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거지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개방의 제자들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많던 개방의 거지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이곳이 분명히 개방의 총타로 사용되던 장소가 맞나--?"
"여기가 맞아."
노인들의 대화는 잠시 후 중단되었다.
"탁가야, 당장 안 나오면 네 집 때려부순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입을 열고 있지 않던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진청의 입에서 불문의 사자후와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반쯤 허물어져 가던 관제묘라 불리는 건물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면서 소리쳤다.
"조용히 사는 늙은이를 왜 찾아와서 귀찮게 구는 거냐? 이 불한당아!"
관제묘는 방금의 고함 때문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고 먼지가 흩날렸다. 관제묘 이곳 저곳에 모여 있던 거지들은 모두가 관제묘 주위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무림인들의 싸움이 벌어진 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고 괜히 어물거리다간 눈먼 칼에 맞아 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텅 빈 관제묘 주변에는 이제 여섯명의 노인만이 남게 되었다.
다섯의 노인은 자신들의 한가운데 서 있는 봉두난발에 때가 시커멓게 타서 검게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거렁뱅이 늙은이를 바라보았다.
"살아 있긴 살아 있었구만---."
남궁진호가 개방의 방주라는 신분을 지닌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놈들도 살아 있는데 나라고 살아 있지 말라는 법 있냐?"
"그건 그거고, 우리가 여기 온 건 말이다---."
"내 제자 왕질악이 운룡회의 일원이냐고? 글쎄 그 놈 얼굴 본지 십 년도 넘어서 몰라. 나한테 물어봐도 나올 건 먼지 밖에 없다."
"살아 있기는 한 거냐?"
"글세 모른대도! 뭘 알아야 대답을 해주던 말던 하지!"
"슬슬 개방도 이제 활동을 시작할 때가 안 되었냐? 나라가 바뀌고 왕조가 변해도 무림과는 관계없는 일 아니냐?"
"나도 이제 슬슬 생각하고 있다. 반청복명을 외치면서 많은 수의 제자들이 방을 떠났고 또 많은 제자들이 헛되이 죽음을 당했지. 명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제자들도 이제는 깨달아야 할텐데---."
"끄응, 시작부터 헛걸음이구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탁가야 그 왕질악이 최후에 모습을 드러낸 곳이 어디냐?"
"북풍표국으로 가봐. 그곳에서 모습을 보였다고 했으니---."
"그곳은 폐허로 변했다고 하던데--?"
"흔적을 찾으려면 그곳부터 시작해야 될게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그놈이 운룡회와 큰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
"알았다."
다른 세가의 가주들은 입을 다물고 남궁진호와 취문설개의 대화를 듣기만 하다 몸을 날렸다. 비록 같은 정파라고는 하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이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고 그 중에서도 개방과 사이가 좋은 가문은 어느 곳도 없었다.
인사도 없이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떠난 후 그 자리에 남은 개방의 방주 취문설개는 이를 갈며 생각했다.
'내 제자지만 정말 악랄한 놈이야. 타구봉법과 강룡십팔장의 구결을 알아내려고 사부를 암습하다니---. 이제 힘을 되찾았으니 개방의 봉문을 풀어야겠다. 저놈들이 찾아내서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내서 죽여야지. 사문의 반도를 처리하는 일 또한 나의 일이니--. 그래 죽었다고 소문나 있기는 하지만---. 살아 있거라, 살아 있어야 내가 동생의 복수를 할 수 있으니--.'
취문설개는 제자였던 왕질악의 암습으로 자기 대신 죽어간 동생을 생각하며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잠들어 있던 무림의 세력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개방 역시 이제 활동을 다시 시작할 때였다.
소주라 불리는 땅에 도착할 때까지 소구는 마차 안에서 잠만 실컷 퍼질러 잘 수 있었다. 소구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안에서 잠을 자기에 좋게 만든 마차와 열명의 무사들까지 딸려보낸 정옥이었다. 정옥은 될 수 있으면 처남인 방소구가 백초당에 늦게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도련님, 소주에 도착했습니다."
마부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상체를 일으켜 세운 소구가 물었다.
"춘풍루에 도착한 것이냐?"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부석에 앉아 있는 두 하인 대신 다른 사람의 대답이 들려왔다.
"공자, 소인은 춘풍루의 집사 일을 맡고 있는 정연이라 합니다. 공자를 위해 연회와 음식을 준비했으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마차의 문이 열리면서 소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소구였지만, 정연은 나오려는 하품을 억지로 참고 말했다.
