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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많이 수척했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리고 현영이 자기를 원망하며 떠나겠다고 하더라도 결코, 울지 않고 웃으면서 보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약속시간 보다 15분 이상 먼저 나간 약속 장소에는 현영이 먼저 나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숙영을 먼저 본 현영이
“숙영씨 여기!”한다.
그 말을 들은 숙영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현영이 자기를 부를 때 씨자까지 부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속으로 마지막 만남이기에 자기보다 먼저 나와 있고 씨자까지 붙여 예의를 차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글픈 생각에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며 담담하게 대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현영씨가 웬일이야, 먼저 나와서 기다리게.”
하고 명랑을 가장하여 말했다.
“왜? 나는 먼저 나와 기다리면 안 되나?”
“그런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오늘처럼 내가 먼저 나와 기다릴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숙영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현영을 보며
“무슨 소리야 우리의 인연은 이제 끝난 것 아니야?”
“누가 그래 우리 인연이 끝났다고?”
“현영씨는 내가 밉지 않아?”
“숙영이가 왜 미워? 나는 도리어 고마워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해주니.”
“나는 현영씨를 속였어, 지금까지.”
“내가 숙영이 입장이라도 그랬을 거야, 이해해.”
“동정으로 그러는 것은 싫어, 내가 더 비참해져.”
“동정으로 그러는 것 아니야, 숙영이 진실이 그리고 사랑이 나를 못 떠나게 한 거야.”
“그럼 뭐야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 지금 당장은 사랑이 아닐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너를 외롭고 쓸쓸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지금의 내 마음이야.”
이 말을 들으며 숙영은 마음속에 눈물을 달았다.
그러나 씩씩하게
“고맙지만 난 앞으로 현영씨를 즐겁게 해주기보다는 괴롭게 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의 이 감정을 가지고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어.”
숙영의 그 말에 현영의 마음에도 잔물결이 인다.
보영과의 일로 겪어 본 바가 있는 현영은 그런 말을 하는 숙영의 마음이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숙영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그런 소리 마라. 나는 숙영이 한테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지금까지처럼 만 해, 그러면 네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 한 나도 너를 떠나지는 않을 거야.”
“내가 현영씨의 짐이 될지 모르는데.”
“그 짐 질 수 있는 데까지 져볼게, 내가.”
“고마워! 나도 현영씨한테서 많은 것은 안 바래, 내 곁을 떠나지만 않고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만 있으면 만족할 거야,”
“그럼 됐어. 이제 더 이상 떠나라느니 헤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말아.”
“정말 고마워! 현영씨!”
하고 숙영은 감격한 마음에 현영을 바라보며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숙영은 행복했다. 그리고 현영이 고마웠다.
앞에 앉아 있는 현영이 더욱 미더워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슴 가득 찼다. 그것을 바라보며 현영은 왠지 어쩜 숙영이 자기의 인생에 노을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현영은 보영의 전화를 받았다.
“네가 웬일이니 요새는 나에게 자주 전화하는구나.”
지난번 일로 보영이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현영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것은 마음속으로는 보영을 만나고 싶으면서도 지리산 사건으로 마음의 짐이 보영과의 만남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도 포함돼 있다.
“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것은 좋지만 왜 또 나를 골리려고 하니?”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안 만난다.”
“그래도 만나야 해, 그러면 지난번 너를 골린 이유를 알게 될 테니까.”
“무섭구나, 전화로 말하면 안 되니?”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 순간 현영은 보영의 말 가운데서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보영이 했던 행동이나 그렇게 자기가 만나자고 해도 요지부동이던 보영이 자주 전화를 하는 것도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전화로는 말할 수 없어.”
“좋아 언제 어디서?”
“빠를수록 좋아.”
“그래 내일은 일이 있어 안 되고 모래 만나자.”
전 같으면 보영이 만나자고 하면 열 일을 젖쳐놓고 혹 자기에게 해가 돌아와도 만나러 나갔을 텐데 오늘 숙영을 만난 것이 그리고 숙영에게서 느낀 감정이 또 앞에서 말한 예감들이 현영을 망설이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래 알았어.”
