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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이다는 뜻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놓여도 진실하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주인공으로 살아가면, 그 자리가 바로 행복의 자리, 진리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隨 : 따를 수(阝/12)
處 : 곳 처(虍/5)
作 : 지을 작(亻/5)
主 : 주인 주(丶/4)
立 : 설 립(立/0)
處 : 곳 처(虍/5)
皆 : 다 개(白/4)
眞 : 참 진(目/5)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주인이 되라. 그러면 서 있는 곳 모든 것이 참될 것이다는 의미이다. 당나라 임제선사의 법어(法語)이다.
쉽게 표현 하자면, 자신의 환경에 따라 불평말고 열심히 적응해 살다 보면 그 곳이 정도들고 곧 내 고향도 될 것이니 어느 곳인들 맘 먹기 따라 삶의 진실이 있다.
조선조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 유배 9년의 삶이 결코 원망과 절망의 나날이 아닌 학문과 예술을 승화하는 계기로 삼았고,
정약용 선생은 18년간의 긴 세월을 강진 벽지에서 가족과 이별한 채 지금으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며 값지게 보냈으며,
다산의 형(兄)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가서 16년 동안 설음과 울분으로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희대의 저서 박물학지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지었다.
따라서 이분들은 수처작주하여 입처개진하는 삶의 긍정적 모델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현대적인 해석으로,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되든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하면 내가 있는 위치가 진리, 참된 것이라는 뜻이다.
진실한 삶을 살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방법을 이렇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초점(願)을 맞는 대신 현재의 자신이 있는 곳, 자신에 처한 상황에서 좀 더 평화로운 방법을 발견하면 최상의 인생의 행복도 평화도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끌려가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고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본심으로 주체자가 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중국 명나라 학자 육상객은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기위한 6가지 생활의 덕목을 말하고 있다.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위한 육연(六然)이라고 한다.
1) 자신에게 붙잡히지 않고 초연하게(自處超然)
2) 남에게 언제나 온화하게(處人超然)
3) 일이 있을 땐 활기에 넘치게(有事超然)
4) 일이 없을 땐 마음을 맑게(無事超然)
5) 성공하여 만족할때는 담담하게(得意浩然)
6) 실패 했을때는 침착하게(失意泰然)
지금 이 자리의 나의 마음가짐과 씀씀이는 내 인생의 씨앗이고 열매인 것이니 앞으로 큰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덕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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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 성어는 내가 가는(이르는)곳 마다 주인이 된다. 모든 일은 먼 데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모든것이 풀어진다는 말이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깨달음)의 세계이니라. 어디에서나 주체성을 갖고 전력을 다하면 진실된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자기가 처한 곳에서 주체성을 갖고 전심전력을 다하면 어디서나 참된 생명을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당(唐)나라 선승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어록인 임제록(臨濟錄)에 있는 말이다.
어느 곳에 가든지 주인이 된다면 그 모든 곳이 그대로 참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주인은 다름 아닌 그대의 진실된 자아이며, 곧 자유로운 사람을 뜻한다.
자유로운 사람이란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무엇엔가 의지하여 생각하고 무엇엔가 사로잡혀서 판단한다. 그것이 바로 집착이다.
집착의 근원은 바로 편견과 부질없는 욕심과도 같은 것이고, 그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마음의 투명한 작용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번뇌(煩惱)이다.
또한 진리란 우리 눈앞에 항상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는 바로 평상의 도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번뇌와 집착의 방해 때문이다. 즉, 번뇌와 집착이 진실된 자아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주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취하여야 할 중요한 태도는 평상의 삶에서 욕심과 편견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집착을 버렸을 때 늘 깨어 있는 마음이 되어서 눈앞에 나타나는 진실을 그대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 말을 좀 더 알기 쉽게 해석하면, 어디에 가건 자기 자신이 따라간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그 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임제(臨濟) 스님의 말씀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손꼽는 법문(法文)이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건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는 어렵다. 여기저기, 이일 저일 등등의 경계에 이끌려서 자신의 정신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어디를 가건 자신은 늘 따라다니고 있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있는 그 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해서 생활에 원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현재의 위치가 아닌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를 바라고 꿈꾸는 것을 그만두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있으면 지금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다른 학교, 다른 직장, 다른 사람, 다른 업종을 늘 기웃거린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불만이 많은 사람, 무엇에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디를 가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늘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좀 더 평화로워지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계에 팔려 다니지 말고 현재의 자신이 있는 이 순간 이 자리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중심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라는 말이다.
최상의 인생도 지금 바로 여기에 있고 행복도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진리도 도(道)도 극락도 화장세계(華藏世界)도 역시 지금 바로 이 곳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은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구절이다.