"이쪽으로 어서 드시지요. 이미 백초당에서 연락을 받고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그 절 이름이 뭐더라? 난 만나 볼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산사의 법공 대사와는 내일 만나시면 됩니다. 이미 약속이 되어 있으니--."
말을 듣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소구를 보려고 몰려들고 있었다.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 소구는 건물 안으로 서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춘풍루의 기녀들은 한껏 몸단장을 하기에 바빴다. 오늘은 춘풍루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큰 부자이면서 또 천하제일의 고수라고 소문난 사람이 머무르게 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그의 눈에 들면 그녀들의 남은 인생은 활짝 피게 될 것이다.
정연이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서면서 소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음식들이었다. 온갖 요리들이 가득 올려져 있는 음식 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 좌우에는 곱게 치장한 기녀들이 곁에 바싹 달라붙었다.
소구는 눈을 깜박이며 건너편에 앉아 있는 정연을 쳐다보았다.
"공자님의 시중을 들기 위해 춘풍루에서 제일 예쁜 아이들을 골랐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아이들로 바꾸지요."
"아--아니, 됐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이 방에서 그 아이들의 시중을 받으며 쉬시고 내일 한산사에 같이 가지요."
"알았소."
가볍게 목례하고 정연이 그 방을 물러나자 이제 방에는 두명의 기녀와 소구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후 소구는 한 기녀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고, 다른 기녀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날라다 입에다 먹여주었다. 소구로서는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천생의 게으름뱅이인 소구는 움직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모처럼 마음껏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에 그는 정말로 꼼짝하지 않고 기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누워서 음식을 받아 먹었다.
꽤 넓은 방이었다. 술과 음식이 놓여 있는 음식상이 방 한 가운데 놓여있고 좌우에는 그의 시중을 들어주는 기녀가 있었지만 또 다른 기녀들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러 가지 악기를 들고 온 여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다시 한 명의 기녀가 들어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춘풍루의 정연은 현재의 청방의 방주인 신기서생 정옥에게서 단단히 말을 들은 상태였다.
'알았나? 처남이 한동안은 춘풍루에서 움직이기 싫어할 정도로 처남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 처남이 하루라도 더 춘풍루에서 머물게 하면 너에게 떨어지는 것이 늘어날 것이다.'
백초당에 불려가서 백초당의 당주이자 청방의 방주라는 신분을 지닌 신기서생에게 들은 말이었다. 정연은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돌부처라도 그녀가 들어갔으니---, 한동안은 이곳에서 떠나기 싫어질 거야."
정연은 지금 소구가 머물고 있는 방에 들여보낸 한 여자를 생각하는 순간 아랫도리가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로 남자를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여자였다. 그녀가 살던 곳은 비단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쿠차라는 장소였지만 정연도 정확히 쿠차가 어디인지는 몰랐다. 다만 그녀 라리슈카의 말을 듣고 그녀가 살던 곳의 이름이 쿠차라는 것만을 알뿐이었다.
음악에 맞춰서 엉덩이를 흔드는 이상한 춤을 처음 보는 소구였다. 방의 한쪽에 놓여진 커다란 청동 향로에서 흘러나오는 분홍빛 연기와 그것에서 나는 냄새 또한 소구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지만 그 위에 머리카락이 금색인 것이 중원 여인의 것이 아니었다. 이국의 여자가 이국의 춤을 추는 것을 보면서 소구는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이런 느낌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소구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소구는 소리쳤다.
"그만!"
악기를 연주하던 여자들도 손을 멈추고 그의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어주는 기녀들도 동작을 멈추고 두려운 눈으로 소구를 바라보았다. 소구는 붉게 변한 얼굴로 춤을 추던 이국의 여자를 손짓했다.
"너만 남고 모두 물러가라."
소구의 가벼운 손짓에 방안에 가득 차 있던 미혼향도 모두 향로로 빨려 들어갔다. 라리슈카는 두려운 눈으로 조심스럽게 소구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른 기녀들은 모두 방에서 물러나고 이제 방에는 그녀와 소구뿐이었다.
"이리 가까이 와."
"공자님, 제 춤이 마음에 안 드셨나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전쟁포로로 붙잡혀서 기생으로 팔려온 그녀였다. 여기서 죽는다해도 그녀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아니라----, 너의 춤을 보면서 아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처음 겪는 일이라-- 혼란스러워서 그래."
그녀는 바싹 긴장해서 다시 물었다.
"기녀원에는 처음이신가요?"
