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누가 유튜브에 도마 안중근 영화를 업로드한 게 있길래 봤습니다.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다고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감독은 당시 소스원프로덕션 대표였던 서세원이고 각본도 직접 썼는데, 소재는 좋았지만 각본을 너무 못 쓰고 장면이 서로 맞지 않으며 따로 놉니다.
1) 시작 부분에서 항일 의병이 일본군에게 몰살당하는 장면에서, 청년 남녀 중 남자가 마을을 공격하는 일본군에게 총을 쏘지만 곧바로 죽는데 기껏 총을 쏘고 멋있는 장면을 보여주다가 5초만에 총에 맞습니다. 그 항일의병 마을이 안중근과 연관된 곳이라는 언급은 전혀 없고,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의병만 눈에 들어옵니다.
2) 그 다음은 히틀러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밝힌 본회퍼의 발언이 나오는데, 이건 넘기더라도 스티븐스 암살 사건은 일제 요인을 죽였다는 걸 제외하면 안중근의 이토 사살과 완전히 별개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안중근 전기 영화에 넣을 내용은 아니고 장인환과 전명훈을 다룬 영화에서 따로 다룰 내용입니다.
3) 수녀가 신부에게 도마가 이토를 죽였다는 소식을 전할 때, 그걸 듣는 신부도 수녀도 전부 영어를 씁니다. 구한말에 온 천주교 선교사들은 거의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이고 안중근과 교류가 있던 빌렘 신부도 프랑스 사람이니 이 장면에선 프랑스어를 쓰는 게 맞습니다.
4) 무기력한 고종과 군대해산 장면은 그냥 배경으로 설명해도 되는데, 굳이 집어넣어서 안중근에 몰입할 시간을 줄어들게 했습니다. 그 장면 전에는 스티븐스 사살🠖안중근의 사전답사🠖이토 사망 소식을 들은 안중근 어머니와 신부🠖일본 관헌의 취조🠖헤이그 특사🠖군대해산 및 일제의 의병&민간인 학살🠖안중근이 일본 고리대금업자를 처단하는 장면 순서인데, 보다 보면 이게 안중근 전기 영화인지 항일 투쟁사 영화인지 헷갈립니다.
5) 과장된 총격 장면. 여기서 안중근은 쌍권총도 쓰는데 액션씬들 보면 재미도 감동도 없습니다. 조폭마누라 1편이 차라리 나았고 그게 서세원 영화 중에선 유일하게 흥행에 성공했었습니다. 그 영화도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나 삼류개그를 넣어서 문제였지만...
6) 이토를 사살하는 장면과 안중근이 순국하는 장면은 그나마 낫습니다. 하지만 옥의 티가 있는데, 이 영화에서 오리지널 곡과 주제가는 잘 만든 편입니다. 특히 엔딩곡 가사는 영화가 아까울 지경입니다.
모두 다 내 잘못이오 이제는 참지 않겠소
손마디 잘라내며 건 약속 누가 나를 막을 수 있소
이제 가오 떠나야 하오 잃어버린 내 조국을 위해
디딜 곳 없는 형제를 위해 이 목숨 바쳐야겠소
모진 겨울이 지나고 이 강산에 꽃이 피면은
세월에 잊혀지지 않게 내 다시 돌아오겠소
나는 가오 떠나야 하오 희망 잃은 내 조국을 위해
기다려 주오 살아 오겠소 나는 아직 죽지 않았소
하지만 형장으로 향할 때 삽입곡 선정이 완전히 잘못됐습니다. 안중근 일가는 천주교 신자인데, 감독이 자기가 개신교 신자라고 개신교 찬송가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를 넣었습니다. 노래 자체는 좋지만 그 뿐입니다. 차라리 오리지널 곡을 넣고 거기서 엔딩 크레딧을 올려야 했습니다.
7) 마지막 장면은 안중근의 순국 장면이 아니며, 이토 장례식과 안중근 큰아들의 죽음을 순서대로 보여 줍니다. 안중근의 큰아들인 안문생은 아버지 사후에 일제 밀정에게 독살당했고, 다른 자녀 중에선 딸 안현생만 중간에 몇 번 나옵니다(영화에선 친일 경력 때문에 언급은 없지만, 안중근 직계는 차남 안준생 계열로 이어집니다). 영화를 안중근 순국 장면으로 끊어야 했던 이유가 이 장면들 때문입니다.
이토는 적어도 당대에는 일본에서 위인으로 존경받던 사람이고 국치를 눈앞에 두던 순종 황제도 그에게 시호를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안문생이 일제 관헌에게 독살당하는 장면을 굳이 넣었어야 할까요? 안 그래도 그런 과거사 문제가 근현대사의 오랜 논쟁거리인데, 감독은 비극성을 보여주려 했을지 모르나 보는 관점에 따라선 패배주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필요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정리
소재는 좋았지만 연출과 장면이 엉망이고, 엔딩 크레딧을 보면 함세웅 신부에게 자문도 받았다고 하던데 그 자문을 참조는 했는지도 의문스러웠습니다. 망할 이유가 충분했던 영화였네요.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똥영화 보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소재는 정말 좋은데 감독을 잘못 만났죠 ㅠㅠ 조폭마누라 때부터 낌새는 있었는데, 적대조직한테 임신했으니 패지 마라고 하다가 더 맞고 유산하는 장면 넣을 때부터(복수는 남편이 해줬지만) 쎄하던 게 도마 안중근에서 터졌네요.
영웅 영화판이 올해 개봉 예정이라고 하는데, 뮤지컬은 못 보긴 했지만 리뷰들 보니까 평은 좋더군요. 영화판도 잘 뽑히면 좋겠네요.
그 영화에서 안중근의 이등박문 저격장면 고증이 잘못되었죠. 일본군이 경비맡는것으로 나오나, 실제로는 러시아 제국군이 경비맡았다는것.
북한영화의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가 묘사를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이정도면 안중근 의사에 대한 모독 수준이죠...
전기 영화로도 실격, 액션 영화로도 실격이라서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신 분이 아니면 보시는 걸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안중근이란 소재를 감독이 너무 못 다뤘네요..
쌍권총 캡쳐만 언뜻 보았었는데 정말 막장이었네요..
영화 자체가 엉망이라 왜 망했는지 바로 알았습니다 ㅠ
안 보길 잘했군요.........
서세원이 한창 때 코미디언은 잘 했을지 몰라도, 영화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꽝입니다. 비슷한 부류인 심형래는 자기 영화사가 망하고 코미디언으로 복귀한 뒤에는 딱히 물의를 빚지 않고 가정도 잘 꾸린 편인데, 서세원은 가정사도 엉망이죠.
@견환 그랬죠..... 그나마 딸인 서동주씨는 대외 활동을 하더군요
토마스..
초반에 수녀가 또마스 낄드 이또 할때랑 신부가 오 갓이라 하는 장면이 많이 어색했습니다. 1970년대작인 의사 안중근에서도 빌렘 신부가 나오는데, 그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할 때 한국어로 말하는데, 선교사니까 한국어로 말하는 게 이상하진 않지만 도마 안중근 영화에선 프랑스 신부 캐릭한테 굳이 영어 시킨 걸 보고 정의구현사제단 자문(함세웅 신부가 여기 소속)을 서세원이 대충 들었다고밖에 생각나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