師示衆云 道流 佛法無用功處 是平常無事 아屎送尿 著衣喫飯 困來卽臥
사시중운 도류 불법무용공덕 시평상무사 아시송뇨 착의끽반 곤래즉와
愚人笑我 智乃知焉
우인소아 지내지언
古人云 向外作工夫 總是癡頑漢 爾且隨處作主立處皆眞
고인운 향외작공부 총시치완한 이차수처작주 입처개진
境來回換不得
경래회환부득
임제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중에게 설법을 하셨다.
납자(衲子)들이여, 불법(佛法)은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아무 탈없이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잠자면 그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길,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
그러니 그대들의 수처작주(隨處作主)가 곧 그대로 입처개진(立處皆眞)이다. 경계를 맞이하여 회피하려 하지 말라.
임제선사는 중국 당(唐)나라 때의 선승(禪僧)으로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다. 어느 날 선사는 대중에게 위와 같이 말했다.
수처(隨處)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고 삶터이다. 작주(作主)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아라는 뜻이다. 부연해 말하자면 자기가 처한 곳에서 전심전력을 다하면 어디서나 참된 생명을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흔히 주체성을 가지라는 말을 하는데,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어디서나 전력투구를 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디서나 참된 생명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은 여기서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고불총림(古佛叢林) 방장(方丈) 서옹(西翁) 큰 스님이 늘 말씀하시는 ‘절대, 현재, 참사람’이 이 의미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 속에서도 늘 진실하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주인공으로 살아가면, 그 자리가 최고의 행복한 세계라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늘 변화의 흐름 위에서 살아간다. 변화하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분명한 것은 나는 나에게서 달아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통을 받고 즐거움을 받는 주인은 바로 나이다. 아울러 고통과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주인도 다름 아닌 나이다.
그러므로 법구경(法句經)에서는 ‘자기야 말로 가장 사랑스런 존재’라고 노래한다. 부처님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아집, 교만, 독선으로 나를 내세우며 자존심을 강조한다. 그러나 인생의 참된 주인공은 이런 편견과 오만에서 벗어나 있다.
중국 명(明)나라 말기의 학자 육상객(陸湘客)은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덕목을 여섯 가지로 말하고 있다. 이를 육연(六然)이라 한다.
자처초연(自處超然)
자신에게 붙잡히지 않고 초연하게,
처인초연(處人超然)
남에게 언제나 온화하게,
유사초연(有事超然)
일이 있을 때에는 활기에 넘치게,
무사초연(無事超然)
일이 없으면 마음을 맑게,
득의담연(得意澹然)
성공하여 만족할 때에는 담담하게,
실의태연(失意泰然)
실패했을 경우에는 침착하게 살아라고 한다.
분명히 육연(六然)은 수처작주 주처개진(隨處作主 住處皆眞)에 포함되며, 이 말을 풀이하면 육연이 된다. 어디서나 주인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소도구로서, 부속품으로서 처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곳이 곧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고 그 공간에 살아 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곳이 극락이고 천당이든지 어디서든 당당하게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주체적 인간으로 살면 무엇을 하든 그 하는 일과 그 있는 자리가 모두 나의 진실한 진리의 삶이다.
어떤 일이라도 주체적 역할을 할 때 그 일은 곧 온전한 내 일이고, 온전한 나의 삶이다. 이것이 철저히 살고 철저히 죽는 전기생 전기사(全機生 全機死)이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삶이다.
어디에 가든 지금 있는 그 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다.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상황이든 만족하고 행복해라.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어 행복을 누리라.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만족하고 넉넉하게 부자로 살아라.
수처작주 주처개진(隨處作主 住處皆眞)이 되면 설사 옛날에 익힌 업장(業障)과 지옥에 들어갈 다섯 가지, 즉 부모를 죽인 일이나, 성인을 죽인 일이나. 부처님의 몸을 해치거나, 청정한 승단(僧團)의 화합을 깨뜨리거나 하는 따위의 죄를 지었다 하더라고 저절로 해탈의 대해에 노니는 것이 된다.
어떤 상황에 있든 주인이 되라(隨處作主)는 말은 타인으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든 자신은 거기에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큰 곤경에 처하게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고 자신은 그것에 동요하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는 것, 타인이 하는 일에 끌려가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본심으로 주체자가 되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다 행복하다. 그것이 진정한 수처작주 입척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최창현씨는 입에 문 파이프 하나로 전동 휠체어를 조종해 하루 70~80km씩 달려 유럽대륙을 누볐다. 그렇게 달려온 거리만 20개국 1만3천km였다.
그런데도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목마를 때 물잔 하나 들어 올릴 수도 없는 손과 몸을 갖고 있어요. 다들 살기 어렵다고 호소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이만큼 해내는데 이 악물고 살면 못해낼 일이 뭐가 있으며, 이리 간절히 염원하면 통일인들 안 이루어 지겠습니까?”
신문과 방송에서 읽고 본 최씨의 기사는 매일 같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답답하고 어려운 정치와 경제, 사회 기사를 대하던 사람들에게 신선하고도 감동적인 소식이었다.
