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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영아! 실은 나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무슨 말?”
그리고는 또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무슨 말인데?”
보영이 먼저 물었다.
“---”
“무슨 말인데 그렇게 뜸을 드리니?”
“이 말을 너에게 하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이 망설였는데, 지금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성으로는 너에게 말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창피하고 용기가 안 나 그래서 근래에 너를 피했었어.”
보람이의 그 말에 더욱 궁금해진 보영이
“무슨 말이야? 내 도움이 필요한 말이면 해봐 내가 힘자라는 대로 도와줄게.” 하고 말했다.
“정말 이 말을 들으면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망설이지 말고 말해, 우리는 친구잖아? 못 할 말이 무엇이냐? 더욱이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보영의 말을 듣고도 한참을 망설이던 보람이
“보영아 나 현영씨를 사랑해.”
보영은 좀 얼떨떨해지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넌 규식씨를 좋아한 것 아니야?”
“아니야 현영씨가 처음 우리 학교로 널 찾아왔을 때, 보고 반 했어. 지리산에 간 것, 지리산에서 규식씨에게 더 친절하게 군 것 모두 현영씨 관심을 끌려고 했던 거야. 나중에는 너를 좋아하는 현영씨의 변하지 않는 맘을 알고 그것도 포기했지만.”
“그랬구나, 그럼 현영이한테 말하고 사귀면 되지 무어가 문제야? 내가 도와줄게. 우리 사이는 네가 아는 것같이 현영이 혼자 괜히 그러는 거야.”
하고 말하며 보영은 속으로 현영이 여자 복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간단 하지가 않아.”
“복잡할 게 무어냐? 좋아하는 사람한테 좋아한다고 하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보영은 속으로 ‘너는?’ 하고 자신에게 묻는다.
그래도 한참을 망설이던 보람이
“나--- 나 말이야, 현영씨 아기 가진 것 같아.”한다.
“무어라고?”
처음에 보영은 보람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아니 보람의 말을 알아듣긴 하였지만, 보람의 말이 너무 뜻밖이라 자기가 무엇인가 잘못들은 줄 알고 이렇게 물었다.
보영이 놀라는 바람에 그 말에 즉시 답을 못하고 주저하던 보람이
“나 현영씨 아기를 가진 것 같다고.”하고 울먹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현영이 아기를 가진 것 같다니? 너희가 언제 그렇게 깊이 관계를 맺었냐?”
보영이 놀라며 물었다.
“지난번 지리산에 갔을 때.”
“그때 언제 그런 기회가 있었냐?”
“장터목에서 회식하던 날.”
“너 그때 규식씨와 같이 나갔잖아?”
“그래 규식씨와 같이 가자더니 자기 학교 학생들이 노는 데로 데리고 갔었다는 말은 했지.”
울먹이며 보람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 했어.”
“거기서 노는데 내가 몇 번 일어나자고 해도 새벽, 한시가 다되도록 규식씨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거야. 나 먼저 간다고 일어나니까 먼저 가래 자기는 조금 더 놀다 온다고 그래서 ‘무슨 저런 남자가 있어 제가 먼저 오자고 해 놓고 예의도 없이’ 하고 속으로 욕을 하고 먼저 일어나 오다가 현영씨 텐트를 지나게 됐어. 너하고 같이 있던 현영씨가 들어왔는지 호기심이 생겨 텐트 안을 들려다 보니까 현영 씨가 자고 있는데 얼굴에 수건이 떨어져 덮여 있더라고.
자다가 술김에 몸부림을 쳐서 걸려 있던 수건이 떨어져 얼굴을 덮었나 봐. 숨 쉬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서 수건을 치워주려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어. 수건을 치워주고 나오려다가 술기운에 현영씨 발에 걸려 넘어졌어, 현영씨 위로. 당황한 내가 허둥거리며 일어나려는 그 순간 현영씨가 보영아 하며 나를 와락 껴안더니 키스를 하며 마구 달려드는 거야.
처음엔 깜짝 놀라 버둥거리며 몸부림쳤지만, 현영씨 힘에 눌려 벗어나지 못했고 나중엔 내가 더 적극적이었어. 술기운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일을 마치고 나도 현영씨는 모르는 거야,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돼서. 곧 규식씨가 올 것 같아 대강 옷을 입혀주고 그 텐트를 나와 어떻게 우리 텐트까지 왔는지 몰라.
다음 날 하루종일 혹시 하고 현영씨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안 오더라, 그리고 저녁 모임에 만났을 때도 가벼운 인사만 하고 아무 말이 없어서 실망했는데 천왕봉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에 우리를 만났을 때 현영씨 행동을 보고는 정말 어제저녁 일은 기억이 없구나 하고 실망했어.
