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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를 읽고 학문과 지혜가 깊고 높다고 해서 신기서생이라 불리는 한 서생은 파김치가 된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쪼르륵'
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밤하늘의 찬연히 빛나고 있는 별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오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구!"
그렇게 밤하늘을 향해 미친 놈 마냥 주먹을 휘두르며 악을 쓰는 신기서생의 모습은 절대로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백초당의 안전을 위해 밤이나 낮이나 호위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지키고 있는 중이기에, 그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많았지만 아무도 신기서생을 미친놈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어제가 혼인식을 치르는 날이었고, 청방의 임시 방주가 되고 백초당의 당주가 되던 날이었다. 그러나 혼인 첫날밤부터 마누라는 독수공방을 시키고, 밤을 세서 일을 한 것도 모자라서 바로 다음날인 오늘까지 아침부터 자정이 다 되는 지금까지 한끼 식사할 시간도 없이 일에 치어서 꼼짝 못하던 그였기에 그의 마음속에는 울화가 쌓일 데로 쌓인 상태였다.
지치고 굶주린 몸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면서 신기서생은 오늘밤에는 반드시 이제 아내가 된 방수련과 밤의 역사를 반드시 만들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중에도 신기서생의 배에서는 연신 밥 달라고 쪼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은 수련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가면 해결될 일이었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정옥은 갑자기 뒷걸음질치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희--액!"
깜깜한 한 밤중에 얼굴과 몸이 눈처럼 하얀 인간이 갑자기 튀어나오니 놀랄 밖에.
"귀---귀신----?"
떨리는 목소리로 정옥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러나올 때 하얀 귀신의 입이 벌어졌다.
"매형, 나야 나라고."
계속 마음속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소구는 화련의 방에서 나온 후 간 곳은 부엌이었다. 얼음보다 수십배는 차가운 하녀들이 버티고 있는 자신의 방으로 갈 수는 없었고, 부엌 한 귀퉁이에서 하인들의 음식을 뺏어먹은 다음에 간 곳은 형 방종구가 잠들어 있는 지하의 차가운 밀실이었다. 그곳에서 자정까지 있다가 나온 소구의 온 몸은 서리가 끼어 하얗게 변해 있는 상태였다.
목소리를 듣고 소구라는 사실을 깨달은 정옥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 운룡회의 무리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거 없어요?"
"아직은---."
"그 놈들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빨리 알려줘요. 그놈들만 생각하면 잠이 안 와요."
깜깜한 한 밤중에 얼굴에 하얗게 서리가 낀 상태에서 이빨을 갈며 말하는 소구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무서운 것이었다. 귀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리 봐도 귀신같은 모습이라 정옥의 가슴은 계속 벌렁 벌렁 뛰고 있었다.
"알았네. 그들에 대한 것은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찾고 있는 중이니--."
말을 하는 사이 갑자기 눈앞에 서 있던 소구의 모습이 갑자기 그대로 스르르 사라졌다.
"흐--액!"
그 모습에 또 다시 놀란 정옥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정말----, 귀신---?"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정옥이 중얼거릴 때 숨어서 백초당을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들도 역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으, 이렇게 보니까 진짜 귀신같구만 그려.'
'소구 도령은 진짜 귀신이었나?'
'무서워, 사람은 안 무서워도 귀신은 무섭다구!'
'백초당에 웬 귀신이냐?'
'백면귀야.'
그순간 백초당의 호위무사들 사이에 그런 전음이 오고 가고 있었다.
하여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잃어선 정옥은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쭈욱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종일 굶어서 힘이 없는 상태였다. 거기에 어젯밤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조금 전까지 계속 일만 해야만 했던 그였다. 조금 전의 귀신은 결정타였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정옥이 수련이 기다리고 있는 방까지 걸음을 옮기는 것은 그에게 초인적인 정신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낮 동안 푹 자고 일어난 수련은 두근반 세근반 하는 가슴으로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전에 소구를 혼낼 생각을 하고 찾았지만---. 소구는 그녀가 들어갈 수 없는 지하의 밀실로 대피한 상태였다. 그래서 소구를 혼내는 일은 포기하고 남편이 돌아올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였다.
곱게 화장하고 앉아서 식탁 위에도 주안상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수련, 나왔오."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기다림에 지쳐 의자에 앉아 꾸벅 꾸벅 졸고 있던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 젖혔다.
문이 열리기가 무서웠다. 남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된 얼굴로 그대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기절한 것인지 골아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이게 뭐야?!"