멀쩡한 몸과 마음으로도 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며 불평불만으로 날을 보내는 보통사람들에게 최씨의 인생은 역경을 이기고 살아가는 한 중증장애인의 이야기만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기에는 생사를 오가는 큰 도전과 인간승리가 마음에 커다란 파문을 던져주었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境來回換不得.
수처작주 입처개진 경래회환부득.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그대로가 모두 참된 것이 된다.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하여도 끄달리지 않을 것이다.
임제 스님께서는 중생들에게 인생의 크나큰 지침을 내려 주셨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에 대해 무비스님은 임제록(臨濟錄) 강설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시며, 이것이 철저히 살고 철저히 죽는 전기생 전기사(全機生 全機死)며,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삶이라고 하셨다.
어디에 가건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다. 그러므로 현재의 위치가 아닌,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를 바라고 꿈꾸지 말라.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상황이든 만족하고 행복하라.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어 행복을 누리라.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언제나 배고픈 아귀가 되지 말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만족하고 넉넉하게 부자로 살아라.
태어나서 30년 동안 1급 중증장애인으로 방안에서만 주검 같이 살다가 새로운 인생을 산지 10여년, 죽어야 만 할 운명을 극복하고 자기와 같은 장애인의 희망이 되고자 휠체어를 타고 유럽대륙 종단에 나선 최씨는, 그의 종교가 무엇인지, 더군다나 그의 부모의 삶이 자식으로 인하여 얼마나 힘들고 희생되었는지, 이웃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받고 조그만 힘이라도 얻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의 부모의 30년 세월과 최씨의 10년 인생 도전은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과 냉대와 무관심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며 삶의 의연한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한 삶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쉽게 좌절하고 생을 포기하는 정상인들에게 큰 가르침과 경종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도전과 극의 얘기가 많은 사회는 온전하고 바른 삶의 현장으로서, 바로 임제 스님께서 중생들에게 주신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삶이 살아 숨 쉬는 곳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왓티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였다. 아누룻다는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다가 눈병이 생겨 실명하게 되었다.
아누룻다가 옷을 기우려고 했으나 바늘에 실을 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 복을 구하려는 사람은 나를 위해 실을 꿰어주십시오”라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소리를 들으신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바늘을 가져오너라. 내가 꿰어 주리라. 이 세상에서 복을 얻고자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여섯 가지 일에 힘쓰며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여섯 가지는 남에게 베푸는 것이요, 남을 가르치는 것이며, 억울함을 참아 견딤이요, 계를 가르침이요, 중생을 감싸고 보호함이요,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 여섯 가지 일에 만족하는 일이 없이 항상 힘쓴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 가르침 중에 남에게 베푸는 것과 남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억울함을 참고 견디는 것과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빈부, 귀천, 학식과 성한 자와 성치 못한 자에 관계없이 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씨와 그의 부모의 삶은 곧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곧 배품이며 가르침이고, 억울함을 인욕(忍辱)하며 키워 온 값진 생의 표본이기도 하다.
여기에 조금 더 나아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섭법(四攝法)과 육화경(六和敬)을 마음에 담고 지키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한결 부드럽고 화평하고 다툼과 분노가 없는 곳이 될 수 있으라 확신한다.
사섭법(四攝法)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할 때에 취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태도를 말한다. 사섭사(四攝事)라고도 한다.
① 보시(布施)
: 진리를 가르쳐 주고(法施), 재물을 기꺼이 베풀어 주는 일(財施),
② 애어(愛語)
: 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한 얼굴로 대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일,
③ 이행(利行)
: 신체의 행위(身業), 언어행위(口業), 정신행동(意業)의 3업에 의한 선행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
④ 동사(同事)
: 자타(自他)가 일심동체가 되어 협력하는 일, 즉 형체를 바꾸어 중생에 접근함으로써, 중생과 사업을 같이 하여 제도하는 일이다. 원시불교의 중요한 수행과 실천 덕목인 37각지(覺支)의 일부이다.
육화경(六和敬)
불교 교단의 가장 기본적인 계율이며, 사원생활에서 생기는 불화나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한다.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 가운데 승(僧)을 승가(僧伽)라 하고 화합중(和合衆)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육화경(六和敬)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는 뜻이다.
첫째, 신화경(身和敬)은 수도하는 사람들이 몸으로 서로 기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부처를 대하듯 서로 공경하고 화목하라는 뜻이다.
둘째, 구화경(口和敬)은 말로써 서로를 기쁘게 하라는 뜻이다.
셋째, 의화경(意和敬)은 마음으로 화합하라는 뜻이다.
넷째, 계화경(戒和敬)은 율법을 서로 지키라는 뜻이다.
다섯째, 견화경(見和敬)은 성스런 지견으로 화합하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이화경(利和敬)은 이익을 함께 나누라는 뜻이다.
순서는 기록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뜻에는 변함이 없다.
다음은 육화경(六和敬)의 실천을 구체화시켜 표현한 것이다.
신화공주(身和共住)는 몸으로 화합하여 같이 살라는 말이다.
