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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군웅대회
오늘은 군웅대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비무대 주위에 있는 천막으
로 몰려들었다.
군웅들이 비무대 주위에 구름처럼 모여들자 어제처럼 서횡이 비무대
중앙으로 올라왔다.
서횡은 주위를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일차예선은 오늘 정오까지만 하고 오후부터는 결선에 들어갈 예정이
니 여러 군웅들께서는 착오없으시기 바라오!"
그가 대 아래로 내려가자 다시 비무가 시작되었다.
제일 처음의 격전은 삼상 지방의 고수인 비화검 양민
과 점창의 제일고수인 분광신검 사혁
간의 대결이었다.
양민의 비화검은 비록 현란하고 기묘했으나 사혁의 분광검에는 적수
가 되지 못했다. 결국 십여 초 만에 사혁이 양민의 왼팔을 잘라 버려
쉽게 승부가 가려졌다.
사혁은 연거푸 네 명의 도전자를 더 연파하고 다섯 번째로 결
선에 진출하는 고수가 되었다.
강옥봉은 묵묵히 비무대 위를 주시하고 있다가 조옥환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이번 대회와 우숭자는 그 설일비일 것 같소. 아직까지 그
에 비견될 만한 고수가 보이지 않는구려."
조옥환은 희미하게 웃었다.
"강 공자께서 한번 나가 보시지 그래요?"
강옥봉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원래 몸이 건강해서 구엽인삼 같은 영약도 필요없고 명예욕도
없어서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싶은 마음도 없소. 그러니 나가서 그를
꺾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조옥환은 까르르 웃었다.
"호호…… 성인군자 같은 말씀만 하시는군요. 아마 무림에서 강 공자
같이 사심없는 분도 아마 없을 거예요."
그때 돌연 그들의 뒤에서 나직한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하하…… 조 낭자의 말은 정말 노부의 생각과 일치하는군. 강 노제
는 다 좋은데 욕심이 너무 없는 게 탈이란 말이야."
그러면서 한 사람이 불쑥 그들 사이에 끼여 들어와 털썩 앉았는데 그
는 다름 아닌 부여송이었다.
조옥환은 그를 보며 곱게 웃었다
"욕심이 없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게 왜 탈이란 말이에요?"
부여송은 탁자 앞에 놓인 술잔을 쭈욱 들이켰다.
"크…… 강 노제가 욕심을 좀 부려야 이 늙은이도 곁에 끼여서 한몫
볼텐데, 이건 국물도 없고 뼈빠지게 일만 하니 노부 같은 약골
이 어찌 견디겠나?"
그가 익살스럽게 얼굴을 실룩거리며 말을 하자 조옥환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호호…… 부 대협이 약골이라면 이 세상에서 강골인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을 거 예요."
부여송은 강옥봉을 가리키며 눈을 찡긋거렸다.
"왜 저기 있지 않나? 희대의 강골인 우리의 강 노제가"
"호호……!"
두 사람이 박장 대소를 하자 강옥봉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너무 놀리지 마십시오. 저라고 왜 욕심이 없겠습니까? 단지 무림의
사정이 너무 급박하고 중대한지라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
부여송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허허……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네. 이게 따지고 보면 괜히 편안
하게 잘 살고 있는 자네를 무림으로 끌고 들어온 여풍운과 임표 때문
이지. 그러니 억울하면 그들에게 가서 따지게."
그 말에 생각난 듯 강옥봉이 급히 물었다.
"참, 막 대협은 그분들과 상봉했습니까?"
부여송은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연신 히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말게. 다 큰 어른들이 애들처럼 서로 끌어안고 웃다가 울다가
하는 바람에 노부는 막철룡과 인사도 못 나눴네. 내가 나올 때 보니
까 여풍운과 임표가 자네를 보게 되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라고 하
더군."
강옥봉은 담담히 웃었다.
"그분들이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한다면 그런 일이 어디 비교가
되겠습니까?"
"제길…… 정말 성인군자가 따로 없군. 노부 같으면 이럴 때 크게 생
색을 내고 그들에게서 한턱 단단히 우려낼 텐데……"
조옥환이 옆에서 잽싸게 끼여들었다.
"그래서 부 대협께선 성인군자가 못 되시는 거라고요."
부여송은 짐짓 그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조 낭자는 노부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게. 그렇지 않았다가는 당장
운 낭자와 곽 낭자에게 일러 지금부터 두 사람 사이를 훼방 놓을 테
니까."
