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많이 깁니다.
'너무 길어요' 같은 리플은 없었으면 하네요.
(에 긴 글 읽기 싫으신 분들은 미리 뒤로가기 눌러주십사...하고 쓰는겁니다)
---------------------------------------------------------------------------------
K리그의 팬은 유럽리그의 팬을
'유빠' , '개념없이 수준만 높아진 놈' 이라며 욕하고
유럽리그의 팬은 K리그 팬에게
'수준낮은 리그를 왜 보냐' , 'K리그는 변방의 리그다'
어느 축구 관련 사이트에서건 유럽리그 팬과 K리그 팬이 이렇게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유럽리그 팬은 욕 얻어먹기 일쑤고 K리그 팬 역시 조롱당하기 일쑵니다.
(사실, 전 둘 다 좋게 안봅니다. 뭣하러 싸우는지. 누가 먼저 시비를 걸든 말입니다.)
유럽리그 팬과 K리그 팬은 축구를 보는데 엄격한 차이점을 드러냅니다.
유럽리그 팬이 축구의 '경기력' 과 '수준' 을 기준으로 축구를 본다면
K리그 팬은 축구가 가지는 '팀에 대한 사랑' 이 가장 큰 잣대가 되죠.
그렇기에 재미있는 정도가 다른겁니다.
먼저 축구의 '경기력'과 '수준'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간혹 K리그 팬 중에
'야구 팬들을 봐라. MLB와 한국야구를 비교하지 않는다' 혹은
'농구 팬들을 봐라. NBA와 한국농구를 비교하지 않는다' 라고 합니다만...
축구에서만큼은 그런 잣대가 적용될 수 없습니다.
야구, 축구, 농구의 격차가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경기 진행 속도이기 때문이죠.
야구는 아시다시피 경기 진행 속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야구는 진행되지 않는 동안에도 충분히 집중할 수 있고(기록을 본다든지) 쉬는 시간도 매우 많습니다.
애초에 야구는 느긋하게 보는 운동이고, 경기 진행이 더디더라도 집중력이 쉽게 잃지않죠.
MLB와 한국 야구는 물론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경기 진행이 매우 느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사랑을 받고 있는 스포츠입니다.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안된다는거죠.
농구는 약간 다릅니다만...농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모두 진행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NBA와 한국 농구에서의 진행속도 역시 심하게 차이가 나지 않죠.
농구도 경기 진행이 더디다면 상당히 인기가 없을테지만 어딜가나 농구는 경기 진행이 빠르고
경기 진행 중간중간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가져 경기내내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축구는 다르죠. 경기내내 집중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집중력이 최고수준에서 유지되는 시간은 10분 정도라고 하는데요
축구는 야구나 농구와 달리 쉬는 시간이 많지 않기때문에 경기 진행이 상당히 오래 지속됩니다.
야구는 회가 끝나면 쉬고 농구는 4쿼터에 진행하는 데 반해 축구는 45분씩 단 한 번 쉬게되죠.
그러니, 흐름이 자주 끊기거나 패스가 연결되지 않으면 심심하고 재미없는 축구가 되는겁니다.
야구와 농구는 10분 정도 집중해서 보고 쉬는 시간 동안 잠깐 쉬고 다시 집중해서 보는 데 비해
축구는 3,40분간의 장기적인 집중력을 필요로하기 때문에 집중하기 어렵다는거죠.
왜, 시험 직전 쉬는 시간의 10분이 시험 한달 전에 3,40분보다 더 잘 집중되지 않습니까?
따라서, 카메라의 각도가 중요하고 경기력과 수준이 중요한겁니다.
유럽 축구팬이 모두가 세리에A, EPL, 프리메라리가의 수준, 경기력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세리에A는 인기가 없고 EPL은 인기가 많을까요?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경기 진행속도가 현격히 차이나고 카메라의 각도를 잘 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 축구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수비축구, 뻥축구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의 각도라든지 경기 진행속도라든지는 확실히 EPL이 뛰어납니다.
EPL은 경기의 흐름이 잘 끊기지 않고 빠르게 이어나가죠. 경기 흐름이 안 끊기는 맛이 재미가 있고요.
패스 전개 속도도 상당하고 한 번에 크게 찔러주는 패스가 많아 조금만 눈을 떼도
공격과 수비가 바뀌어 있습니다. K리그는 물론 세리에A 등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죠.
전 수비수여서 수비수들에 관심이 많기에 전 그런대로 세리에A를 즐겨보는데요.
사실 저같은 팬들이 몇이나 될까요? 수비수에도 관심 보내지 않기가 당연한건데?
EPL에 비해 느려터진 전개 속도의 축구를 전개하는데?
따라서 자연스럽게 EPL은 살아나고 세리에A는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관중수가 상당히 늘어나는 EPL에 반해 세리에A는 상당수 줄어들고 있고요.
자, 그럼 K리그로 돌아와봅시다.
EPL, 프리메라리가, 세리에A에 비해서 경기력, 수준이 뛰어날까요?
EPL, 프리메라리가, 세리에A에 비해서 진행속도가 더 빠를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K리그 팬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YES' 라는 대답은 하지 못할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K리그에는 K리그만에 재미가 있죠. 바로 '팀에 대한 애정' 입니다.
이것이 K리그팬과 유럽리그팬의 가장 큰 차이점이죠. 바로 팀에 애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지리적으로 팀과 동고동락하기 편하고 정서적으로 가깝게 다가오는 게 K리그 팀입니다.
(사실, 유럽리그의 팬이 K리그의 팬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도 자신이 사랑하는 팀을 갖는 것이고요.)
까놓고 말해 팀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K리그를 보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 아닌가요?