구화무쟁(口和無諍)는 입으로 화합하여 다투지 말라는 말이다.
의화동사(意和同事)는 뜻으로 화합해 함께 일하라는 말이다.
계화동수(戒和同修)는 계율로 화합해 같이 수행하란 말이다.
견화동해(見和同解)는 바른 견해로 화합하여 같이 해탈하라는 말이다.
이화동균(利和同均)은 이익을 균등히 나누라는 말이다.
곧 사섭법(四攝法)과 육화경(六和敬)은, 아무리 힘들고 복잡한 세상살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는 가르침이며, 계속하여 함께 할 수 있는 생활의 지침이다.
선원장 스님께서 새해 법문에서 금년 안국선원의 캐치프레이즈로 ‘화 내지 않는 생활’을 내려 주셨다. 화두가 분명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은 화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셨다.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모두 삼계(三戒)의 온갖 번뇌를 포섭하고, 온갖 번뇌가 중생을 해치는 것이 마치 독사(毒蛇)나 독용(毒龍)과 같다고 한 옛 성인의 말씀(大乘義章)을 생각하면, 화냄은 삼독(三毒) 중에서도 스스로의 몸과 마음, 가족과 이웃의 관계를 크게 해치고 사회 질서의 혼란과 파괴를 가져오는 삶의 가장 큰 적이다.
자신의 어려운 환경과 부족함과 실패를 부모와 이웃과 사회와 국가의 배려 부족으로 돌려 화를 내고 같은 입장의 사람들끼리 패를 지어 분란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스스로는 물론이고 이웃에 크나큰 피해를 입히고 더욱더 자신을 소외 시키고 좌절하게 하고 말 것임은 자명하다.
화를 내지 않고 화를 다스리며 살 수 있는 길, 그래서 이 어렵고 부족하며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세상을 인욕하고 자족하며 작지만 베풀고 돕고 살 수 있는 길은 자성을 요달(了達)하는 일이다.
▶️ 隨(따를 수, 게으를 타)는 ❶형성문자로 随(수, 타)는 통자(通字), 随(수, 타)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따라간다는 뜻을 가진 隋(수)로 이루어지며 뒤에서 따라간다는 뜻이다. ❷형성문자로 隨자는 ‘따르다’나 ‘추종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隨자는 총 16획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글자이다. 隨자는 辶(辵:쉬엄쉬엄 갈 착)자자와 隋(수나라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隋자는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隨자에 쓰인 辶(辵)자는 길과 사람의 다리를 함께 그린 것으로 ‘길을 가다’라는 뜻이 있다. 隨자는 이렇게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辶자를 응용해 누군가를 따르거나 추종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隨(수, 타)는 (1)수괘(隨卦)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따르다 ②추종하다 ③부화하다(附和; 주견이 없이 경솔하게 남의 의견에 따르다) ④좇다, 추구하다 ⑤발 ⑥발꿈치 ⑦괘(卦)의 이름 ⑧따라서 ⑨즉시, 곧 바로 그리고 ⓐ게으르다(타) ⓑ타원형(楕圓形)(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따를 호(扈)이다. 용례로는 때때로나 그때 그때를 수시(隨時), 때에 따라 곧을 수즉(隨卽), 따라서 함께 참여함을 수참(隨參), 붙좇아서 따르는 일을 수반(隨伴), 어떤 양식에도 해당되지 아니하는 산문 문학의 한 부문을 수필(隨筆), 일정한 임무를 띄고 따라서 감을 수행(隨行), 마음에 느껴진 그대로의 생각을 수감(隨感), 마음속으로 부터 고맙게 여기어 기뻐함을 수희(隨喜), 물결 치는 대로 따른다는 뜻으로 그때 그때의 형편이나 환경에 따름을 이르는 말을 수파(隨波), 벼슬아치의 승진이나 전보가 있을 때 품계의 차례를 따라 함을 수품(隨品), 타고 난 운명에 따름을 수명(隨命), 장사 지내는 데 따라 감을 수상(隨喪), 일정한 계통이 없이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수상(隨想), 그때 그때의 형편이나 시세를 따름을 수세(隨勢), 세상의 풍속을 따름을 수속(隨俗), 남의 뜻에 순종함을 수순(隨順), 붙어 따름이나 따라 감을 수신(隨身), 자기 마음대로 함을 수의(隨意), 여럿 중에 제일을 수일(隨一), 따라 좇음이나 따라 다니며 곁에서 심부름 등을 하는 사람을 수종(隨從), 남의 죄에 관계됨을 수좌(隨坐), 편한 것을 따름을 수편(隨便), 뒤를 따름을 수후(隨後), 수후의 구슬로 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수주탄작(隨珠彈雀), 자기의 뚜렷한 주견이 없이 여러 사람의 틈에 끼어 덩달아 행동을 함을 수중축대(隨衆逐隊), 때에 따라 적절히 일을 처리함을 수기응변(隨機應變) 등에 쓰인다.
