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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철 문화부 차장
지난주 찾은 일본 오키나와는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세상이었다. 현청 소재지 나하(那覇)의 신도심 갤러리아 면세점 입구 렌터카 창구 직원 6명도 모두 중국인이었다. "니하오, 닌 꾸이싱." 창구 앞에 다가서자 중국어가 날아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베이징 출신 20대 남자 직원은 "오늘 오전 고객 중 한국분은 처음이고, 일본인 고객도 딱 한 명뿐이었다"고 영어로 답했다. 고객 95%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오키나와의 대표적 렌터카 업체인 데다 일본어 사이트에서 예약했는데도 그랬다. "한국 손님도 있을 텐데…"라고 묻자 그는 "공항 사무실 쪽엔 한국 고객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면세점 안도 요우커들로 북적거렸다. 관광객 대여섯 명이 카메라 가게 앞에서 10만엔이 넘는 최신 DSLR 제품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었다. "중국보다 훨씬 쌉니다. 지금 환율이 좋으니까 빨리 사세요."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점원이 흥정을 건넸다. 오키나와 제1 관광지로 꼽히는 '주라우미수족관'도 요우커 천지였다. "이, 얼, 싼(하나, 둘, 셋)." 대형 고래상어 두 마리와 커다란 가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7500㎥짜리 대형 수족관 앞에선 기념사진을 찍는 중국인 여행객들로 번잡했다.
오키나와는 겨울이 비수기지만 음력설을 맞아 몰려온 요우커 덕분에 섬 중북부의 웬만한 리조트는 예약이 쉽지 않았다. 깃발 든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단체 여행객은 눈에 띄지 않고, 가족끼리 렌터카를 빌려 섬을 돌아보는 자유 여행객들이 가득했다. 도요타 최신 하이브리드 자동차 아쿠아를 3박4일간 빌리는 값은 1만4000엔(약 15만원). 책임보험은 물론 긴급 서비스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400㎞ 정도 달렸는데, 휘발유값은 2만5000원 나왔다. 첨단 자동차를 맘껏 쓰고, 남국(南國)의 바다와 절경을 즐기는 비용치고는 쌌다. 내비게이션까지 달려 있고, 현지인들의 양보 운전이 생활화돼 있어 편하게 다닐 만했다.
작년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327만명. 외국인 관광객(1200만 명) 중 일본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이 중 181만명이 제주도를 찾았다. 작년 말 제주발전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중국 여행객들은 해외 관광지로 섬을 선호하고 맞춤형 개별 자유 여행을 선호했다. 제주도의 절경과 한류(韓流)의 매력은 요우커들의 선택을 받을 만한 경쟁력이 있지만, 안이하게 대처하다간 오키나와에 추월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중국이 세계 관광 시장점유율 9.5%를 기록하면서 최대 해외 관광 지출 국가로 떠오른 게 2012년이다. 중국 정부가 작년 10월 싸구려 패키지 해외여행 상품을 규제하는 관광법을 시행하면서 한국에서 단체 관광객을 상대하던 쇼핑센터와 식당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K팝 인기에 편승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레저와 의료 등 고급 관광과 자유 여행을 선호하는 요우커들의 입맛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언제 외면당할지 모른다. 면세점을 싹쓸이하는 '왕서방' 정도로 요우커를 우습게 보는 분위기가 있기에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