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중원 무림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봄도 거의 흘러가고 초여름이 마악 시작될 무렵이었다.
북쪽에서는 북해빙궁이 남쪽에서는 남해검문이 그리고 서쪽에서는 소뢰음사라고 하는 무림의 문파들이 비어 있는 중원을 정복하기 위해 쳐들어온다고 하는 소문이 날개가 달린 듯 빠른 속도로 중원 천하로 번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구파일방의 몇 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군산에서 군웅대회를 연다는 말이 퍼지면서 무림인들은 하나 둘 군산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라는 여진족에게 뺏겼어도 무림마저 뺐길 수는 없다!"
중원의 무림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었고 은거하고 있던 무림인들까지 소문에 휩쓸려 속속 군산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게 군산으로 몰려드는 중원의 무림인들은 군산에서 사실상 중원 무림을 제패한 청방의 인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곳에 청방의 인물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흘러나온 소문---.
"청방은 상인들의 단체이지, 무림의 단체가 아니다. 무림의 싸움은 무림인들이 맡아야 한다."
청방에 소속되어 있는 상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면서 무림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소문이 군산에 모여 있는 무림인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군산의 한 밀실에 모여 있는 네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의논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제 첫 번째 계획은 무척 성공적으로 끝났소. 청방과 백초당을 무림인들과 떨어지게 만드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소."
"청방에 소속되어 있던 무림인들이 우리가 원하는 만큼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소. 극히 일부만이 청방에서 탈퇴했을 뿐이오."
"이제 시작일 뿐이오. 초반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안되오."
"게다가 군산에 모이는 무림인들 대부분이 소문을 의심하고 있소. 그들의 의심을 풀어주지 않는 한 우리의 계획은 진행될 수 없소."
"이미 일은 시작되었소. 여기서 뒤로 물러날 수는 없소."
한 사람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면서 모두의 입은 굳게 다물어졌다. 그들에게 남겨진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은 반드시 그들의 계획을 성공시켜야만 했다.
백초당 안에 한 명의 외국 여자가 들어왔고 그녀가 들어가야 하는 건물 안에는 이미 두 여자가 머물러 살고 있었다.
이미 입술이 파랗게 변한 상태에서 그녀 라리슈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제-- 제-- 제--제가 앞으로 살아야 하는 곳이 저--저--정말 이곳이에요?"
너무 추워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싼 상태에서 물어보는 그녀의 두 눈은 의자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두 여자를 두렵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구 도련님이 첩으로 삼았다면---, 백초당에 소구 도련님의 거처는 이곳이니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저 두 여자는---?"
"전에는 소구 도련님의 하녀였지만--, 이젠 그분의 첩이지. 넌 세 번째 첩으로 삼았다며?"
"예,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초당의 총관 염철은 난처한 얼굴로 라리슈카와 의자에 앉아 있는 취하와 취앵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공을 익힌 자신도 이곳에만 들어오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추운 장소였다. 라리슈카 같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한기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네가 지내기 어려울 것 같구나. 다른 곳에 네가 머물 곳을 마련해 줄 테니 따라 와라. 이곳에 계속 있다간 얼어죽을 수도 있겠구나."
염철은 라리슈카를 데리고 소구의 방에 들렸다가 금방 밖으로 빠져 나왔다. 멍하니 총관 염철의 늙은 얼굴과 금발의 이국 여자가 들어왔다 나가는 광경을 앉아서 쳐다만 보고 있던 무펴정한 얼굴의 두 여자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바라보다 다음 순간 의자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냐?"
백초당의 총관이자 집사인 염철은 의아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며 물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취하와 취앵이 어느새 밖에 나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총관 아저씨, 그 여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요."
"너희들의 곁에는 보통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걸 몰라? 어서 비켜라. 조금만 더 오래 있다간 송장 치우겠다."
"잠시면 되요."
취하가 옆으로 돌아서서 가려는 염철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황급히 말했다. 염철은 옆을 돌아보았다. 라리슈카라는 이름의 이국의 여자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팔을 붙잡고 무섭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하지마요. 당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니."
취앵이 조금 물러서면서 말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한기를 그녀들은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이 감당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물어보려면 빨리 물어봐라. 이 여자는 너희들의 곁에 오래 있을만한 능력이 없어."
"도련님이 당신하고 정사를 나누었나요?"
"도련님이 여자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두 여자의 질문에 라리슈카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들을 바라보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서 있는 두 여자하고는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떨어지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라리슈카였다.
"됐어요. 아저씨."
"이제 가도 되요."
앞을 가로막고 있던 취하와 취앵이 옆으로 물러나면서 각자 말을 토해내고, 염철은 이제 실신하기 직전의 여자를 부축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 소구 도련님이 돌아오면 우리도 안아 줄려나?"
"우리도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녀들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몰래 숨어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제기랄, 너희들의 몸이 너무 차가워! 너희들하고 어떻게 그 짓을 하냐?!'
소구였다.