그녀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백초당 사람들이 소구를 가리켜 백면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날부터였다. 항상 지하의 얼음 창고에 있다가 식사 때하고 정옥이 업무를 끝내고 침실로 돌아가는 순간에만 나타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 서리가 끼어 있는 상태였다. 귀기가 물씬 풍기는 그의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모두가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종적없이 움직이는 소구의 신법 또한 귀신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혼인식을 치른지 사흘이 지난 새벽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남편과 아내라 불릴 사이가 될 수 있게 된 정옥은 한숨을 푹 푹 흘리며 옆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그녀의 잠든 얼굴 위에 화가 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말은 안하고 있지만 아내 역시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나도 열 받았어. 일이 갑자기 이렇게 폭주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고---. 날 질투하는 인간들이 날 골탕먹이려고 이런 일을 벌였는가 본데--, 날 우습게 봤다 이거지? 임시라고 해도 난 청방의 방주야. 종구 형님이 깨어나실 때까지는 얌전히 있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기강을 잡아야겠어. 누가 윗사람인지 똑똑히 알려주지."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는 정옥의 마음속에서는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즐거워야 할 자신의 신혼을 날려버린 모든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 생각인 정옥이었다. 원한은 깊었고 복수는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가 청방의 방주인 것만은 분명했기에, 그에게는 중원에서 가장 큰 재력과 권력이 있는 것이다. 청방의 방주라는 자리는 누구에게 당할 위치에 있는 자리가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단단히 다짐을 하고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찬바람을 맞아가며 정옥은 집무실로 향했다. 이제부터 복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걸음을 옮기고 있던 정옥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가 걸어가는 길 앞으로 온 몸에 하얗게 서리가 낀 소구가 흐느적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새벽까지 지하의 동면실이라 이름 붙인 방종구가 얼어서 자고 있는 밀실에 있다 나온 소구는 상당히 졸린 상태였다. 그래서 걸음이 흐느적거리고 있었지만 작은 신음성을 듣고 고개를 돌린 소구의 눈에 수련 누나의 남편 즉 매형이 보였다.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매형 정옥에게 다가가서 소구가 물었다.
"매형, 운룡회에 대해 알아 낸 것 있어?"
깜깜한데다 주위에 그 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소구의 귀신 같은 얼굴에서 음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옥은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등에서 식은 땀이 쫘악 흘러내렸다.
"아--아직 없는데----."
"그래요? 빨리 좀 그 자식들에 대해 알아보라구요."
"알았네. 좀 더 노력하지."
정옥이 대답하는 사이 소구의 하얀 몸은 허깨비처럼 꺼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흐--유, 하루라도 빨리 처남을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으면 내가 제 명에 못살겠구나---."
놀란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을 쓸으며 정옥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귀신이 아니라 소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구의 모습은 귀신보다 더 귀신같았기에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신기서생 정옥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내 신혼을 망친 자들에 대한 복수를 준비해야 하는데--."
고개를 흔들면서 정옥은 자신이 이 깜깜한 새벽부터 밖에 나오게 된 이유를 생각하고 바쁘게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대세가라 불리던 무림의 다섯 가문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활동을 안 하는 상태였지만 아주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중이었다. 청방이라는 단체의 손을 들어주고 그 세력에 동참해서 얻은 대가였다.
그들이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한 그들은 풍요로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지금 밀실에 모여 있는 오대세가의 가주들중 한 사람은 좀 더 큰 것을 바라고 있는 모양이었다.
"방종구 방주가 동면에 들어가면서 방주의 권한이 크게 약화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누가 방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오?"
"몽땅 다 가지려 들다간 운룡회 꼴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오. 이제 청의 치세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운룡회가 모습을 감추면서 무림 또한 안정되었으니 무림과 상계가 결합된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날 때라 믿고 있소."
"백초당과 청방을 분리하자는 말씀이오?"
"이제 그렇게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난 싫소!"
거기 모여 있는 다섯 노인 중의 하나가 큰 소리로 싫다고 외치면서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는 싸우고 또 싸우고---, 가문의 식솔들과 제자들이 죽어가면서 가문이 유지되었지만 지금은 굳이 싸우지 않아도 전보다 훨씬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소. 이대로라면 가문이 망하는 일 또한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터인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한단 말이오? 난 절대로 반대요!"
지금 소리치는 당문의 노인을 바라보는 남궁 세가의 가주 남궁진호는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명나라 때만 하더라도 무림맹주로 있으면서 백도 전체를 지휘하던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던 그였다. 이제 과거의 달콤함을 다시 맛보려고 하는 그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무림인이란 자부심으로 칼 한 자루에 의지해서 살아가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남궁진호의 말은 노망난 노친네의 망언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나머지 네 가문의 가주들이었다. 착실하게 가문의 힘을 키우고 청방이라는 이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굳게 단결되어 있는 지금이었다. 어느 가문도 누군가의 밑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청방에 소속되어 있다지만 그들은 부하가 아니라 동맹의 관계였다.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전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게다가 안전했다. 지금의 상태를 깨버릴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었다.
남궁진호는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동료 가주들의 눈총을 견디며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그나저나, 이번 신임 방주에게 일을 너무 많이 떠넘긴 것이 아니오? 뭐니뭐니해도 지금은 신혼이라 일보다는 아내와 함께 있을 시간이 필요할 터인데----."
산동에서 세력을 떨치던 악씨 세가의 가주가 가슴 아래까지 드리워진 검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하면서 남궁 세가의 가주 남궁진호를 바라보았다. 나머지 세 가문의 가주들 역시 남궁 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모두들 날 그런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는 거요?"
"이 일을 꾸민 것이 남궁 가주 아니시오? 신기서생을 골탕 먹이는 일을 꾸민 것이 가주이니 그 대책도 마련해 놓았을 것 아니오?"
"대책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손쉽게 권력과 천하에서 제일 예쁜 여자를 마누라로 얻은 서생에게 심술이 나서 골탕 먹이는 일에 참가한 것이긴 하지만---. 신기서생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자이니 마음 또한 넓은 자이겠지요?"
하북 쪽에서 세력을 떨치던 팽가의 가주가 불안한 얼굴이 되어서 남궁진호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이제조금씩 방주로서의 위상과함께 잼나게 엮여나갈듯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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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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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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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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