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정동 양주의료원 예정 부지 주변 제초작업 현황. 도로변과 정문 안쪽, 펜스 안팎으로 작업한 구간을 날짜별로 표시했다.
지난 며칠 동안 옥정동 양주의료원 예정 부지 주변에서 제초작업을 했다.
도로변 보도블록 경계와 펜스 안팎으로 자라난 풀을 깎고, 정문 안쪽까지 정리하다 보니 제법 넓은 구간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바람에 예초작업은 잠시 중단하고 의료원 예정 부지에 차를 세워놓았다. 말하자면 비 핑계 삼아 잠깐 땡땡이를 친 셈이다. ^^
그런데 막상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옥정신도시 한쪽에 아직도 넓은 벌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 아파트 숲 앞에 남겨진 텅 빈 땅
▲ 독바위로와 회천남로 사이에 자리한 양주의료원 예정 부지. 옥정동 산 92-4 일대를 비롯한 넓은 땅이 오랫동안 비어 있다.
▲ 의료원이 들어설 예정인 땅에서 바라본 옥정신도시. 저렇게 아파트가 빼곡한데 그 앞에는 아직 풀과 흙이 차지한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은 처음부터 빈 땅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논과 밭이 있었고, 작은 도로와 집 몇 채, 목욕탕도 있었다고 40년 전 이주한 동료가 알려준다.
옥정신도시 개발과 함께 LH가 토지를 수용하면서 하나둘 사라졌고, 구릉을 깎고 땅을 정리하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으니
바로 양주의료원이 들어설 예정인 부지다.
토지대금만 해도 약 420억 원에 이르고, LH에 여섯 차례 나눠 납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경기도의 재정 여건이다. 요즘 말 많은 소방 분야에만 연간 1조 6천억 원 안팎의 예산이 들어간다는데,
국비 부담은 10% 안팎이고 나머지 90%는 지방재정에서 충당한다니.
소방공무원은 국가직으로 전환됐다지만 재정 부담은 여전히 지방정부 몫이 대부분인 셈이다.
국가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비 지원도 좀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니 의료원 건립에 필요한 재원까지 확보하려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당초 계획대로 2030년 말에 개원한다면 그때 오빠 나이는 이미 칠십 ㅠㅠ. 옛말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 이르게 된다.
과연 그때 의료원이 문을 열어 나도 이용할 수 있을까?
아직은 첫 삽조차 뜨지 못한 땅이니,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이 넓은 땅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람 눈에는 개발을 기다리며 방치된 땅이지만, 자연은 그저 놀고만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 마사토 속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공깃돌
▲ 구릉을 깎아낸 자리에 남은 둥근 바위. 흙이라기보다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마사토가 넓게 깔려 있다.
▲ 누가 공깃돌을 크게 확대해 놓은 듯하다. 옆에는 아직 풍화가 덜 진행된 듯한 커다란 암석이 붙어 있다.
부지를 둘러보다 눈길을 끄는 바위 하나를 발견했다.
둥글다. 아주 둥글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공깃돌을 수백 배쯤 키워놓은 모습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이상하다.
하천에서 오랫동안 물살에 구르고 부딪히며 닳은 돌이라면 이해가 가겠는데, 여기는 하천 바닥도 아니고 구릉을 깎아낸 자리다.
주변에는 모래처럼 부스러진 마사토가 깔려 있고, 그 한가운데 커다란 돌이 동그랗게 남아 있다.
누가 일부러 다듬었을 리도 없고, 포크레인이 저렇게 예쁘게 깎아놓았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저 공깃돌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궁금해서 지질학적 생성 원리를 찾아보았다.
◆ 화강암이 땅속에서 만든 공깃돌, 핵석(核石)
알아보니 이런 둥근 바위는 지질학에서 말하는 핵석(Corestone)일 가능성이 높다.
핵석은 화강암 같은 암석이 땅속에서 오랜 세월 풍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화강암은 겉보기에는 단단한 한 덩어리지만 내부에는 절리라고 부르는 균열이 발달해 있다.
그 틈으로 물이 스며들면 암석은 서서히 풍화되기 시작한다.
특히 평평한 면보다 모서리와 꼭짓점 쪽이 더 많은 방향에서 물과 접촉하므로 상대적으로 빠르게 풍화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진 부분은 부스러지고, 중심부의 단단한 암석만 남아 점점 둥근 형태를 띠게 된다.