조옥환은 얼굴이 빨개지며 급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녀가 동자로 변장하고 강옥봉과 동행하게 된 것은 모두 운봉
랑과 곽희연이 모르는 척 눈감아주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를 모르는
조옥환은 행여 그녀들이 알게 되면 강옥봉에게 심술이라도 부릴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부여송은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자 느긋한
웃음을 떠올렸다.
"흐흐…… 하지만 방 늙은이의 부탁도 있고 하니 노부가 참도록 하
지. 그런 의미에서 조 낭자가 이 늙은이에게 술 한잔 따라 주지 않겠
나?"
조옥환은 속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흥! 주책없는 늙은이…… 나중에 두고 보라지.'
하나 겉으로는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부여송은 그 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무릎을 탁 쳤다
"크하하…… 정말 꿀맛이군, 꿀맛이야! 술은 확실히 미녀가 따라야
제맛이 난다니까……"
강옥봉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담담히 물었
다.
"부 대협께서 저를 보러 오신 것은 술을 드시기 위해서는 아닐 텐데
요?"
그 말에 부여송은 쓰게 웃었다.
"자네가 일러주지 않았으면 깜박 잊을 뻔했군."
그는 돌연 정색을 하며 소리를 죽여 입을 열었다.
"자네의 지시대로 방 고은이는 어제부터 계속 설일비라는 작자를 뒤
쫓고 있었다네. 그런데 어젯밤 삼경쯤에 설일비가 자신의 거처에서
은밀히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네. 그랬더니 설일
비는 낙가보의 외보 됫산에서 누군가를 만나 밀담을 나누고 헤
어졌다더군."
강옥봉은 눈을 반짝였다.
"그가 만난 사람이 누굽니까?"
부여송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혀 의외의 인물일세. 누구인 줄 아나? 바로……"
정오가 되자 징 소리와 함께 군웅대회의 일차예선은 모두 끝이 났다.
어제오늘 양일에 걸쳐 일차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모두 일곱 명
이었다.
오시가 되자 군웅들은 마지막 결선을 기다리며 비무대 주변으
로 모여들었다.
돌연,
징! 징! 징!
세 번의 징 소리가 연거푸 들리며 군웅대회를 주도한 낙가보주 낙일
립이 나왔다.
그런데 낙일립의 뒤에는 빨간 비단으로 쟁반을 받쳐 든 두 사나이가
따르고 있었다.
군웅들이 일시에 조용해지떠 낙일립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
리고 있었다.
낙일립은 비무대 위로 올라서더니 여러 군웅들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이렇게 많은 무림 선배 고인과 여러분들이 모이신 가운데 일
곱 분의 고수를 모시고 군웅대회의 마지막 결선에 임하게 된 것을 영
광으로 생각하오."
그는 주위를 한번 쓸어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내가 비록 군웅대회를 열어 여러분들을 모셨지만 사실은 명
령을 받고 행사했을 뿐이오."
그 말에 대 아래의 군웅들은 웅성거렸다.
낙일립은 군웅들의 소란을 묵살하고 종이 울리듯 큰 소리로 말을 계
속했다.
"나는 천하제일 성심장의 수석총관으로서 본 장의 장주님
의 뜻을 받들어 여러 군웅들과 뜻을 함께 하고자 이번 대회를 열!!
된 것이오."
이런 노골적인 말에 군웅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 성심장?"
"아니 낙 보주가 성심장의 수석총관이었단 말이오?"
장내는 삽시간에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다.
당금 무림에서 누가 성심장의 이름을 모르겠는가?
그들의 행사는 신비로 점철되어 있었고, 세력은 거대하기 짝이 없어
모든 무림인들에게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낙일립은 태연 자약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식을 들어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본 장은 얼마 전에 무림에서
해악을 일삼던 회서방을 섬멸하는 일대 쾌거를 이
루었소. 하나 본 장에서도 여러 고수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어 공석
이 된 자리가 많이 생겨났소. 그래서 본 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무림의 여러 동도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서 본 장에 가입할 기회
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오."
그의 음성은 굉량하기 그지없어 시끌벅적하던 주위 소란을 완전히 압
도해 버렸다.