낙양으로 가려던 소구는 돈을 안 챙기고 나왔다는 것을 깨닫고 개봉으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온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돈이 필수품이었다. 땡전 한푼 없이 돌아다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이미 경험한 소구가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할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체, 수련 누나는 매형하고 같이 있어야 되니 힘들고--. 그래 화련 누나에게 당분간 라리슈카를 데리고 있어 달라고 해야겠다.'
두 하녀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구는 그녀들이 방안으로 모습을 감추자마자 재빨리 방화련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총관 염철과 라리슈카가 와 있는 상태였다.
"어? 도련님 낙양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염철이 소구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됐어요, 염 아저씨. 누님은 안에 있나요?"
"밖에 소구냐? 소주에 갔다고 하더니--, 어서 안으로 들어와라."
방문 밖에서 말을 하고 있던 백초당의 총관 염철과 소구 그리고 라리슈카는 한꺼번에 방화련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탁자 앞에 앉아서 오늘도 술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방화련은 의아한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뭐냐?"
"춘풍루에서 만난 여자야."
"뭐? 왜 기녀를 집에까지 대리고 온 것이냐?"
얼굴 색이 변해서 물어보는 방화련을 바라보며 소구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첩으로 삼았거든."
"뭐?!"
방화련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왜 그래 누나?"
"너---- 너-----?"
손가락으로 방소구를 가리키며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말을 잊지 못하던 방화련은 골이 아프다는 듯 한 손을 이마에 대고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말 그대로야. 이 여자를 내 세 번째 첩으로 삼았다니까."
"취하와 취앵이는 어쩌고?"
"그 아이들은 너무 차가워."
염철은 아무래도 이곳에 오래 있다간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두분이서 말씀들 나누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염철은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치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멍한 얼굴로 그런 총관의 모습을 바라보던 두 사람 소구와 방화련은 다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문 옆에 서 있던 라리슈카는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저도 나가 있을까요?
"아니 너는 그대로 여기 있어도 되. 어차피 잠시 동안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할 테니--."
소구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말하고, 다시 누나 방화련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내 방에서 라리슈카는 지낼 수 없어. 누나도 알잖아? 극음의 한기를 흡수한 취하하고 취앵이 옆에는 보통 사람은 가까이 다가서기도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네가 대리고 온 저 기녀를 대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냐?"
"누나 밖에 없어."
"이미 네 병은 나았지만, 그 둘이 그런 몸이 된 것은 네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너는 그 둘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누나 같으면 취하나 취앵이하고 같이 잘 수 있겠어?"
소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방화련은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물론 난 잘 수 없지. 내가 그들의 남편이 아니니까, 하지만 넌 잘 수 있지 않니? 그리고 그녀들의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능력도 있을 텐데?"
"무슨 소리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취하하고 취앵이하고는 나 역시 말을 하기가 힘들더구나. 그 아이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웬만해야지."
"그것 봐. 누나도 그러면서--, 날마다 그 아이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누가 있다고--."
소구의 입에서 볼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다른 모든 사람이 그녀들을 외면한다고 해도 너만은 외면할 수 없어."
"알아. 아니까 그녀들이 내 방에 머물러 살게 해 주었지, 내가 내 방에서 잘 수는 없어도--."
"어머니의 유언이 되어버린 것이지만--, 넌 그녀들의 남편이야. 소구야, 그녀들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책임이 너에게 있단 말이다."
"그것도 알지만---, 방법이 없어.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들은 빙하신공을 극성으로 익힌 것 같아. 감정은 죽어 있고 이성만이 살아 있는 상태야. 아니 감정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게다가 북해에서 어떤 기운을 흡수한 것인지 그녀들의 몸 속에는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기운이 잠들어 있어. 그녀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 개봉 전체가 얼음 지옥으로 변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건데--?"
"끄응--, 나도 모르겠어."
"소구야 정말 너의 힘으로 그녀들의 차가운 몸을 정상으로 돌려줄 방법이 없니?"
"몰라, 하여튼 내가 백초당에 와 있는 건 취하하고 취앵이에게는 비밀이야. 그리고 라리슈카는 당분간 누나가 좀 맡아 줘. 총관에게 말해서 따로 거처를 마련하게 될 때까지만--."
"여자가 둘도 부족해서 셋이로구나. 기녀를 집으로 대리고 오다니---,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넌 집에서 쫓겨났어. 그리고 부인은 어떻게 할거냐? 종구 오라버니는 죽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이고--. 대를 이을 수 있는 것은 너뿐인데, 네 자식을 볼 부인은 언제 구할 생각인 거냐? 자식을 볼 수 없는 첩만 셋이라니---."
"취하하고 취앵이는 여자가 아니야. 얼음덩어리들이지."
"으이그--, 이놈아 하여튼 당분간 저 여자는 내가 데리고 있겠지만 며칠뿐이다. 난 혼자 있는게 좋다. 꼴 보기 싫으니 어서 나가."
"그럼 부탁해 누나."
웃으면서 말한 소구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백초당의 맹주전이라 불리는 건물로 향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문가에 서 있는 라리슈카를 바라보며 방화련이 소리쳤다.
"넌 이리와 내 앞에 앉아 봐."
"예? 아 예!"
라리슈카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방화련의 앞에 앉았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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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즐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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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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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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