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넷째 이야기
- 멧돼지의 위대한 스승 쥐박이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멧돼지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더란다
이 사나이 정말 어쩌다 임금이 되었는데
되자마자부터 되는 일이 없는 거라
경제는 엉망이지 지지율은 곤두박질 치지
판서라고 앉혀 놓으니 이년 저놈 낙마하지
자리에 앉은 자들도 청문회 한번 제대로 통과 못했지
인사는 하는 것마다 유생들이 씹고 신문고도 난리라
요즘은 기레기라는 것이 있어 말꼬리 잡고 괴롭히는데
그래서 성질 난 김에 몇 마디 했더니
아 글씨 그게 또 화근이 되어서 돌아오는 거라
멧돼지파 붕당은 젊은 놈이 영수로 있는데
임금 되기 전부터 까불어서 임금 되기만 하면 자르려고 했것다
헌데 이게 뭘 믿고 있는지 계속 버티고 있네
늙은 신하들은 그저 헛발질만 계속 하고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만 하면서도
새파란 놈 하나 못 잡아서 쩔쩔매기만 하는구나
바다 건너 멀리 이국땅에 폼 잡고 갔다가
이런 실수 저런 실언으로 점수만 깎이고
마누라인 가니가 솔직히 좀 거시기 하지만
왠지 가니한테는 주눅이 들어 말하기도 뭐한데
지 좋아하는 애들 이국 갈 때 데리고 간다기에
그냥 그거 뭐 문제 될 거 있나 싶었는데
아 그게 그렇게 난리가 될 줄이야
이런 거 하나 아니되옵니다 하는 놈 없으니
에라 다 귀찮구나 낮술이나 마셔 보자
가니 몰래 책장 뒤에 숨겨 놓은 양술을 꺼내서
홀짝 홀짝 마시는데 그 맛이 정말 홍콩 가는 기분이구나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찍찍 하는 소리
이 무슨 소리인고 하고 책상 아래를 여기저기 뒤져 보니
뭔가 조그만 게 책상 위로 폴짝 뛰어오르는데
가만히 보니 아 그게 그만 쥐새끼가 아닌가
아니 세상에 임금이 집무하는 편전에 쥐새끼라니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하고 소리 치려는 찰나
찍찍 여보게 놀라지 말게 나 쥐박이야 찍찍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쥐박이라니 그러면 전전전왕
아니 감옥소에 있어야 할 양반이 어찌 이곳까지 왔을꼬
탈옥을 했나 아니지 형집행정지로 일시 석방했지
그래도 병원 나와서 자택으로 주거가 한정될 텐데
사면을 해줬던가 아니지 그건 아직 아닌데
찍찍 여보게 내가 가끔 이렇게 둔갑을 해서 나다닌다네 찍찍
으잉 그런 재주도 있나 암튼 반갑습니다만 어찌 오셨소
찍찍 자네 보니 머지않아 내 신세가 될 것 같아
몇 가지 도움말 좀 주려고 해 나처럼 되지 말라고
나 임금 될 때도 경제가 굉장히 어려웠지 생각나나 찍찍
아 그랬다 무슨 브라더슨가 어쩐가 하는 거
찍찍 자네도 경제가 어렵잖아 이러다 큰일 나
솔직히 나는 경제 잘 알잖아 그래도 힘들었는데
자넨 경제라면 무식하잖아 책 한 권 읽고서 떠들고 말야 찍찍
뭐 도움말 주려고 한다면서 남 무식한 건 왜 꺼내나
속으로 불끈 하지만 그래도 예의는 갖추려고 하는데
찍찍 난 그때 미친소병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아주 궁지에 몰렸었지 그거 가라앉고 시작했어
전임 임금 죽도록 괴롭혀서 결국 죽게 했지
자네도 지금 그거 하려는 거 아냐
그거야 하든 말든 자네 마음대로인데
그것보다 자네 친인척 지인 관리 좀 잘해 찍찍
이 말에 발끈해진 멧돼지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아 그거야 선배님도 형님에 형님 친구에 뭐 그랬잖아요
찍찍 이 사람 보게 우리 형님이야 어쨌든 선량 출신이야
선량 부대표까지 한 사람이라구 어딜 비교해
어디 자네처럼 사십년 지기 아들, 무슨 땡중의 조카
이런 것들 돈 좀 냈다고 아무 자리나 주고 그러나
그리고 이전 왕 묘소 가는 데는 왜 데리고 가고
왕들끼리 모이는 데까지 데리고 가는 건 뭐야 찍찍
멧돼지 생각에 이건 뭐 도움말 주는 게 아니라
남 긁어 놓으려고 왔나 하고 확 때려잡을까 망설이는데
찍찍 자네가 대국 쌀나라나 섬나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건
나랑 아주 잘 통하데 그건 정말 잘 하는 일이야