군웅들은 입을 다물고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에 일차관문을 통과한 일곱 분은 우선적으로 본 장에서 높은 지
위를 얻게 될 거요. 단,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이 원할 때이고 만약
본 장에 아무 뜻이 없는 분이라면 지금 물러난다 해도 본 장에서는
절대로 원망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겠소."
그때 대 아래에서 누군가가 소리쳐 물었다.
"그럼 군웅대회는 이것으로 끝나는 겁니까?"
낙일립은 그쪽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는 않소. 군웅대회는 정상적으로 진행하여 최종 우승자를 결
정하게 될 거요. 최종 우승자는 본 장의 총순찰에 임명하고
구엽인삼 반 뿌리와 함께 무림의 오대신검 중 하나인 상심
검을 드리겠소. 그리고 준우승자에게는 새로 마련되는 육대
용사의 우두머리 자리를 수여하고 나머지 다섯 분은 육용
사의 한자리씩을 차지하게 될 거요."
그는 이어 비단헝겊으로 받쳐 들고 있는 쟁반을 가리켰다.
"이 두 가지 물건을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리겠소. 이것은 천 년 묵은
구엽인삼이고 또 이것은 무림의 보물인 상심검이오. 본 대회의 우승
자에게는 총순찰의 직위와 함께 이 두 가지 기보를 증정할 것이오."
그러자 좌중이 떠들썩해지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돌연 여러 군웅들 중에서 누군가가 우렁찬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 시합에 이겼으나 귀장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어찌하겠소?"
"그래도 응당 구엽인삼을 드리겠소.그게 애초의 공약이었으니
까 말이오."
"그렇다면 쟁반에 있는 물건을 좀 보여 주시오."
낙일립이 껄껄 운었다.
"허허…… 이 두 가지 물건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다 지니고 싶어하
는 물건이오. 여러분들께서 만약 의심한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
겠지만 나 자신의 인격과 성심장의 수석총관이란 이름을 걸고 맹세하
겠소. 절대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거요."
이어 그는 대 아래 일렬로 앉아 있는 일곱 명의 결선 진출자들을 돌
아보았다.
"일곱 분의 의향은 어떻소?"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하나 무림인치고 영약과 신병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
는가?
더구나 성심장은 이미 회서방을 무너뜨리고 명실상부하게 천하제일문
파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성심장의 총순찰이란 직위
또한 유혹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낙일립은 그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회싱의 미소를 지었다.
"일곱 분은 거절할 의사가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곧 추첨을 해서 결선
상대를 가리겠소."
일곱 사람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낙일림이 손뼉을 탁 치자 어디선가 서횡이 급히 달려나와 미리 준비
한 일곱 개의 죽통을 내밀었다.
서횡은 끝 부분을 종이로 싼 일곱 개의 대나무막대를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이 대나무에는 각기 두 개씩 일, 이, 삼의 숫자가 적혀
있고 오직 한 개만이 아무 글씨도 써 있지 않소. 여러분들은 나누어
가진 대나무막대를 풀어 같은 숫자가 나오는 사람끼리 겨루게 되는
것이오."
한 사람이 불쑥 물었다.
"아무 글씨도 써 있지 않은 막대가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요?"
서횡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매달았다.
"그 사람은 싸우지 않고 부전승으로 이회전에 진출하게 되는
거요."
이렇게 해서 일곱 명의 결선 진출자들은 손에 쥔 막대의 종이를 풀어
보았다.
그 결과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행운아는 설일비로 결정되었고, 나머지
여섯 사람들은 서로 상대를 골라 겨루게 되었다.
제일 처음의 격전은 산서의 호걸인 벽력도 염비
와 절강성의 제일고수인 신창 왕방의 대결이었
다.
벽력도 염비는 체구가 건장하고 얼굴에 구레나룻이 자욱한 사나이였
는데 무게가 칠십 근이나 나가는 벽력패도로 산서 지방을
주름잡는 무서운 고수였다.
그에 비해 신창 왕방은 체구가 나뭇가지처럼 호리호리하고 키가 훌쩍
하게 큰, 앙상한 중년인이었다.
왕방의 무기는 길이가 삼 척쯤 되고 양쪽으로 날이 서 있는 비룡창
이었다.
염비는 벽력패도를 뽑아 들고 고리눈을 부릅뜨며 왕방을 응시했다.
"왕 형과 처음으로 대결할 줄은 몰랐소. 왕 형은 어서 손을
쓰시오."
왕방과 염지는 평소 약간의 안면이 있었다.
