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먼 곳으로 눈을 돌리다 퍼뜩 정신차려 발아래 내려다 보니
수천 수백년의 세월을 지켜온 그가 말없이 곁에서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범어사는 백두대간의 연봉들이 남해로 달려서 끝 닿은 곳 해발 801m의 금정산 자락이 동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면서 계명봉과 만나는두 산세가 서로 맞부딪히며 이루는 Y자형 계류사이 넓은 경사대지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화엄 10찰의 하나로 창건한 범어사는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승군을 조직하여 금정산 방어등의 힘든 일을 해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선찰대본산으로 명당에 터를 세운 만큼이나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다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1천수백년의 세월을 지켜오는 동안 수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하면서 그들의 얼이 깃들어 이 절만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것도, 바람이 부는 것도, 눈이 오는 것도, 물이 흐르는 것도 이 곳에서는 모두가 법문입니다.
범어사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아주는 것이 주변의 바위를 다음어 계곡 위에 걸어둔 다리 어산교입니다. 속세와 사찰을 경계짓는 다리를 지나면 하늘로 향하여 양팔벌려 아름답게 치솟아 있는 멋진 노송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정팔경 중 제 1경인 어산노송입니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서로 기대고 있는 노송이 아름다워 담아봤습니다.
이 문은 범어사의 정식 출입문인 일주문입니다.
이 것은 문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사찰 경내에 들어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건물로 온갖 진리가 하나로 돌아간다는 일승법에 근거를 둡니다.
일반적으로 기둥이 2개 있는 한 칸짜리 일주문이 아니라 4개의 기둥이 일렬로 늘어선 3칸의 일주문입니다. 가운데 칸에는 조계문이란 편액이 걸려있고 좌우 칸에는 각각 '금정산범어사'와 '선찰대본산'이라 편액하였는데 이는 범어사가 신라시대에는 화엄종찰로서 역할을 다했지만 그 뒤로는 조계선종의 원류로서 선종사찰임을 나타내는 현판입니다.
일주문의 건립연대는 광해군 6년으로 묘전스님이 대웅전을 비롯한 수많은 불전 요사를 중건할 때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흘림 둥근 돌 기둥위에 낮은 나무기둥을 다시 세우고 다시 삼각형태의 나무를 가위처럼 양쪽으로 박아서 무거운 지붕을 받치는데 손색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천왕문은 삼문 가운데 두번째 문으로 13단의 높은 돌계단을 오르는 축대 위에 4구의 사천왕상을 모신 건물입니다. 사천왕은 지상의 가장 가까운 하늘에 있으면서 동서남북 사방을 담당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장려하고 악을 막는 기능을 가진 불법수호신입니다.
오래토록 사천왕의 탱화를 그려 모셔두었다가 최근에 전남 보림사의 사천왕을 모본으로 하여 사천왕상을 조상하여 모셨다고 합니다.
삼문 가운데 세번째 문인 불이문입니다. 본래 진리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강조한 것이지요.
좌우기둥에는 '신광불매만고휘유( 神光不昧萬古煇猷)'와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라는 동산선사가 쓴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신광의 밝고 오묘한 뜻을 알기 위해서 이 문을 들어서면서 부터는 알음알이를 배척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도리는 세상의 지식이나 알음알이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때문에 이 문안에서의 갖추어야 할 마음 자세를 주련의 글귀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기와 지붕에는 아직도 묵은 나뭇잎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과 대숲이 이루는 조화가 아름답습니다. 수도자들이 일심으로 부처님께 나아가도록 주위 환경을 꾸며놓은 것 같습니다.
울창한 대나무 숲이 아름답습니다. 오로지 한 생각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듯합니다.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도 마음을 가다듬게 만듭니다.
동산스님은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대나무가 부딪히는소리를 듣고 대각을 얻었다고 하십니다.
범어사의 3문을 통과하면 높이 솟은 보제루가 바로 눈앞에 와 닿습니다. 급준한 경사 대지를 꺽어 6~7m 높이의 돌계단을 올라야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문 보제루 앞에 서게 됩니다. 보통의 절 경우처럼 문루(門褸)의 루하(樓下)기둥 사이로 진입시키지 않고 건물 좌우로 우회시킴으로써 중정(中庭)의 내밀(內密)스러움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보제루에는 동산 스님이 쓴 '금강계단'이라는 작은 글의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제(普濟)의 뜻에 부합되게 이 건물에서는 예불과 법요식이 거행됩니다.
보제루 왼쪽에 있는 심검당입니다.
보제루 오른쪽에는 비로전과 미륵전이 배치되어있습니다.
1929년의 범어사 전경사진을 보면 종루는 원래 대웅전 석단 아래에 있었는데 옮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높이가 4m입니다. 원래는 탑 주위에 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삼층석탑의 모습입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석등입니다 원래 미륵전 앞에 있었던 것을 일제 때 종루가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거대한 석계와 웅장한 대웅전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모든 비례들이 맞지않게 보인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건 마찬가진가봅니다. 다 제자리에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가봅니다.