그래서 처음에는 너를 사랑하는 현영씨가 나한테 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좋은 추억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영씨에 대한 연모가 깊어 가서 참을 수가 없는 거야. 방학 중에 계속 현영씨를 생각하며 보냈어. 편지를 쓸까 하다가 주소도 모르고 전할 방법이 없어. 너에게 부탁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그래서 방학이 끝나면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고 참았어.
방학이 끝나고 동아리 뒤풀이 모임에 너희를 찾은 것은 현영씨을 가까이서 보고 기회가 생기면 내 고백을 하고 싶기 때문이었는데 혜선 선배에게 선수를 빼앗겨 나는 말도 못 꺼냈어.
그런데 한 달이 지났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거야. 그런 일이 없었지만, 월경불순인가 하고 넘겼는데 두 달째도 없어서 정말 임신이 아닌가? 겁이 났어. 산부인과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서워서 못 갔어, 임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너희는 물론이고 현영씨를 보기가 민망했어, 그래서 동아리도 너희들과 하던 뒤풀이에도 안 나갔어.
며칠 전, 세 달이 지나도 없어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산부인과를 찾아가 진찰을 받았더니 역시 임신 이래 3개월이 좀 넘었다고. 나는 어쩌면 좋냐?”
목이 메어가며 여기까지 말한 보람은 보영의 품으로 쓰러지며 눈물을 흘린다.
긴 보람의 설명을 듣고 보영은 망연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가 없다.
에로스 신의 너무나 짓궂은 장난인 것이다.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보람이의 어깨를 도닥이던 보영은 그러나 문제는 해결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보람아 그만 울어! 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니, 나와 함께 해결책을 생각해보자. 그만! 그만해, 해결방법이 있겠지.”
보영의 위로로 보람은 겨우 울음을 멈추었다.
“고맙다, 보영아!”
눈물을 훔치며 보람이 말한다.
“그래! 생각을 가다듬어 좋은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자. 나도 생각해보겠지만, 네 생각이 제일 중요해 그러니까 며칠 생각해보고 정리해서 다시 얘기하자.”
“알았어. 고마워.”
“고맙긴, 한 삼 일 후 내가 전화할게.”
다음 날 보영이 전화하여 현영을 만나자고 했다.
자기를 피하기만 하던 보영, 아니 지리산 사건과 혜선의 일을 겪으며 자기도 자연적으로 거리가 멀게 느껴지던 보영, 그 보영으로부터 갑자기 자기를 만나자는 전화를 받은 현영은 약속 장소에 나오기까지 ‘무슨 일로 보영이 나를 만나자고 할까? 혹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닐까? 하고 되지도 않는 이런 상상을 하며 궁금해 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현영이 먼저
“웬일이냐? 네가 나를 만나자고 하고, 그것도 둘이서만,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혹 내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려는 것은 아니지?”
하고 그동안 궁금해하던 것을 농담같이 말했다.
“꿈도 야무지네. 냉수 먹고 속 차리시지. 그보다도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
“무슨 말을?”
“너는 보람이를 어떻게 생각하니?”
“그게 무슨 말이야? 보람이를 어떻게 생각하다니?”
“이성으로 사귀어 보고 싶지않느냐고?”
그 말을 들은 현영이 벌꺽 화를 내며
“너 참 오지랖이 넓다. 네가 나를 싫어하면 그만이지 왜 보람이는 끌어들이냐? 보람이와 나를 연결해주고 완전히 나에게서 도망치겠다.”
“내가 무얼 잘못해서 너에게서 도망쳐.”
“그럼 무어냐?”
“그냥 네 생각을 알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숙영씨 하고는 잘 지내냐?”
점점 이상해지는 보영의 질문에 현영은 약이 올랐다.
“너 참 오늘 우습구나. 그런 것이 왜 네가 궁금한데?”
현영은 보영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보람과 숙영이를 들먹이며 이런 말을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냥 알고 싶다고.”
“알아서 뭘 하게? 내가 숙영이 하고 헤어졌다면 네가 나를 좋아해 줄래?”
“참말로 꿈도 야무지네. 그런 일은 없어.”
“그럼 무어야?”
“혹시 숙영씨 한테 책임질 일은 하지 않았나 해서?”
“책임질 일이라니?”
“혹시 남녀 간에 넘지 못할 선을 넘은 게 아니냐고?”
“애가 점점, 너 나를 무얼로 보는 거야? 너에게는 내가 그렇게 무례 한으로 보이니?”
둘이 만나자더니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하는 보영에게 현영은 크게 못마땅하고 화도 났다.
“무례 한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물어보지, 이렇게 만나기도 하고.”