왕방은 손에 비룡창을 쥔 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내가 어찌 먼저 손을 쓸 수 있겠소? 염 형은 걱정하지 말고 먼저 공
격하시오."
염비는 고개를 끈덕이며 힘차게 패도를 쳐들었다.
"그럼 왕 형은 조심하시오."
이어 그는 칠십 근이나 되는 패도를 세차게 휘두르며 왕방의 목덜미
를 찔러 갔다.
위이잉!
부드러웠던 말과는 달리 그의 공격은 무지막치하기 그지없어 왕방의
호리호리한 몸은 금시라도 칼 아래 절단이 나고 말 것 같았다.
하나 왕방은 싸늘한 눈으로 염비의 패도를 노려보고 있다가 그것이
자신의 지척으로 다가들자 슬짹 허리를 뒤틀어 피하며 수중의 비룡창
을 쾌속하게 휘둘렀다.
파파파파……
수십, 수백 개의 창영이 어른거리며 염비의 전신이 창날 아래
환하게 노출되었다.
염비는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 채 입술을 질끈 깨물고 패도를 회수
하며 수평으로 그어 댔다.
파앗!
마치 뇌전이 번쩍이는 듯한 섬광이 일어나며 만근 신력이 담긴
패도가 왕방의 허리춤을 향해 짓쳐 들었다. 그 위세는 가히 놀라워
구경하고 있던 군웅들은 금시라도 왕방의 허리가 두 동강날 것 같아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댔다.
"앗?"
"위, 위험하다!"
개중에는 눈을 질끈 감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왕방은 조금도 당활하지 않고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선 채 두 손
으로 비룡창을 움켜쥐고 있다가 벼락같은 호통과 함께 질풍처럼 창을
휘둘렀다.
"이야압!"
파파파파파파……
비무대 위가 온통 창 그림자로 뒤덮여 버렸다. 그의 이번 수법은 비
전절초인 비룽사십팔방이라는 창법으로 단숨에
사십 팔 방위를 점해 상대를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무공
이었다.
염비는 안색이 대변했다.
순간,
차차창!
예리한 소성과 함께 불똥이 사방으로 튀며 한 사람이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크으으……"
그는 바로 염비였는데 염비의 옆구리와 가슴팍에서는 시뻘건 핏물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왕방은 즉시 창을 거두며 정중히 포권을 했다.
"다행히 염 형이 손에 사정을 봐주어 내가 약간의 이익을 본 것 같소
이다."
염비는 얼굴을 실룩이며 그를 응시하다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왕 형의 무공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 나는 왕 형에게
패했음을 인정하오."
군웅들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그의 태도에 환호성을 보냈다.
"와아……"
이어 두 번째 대결은 점창의 분광신검 사혁파 하북의 패자
인 마환 조익기의 격전이었는데 그 싸움은 불과 십
여 초 만에 사혁의 분광검이 조익기의 어깨를 꿰뚫음으로써 간단하게
승부가 났다.
세 번째는 화산의 제일고수 육합검객 임원량
과 진주의 명가인 진주언문의 소패왕
언일곤의 대결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세 번의 대결 중에서 가장 치열한 것이었다.
임원량은 자타가 공인하는 무림의 사대검파 중 하나인 화
산파의 제일고수였고, 언일곤은 권법으로 유명한 진주언문이 자랑하
는 신진고수였으니 그들의 대결은 가히 용호상박이었다.
콰아아앙!
언일곤의 주먹은 뇌정과 같은 위력이 있어 비무대는 금시라도
무너질 것같이 뒤흔들렸다.
파파파팍!
그에 맞서는 임원량의 검법 또한 현란하기 짝이 없어 대 위는 온통
검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군웅들은 그들의 막상막하 대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신없이 구경
했다.
조옥환은 흥미 진진한눈으로 그들의 격전을 치켜보다가 각옥봉을 돌
아보며 물었다.
"강 공자는 저들 중에 누가 승리할 것 같아요?"
강옥봉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아마 임원량이 조만간에 승세를 잡을 것 같소."
조옥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보기엔 언일곤이 쉽사리 패할 것 같지 않은데요?"
"언문의 권법은 비록 위력이 강하지만 그만큼 내공 소모도 심한 수법
이오. 그에 비해 화산의 무공은 온유하고 끈질긴 육합신공
에 기초를 두고 있으니 그만큼 저력이 강하오. 조금 후면 언일곤은
내력이 달려 임원량의 검세를 제대로 막지 못할 것이오."