창사때부터 건립된 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고 1614년 묘전스님등이 중창하여 계속 수리하고 보수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대웅전은 정면과 측면이 3칸식으로 다포식 공포를 짜고 맞배지붕을 들인 큰 규모의 불전입니다.
기단과 돌계단은 초창기 때 그대로라고 합니다. 기단의 면석에는 동백나무잎을 부조하였습니다. 징 모양의 금고도 보입니다.
5단 계단의 소맷돌은 달팽이집처럼 공글려서 얼굴 돌에는 동백꽃을 초각하였습니다.
범어사 대웅전의 내부모습입니다.
불단 위 닫집 또한 용과 봉황, 그리고 서조(상서로운 새)를 조각한 화려한 구성으로 천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천장에는 보상화문과 연화문 등을 조각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법당의 불상은 목조삼존불 좌상입니다. 본존불인 석가여래와 좌협시불인 미륵보살과 우협시불인 가라보살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즉 현세불인 석가여래와 미래불인 미륵불, 과거불인 제화갈라 보살이 삼세불이 봉안되어 있어 일반적인 봉안 양식인 석가여래에 좌우협시불인 문수, 보현보살인 경우와 다른 형태입니다.
내부벽에도 아미삼존과 석가삼존상 등을 대칭으로 그려 화려함과 장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천장은 경사진 빗반자를 올리고 우물반자틀의 종다리 등에는
보상화문과 연화문 등을 조각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대웅전의 외벽화입니다. 어딘가로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호랑이의 모습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습니다.
호랑이를 보니 문득 낙안선사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낙안선사는 일직이 범어사에 출가해서, 보시행을 발원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재물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남김없이 보시하였습니다. 일생을 남에게 베푸는 일로 일관하다가 마지막으로 늙은 육신까지 보시하고자 범어사 뒷산 숲속에서 3일 동안을 헤메다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보시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도 이 보잘 것 없는 육신에 끄달리며 살고 있는데 선사의 보시행에 지심으로 고개 숙여 3배 올립니다.
관음전은 불교의 자비사상을 상징하는 관세음 보살을 모신 법당입니다.
대웅전을 바라보아 오른쪽에 관음전을 두고 있습니다. 관음전은 원래 대웅전 바로 왼쪽에 있었으나 지금의 자리에 있던 옛 금어선원(미륵전 뒤쪽 선방)으로 옮겨서 대웅전 오른쪽에 자리잡게 되었답니다.
지장전은 지옥중생의 구제를 서언한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법당입니다.
관음의 신앙으로써 현세의 복락을 추구하고 지장의 신앙으로써 저승의 길을 밝힌다는 불교원리에 따라 대웅전의 좌우를 협시하는 식으로 왼쪽에는 지장전을 세웠습니다.
이 건물은 왼쪽으로부터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을 한 지붕에 연이어 수용한 점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랜 단청의 모습이 마치 민화를 보는 듯 아주 인상적입니다. 범어사의 단청은 대부분이 색이 바래었지만 그 속에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짙은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나한전에는 석가삼존과 16나한을 안치하였습니다.
독성전은 나반존자를 모시는 곳입니다.
독성전 문 얼굴을 다른 부분과는 달리 반원형 재목을 써서 아치형으로 처리한 건축법이 눈길을 끕니다.
기록에는 1613년에 묘전화상이 나한전을 창건하고 1705년 명학스님이 팔상전을 중건했다고 하므로 원래는이들 세 건물이 별도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이 건물이 언제 함께 지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팔상전에는 삼존소상과 팔상탱을 봉안하였습니다.
위 건물의 오른편에는 산신각이 있습니다. 산신각 아래에는 엄청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비가 샐 틈도 없이 붙어있는 지붕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저는 이 길이 범어사의 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좁다란 길 양옆으로 낮은 돌담과 그 위로 작은 담쟁이들이 노닐고 앞에서 보면 높아 보이는 지붕도 이 길로 걸어가면 낮게 보여 더 정겹기만 합니다.
마치 나막신 같이 생겼지요? 한 바퀴 휘 돌고 맑은 물 한 잔을 들이켜봅니다. 비록 겉모습을 보았지만 마음은 평온하였습니다.
선각자는 지혜로운 의사와 같다. 증상에 따라 약을 주어 우리의 마음병을 낫게 하기 때문이다. 선각자는 뱃사공과 같다. 이 생사의 바다에서 우리를 저 언덕으로 건네주기 때문이다. [열반경]
담쟁이들이 돌담을 독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싱그럽습니다.
아치형의 길에 등을 참 예쁘게 매달아 놓았습니다.
너 자신을 등불 삼고 너 자신을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아함경]
계명암에서 바라본 범어사의 전경입니다.
몇 번을 다녀와도 빠뜨린 곳이 있고 갈 때마다 마음에 와 닿는 것도 다릅니다.
다음엔 고당봉도 오르고 금샘, 마애미륵불 입상을 보러 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