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자의 성품을 어떻게 안단 말이오?"
남궁진호의 신경질적인 대답에 당가의 가주가 볼멘 얼굴로 말했다.
"그야 그자가 살았던 장소가 낙양이 아니오? 낙양이 남궁 세가의 본거지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 그래 그렇게 유명한 자의 신상에 대해 조사도 안 해 놓았단 말이오?"
"끄응, 잘 모르겠소. 집안 일은 이제 거의 아들놈한테 맡겨둔 터라---. 여러분도 아다시피 내 나이 역시 이제 백이 넘지 않았소? 명목만 가주지 가문의 일은 모두 자식들이 맡아서 하고 있소. 여러분도 모두 나와 같은 상태라 알고 있소만---?"
남궁진호의 말에 나머지 네 노인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나이 백이 넘은 상태였다. 가문의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나머지 일은 모두 자식들에게 넘긴 지 오래인 그들이었다.
"그렇다면 남궁 가주의 아들을 불러다 물어보면 되겠군요."
그들 중의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남궁 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자식도 나이도 벌써 팔십이 가까워지고 있는 노인이었지만 이곳에 오게 되면 어린 얘 취급을 받는다면서 절대로 오려 들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대리고 오려면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개봉의 남쪽 외곽에 대나무 숲을 만들고 그 안에 저택을 짓고 모여 살고 있는 남궁 세가의 가족들이었다. 낙양에 있는 기반도 그대로 살아 있는 상태였지만 남궁세가의 모든 업무는 이곳에서 처리되고 있었다. 당가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가문 모두가 백초당의 동서남북으로 이사한 상태였다. 현재 그들 오대 세가의 늙은 가주들은 모두 새로운 남궁 세가의 건물 안에 모여 있는 상태였기에 남궁진호가 아들을 금방 대리고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남궁 세가의 밀실 안에 모여 있는 나머지 네 가문의 늙은 가주들은 남궁 진호가 아들을 대리고 오기를 기다렸지만, 남궁 진호는 아들 대신에 한 장의 꾸깃꾸깃한 종이 쪽지를 가져 왔을 뿐이었다.
"아니 데리고 온다던 아들은 안 데려오고, 손에 그 종이는 뭡니까?"
은근히 남궁진호를 갈구는 팽가의 가주가 물었다.
탁자 위에 그 종이를 올려놓으면서 남궁진호가 말했다.
"아들놈이 바쁘다면서 이 종이를 주더군요."
"조사를 하긴 했구먼---."
바로 다음 순간 냉큼 종이를 집어들면서 당문의 문주가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니오? 새로운 청방의 방주인데---.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의 집안에서도 모두 그에 대해 조사한 것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내 아들이 투덜거리더군. 정말 그 자에 대해 몰라서 내 아들을 부르라고 했던 것이오?"
남궁진호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물었다.
"뭐, 우리가 조사한 것은 별로 없어서 말이오. 그에 대해 조사하려고 할 때는 이미 청방에서 손을 쓰고 난 뒤라---."
떨떠름한 얼굴로 팽가의 가주가 대답했다. 그들 역시 청방의 일부였지만 청방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종이를 펴들고 읽어보기 시작하던 팽가의 가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소리쳤다.
"큰일났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팽가의 가주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오?"
"남궁 가주는 아직 이것을 읽지 않았단 말이오?"
남궁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기서생이라는 자는 결코 대인이 아니오. 넓은 마음도 없고--. 이건 전 방주인 방종구가 신기서생에 대한 평가를 내린 서류요."
"엥? 왜 그게 내 아들에게 있는 것이지?"
"그걸 누가 알겠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 안에 뭐라고 적혀 있는 지나 빨리 읽어보시오!"
노인들의 쉰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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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은 좀스럽다.
욕심도 무지 많다.
그리고 은혜는 빨리 잊고 좁쌀 만한 원한이라도 만배로 키워서 갚자는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적이라면 아주 골치 아픈 상대지만 아군이라면 최상의 아군이다. 머리도 무척이나 빨리 돌아간다. 하긴 신기서생이라 불릴 정도니 머리 회전이 빠른 것은 당연한 일이겠군.
백초당의 일은 전부 상인의 일이다. 이재에 밝지 않으면 안 된다. 상인의 일은 돈을 버는 일이고 이놈은 돈이 들어오는 일은 있게 해도 돈이 나가는 일은 없게 할 것이다. 좀스러운 면에서 백초당의 돈과 청방의 돈이 헤프게 나가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백초당의 업무를 모두 맡겨도 잘 꾸려갈 것 같다.
청방의 업무는 천하에 퍼져 있는 상인들과 무림인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청방의 방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다. 이점에서 걱정이다. 이놈의 독특한 신념 때문에 피 볼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이놈의 복수심은 끈질기고 집요하다. 그 점에 있어서 운룡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만든 청방 또한 잘 운영할 것이다. 이제 자신의 것이 될 청방과 백초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놈은 운룡회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광분할 것이다.
불쌍한 놈, 수련이가 어떤 아이인데---. 그놈이 가진 모든 것은 수련이의 것이 될 것이다.
