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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당의 소구의 방 안에 앉아 있는 두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에 있는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말이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그녀들은 자신이 진짜로 살아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게 아니야?"
"그럼 어쩌니, 취하야?"
"도련님이 하루 빨리 여자를 알게 해야만 되."
"체, 정말이지---.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남녀간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다니----."
"화련 아가씨의 말대로---, 정말일까?"
"왜?"
"아무리 그래도 본능이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여자의 알몸을 보아도 아무런 욕정을 느끼지 않는 남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하고 날 여자로 안보고 있는 걸까? 어려서부터 우리의 알몸을 보면서 자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여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높은 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설마--, 벌써 인간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있다는 거야?"
"그걸 확인하기 위해 소구 도련님을 소주에 있는 기녀원에 보낸 것이 아닐까? 화련 아가씨의 말대로 소구 도련님이 정말로 그런 경지에 올랐다면 우리는----."
"아닐 거야. 소구 도련님의 나이는 이제 겨우 서른이 갓 넘은 나이야. 그 나이에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어, 아닐 거야."
둘의 대화는 다음 순간 단절되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를 안으로 갈무리 할 수 있게 되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나오겐 되었지만 그녀들의 몸은 여전히 얼음보다 수십배는 차가운 상태였다. 이래서야 사람들이 있는 곳에 오긴 왔지만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려 살수가 없었다. 음식의 맛을 보는 일 또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녀들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은 얼어버렸기에---, 그녀들의 식사는 대기중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집은 백초당이었고, 집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밥과 음식을 먹는 꿈을 꾸기도 한 그녀들이었지만 상황은 북해에 있을 때와 바뀐 것이 없었다. 여전히 그녀들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소구 도련님이 소주에서 여자에 대해 알게 될까?"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육신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되었는데---, 단지 하루만 고생하면 되는 것을 싫다고 그렇게 도망쳐 다니다니---."
"몰라서 그렇다잖니? 소주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 화련 아가씨께서 직접 소구 도련님에게 잘 설명해 주겠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거야."
"도련님이 소주에서 돌아오면 정말 우리도 남들처럼 살 수 있게 될까?"
"안되면 되게 만들어야지. 난 아직도 어릴 적 그에게 두들겨 맞았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어."
"우리가 비록 이 꼴로 변해 있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강해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 하지만 그의 실력은 우리보다 더 뛰어나다고--, 때리려고 하다간 어렸을 때처럼 또 맞을 거야. 상황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어."
"기회를 잘 잡으면 될 거야. 그가 약해질 때를 노려서---."
그녀들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녀들이 머물고 있는 방 근처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수련 아씨게서 너희들에게 주는 옷이다. 천잠사로 만든 옷이니 얼어 부스러지는 일은 없을 게다."
그녀들에게 두벌의 옷을 던져 주며 말을 하고 있는 총관 염철은 한시라도 빨리 소구의 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곳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시절은 봄이지만 이곳만은 그녀들이 있는 한 한겨울이었다. 옷만 던져 주고 도망치는 총관 염철의 등을 바라보며 두 여자의 입에서는 한숨만 흘러나왔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한기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이 모양이었다.
군산(君山)은 중국 호남성(湖南省) 악양현의 동정호(洞庭湖) 가운데 있는 섬이다. 예로부터 녹림 즉 천하의 산적들과 수적들의 두목인 총표파자라 불리는 자의 거처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군산칠십이채라는 말이 떠돌면서 칠십이개의 산채가 있다는 소문과 그들 전체의 두목이 뽑히는 곳이 군산이라는 말도 떠돌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모든 마을과 도시들처럼 이곳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그런 곳이었다. 저자거리의 노점상으로부터 돈 뜯어내는 뒷골목의 건달패도 있고 그런 건달패로부터 상납금을 받아서 먹고사는 포졸들도 있는 대부분의 다른 마을과 똑 같은 곳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 군산의 한 건물에 모여 있는 다섯 사람은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었지만 또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거요?"
혈룡 악종진은 화난 음성으로 다른 네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백초당의 방종구가 잠들어 있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오. 아직 신기서생은 청방의 모든 힘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이니 이 기회에 청방의 힘을 약화시켜야 하오."
"그럼 그 혼천문의 후예라는 방소구를 상대할 방법이라도 찾았단 말이오?"
"한 사람의 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오. 그가 아무리 고수라 해도 천하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오."
"잠들어 있는 홍방의 힘을 깨우자는 말이오? 칠호가 없는데도?"
"운룡회는 칠호만의 것이 아니오. 그리고 굳이 잠들어 있는 홍방을 깨울 필요도 없소. 힘만이 능사는 아니오."
"어쩌자는 것이오?"
"다른 무림인들을 이용할 생각이오. 청방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계략이 준비되었으니---."
한참 뒤에 악종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노성을 내질렀다.
"당신들은 무림인이 아니오! 난 이 일에서 빠지겠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악종진은 밖으로 나가버리고 남아있는 네 사람은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최소한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는 않을 테니---, 혈룡의 일은 넘어가도록 합시다."
"저자에게는 천하제일검이라 불렸던 뇌진자의 최후심득이 있으니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걸께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소. 천룡인 칠호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으려면 청방을 혼란시키지 않으면 안되오."