▶️ 處(곳 처)는 ❶회의문자로 処(처)의 본자(本字), 处(처)는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와 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 : 止; 발을 아래로 향하게 쓴 자형으로 내려가다, 이르는 일)部와 범호엄(虍; 범의 문채, 가죽)部의 합자(合字)이다. 걸어서 걸상이 있는 곳까지 가서 머무름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處자는 '곳'이나 '때', '머무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處자는 虎(범 호)자와 処(곳 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處자는 본래 処자가 먼저 쓰였었다. 処자의 갑골문을 보면 止(발 지)자와 冖(덮을 멱)자만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발이 탁자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止자 대신 人(사람 인)자가 쓰이면서 사람이 탁자에 기댄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다. 処자는 이 두 가지 형태가 결합한 것으로 사람이 탁자에 기대어 잠시 멈추어 있음을 뜻한다. 이후 소전에서는 処자와 虎자와 결합하면서 범이 앉아있는 모습의 處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處(처)는 (1)중앙(中央) 관서(官署)의 하나 (2)육군(陸軍)의 사단(師團) 중(中) 이상(以上) 사령부의 참모부서의 이름. 일반(一般) 참모 부서에 쓰임 (3)어떤 조직(組織) 따위에서 일정한 사무(事務)를 맡아보는 부서 명칭(名稱)의 하나 (4)고려(高麗) 23대 고종(高宗) 이후에 있었던 요물고(料物庫)에 딸린 일종의 장원(莊園) 등의 뜻으로 ①곳, 처소(處所) ②때, 시간(時間) ③지위(地位), 신분 ④부분(部分) ⑤일정한 표준(標準) ⑥살다, 거주하다 ⑦휴식하다, 정착하다 ⑧머무르다 ⑨(어떤 지위에)있다, 은거하다 ⑩누리다, 향유(享有)하다 ⑪맡다, 담당하다 ⑫다스리다 ⑬대비(對備)하다 ⑭(미혼으로)친정에 있다 ⑮돌아가다 ⑯사귀다 ⑰보살피다 ⑱처리(處理)하다, 대처(對處)하다 ⑲분별(分別)하다 ⑳차지하다 ㉑두다, 보지(保持)하다(온전하게 잘 지켜 지탱해 나가다) ㉒모이다 ㉓자처(自處)하다 ㉔결단(決斷)하다 ㉕멈추다 ㉖(병을)앓다 ㉗나누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을 다스려 치러 감을 처리(處理), 위법 행위에 대하여 고통을 줌을 처벌(處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병의 증세에 따라 약재를 배합하는 방법을 처방(處方), 처리하여 다룸을 처분(處分), 일을 처리함을 처사(處事), 근로자에게 어떤 수준의 지위나 봉급 등을 주어 대접하는 일을 처우(處遇),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몸가짐이나 행동을 처신(處身), 사람이 살거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을 처소(處所), 형벌에 처함을 처형(處刑), 일을 감당하여 치러 감을 처치(處置), 이 세상에서 살아감을 처세(處世), 결정하여 조처함을 처결(處決), 세파의 표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처사(處士), 정해 두고 항상 있는 곳을 거처(居處), 사물이 나온 근거를 출처(出處), 가까운 곳을 근처(近處), 일을 정돈하여 처리함을 조처(措處), 어떠한 일에 대응하는 조치를 대처(對處), 정부 각 조직체의 부와 처를 부처(部處), 몸의 다친 자리를 상처(傷處), 가는 곳이나 이르는 곳을 도처(到處), 중요한 데를 요처(要處), 처리하기 어려움 또는 처지가 딱함을 난처(難處), 여러 곳이나 모든 곳을 각처(各處), 어떤 곳이나 아무 곳을 모처(某處), 좋은 방법으로 알맞게 처리함을 선처(善處), 본디 나서 자라났거나 생산되었던 곳을 본처(本處),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말을 추처낭중(錐處囊中), 잘한 뒤에 처리한다는 뜻으로 후환이 없도록 그 사물의 다루는 방법을 정한다는 말로서 뒤처리를 잘하는 방법이라는 말을 선후처치(善後處置),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이란 뜻으로 좋은 얼굴로 남을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처신하는 사람 또는 가는 곳마다 기분 좋은 일이라는 말을 도처춘풍(到處春風), 하는 일마다 모두 실패함 또는 가는 곳마다 뜻밖의 화를 입는다는 말을 도처낭패(到處狼狽),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되었다는 말을 묘서동처(猫鼠同處), 발을 붙이고 설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기반으로 삼아 의지할 곳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착족무처(着足無處), 벼슬이나 속세를 떠나 산골이나 시골에 파묻혀 글읽기를 즐기며 지내는 신비를 이르는 말을 산림처사(山林處士), 가는 곳이나 간 곳이 분명하지 아니하다는 말을 거처불명(去處不明), 원통한 사정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말을 호소무처(呼訴無處), 안심하고 있어 재앙이 닥쳐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을 연작처당(燕雀處堂) 등에 쓰인다.