적어도 전 K리그팬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축구는 다양한 관점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K리그팬처럼 팀에 대한 애정으로 나의 팀을 응원하는 재미를 느낄수도 있고
유럽리그팬처럼 리그의 경기력, 수준 등을 고려하여 재미있는 축구를 통해 재미를 느낄수도 있고
K리그,유럽리그를 모두 보며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기도, 나의 팀을 응원하기도 할 수 있으며
저처럼 플레이를 통해 배워가며 재미를 느낄수도 있습니다.
축구 자체가 좋아 축구에 관련된 일은 모두 즐길수도 있고요.(사실 제가 이래요)
카페 내의 어떤 분(영표형이 슛하는 분이라고 말 못합니다)의 표현을 빌자면
'유럽 축구에만 빠진 가련한 분들' 이 유럽리그 팬인데요...
전 그 말 그대로 K리그팬에게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K리그에만 빠진 가련한 분들' 이라고요.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축구는 선택지가 상당히 넓습니다.
공부를 안 하고 시험본다고 해서 모두 3번만 찍을 필요없고 모두 1번만 찍을 필요없습니다.
이리저리 찍어가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축구죠. 축구는 시험지와 달리 5개의 선택만 있지 않습니다.
여러 개의 선택이 있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죠.
유럽리그 팬 또한 그렇습니다.
축구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만 애정을 가질 때는 더 더욱 즐거울 수 있습니다.
The Cops의 'You'll Never Walk Alone' 을 부르는 리버풀 팬들의 감정이나
에레디비지에의 팬들이 불러줬던 박지성 송을 부르는 PSV 팬들,
올드 트래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산시로, 누캄프, 앤필드 등의 경기장의 열기
그 모든 것을 'K리그를 사랑한다' 라는 단순한 소전제를 충족시킴으로써 느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유럽리그의 열정을 부러워하고 리그의 수준을 높게 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먼저 팀을 사랑하고 경기장을 찾아가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더이상 유럽리그를 동경하지 않아도 됩니다.
J리그를 보세요.
걔들이 축구를 잘합니까? K리그보다 뛰어나던가요? 경기력에서? 진행속도가?
아닙니다. 절대로 부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걔들은 사람많이와요. K리그보다 훨씬 더.
걔들이 축구를 많이 사랑해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자기의 지역을 사랑하고 팀을 사랑해서 그래요.
물론, 일본애들은 자기 지역을 더 사랑하는 애들이 많아요.
심심하면 출신을 물어보고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특징 등에도 많이 신경쓰죠.
하지만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죠. 단지 사랑하는 팀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유럽리그를 동경하지 않아도 K리그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뭐, 유럽리그만 본다면 절대로 이 재미 모를테지만 말입니다.
사실, 유럽리그팬과 K리그팬은 한걸음 차이입니다.
가까운 팀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축구 자체를 즐기느냐, 애정을 가지고 즐기느냐.
이것뿐이죠. 단지 이 한걸음을 떼는 것이 어려울뿐이지.
유럽리그팬을 K리그팬으로 만들기위해선
승강제 도입, K리그 팀들의 재미있는 공격축구 구사, 카메라 각도, 전후기리그 폐지 등이 필요하고
K리그팬을 유럽리그팬으로 만들기위해선
팀에 대한 애정에서 한발짝 물러나 축구 자체로도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가 필요하겠죠.
딱히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으르렁대며 싸우기 전에 자기를 먼저 돌아보고 바꾸면..어떨가 하네요.
한발짝만 물러나면 패스 코스가 달라지는 축구처럼 말입니다.
------------------------------------------------------------------------------------
전 중계사정상 상암을 연고로 하는 팀의 경기를 많이 봤고
EPL, 세리에A, 프리메라리가 가리지 않고 보는 스타일입니다.
진짜 서울팀의 팬이 될 '예정' 이고요.
좀 주제넘게 길게 써봤습니다만...무플만 아니면 좋겠군요. 시간 아까워서.
첫댓글 상암을 연고로 하는 '그 팀'에 저는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진짜 서울팀의 팬이될 예정이라니.. 지금 이 팀은 가짜란 말인가요. 이렇게 축구를 사랑하시는 분이 그런식으로 선을 갈라놓으신다면 어느쪽도 잘될게 없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연고이전 한 팀에 전혀 정이 안 가서 말입니다. 그 팀이 가짜라는 소리도 안했고요
글 정말 잘쓰셨네요. 공감합니다.
쵝오!!! 동감이네요 ㅎㅎ k리그 팬되기전까진 맨유에 박지성갔다고 작년에 많이 봤는데 이번년도에 관심없어요 ㅎ 왜냐면 수원경기를 보는게 더 재밌거든요 ㅎㅎ
저도 마찬가지입니다..저는 뭐 맨유팬은 아니었지만 수원경기보다가 지금은 수원팬 나아가 K리그팬이 되었지요..
좋은 글입니다...100% 공감합니다....여기 있는 분들 대부분은 축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축구를 매개로 팍팍한 일상 잠시 벗어나 즐기는 것뿐인데 자기 취향 우월하고 남의 취향 비루하다고 소리내는 것 우스운 것 아니겠습니까...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축구를 즐겼으면 합니다.
일단 좋은글이고 축구자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묻어나는 글이군요. 이런 성숙된 의식이 많이 퍼져야 할텐데...그리고 문득 생각이 드는건. 만약 박지성과 이영표가 네덜란드에서 이탈리아로 무대를 옮겼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쎄리애가 인기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스페인이야 워낙 바르샤와 레알의 팬층이 두텁기때문에 그렇지만...이런게 다음베스트 발언대 같은데에 뽑혀서 많은사람들이 봐야되는데.맨날 이상한것만 뽑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