한 사람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공이 결코 낮은 수준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는 정도의 것도 아니었다. 청방의 정보원들이 집요하게 그들의 뒤를 추적하고 그들에 대한 정보를 캐고 있는 지금, 그들에 대해 청방이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그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최소한 칠호가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만 했다.
"자, 자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에 대해 의논을 시작해 봅시다. 혈룡은 혈룡대로 혼자서라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으니 빠진 것이겠지요. 그는 제쳐두고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을 이제 시작해야겠지요."
한 사람이 말을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그들의 음모가 시작되었다.
청방의 숨은 힘이 되어 주고 있는 오대세가의 늙은 가주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백초당 안에 있는 맹주전이라는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초당에서 혼인식이 있은지도 벌써 한달이 넘어간 상태였지만, 임시 방주인 신기서생 정옥은 그들에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언제나와 다름없이 평온한 나날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불안했다. 원한은 만배로 키워서 갚자라는 신기서생의 좌우명에 대해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안하기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근 한달이 지나서야 신기서생이 그들을 불러낸 것이다.
"거참, 꼭 지옥문에 들어가는 것 같구만---."
맹주전이라 불리는 건물의 문지방을 건너는 순간 남궁 진호의 입에서 한마디의 말이 흘러나왔다. 같이 걸음을 옮기고 있던 나머지 네 가주들은 흘낏 그런 남궁진호를 째려보다 아무 말 없이 한숨을 흘렸다. 지금 와서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우스운 짓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에 할 말이 없는 그들이었다.
아무리 임시 방주라 하지만 청방의 방주가 가지고 있는 권한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한 가문의 성쇠를 결정할 정도로 막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방주를 골린 대가를 이제 치를 차례였다. 남궁진호와 마찬가지로 이 문을 넘어서는 순간 그들 역시 지옥으로 한걸음 내딛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그래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한숨만 흘러나왔다.
서류더미에 코를 박은 채 읽고 서명하고 도장 찍고, 사람을 불러 지시를 내리고----, 청방의 임시 방주 신기서생에게는 따로 누군가에게 말을 할 시간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아침에 온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신기서생이 면담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저녁이 되어서였다.
"방주, 우리를 왜 부른 거요?"
남궁 진호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바쁘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강호에 유서깊은 오대세가의 가주들이었다. 일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날 정도로 무게감이 없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여러분들만이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지요."
그렇게 시작된 신기서생의 말을 들으면서 오대세가의 늙은 가주들의 얼굴에는 똥 밟았다는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셨지요? 그러니 다섯 분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그자들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그자들의 행적에 대한 단서를 붙잡았으니 추격을 시작할 차례이지요. 무공이 높은 다섯 분이니 합심해서 돌아다니면 일은 금방 끝날 겁니다."
신기서생의 말도 얼굴도 행동도 너무나 얄미운 가주들이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노구를 이끌고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이리 저리 천하를 떠돌아다니는 자신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니 부려먹을 사람이 없어서 백살이 넘은 우리를 꼭 그렇게 떠돌아다니게 만들어야겠는가?!"
거의 말이 없는 당가의 가주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어르신, 여유인력이 없습니다. 그자들을 상대할만한 무공의 고수가 어르신들 외에 또 누가 있단 말입니까? 제 처남 방소구는 이미 소주로 가서 그자들의 뒤를 추적하는 중이고--, 이제 혼인한지 한달 밖에 안된 제 아내보고 가라고 할까요? 아님 제 처형에게 돌아다니라고 할까요? 남자들이 힘이 없다고 여자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는 것은----."
잠시 말을 끊고 다섯의 노인을 둘러보던 정옥의 입에서 마침내 그 말이 흘러나왔다.
"청방 모든 남자들의 망신이지요. 예로부터 집안 일은 여자가, 밖의 일은 남자들이 하는 법이라고 하는데----. 청방의 남자들이 겁쟁이라 집안에만 처박혀 있고 힘든 일은 여자들에게 시킨다고 소문날까 두렵습니다."
정옥의 겁쟁이라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들 다섯의 가문의 주인들은 더 이상 뒤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겁쟁이라는 말까지 들은 상태에서 정옥이 말한 일을 거절한다면 오대세가는 모두 겁쟁이들의 소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가주라는 자리에 있었고 그것은 가문을 대표하는 자리였다. 그들 스스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백초당을 벗어나 걸음을 옮기는 다섯 노인의 몸에서는 건드리면 바로 터질 것 같은 살기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도 무서웠고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도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지나가던 똥개 한 마리가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펄쩍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어디인가로 도망쳐 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가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까?"
남궁 진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당가 최후의 무공이라 알려진 만천화우를 연성한 당백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을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무시하면서 그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이 개봉이니 거지 놈들 소굴부터 시작하지."
"그 왕질악이라는 놈은 예전에 죽었다고 소문나지 않았는가?"
"악가야, 그러니까 그것부터 일단 확인해야 하지 않겠니? 그 심통 맞은 거지 영감이 살아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 있는데 그 영감탱이라고 죽어 있겠냐? 먼저 간 소림사의 땡초하고 둘이서 기연을 만났던 그놈들이---?"
"하긴, 소림사의 땡초는 무공만 믿고 화포 앞에서 개기다가 죽었지만, 그 거지 영감은 절대로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을 테니---. 근데 개방의 제자들이 사라진지 오래인데--. 아직도 그 놈이 그곳에 있을까?"
노인들의 대화는 개봉에 있는 관제묘 앞에 이를 때까지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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