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6bqGBGAQC8M?si=qkrK4ie4VbkcybxX
BRUCKNER: Symphony No. 5 in B flat major / Furtwängler · Berliner Philharmoniker
브루크너 교향곡 5번 Bb 장조
브루크너의 제5교향곡은 제4교향곡의 제1고가 끝난 수개월 후인 1875년 2월에 착수되어 이듬해 76년 5월에 일단 완성을 보았지만, 그 이듬해에는 제1악장과 제2악장에 약간의 수정을 했고 1878년 1월에 최종적으로 완성을 보았다.
1878년 완성한 제5번은 브루크너 교향곡 중 특히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으로 <가톨릭적>, <코랄풍> 또는 <중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치밀한 대위법적 전개에 장중하고 호화로운 울림을 가진 이 작품은 제1악장 서두의 기본 동기가 전체를 통일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연주되기전까지는 꽤 많은 세월이 걸려 완성 후 15년 이상이나 지난 이곡이 처음으로 연주된 것은 1894년 4월인데, 이때 지휘를 담당한 프란츠 샬크는 무자비할 정도로 브루크너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뜯어고쳐 브루크너의 냄세가 나지 않는 이상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1878년인 시점에서 결정고가 되어있었던 셈이다. 초연은 당시 중병을 앓고 있던 브루크너로부터 모든 것을 위임 받았다고 말한 뢰베와, 샬크에 의하여 대폭적인 개정이나 커트, 또는 악기 편성의 변경 등이 시행된 형태로 열렸다.
브루크너는 병으로 인하여 그 초연을 들을 수 없었으나, 일설에 의하면 페르디난트 뢰베, 프란츠와 요셉 샬크 형제의 개정에 무언의 항의를 했다고 한다. 또한 브루크너는 미완성인 제9교향곡을 제외하고는 자작인 교향곡을 실제로 듣지 못한 것은 이 제5교향곡 뿐이었다.
그 후 1896년의 출판 때에도 뢰베와 샬크형제가 손댄 개정판으로 하였다. 브루크너의 원전을 바탕 삼은 하스판(원전판)이 나타나는 것은 1939년이었고, 또한 1951년에는 새로운 자료가 추가된 노바크판도 출판되어 오늘날에는 그중 어느 것을 가지고 연주되는 것이 보통인데, 하스판과 노바크판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면, 이 제5교향곡에는 제3교향곡의 [바그너]라는 별명, 또는 제4교향곡에서 작곡자 자신이 붙인 [로만티크]라는 표제처럼 일반적은 아니지만 [중세적]이라든지 [카톨릭적], [코랄풍], 또는 [신앙교향곡]등으로 불리우는 경우가 있다. 브루크너 자신은 이것을 [환상적]이라고 불렀다고 하지만 모두 이 곡의 특징에서 빗나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즉, 그 특징인 대위법 기법에 원숙미가 첨가되어 복잡하기보다는 간소하고 소박함을 느끼게 하는 점은 바로크적이라 하기보다는 중세적일 것 같고, 아주 브루크너적인 코랄풍 선율이 효과적인 악센트가 되거나 중요한 소재가 되어있는 곳은 [코랄풍]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주제의 조형이 한층 교묘해져서 브루크너로서는 보기 드물게 제1악장과 제4악장에 서주부를 두고, 게다가 제1악장 서주부 첫머리의 동기를 순환형식적으로 사용하여 전체 악장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하나의 큰 건축물같은 대규모적 양식을 나타내는 동시에 타 교향곡보다도 더욱 종교성이 강한 점은 [카톨릭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신앙교향곡]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전체적으로 꽤 수수한 음악이라 하겠으나 이상과 같은 특징과 함께 이 곡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끝악장을 향하여 유유히 고조되어가는 모양도 하나의 매력일 것이다.
카라얀/베를린 PO (DG 76)은 맑은 음색으로 강약의 큰 진폭 속에 시종 긴박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치밀한 연주다. 스케일 큰 웅장한 부분에서 열정의 고조도 좋지만 제2악장을 비롯 약음에서 중세적 신비감이 감도는 표현이 특히 뛰어나다.
[브루크너 교향곡& 페르디난트 뢰베가 끼친 영향?]
