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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해병정신으로 꿈을 향해 달리다
날아라 마린보이 : 야생마~린 생생 리포트!/홍보마린의 스토킹
패럴림픽(Paralympics)이라는 국제 경기대회가 있다.
장애인 올림픽 대회로 불리는 이 대회는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올림픽 개최 국가에서 올림픽 폐막 후 10일간 개최된다.
화려한 스타 선수들의 무대인 올림픽의 뒤에서 조용하지만 묵묵하게 장애인 선수들의 땀과 열정으로
유유히 맥을 이어오는 패럴림픽은 최근 장애인 인권과 처우 향상과 더불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부터 패럴림픽에 대한 매체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메달을 목에 걸고 양손을 흔드는 선수.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탁구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한 해병 473기.
대한민국 장애인 탁구 국가대표 김경묵 선수다.
해병 출신의 국가대표. 장애를 극복하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일반인이 아닌 장애인이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을 안고 그를 만나러 강동구 중앙 보훈병원을 찾았다.
Q1.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 너무 반갑네요.
해병대 근무는 어디서 몇기로 하셨나요?
A1. 83년에 입대한 해병 473기에요. 김포 전류리에서 보병으로 경계근무를 했었죠.
Q2. 군 복무중에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A2. 싸우다 다친것도 아니고 창피한 이야기인데..
여느날 처럼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중이었어요.
서치라이트가 약간 문제가 생겨서 살펴보러 나갔는데 전선 줄에 걸려서 아래로 떨어졌어요.
하필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에 경추를 다쳐서 사지마비가 왔죠.
팔은 열심히 재활해서 움직일 수가 있는데, 손가락은 못 움직이고, 다리도 휠체어를 타요.
탁구는 라켓을 손에 붕대로 묶어서 치죠.
Q3. 창피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상생활이나 군복무 중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또 일어나기도 하는 사고들입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낸 선배님의 이야기가 큰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럼.. 사고 후 수술하고 제대하셨겠군요?
A3. 수도통합병원에서 수술하고 제대했죠. 그리고 바로 보훈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구요.
결혼하면서 병원 밖에 집을 구하고 살기 시작했죠.
그러고보니 운동도 보훈병원에서 시작했네요.
다치기 전에는 운동도 딱히 한 것이 없었는데.
Q4. 선배님의 인생을 바꾼 탁구를 이곳에서 접하셨군요? 입문하게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A4. 그렇죠. 몸 다치고 희망을 놓을뻔 했던 인생을 탁구 덕분에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탁구를 시작한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데,
그때 패럴림픽 탁구선수들이 이곳에서 합숙을 하면서 운동을 준비하더라구요.
그래서 구경하러 나도 휠체어를 끌고 갔었는데 선배들한테 크게 혼났어요.
그때는 엄했거든요 상하 위계질서가.
어린애가 구경하러 왔다고 혼나고 돌아서는데 자극이 되더라구요.
‘나도 탁구하면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탁구를 하고 계시던 270기 해병 선임을 동경하던 중에 그 선배를 따라 시작하게 됐죠.
그래서 88년 11월에 처음 라켓을 잡아서 89년에 대표가 되어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봤어요.
Q5. 1년 만에 대표가 되셨다구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셨군요? 어떤 대회인가요?
A5. ISMG라고 상이군인회에서 매년 영국에서 하는 대회가 있어요.
그 대회에 나가는 선발전을 상이군경끼리 한거죠.
신규선수 선발전이 열렸는데 거기서 1등을 해서 영국대회에 나갔어요.
2등한 선수는 고베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고.
Q6. 코치나 지도자가 없이 연습했는데도 첫 출전에 바로 국가대표가 되신거군요?
A6. 그때 코치나 지도자가 어디있나요.
그냥 선후배끼리 알려주고 배우고 하면서 실력을 늘리는 거죠.
국제대회가 있으면 합숙하면서 한달정도 코치를 뒀는데, 한달 코치에게 배운다고 크게 달라지나요.
그냥 주먹구구로 각자가 연습하는 것이었죠.
80년대만 해도 장애인이 탁구할 수 있는 곳이 이곳 보훈병원 밖에 없었어요.
일반인을 위한 탁구장이 있긴 하지만 엘레베이터가 있나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시설이 있나요, 2층 3층이나 지하에 있으면 그림의 떡이죠.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여기에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운동하고 그랬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장애인체육회, 장애인 탁구협회도 생기고 실업팀도 늘어나고,
지방에는 회관에 탁구교실도 성황이에요.
후배들은 좋은 여건에서 체계적으로 운동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Q7. 시작부터 화려했던 선배님의 운동성적이 궁금하네요.
89년 ISMG 대회는 어땠나요? 그동안의 출전 성적을 알려주세요.
A7. 89년 대회에는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은메달을 땄어요.
패럴림픽에는 92년 바르셀로나부터 모두 6번을 참가했어요.
92년에는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은메달을 땄죠.
그런데 올림픽에서 경기를 해보니까 세계수준하고 별로 차이가 안나는거에요.
‘이거 할만하구나’싶었죠. 금메달 욕심이 나더라구요.
목표가 생기니까 죽자고 땀을 흘려서 96년 애틀랜타에서는 개인전 금메달을 드디어 따게됐어요.
단체전은 은메달이었구요. 그런데 사람 욕심이라는게 참.. 이제는 2관왕이 생각나는거에요.