조옥환은 반신반의하며 비무대 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과연 이백여 초가 지나자 언일곤의 몸이 눈에 띄게 느려지며 연신 뒤
로 몰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임원량은 아직도 진기가 충만한 듯 예
리한 초식을 연거푸 사용하여 언일곤을 공격하고 있었다.
조옥환은 그것을 보고 배시시 웃었다.
"과연 강 공자의 혜안은 정확하군요."
강옥봉은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임원량도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오. 그는 이번 격전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 넣었기 때문에 다음 상대가 누가 되든 슁게 패하고
말 것이오."
"호호…… 임원량은 이번 싸움으로 반짝하고 끝이란 말이군요?"
"그렇소."
"그럼 강 공자는 누가 우숭하리라 보세요? 설일비인가요?"
강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대나무 조각으로 부전승자를 뽑을 때부터 결과는 정해진 거
요. 설일비는 다른 출전자들보다 무공이 고강한데 싸우지도 않고 이
차전에 진출하여 내공을 고스란히 보존한 상태이고, 다른 인물들은
이미 격전을 치러 진기가 소모된 상태이니 어떻게 그의 상대가 되겠
소?"
"그럼 구엽인삼과 상심검은 그의 차지가 되겠군요."
조옥환이 아쉬운 듯 말하자 강옥봉은 괴야한 미소를 흘렸다.
"조 낭자가 원한다면 그것은 조 낭자의 것이 될 수도 있소."
조옥환은 아름다운 눈을 크게 치켜 떴다.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강옥봉이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
"와아……!"
주위에서 요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조옥환이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비무대 위의 격전은 어느새 끝나 있
었다.
강옥봉의 예측대로 임원량이 언일곤을 부상시키고 승리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네 명의 이차 진출자가 모두 결정되었다.
곧 다시 추첨해서 마지막 결승 진출자를 가리게 되었다.
부전승으로 올라온 설일비 대 신창 왕방!
그리고 점창의 제일고수인 분광신검 사혁 대 화산의 제일고수 육합검
객 임원량!
군웅들은 모두 흥미 진진한 표정으로 그 두 쌍의 대결을 고대하게 되
었다.
첫 번째 대결은 설일비와 왕방의 격전이었다.
설일비는 오른손으로 섭선을 부치며 여유 작작한 걸음걸이로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대 위에는 이미 신창 왕방이 비룡창을 꼬나 쥔 채 그를 기다리고 있
었다.
왕방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오고 있는 설일비를 날카로
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설일비는 그의 앞에 걸음을 멈춘 채 여유 만만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
다.
"왕 대협께서 먼저 손을 쓰시지요."
왕방의 메마른 얼굴에 언뜻 노기가 스쳐 지나갔다. 무림에서의 배분
이나 나이로 보아 아직 그의 아들뻘밖에 되지 않는 설일비가 먼저 공
격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이 녀석이 귀거상을 물리쳤다고 너무 건방을 떠는군.'
왕방은 내심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은 음성으로 말했다.
"노부의 창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으니 자네가 먼저 손을 쓰게."
설일비는 낭랑하게 웃었다.
"하하…… 왕 대협께선 너무 겸손하시군요. 그럼 불초가 먼저 실례하
겠습니다."
이어 그는 왕방을 향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섭선을 슬쩍 흔들었다.
왕방은 일전에 그가 섭선으로 귀거상의 무서운 일격을 물리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여 급히 옆으로 피했다.
하나 의외로 섭선에서는 아무런 경풍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되니 왕방은 상대의 헛손질에 완전히 혼자서 날뛴 꼴이 되고
말았다.
왕방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설일비는 야릇한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부화를 박박 긁었다.
"하하…… 과연 왕 대협의 몸놀림은 신기에 가깝군요. 소생의
가벼운 부채질에도 훨훨 날아다니시니……"
왕방은 솟구차는 노화를 참을 수 없어 낯빛을 딱딱하게 굳힌 채 아무
말도 없이 비룡창으로 설일비의 양미간을 노려 왔다.
쾌액!
그의 이번 한 수는분노한 와중에 펼쳐 낸 것이기 때문에 위맹하기 그
지없었다.
설일비는 슬쩍 허리를 뒤틀어 왕방의 매서운 일격을 피하면서 다시
섭선을 흔들었다.