"그래, 처음이야. 도대체 여기에서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잠시 나갔다 들어와도 되겠습니까?"
"?"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걸 보시면 이곳을 찾아오는 남자들과 기녀들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바로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얼른 갖다 와라."
라리슈카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한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기녀원으로 팔려오면서 그녀에게 주어진 책이었다. [천지음양교환대락부]라고 하는 오래된 방중술 책이었다. 정사를 함에 있어서의 기교와 체위를 많은 그림과 노골적인 묘사로 설명하고 있는 당 나라 때의 책이었다.
소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책과 옆에 앉아 있는 라리슈카라는 이름의 이국의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게 뭐 하는 거냐?"
"남녀간의 정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책이지요."
"남자하고 여자하고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은가?"
"사람의 인생 중에서 가장 큰 쾌락이 바로 색(色)이라고도 하지요."
"아무하고나 이렇게 하는 것인가?"
"아니지요. 보통은 결혼한 부부사이의 은밀한 일이지요. 그러나 지금 계신 곳은 기녀원이고 기녀들은 몸을 파는 여자들입니다. 아내를 대신해서 남자에게 봉사하고 돈을 버는 직업이 바로 기녀라는 직업이지요."
소구는 침묵하고 한 장 한 장 책을 천천히 넘기고, 라리슈카는 옆에 이부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 무엇 하는 건가?"
"제가 받은 명령은 도련님을 시중드는 일이지요. 오늘 저녁은 소녀와 주무셔야 합니다."
새벽이 되어서 소구는 자신의 옆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라리슈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느냐?"
"기녀가 되고 싶은 여자는 아무도 없지요. 기녀원에는 수양어미라는 여자가 있어서 늘 감시를 당하고, 술자리에 불려나가 억지 웃음을 팔고 이 남자 저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생활입니다. 남자들은 많은 여자들과 같이 잠을 자면 자랑거리일지 모르지만 여자한테는 엄청난 흉이지요. 기녀원에 붙잡혀서 늙어서 손님이 찾지 않을 때까지 일하다가 거리에서 쓸쓸히 죽어 가는 것이 대부분 기녀의 삶입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 몸값을 내주고 기루에서 빼내 주는 남자를 만나면 그 기녀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지요. 기녀가 기루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길 외에는 없어요. 그리고 그런 여자들도 거의 끝이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나이가 좀 들면 남자에게 버림받는 것이 보통이라고 하니---."
"그래?"
"여러 남자와 성 관계를 맺은 여자를 남자들은 존중해 주지 않지요. 그래서 기녀라고 불리는 여자는 천하게 여겨지는 겁니다. 기루도 홍루(紅樓)와 청루(靑樓)가 있어서 홍루는 술과 음악과 몸을 팔지만, 청루는 술과 음악과 가무만을 팔아서 청루의 기녀들은 그래도 조금은 대접을 받지만요---."
"네 덕분에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는구나---."
"여자에 대해 물어보실 것 있으면 더 물어보세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라리슈카는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귀공자가 서른이 넘도록 총각이라는 사실과 여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밤새 보통의 여자라면 결코 대답할 수 없고 설명해 줄 수 질문을 들어야 했다. 보통의 여자라면 따귀를 맞기 딱 알맞은 질문들이었지만 기녀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그녀는 부끄러움 없이 소구의 곤란한 질문에 자세하게 대답해 줄 수 있었다.
"--그렇군. 그래서 그때 누나하고 매형하고 알몸으로 엉켜 있는 것이었군."
"남녀가 정사를 나누는 일은 둘만의 은밀한 일이니,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 그래서--- , 누나가 왜 그렇게 화가 난 것인지 이제 알겠다."
"방중술에 관한 책이 또 있는데 더 갖다 드릴까요?"
"아니 이제 됐다.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 네가 내 첫 여자가 되는 것이겠지? 정사를 나눈 여자는 네가 처음이니---."
"예---."
"나중에 널 내 집으로 데려가마. 그럼 넌 내 세 번 째 첩이 되는건가--?"
"네? 이미 첩이 둘이나 있는데 아직까지 정사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부인은 어쩌구요?"
"부인은 없고--, 어머니가 정해 준 첩이 둘이 있어. 그 아이들은 몸이 너무 차가워서 한번도 너하고 한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소구는 잠을 자기 시작했고 라리슈카는 천한 기녀원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으로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를 대리고 가 주겠다고 하는 남자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인데다가 무척이나 상냥하고 젊은 남자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 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