이번에는 또 단체로 열심히 했죠 그래서 2000년 시드니에서
드디어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에 성공했습니다.
목표를 달성했더니 조금 헤이해져서 04년 아테네에서는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
08년 베이징에서는 동메달만 두개, 이번 런던에서는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동메달을 땄어요.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수고했다고 체육훈장도 국가에서 줘요.
영광스럽게도 저는 체육훈장 4개를 받았죠. 낮은 훈격부터 순서대로. 청룡장만 남았네요.
Q8. 24년간 한국 장애인 탁구계를 쥐락펴락 하셨군요.^^ 여전히 세계랭킹이 3위시잖아요?
일반선수들이라면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대단하십니다.
A8.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드니까 반응속도도 느려지고 집중도 잘 안되요.
이번 런던에서 금메달을 따면 멋있게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은메달을 따서 아쉽게 됐어요.
그래서 내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노리려구요.
안되면 16년 올림픽까지?^^ 국가에서 주는 훈장도 영광스럽게도 4개나 받았지만
가장 높은 청룡장만 남아서 그것도 아쉽구요.
금메달을 따서 기회가 된다면 청룡장의 영광도 함께하면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네요.
Q9. 청룡장과 함께 메달도 거실에 전시해두면 멋있을거 같네요.
시차도 별로없고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베이징 대회에서 꼭 좋은 성적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대회를 다니면서 세계 곳곳을 다니실 텐데, 세계 곳곳에 있는 해병대 전우회의 활동도 대단하거든요.
함께하신 적은 없나요?
A9. 그렇지 않아도. 2006년에 오픈대회
(체급을 통합해서 경기를 치르는 대회. 지금은 폐지됐음)를 하러 브라질을 갔었어요.
그때 브라질전우회에서 크게 힘을 써줬죠.
대회가 리우에서 열렸는데 상파울루에 있는 사람들이 몇시간을 날아와서
음식도 가져다주고 아들들도 통역으로 지원해 줬어요.
또 그때가 추석 즈음이었는데
고기, 떡 같은 추석음식도 한가득 해주셔서 정말 마음 편히 즐겁게 있다가 왔죠.
태국 대회에서도 태국 전우회 사람들이 어찌나 열성적으로 도와주시던지..
해병대 타이틀과 함께하면 세계 어디에서든 끈끈한 전우회를 바탕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죠.
Q10. 가족들의 응원과 지지도 대단하겠는데요? 경기를 보러 많이 오시나요?
A10. 아유~ 마음이 콩닥거려서 보러 못 오더라구요.
딱 한번 부산 아시안게임을 보러왔었는데 그 경기를 져버렸어요. 하하.
그 뒤로는 아빠는 우리가 보러가면 진다고 안 오더라고. 서운하거나 섭섭한 것을 없죠.
그 마음을 제가 아는데요. 아내와 딸들에게 늘 고마워요.
빼어나지는 않지만 내 운동 성적이 말해주잖아요.
세계랭킹 1위도 했었고 금메달도 여러개 땄고, 훈장도 받았고.
이런 결과물들이 내가 열심히 라켓을 든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가족들과 한마음이 되어서 따뜻한 사랑과 응원을 가슴에 담고 있을 때 가능한거에요.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워요.
Q11. 장애라는 신체적 아픔과 마음의 벽을 뛰어넘어서
당당한 삶을 펼쳐가시는 선배님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습니다.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멋지게 금메달을 딴 모습을 스크랩해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선배님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들어온 날~마 가족들에게 한마디 해주십시오.
A11. 경추를 다치고 사지가 마비되었을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말로 힘들었다고 하는 것으로는 다 표현이 안되죠.
그런데 평소 운동을 안하던 사람이 탁구를 만나고 해병대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리는 거에요.
지금 이 순간, 몸을 다쳐 실의에 빠진 해병들 뿐 아니라
여러 다른 이유로 상심하고 좌절한 분들에게 제 인생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본보기나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예상외로 달변이었다.
처음 다소 긴장하고 굳었던 얼굴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내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선배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매스컴이 틀림없이 인터뷰를 요청할 텐데 이번에는 꼭 응하세요.
해병대 이야기도 한 번 해주시구요!”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음에도 젊은 후배 선수들에게 인터뷰 기회를 양보한
마음씨 넓은 해병 선배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잘하는 것은 널리 알려야 더욱 빛나는 법이기에.
장애를 극복하고 일어나 탁구에서 일가를 이루며 국민들 뿐아니라 많은 해병들의 모범이 된
훌륭한 해병 선배를 더욱 널리 자랑하고 싶었기에 신신당부의 말을 남겼다.
* 장애인탁구경기
- 단식 :
서비스를 넣을 때 가운데로 주어야 한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 선수임을 고려하여
서비스를 테이블 구석으로 넣어 득점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 외 다른 모든 룰은 일반 탁구경기와 동일하다.
- 복식 :
번갈아가며 공을 치는 일반 복식과는 달리 테이블을 반으로 나누어 자기 앞으로 오는 공은 자신이 모두 처리한다.
한 선수에게 계속해서 공격하는 전술도 허용된다.
그 외 다른 모든 룰은 일반 탁구경기와 동일하다. 단식에서 제한이 있었던 서비스 룰도 제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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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필승!
대단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