▶️ 作(지을 작, 저주 저, 만들 주)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㑅(작)의 본자(本字), 做(주)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乍(사, 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作자는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作자는 人(사람 인)자와 乍(잠깐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乍자는 옷깃에 바느질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옷깃에 바느질하는 것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작업하기가 쉬웠었는지 乍자는 후에 ‘잠깐’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人자를 더한 作자가 ‘만들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作(작)은 (1)작품(作品) 제작(製作), 저작(著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작황(作況)이나 또는 농사(農事)의 뜻으로 나타내는 말 (3)작전(作戰) 등의 뜻으로 ①짓다, 만들다 ②창작(創作)하다 ③일하다, 노동(勞動)하다 ④행하다, 행동하다 ⑤부리다, ~하게 하다 ⑥일어나다 ⑦일으키다 ⑧이르다(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⑨비롯하다 ⑩삼다, 임명하다 ⑪닮다 ⑫농사(農事) ⑬일, 사업(事業), 공사(工事) ⑭저작(著作), 작품(作品) 그리고 저주 저의 경우는 ⓐ저주(詛呪)(저) ⓑ저주하다(저) 그리고 만들 주의 경우는 ㉠만들다(=做)(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을 찬(撰), 지을 조(造), 지을 제(製)이다. 용례로는 기계의 운동 부분의 움직임을 작동(作動), 사물 또는 사람의 이름을 지음을 작명(作名), 서로 헤어짐을 작별(作別), 만든 물품을 작품(作品),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작가(作家), 일을 결정함을 작정(作定), 마음을 단단히 먹음을 작심(作心), 싸움을 진행하는 방법을 세움을 작전(作戰), 악곡을 창작함을 작곡(作曲), 글을 지음 또는 그 글을 작문(作文), 일터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함을 작업(作業), 농작의 잘 되고 잘못된 상황을 작황(作況), 움직이게 되는 힘을 작용(作用), 무리를 이룸을 작당(作黨), 처음으로 함을 시작(始作),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듦을 제작(製作), 물건을 지어서 만듦이나 일부러 무엇과 비슷하게 만듦을 조작(造作), 기계 등을 움직이어 작업함을 조작(操作), 떨쳐서 일으킴 또는 일어남을 진작(振作),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 또는 그 움직임을 동작(動作), 토지를 갈아서 농작물을 심음을 경작(耕作), 썩 잘된 글이나 작품을 걸작(傑作), 처음으로 만듦을 창작(創作), 사람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 광인도 될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작광작성(作狂作聖),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 형제를 일컫는 말을 작의형제(作義兄弟), 마음 먹은 지 삼일이 못간다는 뜻으로 결심이 얼마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된다는 말을 작심삼일(作心三日), 끊임없이 힘써 함을 이르는 말을 작지불이(作之不已),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을 마부작침(磨斧作針),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을 일컫는 말을 자작자수(自作自受), 낡은 것을 바꾸어 새 것으로 만듦을 일컫는 말을 환부작신(換腐作新),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뒤에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이면공작(裏面工作),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제쳐놓고 제 마음대로 처리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회빈작주(回賓作主) 등에 쓰인다.
▶️ 主(금 주/주인 주)는 ❶상형문자로 등잔 접시 위에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문자의 윗부분의 丶(주)는 등불이 타는 모양이고, 王(왕)은 촛대의 모양이며 임금이란 王(왕)과는 관계가 없다. 主(주)는 처음에 丶(주)로만 쓴 것을 더욱 자세하게 쓴 자형(字形)으로, 나중에 그 뜻으로는 炷(주)를 쓰고 主(주)는 등불의 중심(中心), 주인, 군주(君主)의 뜻이다. ❷상형문자로 主자는 ‘주인’이나 ‘주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主자는 王(임금 왕)자에 丶(점 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主자는 본래 촛대를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 나온 主자를 보면 긴 촛대 위에 심지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主자의 본래 의미는 ‘심지’였다. 그러나 후에 主자가 ‘주인’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火(불 화)자를 더한 炷(심지 주)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한 집안을 밝혀야 할 사람은 가장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主자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主(주)는 (1)주인(主人) (2)임금 (3)임자 (4)주장(主張), 근본(根本)이 되는 것을 이르는 말 (5)천주(天主) (6)구세주(救世主) (7)만백성(萬百姓)의 주인(主人)이라는 뜻으로, 여호와 또는 예수를 이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임금 ②주인(主人), 임자, 소유주(所有主) ③우두머리 ④상전(上典) ⑤여호와, 하느님, 알라(Allah) ⑥주체(主體) ⑦당사자(當事者), 관계자(關係者) ⑧결혼(結婚) 상대자(相對者) ⑨자신(自身) ⑩위패(位牌) ⑪주견(主見), 줏대 ⑫자신의, 주관적인 ⑬가장 주요한, 가장 기본적인 ⑭주관하다, 책임지다 ⑯주되다 ⑯주장하다 ⑰예시(例示)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손 객(客),백성 민(民), 신하 신(臣), 손 빈(賓)이다. 