약속한 날 약속 장소에 나간 현영은 그 자리에 보람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보영이 자기를 만나자고 하는 것이 보람이와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지난번에 보영을 만난 자리에서 보영이 보람이를 언급한 적이 있어서, 그러면서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려나 하는 걱정과 혹 보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사귀어 보라고 하는 것이라면 어림없는 소리이지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람이는 못 본 지 쾌 됐는데 전에 봤을 때보다 수척했고 현영을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현영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한참이 되어도 두 여자는 아무 말이 없다.
보람이는 보영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보영이는 보람이가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바라며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참다못한 현영이 보영이를 쳐다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람을 불렸으면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응! 그래, 보람이가 할 말이 있데.”
“무슨 말?”
하며 현영이 보람이를 주시하자.
“---”
입을 열려던 보람은 막상 말을 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기를 갖고도 떳떳이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슬픈 생각이 든다.
“말하세요. 무슨 말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현영이 이렇게 재촉하자
“저---”
하다 보람이 마침내 눈물을 흘린다.
“그래 내가 말을 시작하지.”
보람이 딱하게 생각한 보영이 말했다.
“보람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은 지난번 내가 너에게 말했지?”
“그 이야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답은 지난번에 했을 텐데.” 현영의 말에 날이 선다.
“그 이야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럼 무어야?”
“보람이 네 아기를 가졌어.”
이 말이 나오자 보람의 울음소리는 더 높아졌고 너무 황당한 소리에 처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현영이
“너 지금 무어라고 했냐?”
하고 보영에게 묻는다.
“보람이가 네 아기를 임신했다고.”
보영이 재차 하는 소리에 현영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뭐? 무슨 말이야? 내 아기를 갖다니? 넌 참 우스운 애다.”
하고 버럭 소리를 하며 보영을 노려본다.
“큰소리치지 마, 여기 다방이야. 다른 사람들이 들어.”
하고 말리는 보영에게
“다른 사람이 들으면 대수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진정해, 말이 안 돼도 사실은 사실이야.”
보영이 다시 조용히 타이르자.
“알아듣게 말해. 이게 무슨 소리야? 보람씨가 내 아기를 갖다니 언제 내가 보람씨와 잔 일이 있냐? 그런 일도 없는데--- 요새는 마주 보고서서 얘기만 해도 아기가 생기니?”
이런 말을 하며 이 여자애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참으로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고 보람이라는 여자애가 참으로 염치없는 여자인 것 같다.
여태 아무런 말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애를 가졌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나는 자기와 말도 많이 섞지 않고 손목도 잡아 본 적이 없는데
사랑한다더니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보람이 참으로 우스운 여자인 것 같고 자기를 깔보는 것 같았다.
그런 거기에 보영이까지 가담하여 같이 춤을 추니 이 여자애들이 무엇을 잘 못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야.”
“너희도 황당한 것을 아니?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말이?”
“너한테는 황당하지만, 보람이에게는 인생이 달린 일이야.”
하는 보영의 말을 듣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다 스치는 생각이 있어
“그럼 혹시 지리산에서”
하고 멍하니 서 있더니 다시 자리에 앉으며
“무슨 말인지 자세히 해봐.”
“그래 지리산에서야, 물론 너는 모르겠지, 만취에 인사불성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하고 보영이 보람에게서 들은 지리산에서의 일을 말해 주었다.
보영의 말을 듣고 난 현영은 망연자실하여 앉아 있고 보람은 아직도 눈물을 거두지 못한다. 어느 정도 충격이 가시고 난 후 그래도 제3 자 입장에 있는 보영이 말했다
“수습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혹시 너희들 소설 쓰는 것 아니지?”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할 일 없어 여기 와서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겠니?”
“그래 미안하다. 하도 황당해서 그래.”
“황당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예요.”
눈물은 그쳤으나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보람이 톡 쏜다.
현영의 소설 쓰는 것 아니냐는 말에 화가 난 모양이다.
“그래 모두 황당한 일이야, 그러나 수습은 해야지.”
보영이 두 사람을 달랜다.
“어떻게 수습을 해?”
“그 건 너희 둘이 의논해서 결정해야겠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한참을 아무 말 못 하고 앉아 있던 현영이 보람이를 보고
“보람씨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하고 풀이 죽어 물으며 ‘어떻게 이런 일이---, 보영이를 어찌해보려다 내가 당했군.’하는 생각이 현영에게 든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보람이
“나는 현영씨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오늘 여기서 결론을 내려고 하지 말고 며칠 두고 생각을 한 후 다시 만나서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보영이 이렇게 제의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보람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다시 현영이 묻는다.