'흥! 이번에도 노부가 속을 줄 아느냐?'
왕방은 코웃음을 치며 섭선을 무시한 채 설일비의 가슴팍을 노리고
비룡창을 찔러 갔다.
하나 그 순간,
쿠르르릉!
섭선에서 갑자기 무시무시한 경풍이 일어나며 왕방의 전신을 향해 짓
쳐 들었다.
'아차! 또 속았구나……!'
왕방은 질겁하며 급히 비룡창을 회수하고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장!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가 경풍에 쉽쓸리며 움푹 파여 들어갔
다.
왕방은 이것을 보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섭선으로 이런 강기를 내뿜다니…… 저 녀석의 무공은 생각보다 더
엄청나구나.'
그가 미처 몸을 가다듬기도 전에 설일비는 슬쩍 그에게 날아들며 좌
수를 흔들었다.
고오오……
마치 주위의 공기가 압력에 짜부러지는 듯한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
어가며 왕방의 전신이 터질 듯한 기운에 휘말렸다.
바로 절세의 무영멸절장이 펼쳐진 것이다.
왕방은 사색이 된 채 사력을 다해 비룽사십팔방을 전개해 냈다.
파팍!
하나 비룡사십팔방은 주위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채 절반도 펼쳐지지
못했다.
꽝!
"크윽!"
왕방은 폭발할 듯한 강기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의 안색은 백지장처렁 핼쑥하게 변해 있었다.
설일비는 천천히 손을 거두어들이며 가볍게 포권을 했다.
"왕 대협께서 괜찮으시다면 우리의 겨룸은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좋
겠군요."
왕방은 어처구니가 없어 한동안 망연자실 서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절강성 제일의 고수로 군림하던 그가 정체 모를 청년에
게 불과 삼 초 만에 패하고 말았으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더구나
조금전의 상황으로 보아 상대가 만약 손속을 늦추지 않았더라면 왕방
은 그야말로 참담한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왕방은 얼굴을 실룩거리며 설일비를 응시하다가 땅이 꺼져라 탄식을
토해 냈다.
"노부가 패했네……"
군웅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창의 귀신이라고까지 불리던
왕방이 이토록 맥없이 물러설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황방이 설일비의 격장지계에 넘어가 너무 쉽게 흥분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설일비는 담담한 미소를 지은 채 중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천천히 비
무대를 내려갔다.
이어 분광신검 사혁과 육합검객 임원량이 비무대 위에 모습을 나타내
었다.
두 사람 모두 사대검파 중의 하나인 점창과 화산, 양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이었기 때문에 이번의 격전 또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일전이 었다.
하나 결과는 너무봉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말았다.
이미 소패왕 언일곤과의 격전에서 너무 힘을 써버린 임원량은 제대로
실력 발휘도 해보지 못하고 사혁의 분광검에 패퇴한 것이다.
이제 이번 군웅대회의 우숭자는 설일비와 사혁의 결전에서 판가름나
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잠시의 휴식을 가진 후에 각기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군웅들은 이번에야말로 볼 만한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모두
들 눈을 빛냈다.
사혁은 키가 훤칠하고 턱에 삼각형의 수염을 기른 인물이었다.
그는 고동색 장포를 걸쳤는데, 그의 분광검은 장포 속에 숨겨져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잠복해 있었다.
그는 좀처럼 말이 없는 과묵한 성격이어서 설일비를 앞에 두고도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칼날처럼 예리한 시선으로 그를 뚫어
지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설일비 또한 이번에는 제법 진지해져서 항상 미소가 감돌던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사혁은 그가 이번 비무대회에서 만난 고수들 중에서 가장 강한 인물
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본 채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군웅들은 비무대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고 숨소리도 죽인 채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돌연,
스으으……
사혁의 비쩍 마른 몸이 흔들린다 싶은 순간,
번쩍!
눈을 부시게 하는 섬광이 그의 허리춤에서 폭사되어 나왔다.
그 섬광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설일비의 목덜미를 노리고 쏘아져 갔
다.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쾌속한 것이었다.
찰나 설일비의 머리가 뒤로 주르르 물러나더니 그의 몸이 빙글 회전
했다.
팟!
사혁의 살인적인 검광은 아슬아슬하게 설일비의 목을 비껴
지나갔다.
설일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양손을 열 십 자로 교차하여 흔
들어댔다.