또 외교나 안보 분야에 내 신하들 쓰는 것도 정말 좋았어
근데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지
자네 마누라 건사 좀 잘해 그게 뭐야
나도 우리 마누라가 한식 만든다 어쩐다 하면서
국고 축내고 할 때 곤욕 좀 치렀지
하지만 그때 확 잡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어
뭐 하긴 출신이 다르니 쉽지는 않겠더라만 찍찍
마누라 가니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하지만 제대로 뭐라고 하지 못하는 게 멧돼지의 아픈 사연
찍찍 난 말이야 후계를 잘못 정해서 망했어
칠푼이 공주를 후계로 앉히는 바람에 이 꼴 됐지 찍찍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앉혔나 할 수 없이 앉게 했지
찍찍 자네도 후계 잘 골라 헌데 훈새는 안 돼
그런 기생오래비 같은 꼴로 싸가지 없는 말만 하고 다니니
될 것도 안 되겠다 명심해야 할 거야 찍찍
자기 생긴 건 어떤지 모르나 쥐새끼 상을 해가지고는
멧돼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참느라 숨을 헐떡이는데
전하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다급한 내시의 목소리
무슨 일이냐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
요즘 불안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인지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찍찍 저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맨날 황공하지 찍찍
황공은 그만하고 어서 말해라
개 돼지들이 편전 앞으로 몰려들어 아우성입니다
쥐잡으러 가세 쥐잡으러 가세 우리 모두 다함께 쥐잡으러 가세
멧돼지 사냥을 나간다 좋다 칼로 잡을거나 화살로 잡을거나
뭐이 어쩌고 어째 어떤 놈들인지 싹 잡아들여라
찍찍 난 무서워 개 돼지들이 무서워
근데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지 희한하네
자네에게 마지막 당부하는 말 하고 나는 빨리 피해야 해
자고로 반골은 항상 있는 법 그게 무서운 게 아니야
무서운 건 개 돼지야 그들을 우습게 보지 마 찍찍
그거야 때려잡거나 아니면 그들 원하는 거 해주면 안 되나요
찍찍 이러니 멍청하단 소리 듣지 때려잡는 게 마음대로 되나
그럴수록 더 달려드는 게 개 돼지야
그리고 그들 원하는 대로 해준다면
니가 왜 멧돼지고 내가 왜 쥐박이겄냐
그러니까 알아서 당근과 채찍을 잘 써봐
니 머리로 될까 모르겠다만 찍찍
그런 말을 남기고 폴짝 뛰어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쥐박이
멧돼지는 쥐박이처럼 도망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개 돼지쯤이야 멧돼지가 힘으로 밀어붙이면 당하겠느냐
웃통을 벗고 편전 밖으로 뛰어나갔것다
아뿔싸 개 돼지가 그냥 개 돼지가 아니라
촛불을 든 개 돼지인 줄 왜 몰랐던가
몸부림 치며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 울부짖었건만
이런 걸 일컬어 역부족이라고 하던가
촛불에 홀랑 타서 그 뒤 9박 10일 동안
백성들이 멧돼지 바비큐 잔치를 했다던가
아니 산 채로 꽁꽁 묶어서 우리 안에 넣었다던가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 앞으로 나오더니 멧돼지 뺨을 갈긴다
으악 하면서 눈을 떠 자세히 보니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얼굴이 눈앞에 있구나
오빠 오빠 또 낮술에 취해서 잠들었구나
여기가 편전이더냐 멧돼지 우리더냐
바비큐가 진짜더냐 임금이 진짜더냐
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넷째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란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