현영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보람이 그러나 어쨌든 문제는 해결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그동안 많이 생각해서 나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지만 현영씨는 오늘 처음 들었으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하고 생각보다 침착하게 말한다.
“어떻게 정리했는데요? 대강 생각을 말해보세요.”
“나는 현영씨와 결혼하고 싶어요.”
“네? 결혼을 해요?”
현영은 놀란다.
“왜 안 되나요? 나는 지금 현영씨 아기를 가지고 있어요.”
보람은 여전히 침착하다.
“그렇지만 어떻게 결혼을---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현영은 더듬거린다.
“결혼이 별거예요. 남녀가 만나 살면 결혼이고 사랑도 살다 보면 생기는 것이지요. 더구나 우리는 아기기까지 있으니 결혼조건이 충분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안 됐는데---”
“준비는 이제부터 하면 되겠네요.”
웬일인지 보영에게 하던 말과 다른 말을 하는 보람을 보며 보영은 그동안 보람의 생각이 바뀌었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
현영은 외면하고 아무 말을 못 한다.
그러며 속으로는 이것이 무슨 청천벼락이냐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도 알지 못하게 내 아기가 생기다니, 그리고 그 일로 책임을 지게 되었으니 하고 생각한다.
항상 자신만만하던 현영이의 주눅 든 모습에 속으로 실소를 짓고 있던 보영이
“보람아 현영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어라.”
“누가 생각할 시간을 안 준데, 내 생각을 말해보라니까 이야기했을 뿐이야.”
보영이 보기에 이상하게 보람의 심사가 꼬여있다.
“알았어요. 내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세요.”
그렇게 해서 3일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보영이 보람에게 물었다.
“너 정말 현영이와 결혼 할 꺼야?”
“아니야, 현영씨가 소설 쓰냐는 소리에 화가 나서 일부러 그랬어.”
“역시 그랬구나, 그럼 어떻게 할래?”
“지난번에 말한 것과 같이 어린 생명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영씨가 동의하면 낙태시킬 거야. 아기를 빌미로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현영씨를 잡는 것은 비겁한 것 같고 또 사랑 없는 결혼이 행복하겠어? 낙태 후 나는 미국으로 유학 갈 거야, 몇 년 후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잊혀지겠지.”
집으로 돌아오며 현영은 참으로 난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보영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었는데 보람이와 얽히게 되다니.’
‘앞으로 보영이를 어떻게 보나? 영섭이가 알면 나를 파렴치한이라고 하지 않을까?’
‘보람이가 결혼을 하자는데 어쩌면 좋을까?’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얼마나 놀라실까, 그리고 결혼을 승낙하실까?’
‘아니 나는 어떤가, 나는 보람과 지금 결혼할 수 있을까?’
머리를 저으며
‘나는 지금 결혼할 수 없어, 그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더욱 더---’
‘내가 지금 결혼하면 숙영이는---’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숙영이 생각이 드는 것은 또 무어야?’
‘아니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내게 일어난 거야?’
‘눈 뜨면 사라지는 꿈이었으면.’
‘그런데 왜 나는 보람이한테 주눅이 들어 제대로 말도 못 했나?’
‘결코, 나만의 잘못이 아닌데.’
‘보람이 내 아기를 가졌다는 것 때문인가?’
‘한 아이의 아빠라는 의무감 때문인가?“
수많은 상념에 잠긴 현영은 자기가 내릴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세 번째 정류장에서야 허겁지겁 내렸다.
고의는 아니지만 엉뚱하게 이루어진 보람과의 일로 보영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게 돼 이제는 보영을 영섭에게 완전히 빼앗기게 생겼다는 질투심도 있고 영섭에 대한 감정이 옛날과 같지 않아 이 일을 영섭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생각에 같이 의논해보지 못하고 아니 하지 않고 그렇다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릴 수도 없어 어떻게 하나 하고 혼자 고민만 거듭하다가 약속된 날 보람이를 만났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지키미님!
구리천리향님
기상조건님
무혈님
한결같은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꽃피는 봄날에 고은 꿈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