 줄 몰랐다. 그것은 진실의 향한 그의 투쟁이었고, 그가 믿었던 작가로의 필연적 삶이었다. 그런 저자가 말한다.
"이 세상에 고달프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한바탕 살아볼 만한 연극입니다. 그 연극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 아닙니까. 그 일이 무엇이든 자기가 성실한 노력을, 최선을 다해 바쳐 이룬 인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413)
4.
책을 읽으며 묵직한 감동이 올라온다. 괜히 울컥울컥 내면이 파도친다. 하나는 그의 삶 때문이다. 어두운 글 감옥에서 ‘진실’을 남기려는 작가의 사명 하나로 아득하고 캄캄하고 외로운 고통 속을 맨몸으로 버텨왔다. 그가 보여준 작가의 삶은 수도자의 것이고 성직자의 걸음이다. 그렇게 살과 뼈를 녹여 만들어낸 글 위에 진실의 씨앗을 심는다. 덕분에 그의 삶에 나의 삶이 위로를 얻는다. 아주 조금이지만 내가 걸어야 할 삶의 모습이 어리운다. 부끄럽기도 하다. ‘글쟁이’라 무시했던 그들 만큼도 살아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오랜만에 회개가 터져 나온다.
무엇보다 ‘역사’가 내 마음을 달아오르게 한다. 무지했다. 무지는 죄다. 역사의 무지와 왜곡은 분쟁의 도구로 사용된다. 정치의 놀이감이 된다. 내 삶의 그 예이다. 나는 삶의 대부분을 경상도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당연하게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교육을 받았다.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면 안 된다’, ‘끝에 가서 그들은 꼭 배신한다’, '경상도 차를 끌고 전라도에 가지 마라' 등등. 어른이 되며 이 모든 편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전라도가 가진 ‘반골 기질’에 대해서는 이유도 모른 체 묘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단 한 장의 글로 전라도의 역사성을 나에게 새롭게 각인시킨다.
"우리 한반도는 수천 년에 걸쳐서 농업사회였습니다... 농업국가의 세금원의 중심은 당연히 곡창지대입니다. 그러므로 곡창지대는 국가적 수탈 대상이 되고, 탐관오리들이 들끓게 됩니다... 필연적으로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갈등 구조를 배태합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호남평야... 옛날부터 관과 민의 이중 갈등 구조가 형성되어왔습니다... 나라에 뜯기고, 탐관오리들에게 뜯기고, 지주에게 뜯기고, 피골이 상접한 소작인은 참다 참다 못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마음이 뭉쳐져 들고 일어났습니다." (349-50)
그렇다. 따지고 보면 이 땅에 민주화는 전라도 덕분에 더 빨리 찾아온 것이다. 그곳은 단지 지리적 특성으로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아픔을 겪은 것이다. 한 민족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지 못할망정, 정치판에 휩쓸려 서로를 죽일 놈들로 여겨왔으니 참 한심하고도 아프다. 그러니 통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같은 나라에 사는 서로에게도 대립의 각을 세워왔으니 주적 북한에 대한 인식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까지 북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뿔 달린 괴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장에 통일에 대한 글을 쓸 계획을 담았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필수적인 역사적 사명이 통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나의 필독 작가 목록으로 옮긴다. 서점 사이트를 열어 <태백산맥>부터 장바구니에 담았다. 10권이 부담스럽지만 쓴 사람도 있는데 읽는 것이 문제일까.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진지하게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내 삶의 일부를 들어다보려고 한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에게 반.알.작, ‘반’드시 ‘알'아야 할 '작'가 조정래를 소개합니다.
첫댓글 와~ 너무 좋은데요, 이 글만으로도 조정래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비슷한 이유로 조정래에 접근하지 못하고 줄거리로만 책을 이해하다보니~~^^ 태백산맥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앗~ 감사합니다.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곧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