https://youtu.be/TMX9tAmiTHU?si=ZlR_4Gy0bIQWUMfG
Bruckner Symphony No.5 in B flat major. Giuseppe Sinopoli , Conductor. Staatskapelle Dresden 오케스트라
페르디난트 뢰베 (Ferdinand Lowe, 1863.2.19~1925. 1.6.비인)
1872~1877년에 호락 피아노 학교 (Horak-Klavier schule)를 다녔고 1877~1881년에 비인학우협회 음악원에서 요제프닥스에게 피아노를, 안톤 브루크너에게 대위법을, 프란쯔 크렌에게 작곡을 배웠다. 1884~1896년에는 음악원에서 피아노 강사로 활동했으며, 1894년에는 성악연합의 합창학교 교장을, 1896~1989년에는 이 학교의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1897/98년에는 뮌헨 카임 오케스트라(Kaim Orchester<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1989/99년에는 비인궁정 오페라 극장에서 구스타프 말러 밑에서 지휘자로 일했다. 1900~1904에는 비인학우협회 음악원의 원장을 지냈으며, 1900~1925년에는 비인 콘체르트페어아인 오케스트라(Wiener Concerttverein Orchester<오늘날 비인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일했다. 25년 동안 고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재직하는 동안 뢰베는 고전적인 레파뚜리아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신작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27회의 초연과 70여회의 오스트리아 초연을 지휘하였으며, "신작 연주회(Novitenzerte)" 사이클을 통해서 R. 스트라우스와, 막스레거, 말러, 피쯔너(pFITZNER)슈미트,바르톡, 드뷔시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브루크너와 관련해서는 ,뢰베는 요제프 샬크와 함께 브루크너의 제자 및 추종자 집단의 대표적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1883년 부터 뢰베와 샬크는 브루크너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두 사람은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을 직접 피아노 2중주로 편곡하여, 비인 아카데미 바그너 협회의 내부 행사인 "음악의 밤" 연주회에서 연주하여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1884년 2월 27일 비인의 뵈젠도르퍼 홀(Bosendorfersaal)에서는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연주로나마 브루크너의 <7번교향곡>전악장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1894년 11월 29일일 뢰베는 브루크너<6번교향곡>의 1악장을 자신의 편곡으로 초연했으며, 그 전에 1890년 12월 28일에는 이 작품의 2악장 아다지오와 3악장 스케르쪼를 피아노 독주용 편곡판으로 선보였다.
1892년 7월7일 뢰베는 비인 국제 음악및 극 예술 박람회에서 브루크너의 < 교향 3번> 1889년 판을 지휘함으로써 지휘자로 정식 데뷔하였다. 1895년12월 18일에 그는 <5번 교향곡>의 부다페스트 초연을 지휘했다. 뮌헨에서도 뢰베는 브루크너의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렸다.1898년 2월 4일에 있었던 <5번 교향곡>의 성공적인 뮌헨 초연은 그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또 1898년 3월 1일에는 뮌헨 카임 오케스트라의 방문 공연의 일환으로 비인에서 열린연주회에서 이작품을 비인 초연했다. 덧붙이자면, 이 연주회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악 작품이 비인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연주회이기도 했는데 이때 연주된 말러의 작품은 교향곡 2번의 2악장이었다.
비인 콘체르트페어아인의 예술 감독을 지낼 당시에도 뢰베는 브루크너의 작품을 꾸준히 연주회 프로그램에 집어 넣음으로써 브루크너의 작품을 널리 알리려고 시도했다. 그는 1910/11년과 1923/24년에는 비인에서, 1911/12년에는 뮌헨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곡을 지휘했으며 1905년에는 뮌헨에서 최초의 "브루크너 축제"를 주관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그가 행한 업적 중 뛰어난 것은 1903년2월 11일에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을 비인에서 초연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페르디난트 뢰베가 별였던 역사적인"브루크너 운동"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그의 브루크너 교향곡 개정작업이다. 브루크너의 작품이 청중들로부터 "마땅히 돌아가야 할" -인정을 받도록 하기 위해 그는 브루크너의 작품을 뜯어고치는 일을 서슴치 않았으며, 브루크너의 작품에서 자신이 보기에 청중들이 이해하기 너무 어렵겠다 싶은 수 많은 패시지들을 좀더 매끈하게 만들든지 삭제해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는 4번 5번, 9번 교향곡의 이른바 <개정판(혹은 제1출판본)>을 만들어 냈다. 이런 뢰베를 브루크너는 "나의 베를리오즈"라고 불렸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이 주관한 브루크너 작품 비평판 전집출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편집자인 로버트 하스(Robeert Hass)와 알프레드 오렐 은 뢰베가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에 작곡가의 자필 원본에서 엄청나게 벗어나는 변경를 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뢰베의 개정 작업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음악학자 라인하르트 라우너(Reinhard Rauner)와 같이 이러한 하스와 오럴의 태도에 대해 "청중들에게 여러모로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브루크너의 작품들을 대다수 청중들의 취향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햇던 그 브루크너 제자의 이상주의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을 오해했다" 고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자신의 작품들을 처음 출판할때 사용된 브루크너의 자필 원보와는 현저하게 어긋나는 최종 교정 필사본이 사라진 일에 대해 그들이 책임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격렬한 음악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어쨌든 1930년대에 하스판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뢰베와 샬크의 "개정판"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브루크너를 연주하는 지휘자들에 의 사용되었왔던 만큼 그 영향- 혹은 잔재-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뢰베가 편집을 맡았던 브루크너 교향곡 피아노 편곡판은 다음과 같다.
3번.교향곡-피아노 연탄(요제프 샬크와 공동 편곡),1890년 래티히(Rattig)출판사에서 출간
4번.교향곡-피아노 연탄 1890년 구트만(Gutman)출판에서 출간1번 교향곡-피아노 연탄, 1893년 도블링어 (Doblinger)출판사에서 출간.
9번.교향곡-피아노 연탄,(요제프 샬크와 공동 편곡)1903년 도블링어 출판사에서 출간 / 피아노 독주용 판, 1904년 우니베어잘 에디찌온 (Universal Edition(ue))에서 출간
9번.교향곡&테 테움 합본 , 1911년 UE에서 출간/피아노 독주용 판, 1912년 UE에서 출간
글출처: 하늘바람꽃
https://youtu.be/RpvywQO0seg?si=CK1JlP7YFIeocwox
BRUCKNER Symphony No.5 in B-flat Major, 카라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