“그럼 도대체 무어냐? 너 오늘 나 약 올리려고 작정하고 만나자고 했니?”
“약 올리려고 그러는 것은 더욱 아니야, 숙영씨는 만나지?”
보영은 여전히 침착하기만 하다.
그것이 현영을 더 약 오르게 한다.
“글쎄 그게 왜 궁금한데?”
“아니야 그만두자.”
“남의 집에 불 질러 놓고 그만두자고?”
“불 질러다면 사과할게.”
“나는 그 사과 못 받겠다. 나는 네가 이러는 이유를 알고 싶어.”
“지금은 말 못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될 거야.”
“나는 지금 알아야겠어.”
“지금은 말 못 해. 그러니 이해해줘.”
현영이 몇 번 더 다그쳤지만, 지금은 보영이 현영에게 보람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또 그 이야기는 보영이 할 성질도 아니고.
다만 현영이 보람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숙영과의 관계가 어떤지 보람을 만나기 전에 알아보아야 할 것 같아 현영을 만났지만, 현영이 화를 내는 바람이 여의치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것은 무리였는지 모른다.
자기를 죽자고 좋아서 쫓아다니는 사람에게 다른 여자에 대하여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자기를 만나 약만 올리고 간다고 핏대를 세우는 현영과 헤어져 나오며 보람이의 눈물 어린 얼굴이 떠올라 보영은 긴 한숨을 쉬었다.
잘못했으면 자기가 보람의 처지가 되었을 줄도 모른다는 사실은 모른 체
보람이와 약속한 날 보영이 보람과 보람네 집 보람의 방에서 마주 앉았다.
보영이 전화했더니 마침 부모님들이 외출하고 안 계신다고 집으로 오라고 하여.
짧은 3일간이었지만 고민을 많이 한 모양으로 보람은 많이 수척하였다.
“너 많이 고민했구나, 몸이 많이 상했다.”
“너하고 헤어지고 나서 밤에 잠을 못 잤어. 여러 가지 생각하느라고.”
“그랬겠지, 그래, 어떻게 하려고 해?”
“아직 뚜렷하게 결정은 못 했지만 몇 가지는 정리를 했어.
우선 아기 문제는 현영씨하고 상의를 해야겠지만 낙태를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학교를 6개월이나 1년간 휴학하든지 아니면 유학 갈까 해.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했구나. 그럼 현영이는 잊을 거니?”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
“이 말이 너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할지 모르겠지만 해야 할 것 같애.”
“무슨 말?”
“현영이 따로 사귀는 여자가 있어.”
“무어야? 그러면서 염치없이 너를 쫓아다녀?”
그렇게 말하는 보람이의 표정이 묘해진다.
보람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보영은 모른 체하며
“그게 좀 복잡해, 중3 때 한때 현영이 나와 먼저 사귀었지. 지금 사귀는 여자는 숙영이라고 현영이가 고등학교 때 만난 여자야.”
“너를 버리고 그 여자애를 만난거야?”
“그랬지.”
“그런데 왜 지금은 너를 좋아해? 그 여자와 계속 만나면서까지.”
“그 마음이야 내가 모르지, 그런데 숙영씨에게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많이 아파 만성 재생 불량성 빈혈이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대학입학 하고 얼마 안 돼서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찾아왔더라. 그때 그 이야기를 했어. 자기는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다고. 현영이를 알게 된 것이 그 병이 발병하고 얼마 안 돼서래. 실의에 빠져있던 자기를 삶에 의욕을 느끼게 해 준 것이 현영이래. 그리고 현영이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안다며 자존심을 버리고 부탁하니 자기를 위해서 현영이를 양보해 달라는 거야. 나는 건강하니까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지만 자기는 현영과 헤어지면 그만이라고. 나는 현영이를 초등학교 동창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그랬더니 믿겠다고 고맙다고 하며 갔어.”
“그래 알았어,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의도가 뭐야?”
“참고하라는 거야.”
“현영씨를 잊으라는 말이 군.”
“가능하다면.”
“사람의 감정이 잊으란다고 잊어지니?”
“그렇기는 해, 또 현영이가 네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럼 현영씨에게 내가 현영씨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내가 현영씨의 아기 임신한 사실을 현영씨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이겠네.”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알리지, 네가 좀 말해 줄래?”
“그것은 좋지 않아, 내가 그 이야기를 하면 내가 제 구애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거야. 모양새도 좋지 않고, 네가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좋아.”
“챙피해서 어떻게?”
“그래도 용기를 내야지.”
“그럼 네가 같이 가 줄래?”
“그럴게.”
한편 현영은 이때 숙영을 만나고 있었다.
첫댓글 즐~~~감!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무혈님!
기상조건님!
구리천리향님
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날 보내세요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