용례로는 신하가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을 주상(主上), 한 집안의 책임자를 주인(主人), 직장이나 단체에서 어떠한 일을 주로 담당함을 주임(主任), 어떤 일의 주장(主將)이 되어 움직임을 주동(主動), 중심되는 힘을 주력(主力), 주창하여 개최함을 주최(主催),주의나 주장을 앞장 서서 부르짖음을 주창(主唱), 주인과 손을 주객(主客), 주장이 되어 이끎을 주도(主導), 어떤 일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주역(主役), 자기 의견을 굳이 내세움을 주장(主張),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한 집안의 주장이 되는 주인을 호주(戶主),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하여 행함을 자주(自主), 영업에 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주인을 업주(業主), 가게나 식당 따위의 손님을 화주(華主), 붙어사는 동식물을 제 몸에 붙여서 그에게 양분을 주는 동식물을 숙주(宿主), 황후 몸에서 태어난 임금의 딸을 공주(公主),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맹약을 서로 맺은 개인이나 단체의 우두머리를 맹주(盟主), 나와 대상이 일체가 됨을 주객일체(主客一體), 주인은 손님처럼 손님은 주인처럼 행동을 바꾸어 한다는 것으로 입장이 뒤바뀐 것을 주객전도(主客顚倒), 주인은 손에게 술을 권하고 손은 주인에게 밥을 권하며 다정하게 먹고 마심을 주주객반(主酒客飯) 등에 쓰인다.
▶️ 立(설 립/입, 자리 위)은 ❶상형문자로 사람이 대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본 뜬 글자이다. 나중에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다', '세우다'의 뜻으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立자는 '서다'나 '똑바로 서다', '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立자의 갑골문을 보면 大(큰 대)자 아래로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立자는 '서다'나 '똑바로 서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땅을 딛고 당당히 서 있다는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감이나 사물의 위치가 바로 세워져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다만 상용한자에서 立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대부분이 노예와 관련된 글자인 辛(매울 신)자가 생략된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立(립, 위)은 ①서다, 멈추어 서다 ②똑바로 서다 ③확고(確固)히 서다 ④이루어지다 ⑤정해지다 ⑥전해지다 ⑦임(臨)하다 ⑧즉위하다 ⑨존재하다 ⑩출사(出仕)하다 ⑪나타나다 ⑫세우다 ⑬곧, 즉시 ⑭낟알(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곡식의 알) ⑮닢(납작한 물건을 세는 단위) ⑯리터(ℓ)의 약호(略號) ⑰바로 그리고 ⓐ자리(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펼 전(展), 세울 건(建), 필 발(發), 세울 수(竪), 일어날 기(起), 일 흥(興)이다. 용례로는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을 입장(立場), 법률 또는 법규를 제정함을 입법(立法), 어떤 사물이나 견해나 조건을 등에 근거를 두어 그 입장에 섬을 입각(立脚), 서서 타거나 구경하는 자리를 입석(立席),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을 입신(立身), 식물이 생육하는 일정한 장소의 환경을 입지(立地), 나라를 세움을 입국(立國), 안건을 정하는 것 또는 그 안건을 입안(立案), 증인으로 서거나 세움을 입증(立證), 뜻을 세움을 입지(立志), 현장에 나가 지켜봄을 입회(立會), 어떤 원인으로 어느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 막히거나 끊어지거나 하여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고립(孤立), 남의 힘을 입지 않고 홀로 섬을 독립(獨立), 시설이나 법인 등 공적인 기관을 만듦을 설립(設立), 마주 대하여 섬을 대립(對立), 확실히 정하거나 굳게 세움을 확립(確立),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함을 자립(自立), 생존하여 자립함을 존립(存立), 나라에서 세움을 국립(國立), 일어나서 섬을 기립(起立), 받들어서 임금의 자리 따위에 모시어 세움을 옹립(擁立), 절이나 탑 동상 따위를 세우거나 이룩함을 건립(建立), 바닷가나 강가를 메워서 뭍을 만드는 일을 매립(埋立),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서서 잠깐 이야기하는 사이의 뜻으로 잠깐 동안을 일컫는 말을 입담간(立談間),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드날림 또는 후세에 이름을 떨쳐 부모를 영광되게 해 드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입신양명(立身揚名),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일컫는 말을 입춘대길(立春大吉), 성공하여 세상에 이름이 드날림을 일컫는 말을 입신출세(立身出世), 그 자리에서 참수하여 무리의 본보기로 경계함을 일컫는 말을 입참이순(立斬以徇),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중립불의(中立不倚), 오래 서 있어도 의용을 갖추어 자세를 흐트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입불실용(立不失容),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 되는 땅을 이르는 말이나 매우 좁아서 조금도 여유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입추지지(立錐之地) 등에 쓰인다.