이렇게 암석의 모서리가 먼저 풍화되면서 둥글어지는 현상을 구상풍화(球狀風化, Spheroidal Weathering)라고 한다.
주변의 화강암은 풍화되어 마사토로 변해가지만, 상대적으로 풍화가 덜 진행된 단단한 부분은 둥근 바위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핵석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둥근 바위가 반드시 땅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는 지하의 풍화층 속에 묻혀 있다가 주변 흙이 씻겨 나가거나, 이곳처럼 중장비로 구릉을 굴착하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저 공기돌 역시 굴착기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오랜 세월 땅속에서 자연이 빚어놓은 것을 굴착기가 밖으로 꺼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사진만 보고 암석의 종류나 생성 과정을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주변의 마사토와 암석 형태를 보면 구상풍화로 형성된 핵석이라는 설명이 제법 잘 들어맞는다.
사람은 땅을 파냈을 뿐인데, 땅속에서 오랫동안 숨어 있던 자연의 작품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
◆ 마사토 위에 남겨진 고라니 발자국
▲ 마사토 위로 이어진 발자국. 발굽 자국의 형태로 보아 고라니가 지나간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공깃돌을 구경하다가 이번에는 발밑에 눈길이 갔다. 마사토 위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사람 발자국도 아니고 개 발자국도 아니다. 두 갈래로 갈라진 발굽 자국처럼 보여 고라니가 지나간 흔적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지난 7~8월에는 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고라니가 움직이는 모습을 몇 차례 본 적도 있다.
의료원 예정 부지 바로 옆에는 습지공원이 있고, 그동안 버드나무와 무성한 풀이 고라니들에게 몸을 숨길 만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넓은 공간에 제초작업이 이루어졌다. 버드나무는 남았지만 무성하게 우거졌던 풀들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사람 눈에는 깨끗하게 정돈된 공원이 되었을지 몰라도, 고라니에게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그 녀석들이 풀숲이 사라진 습지공원을 벗어나 이곳 의료원 예정 부지까지 드나드는 것일까?
오늘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마사토 위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고 있자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 꿩도 살고, 고라니도 지나는 땅
이곳에서 종종 꿩을 마주친다.
장끼도 있고 까투리도 있다.
풀숲에서 갑자기 푸드덕 날아오르면 가까이 있던 사람이 오히려 더 놀랄 정도다.
돼지풀을 비롯한 잡초가 우거진 땅이라 사람에게는 그저 관리해야 할 공터로 보이지만,
꿩에게는 먹이를 찾고 몸을 숨기는 공간이고 고라니에게는 쉬어가거나 이동하는 길목일 수 있다.
개발이 멈춰 있는 동안 자연은 그 빈자리를 조금씩 되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의료원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땅도 다시 뒤집힐 것이다.
마사토 구릉은 깎여 나가고, 둥근 공기돌도 어디론가 옮겨질지 모른다.
풀숲에 숨어 있던 꿩과 이곳을 지나는 고라니도 다른 살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역에 꼭 필요한 의료원이 들어서는 일이니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사람이 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기억해 둘 만하다.
◆ 땡땡이치다 자연 공부 한 가지
가끔은 바쁘게 풀만 깎고 지나갈 때보다 가만히 멈춰 서 있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법인가 보다.
비 핑계 삼아 잠깐 땡땡이를 쳤지만, 덕분에 공깃돌의 정체도 알아보고 고라니의 발자국까지 살펴봤으니 아주 헛된 하루는 아니었다.
비가 그치면 다시 예초기를 메고 풀 깎으러 가야지. 그때는 공깃돌 주변도 한 번 더 살펴보고. ^^
★ 한글날이 지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공기돌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공깃돌이라 하고,
순대국은 순댓국, 만두국은 만둣국으로 써야 맞춤법에 맞는다니 참 어렵다. 이것가지고 잘 아는 사람과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한때는 자장면만 맞고 짜장면은 틀리다더니, 이제는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가.
사이시옷도 그렇게 좀 너그럽게 적용하면 안 될까?
공기돌이든 공깃돌이든 뜻만 통하면 될 것을, 시험문제에서 사이시옷 하나 빠졌다고 틀렸다고 하면 조금 억울하지 않겠나. ^^
어쨌거나 오늘 만난 놈은 공기놀이에 쓸 공깃돌도 아니고, 공깃바위라 부르기에도 너무 크다. 이쯤 되면 핵석이라는 이름이 차라리 편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