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袁盎)은 초(楚)나라 사람인데, 한(漢)나라 여태후가 실권을 장악하여
여씨들이 득세할 때 그 일파의 하나인 여록(呂祿)의 가신이 되었다.
여씨 일파가 축출되고 문제(文帝)가 즉위하면서
그는 형 원쾌(袁噲)의 추천으로 중랑(中郞)의 벼슬을 얻었다.
원앙은 원칙론자로,
그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직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로 인하여 욕을 먹거나 모함을 받는 경우가 있더라도
바른 소리를 하는 그의 행동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어느 날 승상 강후(絳侯)가 조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걸음걸이가 자못 거만하였다.
황상(皇上)인 문제도 그를 예우하여 공손하게 전송하였는데,
그래서 더욱 승상의 태도가 으쓱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원칙론자인 원앙은 그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제에게 가서 직언을 하였다.
“폐하께서는 승상을 어떠한 사람으로 생각하십니까?”
문제가 대답하였다.
“한나라 사직을 지킨 중신이오.”
“강후는 이른바 공신이지 사직을 지킨 중신은 아닙니다.
사직을 지킨 중신은 군주가 있으면 함께 있고 군주가 망하면 함께 망합니다.
여태후가 실권을 장악하여 여씨 천국을 만들었을 때,
강후는 태위(太衛)로 병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바로잡지 못하였습니다.
여태후가 붕어한 뒤 대신이 함께 의논하여 여씨 일족을 배척하였을 때에는,
강후가 병권을 쥐고 있기때문에 우연히 공을 세우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승상은 폐하에게 매우 교만한 태도를 취하는 데 반하여,
폐하는 신하에게 너무 겸양을 갖고 대하십니다.
이것은 군주와 신하가, 그 본연의 예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원앙의 직언이 있고부터 문제는 황상으로서의 위엄을 더욱 갖추었고,
승상 강후의 거만한 태도도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강후 주발(周勃)이 원앙을 만나 다그쳤다.
“나는 그대의 형과 절친하다. 헌데 그대는 조정에서 나를 그렇게 헐뜯어도 되는가?”
“저는 승상을 헐뜯은 적이 없습니다. 원칙론만 말했을 뿐입니다.”
원앙은 이렇게 대답했을 뿐 끝내 주발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강후 주발이 승상에서 해임되어 자신의 봉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봉국의 어떤 사람이 문제에게 상서를 올렸다.
주발이 모반을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즉시 명령을 내려 주발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주발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 명백했는데도, 당시 황족이고 대신들이고
그 누구 하나 주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원앙이 문제에게 나가 직언을 함으로써 주발의 무죄를 증명하였다.
감옥에서 풀려난 주발이 원앙에게 말하였다.
“고맙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황천길로 떠났을 걸세.”
그러자 원앙이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강후께서 모반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그 사실을 폐하께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원앙은 이처럼 자주 직언을 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다른 대신들로부터 경원(敬遠)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인물로 읽는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