▶️ 皆(다 개)는 회의문자로 사람이 줄을 짓는다는 뜻의 比(비)와 말함을 뜻하는 白(백)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같이 말하다의 뜻이 전(轉)하여 죄다 또는 함께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皆(개)는 ①다(=總), 모두 ②함께, 다 같이 ③두루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④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비교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 실(悉)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기간 동안에 휴일 외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출석 또는 출근함을 개근(皆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일함을 개로(皆勞), 일정한 부분의 산림을 일시에 모두 베어 냄을 개벌(皆伐), 다 또는 모두를 개시(皆是), 모든 사람이 말하되 라는 개왈(皆曰), 남에게 빌었던 것을 남김 없이 다 갚음을 개제(皆濟), 조세 따위를 남김없이 다 바침을 개납(皆納), 전혀 없음을 개무(皆無), 거의 모두나 대부분을 거개(擧皆), 거의 다를 기개(幾皆), 모두나 다를 실개(悉皆), 지구와 태양과의 사이에 달이 들어가서 태양의 전부 또는 일부가 달에 의하여 가려지는 현상을 개기일식(皆旣日蝕), 누구든지 삼생을 통하여 불도를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개성불도(皆成佛道), 온 산의 풀과 나무까지도 모두 적병으로 보인다는 초목개병(草木皆兵),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 그 환경을 서로 바꾸면 누구나 다 똑같아 진다는 역지개연(易地皆然),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거세개탁(擧世皆濁) 등에 쓰인다.
▶️ 眞(참 진)은 ❶회의문자로 真(진)의 본자(本字)이다. 사방팔방(八)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目) 올바른 것으로 참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眞자는 ‘참’이나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眞자는 目(눈 목)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眞자는 본래 鼎(솥 정)자와 匕(비수 비)자가 결합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鼎자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큰 솥을 뜻하고 匕자는 ‘수저’를 표현한 것이다. 신에게 바치는 음식은 참되면서도 정성이 담겨야 할 것이다. 그래서 眞자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음식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참되다’나 ‘진실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眞(진)은 (1)참 거짓이나 허식이 아님 (2)진실(眞實)의 도리(道理). 진리(眞理) (3)일시적이 아님 변하지 아니함. 상주 불변(常住不變) (4)섞임이 없음. 순수(純粹)함 (5)자연(自然). 천연(天然) (6)해서(楷書). 진서(眞書) (7)일부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참된 거짓이 아닌의 뜻을 나타내는 말 (8)중국의 국호(國號)로 춘추시대(春秋時代)의 12열국(列國)의 하나 (9)삼국(三國)의 위(魏)를 이러서 그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왕조(王朝) (10)후진(後晉) (11)진괘(晉卦) (1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참 ②진리(眞理) ③진실(眞實) ④본성(本性) ⑤본질(本質) ⑥참으로 ⑦정말로 ⑧진실(眞實)하다 ⑨사실이다 ⑩참되다 ⑪명료(明瞭)하다 ⑫또렷하다 ⑬뚜렷하다 ⑭똑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참 심(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짓 가(仮), 거짓 가(假), 거짓 위(僞)이다. 용례로는 말이나 태도가 참답고 착실함을 진지(眞摯), 거짓이 아닌 사실을 진실(眞實), 진실하여 애틋한 마음을 진정(眞情),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정말과 거짓말 또는 진짜와 가짜를 진위(眞僞), 참된 마음을 진심(眞心), 참된 도리를 진리(眞理), 거짓이 없이 참으로를 진정(眞正), 진짜 물건을 진품(眞品), 진실하고 솔직함으로 참되어 꾸밈이 없음을 진솔(眞率), 실지 그대로의 경계를 진경(眞境), 인위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성질을 진성(眞性), 진실하여 잘못이 없음을 진제(眞諦), 진짜와 가짜 또는 참과 거짓을 진가(眞假), 참된 값어치를 진가(眞價), 참뜻으로 참된 의사나 진실한 의의를 진의(眞意), 주로 얼굴을 그린 화상 또는 사진을 진영(眞影), 진정에서 우러나온 거짓이 없는 참된 이야기를 진담(眞談), 실물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을 사진(寫眞), 마음이 꾸밈이 없고 참됨을 순진(純眞), 임금의 화상이나 사진을 어진(御眞), 공리를 관찰하는 지혜로써 진제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일을 견진(見眞), 사물의 진상을 알게 됨을 득진(得眞),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고 거짓이 진실을 뒤흔든다는 이가난진(以假亂眞), 천진함이 넘친다는 뜻으로 조금도 꾸밈없이 아주 순진하고 참됨을 천진난만(天眞爛漫),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임을 여진여몽(如眞如夢), 마음과 몸이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때가 없음을 순진무구(純眞無垢), 농담이나 실없이 한일이 나중에 진실로 한 것처럼 됨을 가롱성진(假弄成眞)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