소구의 말을 들어보니 수련이 또한 혼천문의 무예를 이어받았다. 소구의 말로는 자신을 제외하고 천하에 수련이의 상대가 될만한 힘을 가진 자가 없다고 하던데-----. 평생 수련이에게 쥐여살게 될 것이다.
하여튼 이놈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에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이제 수련이와 혼인을 올리고 수련이 또한 자신의 것이라 생각할 터이니 수련이와 백초당 그리고 청방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수련이가 대리고 온 이후에 신기서생이라 불리는 이놈이 가진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맡겨 보았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는 놈이다. 미소 속에 칼을 숨길 줄 아는 놈이니----.
내가 죽어도 이놈이 청방과 백초당을 맡으면 모두 잘 돌아갈 것 같다. 며칠 뒤에 아예 혼인식 날을 잡아버려야겠다. 수련이 고것도 신기서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니 불만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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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에 낙서하듯 적혀 있는 글을 바라보면서 당문의 가주가 물었다.
"이 쪽지를 어떻게 얻은 것이오? 백초당에 있는 맹주전에 있는 문서는 어떤 것도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흠흠---, 그건 말할 수 없소."
남궁 세가의 가주가 헛기침을 토해내며 말했다.
"어떻게 운이 좋아 우연히 얻은 모양이구먼---, 뻔하지. 방종구가 어떤 인물인데 아무리 낙서한 종이쪽지라지만 이런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아무렇게나 방치할 리가 없지."
악가의 가주가 신경질이 약간은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근데 이거 정말일까?"
"그 은혜는 쉽게 잊고 원한은 만배로 키워서 갚자는----."
"대단한 놈이야."
"그러니까 방수련을 아내로 맞이하고 청방의 방주가 되었지."
다들 한마씩 토해낼 때 한 사람이 소리쳤다.
"이보게들 신기서생의 복수에 대비해야 되지 않겠나? 신혼 생활을 방해한 것이 누군지 그놈이 알게 되면 그놈이 가만있겠나?"
"그렇군. 단지 며칠 신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한 것뿐이지만---, 원한은 만배로 키워서 갚는 다라-----. 으헉! 작은 원한도 만배로!"
한 사람이 말하다 말고 놀라 소리쳤다.
다음 순간 오대세가의 늙은 가주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서둘러 앞으로 벌어질 정옥의 복수에 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정옥이 어떤 식으로 복수를 시작할지 감도 안 잡히는 그들이었지만 그의 신분이 어떻고 어떤 권한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들 역시 모두 알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일이었고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다. 마음 좋은 사람이라면 한번 웃고 넘어갈 일이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정옥의 이상한 신념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밤이 새도록 그들은 의논을 거듭하고 있지만 결론은 나올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의논을 거듭하고 있을 때, 그들이 겁내고 있는 정옥은 오늘도 신혼 생활의 즐거움은 누릴 시간도 없이 일에 치어서 자정이 될 때까지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하루의 업무를 끝내고 이제 수련이 기다리고 있을 방으로 돌아갈 시간이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세상이지만---, 아무리 내가 부럽다고 날 골탕 먹일 궁리를 한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탁자 위에 따로 분리해 둔 서류를 바라보며 정옥은 거기 가득 적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새벽부터 나와서 일을 처리하면서 눈에 띠는 대로 자신을 골탕 먹이는 일에 관여한 자들을 눈에 띠는 대로 따로 적어 놓은 정옥이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인물들은 백초당과 청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실려 있었다.
"한꺼번에 모두에게 복수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본보기로 일단 몇 명만 추려 놔야겠군."
그러면서 정옥은 가장 비중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또 따로 적기 시작했다. 그 속에 오대세가의 가주와 백초당의 경호 업무를 총괄하는 천궁 옥형진의 이름이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중에 천천히 하나씩 밟아 주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는 정옥은 자신을 골탕 먹인 인물들의 명단이 모두 적혀 있는 종이를 잘 접어서 품에 갈무리했다. 작은 원한이라도 만배로 키워서 갚자라는 그의 신념대로 단 한 사람도 자신의 복수에서 벗어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살려면 빚진 것은 몇 배로 키워서 갚아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좁쌀만한 원한이라도 만배로 키워서 갚자라는 그의 신념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다시 집무실로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신기서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갑자기 처마에서 하얀 얼굴이 내려왔던 것이다.
"매형, 운룡회 어떻게 됐어요?"
지붕에 앉아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신기서생이 업무를 끝내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소구였다. 나온다는 것을 알자 바로 처마에 거꾸로 매달려서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소구는 오늘도 방종구의 지하 동면실에 있다 나왔는지 온 몸에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는 상태였다.
"처--처남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정옥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예, 접니다. 운룡회에 대한 소식은 오늘도 없나요?"
"지금 한참 알아보는 중일세. 조금만 기다리게."
정옥은 아무리 사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소구의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다. 보이는 순간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속 편한 일이었다. 꿈에 보일까 무서운 소구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눈을 꼭 감은 채 그렇게 말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그는 살며시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처마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매달려 있지 않았다.
"갔군. 정말 이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살겠다. 처남을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내보내야 돼."
그렇게 말하면서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정옥의 머리는 현재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해결할 묘안을 짜기 시작했다. 복수도 해야 되고 귀신같은 몰골로 자신을 계속 놀래 키는 처남 방소구 또한 빨리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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