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루가 더 흘러갔다.
칠호는 멍한 얼굴로 건너편에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마교의 교주를 바라보았다. 너무 지쳐서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둘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지만 아직도 승부는 나지 않은 상태였다.
"헉 헉, 지겨운 놈. 도대체 왜 묘강까지 와서 지랄발광이야?"
"지랄발광이라---? 키 키 그럴지도 모르지. 이곳에 와서 어리석게도 귀신에게 당해 죽을 뻔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지만 아무하고도 같이 살 수 없는 독인이 되어 버렸으니---. 크크크 하지만 세상을 웃으면서 살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지. 웃을 수 있는 건 힘 있는 자이지. 강호의 밑바닥을 기어다닐 때부터 그건 알고 있었어. 힘 있는 자만이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걸--."
"힘을 얻으면 뭘 할 건데--?"
"즐기면서 사는 거지. 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즐겁게 살고 싶어.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누구나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사는 동안 남들에게 안 당하고 즐겁게 살려면 힘이 있어야만 하지. 힘이 없으면 남들에게 당하면서 살아야 하니 웃는 일은 없고 우는 일만 생길 테니--."
주학과 칠호는 바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학은 칠호의 말을 들으면서 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뭔가 잊어먹고 살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봐, 너도 마교의 무공을 배웠으니 마교의 제자라 할 수 있다. 내 자리를 넘겨 줄 테니 받을래?"
"내가 미쳤어?! 미친 영감탱이, 이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는 흑목애에서 평생 무공만 쌓다 늙어 죽으란 소리냐? 게다가 늘 암살과 기습에 대비해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것이 늙은이는 좋을지 몰라도 난 절대로 싫어. 힘만 얻으면 그걸로 끝이야. 아직 못 가본 데도 많고 먹어보지 않은 요리도 많지. 그리고 밤마다 날 즐겁게 해 줄 여자들도 있는데--, 내가 미쳤어? 마교의 교주가 어떤 자리인지 내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추혼검마의 지식이 알려주고 있다고--. 거저 준다해도 그런 자리는 사양이야. 날 즐기면서 살려는 거지, 일만 하다 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어!"
칠호의 외침에 바위 건너편에 앉아 있는 주학은 침묵했다.
"네 적은 강한가?"
슬슬 일어나 다시 주학을 공격해서 환혼경을 뺏으려고 하던 칠호는 다시 주저앉았다. 상대의 말속에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공격을 시작하려는 의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지친 상태라 쉴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쉴 필요가 있었다.
"강하지, 아주 엄청나게 강해. 영감이 버리고 간 중원의 암흑전사단과 정파가 버린 암천혈혼대 오십여명을 일수에 몰살시킬 정도로----."
칠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도저히 주학이 믿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그게 정말인가?"
"그래, 그러니까 아까 영감이 말한 것처럼 내가 이 묘강까지 와서 지랄발광이지--."
칠호는 바위 건너편에 앉아 있는 마교의 교주 또한 자신처럼 처음에 그 소식을 듣고 경악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참동안 침묵하고 있는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학의 머리 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직 한가지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세월이었고 이제 그것이 손에 들어오기 일보직전의 상태였다.
'허무하군. 그런 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얻는다 해도----.'
생각은 끝이 나고 주학은 품에서 은은히 붉은 빛이 감도는 손가락 만한 크기의 수정을 꺼내들고 한참을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 한 조각의 수정을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평생을 받쳐왔지만 이제 그에게 필요없는 것이었다.
칠호는 바위 건너편에서 날아오는 붉은 수정조각을 신중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암기?'
그것을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것은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칠호의 몸을 향해 날아오고, 느리게 날아오는 붉은 수정에는 칠호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힘이 담겨 있었다.
"환혼의 뜻은 영원한 영혼의 약속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영혼
영혼을 담는 것은 환혼의 거울
마음의 검에서 영혼의 검이 생겨나고
하나의 영혼에서
천개의 검이 생겨난다.
거울을 몸에 심고
마음의 검을 터득하라
천개의 검이 그대를 지키리니---."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의 손바닥에 얌전히 내려앉은 환혼경의 조각을 바라보던 칠호는 말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물었다.
"무슨 소리요? 이건 뭐고?!"
"지금 말한 것이 바로 환혼경의 비밀이다. 그리고 네 손에 올려진 것이 바로 환혼경의 조각이지."
"이것을 그냥 주려는 것이오? 당신은 뭘 할 건데--?"
"나? 지금 내 나이가 백하고도 이십이 넘은 상태지.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은 팔십년도 더 오래 전의 일이고---, 그래봤자 한자루의 검일 뿐인 것을 그것을 얻기 위해 백년이 넘는 세월을 그것 하나에 받쳐 왔구나---."
"그래서--?"
"네 말처럼 나도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살 생각이다. 내가 마교의 교주라는 자리를 버린다면 천하에 내 적은 없다. 나도 이제 천하를 유람하며 즐겁게 살아볼 생각이야."
"이것은 환혼경의 조각만으로는 천인천검을 얻을 수 없는데--?"
"중원으로 가라. 마교의 손에 들어온 환혼경의 조각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한 조각이 빠져 있다. 나머지 한 조각을 얻지 못한다면 천인천검은 얻을 수 없을 거다."
"그것은 어디에 있소?"
"나도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마교삼혼 중에 살아남은 마지막 한명 검혼이 그것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것 정도---, 행운을 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학의 몸은 그 자리에서 떠나버리고 이제 혼자 남은 칠호는 얼떨떨한 정신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지지는 않아도 이길 수는 없는 상대였기에 이렇게 쉽게 물건을 건네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멍청한 늙은이---, 이것을 몇 마디 말에 그냥 던져주고 떠나다니--. 푸 하 하 하! 하여튼 나로서는 잘된 일이다! 푸 하 하 하!"
광소를 터트리며 칠호는 중원 쪽으로 방향을 잡고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묘강에 볼일은 없었다.
"교주님, 정녕 이대로 교를 버리실 겁니까?"
"그래."
"그럼 다음 대의 교주는 누구로---?"
"검혼동에 쳐 넣은 놈 있지? 그놈이 살아 나오면 그놈 시키고 아니면--, 아무나 하고 싶은 놈보고 하라고 그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면서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고 있는 주학이었다. 그의 마음은 이제 마교에서 완전히 떠난 상태였다.
달랑 가방 하나만을 메고 흑목애를 떠나는 주학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늦지 않게 깨달아서 다행이다. 내 나이가 백하고도 스물 둘이 더해졌지. 내가 아무리 무공이 높아져도 이백살이 넘도록 살 수 있을까? 천인천검을 얻는다해도 절대삼식을 터득하고 천인천검을 마음대로 사용하려면 다시 백년의 세월이 필요해, 그것도 백년 동안 육신의 고통이 아닌 영혼의 고통을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천인천검이다. 무공만 수련하다 진짜로 늙어 죽을 수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이제부터라도 내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삶을 즐기면서---. 멍청한 놈, 천인천검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얻으려 하다니--, 그것을 얻으면 평생 무공만 파고들다 늙어죽겠지. 그놈을 못 만났다면 내가 그 꼴이 날 뻔했어'
빠른 속도로 흑목애에서 멀어지고 있는 주학의 머리 속에는 그런 생각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백년이라는 시간 또한 한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움직이던 주학은 목표를 버리고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살기로 마음을 바꾼 상태였다. 그리고 칠호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얻고자 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 그러나 그 힘을 얻기 위해서는 백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서로를 멍청이라 부르고 있는 두 사람 중 누가 더 멍청한 것일까?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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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하였습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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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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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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