고오오……
무영멸절장의 가공할 기운이 일어나며 사혁의 전신을 핍박해 갔다.
사혁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장세 속으로
몸을 던지며 연속적으로 십팔 검을 발출해 냈다.
파파파팟!
그것이야말로 점창파의 분광십팔수검의 최정화
인 분광추영인 것이다.
설일비는 상대의 놀라운 공세에 안색이 조금 변한 채 십자로 교차한
양손을 풀어 각기 상하로 움직이며 기이한 일장을 털어 냈다.
파아아아……
사혁의 분광검강과 설일비의 장세가 마주치며 듣기 거북한 소음이 일
어났다.
츠츠츠츠츳!
그것은 마치 쇠로 만든 철관이 땅바닥에 끌리는 듯한 음향이었
다.
동시에,
꽝!
비무대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엄청난 폭음이 일어났다.
"크윽!"
"으음……"
두 마디의 짤막한 신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 떨어졌다.
군웅들은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설일비는 왼쪽 가슴 부근의 옷자락이 길게 찢어져 맨살이 드러나 보
였다.
게다가 오른쪽 소맷자락도 잘려져 나가 팔뚝이 훤히 드러났는데 팔뚝
에는 가느다란 검상이 나 있어 핏방울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사혁은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이 멀정했다
'아…… 사혁이 이겼구나!'
이런 생각이 군웅들의 머리를 파고드는 순간,
"울컥!"
미동도 않고 우뚝서 있던 사혁이 별안간 시커먼 피를 한사발이나 토
하며 몸을 휘청거렸다. 그와 함께 그의 안색은 시체처럼 푸르죽죽하
게 변해 있었다. 그는 비록 설일비의 공세를 막아 냈으나 무영멸절장
의 가공할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심각한 내상을 당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설일비의 상처는 피육이 긁힌 것에 불과하니 누가
보아도 승패는 명약관화한 일이 아닌가!
"우아…… 설일비가 이겼다!"
"설 공자 만세!"
비무대가 떠나갈 듯 우렁찬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일비는 언제 다쳤냐는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린 채 군웅들
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우와아……!"
군웅들의 환호성 소리가 더욱 커졌다.
낙일립이 비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설일비에게 다가왔다.
"설 대협, 축하하오. 처음 본 순간부터 설 대협이 보통 인물이 아님
을 알았으나 지 정도일 줄은 노부도 몰랐소이다."
설일비도 답례하며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 구엽인삼 반 뿌리와 상심검은 제 것이 되었군요."
낙일립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야 물론이오. 하지만 본 장에 가입하겨야만 검을 드릴 수가 있소.
만약 본 장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구엽인삼과 명주 열 알, 그리
고 황금 백 냥을 상금으로 드리겠소."
설일비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물었다.
"귀장에 가입한다면 저는 총순찰이 되는 겁니까?"
"그렇소."
"총순찰의 지위는 성심장 내에서 어느 정도입니까?"
낙일립은 그가 성심장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고 확신하는 듯 환히 웃
으며 말했다.
"총순찰의 지위는 본 장에서 세 번째요. 위로는 오직 두 분 장주님과
대공자님만이 계실 뿐이오."
설일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장주님의 아래라는 건 이해하겠는데 대공자는 또 어느 분이시
오?"
"허허…… 두 분 장주님께는 세 분의 제자 분이 계신데 대공자님은
그 중의 수제자이시오. 본 장예서는 부장주가 없는 대신 그
분이 부장주의 직책을 담당하고 계시오."
설일비가 다시 물었다.
"그럼 총순찰과 수석총관의 차이는 어떻게 됩니까?"
"허허…… 노부와 총순찰 중 누가 더 높은가 하는 거요? 두 지위는
업무가 서로 달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상호 보완의 관계요.
즉 총수찰은 본 장의 외적인 일을 총괄하는 책임자이고, 본 총
관은 본 장의 내부 일을 담당하는 책임자요."
낙일립은 의미 심장한 눈으로 설일비를 바라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
다.
"이제 설 대협의 마음은 결정되었으리라 믿소. 어떻소. 본 장과 함께
무림대의를 위해 일해 볼 의향은 없소?"
설일비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한데 바로 그때였다.
"잠깐만!"
대 아래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한 노인이 은색 수염을 휘날
리며 이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요~~
즐감~1
출석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입니다
웬 반전이!
ㅈㄷㄱ~~~~~```````````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잘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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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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