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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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 점심 나절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듯이 부부는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자 했습니다.
하필 골라든게 이름이 게름직한 ‘나가사키 짬뽕’이었고, 부인은 계란 두 개 넣으며 그중 하나는 세대주 것이라고 농담 하는군요.
헌데 그게 시인에게는 전혀 농담이 아니게 다가옵니다.
또다른 세대주인 시인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말기 징용으로 끌려가 탄광노무자로 일했습니다.
비록 나가사키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원자폭탄 투하된 곳이라는 연상이 떠오를수 밖에 없지요.
술에 취하면 그 시절에는 쌀이 없어 배곯기를 밥 먹듯 했다는 아버지의 푸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것 같은데, 이제 아버지는 가고 안계시군요. 라면하나 끓여 먹으면서 그야말로 불어 터진 슬픈 가족사를 떠올리 게 합니다.
‘나가사키 짬뽕’은 국물은 겉보기에는 희멀 건데 생각보다는 되게 맵습니다. 그래도 눈물 나올 정도는 아니라고 하네요.
누구를 막론하고 갖은 고생으로 기억되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고생담도 어느덧 세월의 흐름에 녹아 들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일본’에 관해서라면 평소에는 즐길것 다 즐기고, 쓸것 다쓰면서도, 때만 되면 감정적으로만 분노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꽤 있습니다. 이에 비해 시인은 기억할건 정확히 기억하면서도 흥분으로만 일관하지 않아 좋습니다.
유약한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시(詩)의 힘이자, 매력이지요. 상처를 잊지 않되 이를 슬기롭고 따뜻하게 감싸안는 이 시인은 더욱 그러하구요.
24.8.21.수.
슬픈 농담/복효근
해놓은 밥이 없어 라면 끓여 점심 때우자 했다
라면 이름이 나가사키 잠뽕이었다
나가사키 원폭이 생각났으나 곧 잊었다
여보 계란 넣을까 묻는 아내에게 짬뽕에 무슨 계란이냐고 대꾸하니
아내는 우리 연봉에 계란 하나쯤은 넣어 먹어도 되잖우 농담한다
먹다 보니 터지지 않은 채 반숙된 계란이 두 개다
넣지 말랬더니 두 개나 넣었네 하니
아내는 나 혼자 먹을 수 있나 우리 세대주도 하나 드셔야지 한다
세대주였던 아버지는 나카사키 원폭 때 규슈 탄광에 노무자로 있었다
술에 취하면 그 시절 왜정 때 나는 쌀이 없어 배곯기를 밥 먹듯 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쌀 없으면 라면 끓여 먹지
라면은 생겨나지도 않은 시절이었고 쌀도 돈도 그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내가 학교 때 라면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던 것도 그 탓이었다는 것을
아주 뒷날 알았다
원폭이 규슈가 아닌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야 했을까
라면 하나 끓여 먹는데 불어 터진 가족사가 농담처럼 스쳐 간다
국물은 희멀건데 되게 맵다
눈물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