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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요한 16:32-33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시련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2-33)
오늘 전국에 흩어진 예수살기 동지들이 모여 “기억의 씨를 뿌려라. 평화의 꽃을 보리니”라는 주제로 광주민중항쟁 36주년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세월호 사건을 당한 후 우리는 한결같이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언가 기억할 원형을 우리는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주민중항쟁 3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참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억의 원형을 만들지 못한 역사
사람들은 누군가의 뼈아픈 고통의 사건을 쉽게 ‘이제 그만 잊자’고 합니다. ‘과거는 과거 일 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무의미의 위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할 친일파들이 여전히 지도자로 행세하고, 독립에 목숨을 바친 이들은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갑니다. 해방 후 수많은 양민 학살 사건도 어느 것 하나 사실이 규명된 바 없고, 천안함, 세월호 등 수많은 대형사고가 미궁 속에 있습니다. 우기는 자, 힘을 가진 자들이 제멋대로 날조한 역사가 정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의를 상실한 편법과 상식을 잃어버린 야비함만이 날 뜁니다.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탓입니다. 아니, 우리는 기억해야할 원형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억하자는 것입니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처벌받아야 할 이들은 축하받고 영전되는 기현상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기억해야할 원형조차도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했듯이 문설주에 새기고 이마에 새겨 기억해야 하는데 무엇을 적을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없다는 말이요, 우리의 얼이 없다는 말이요, 우리의 정신에 토대가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모두가 투항했더라면
36년전 긴박했던 광주도청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밖에선 폭도들은 몇 시까지 투항하라는 방송이 요란합니다. 헬기의 소리, 탱크의 소리.... 최후결전이 다가옵니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고등학생, 야학생, 노동자 등..... 민초들만 남아 최후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들도 분명 두려웠고, 남아서 사랑해야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분명 생명을 낭비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살아남아서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님 들은 먼 역사의 승리를 선택했습니다.
분명 죽음인 줄 알면서도, 아니 죽음 보다 더 큰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쫒는다고 했는데 그들이 가진 인간에 대한 사랑, 정의에 대한 사랑은 당장 눈앞의 두려움을 내어 쫒았습니다. 님 들은 죽음을 담보로 굴종을 요구하는 최후의 적인 죽음의 세력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날 전부 투항했더라면........ 만약 그날 전부 투항했더라면........
아마 광주의 역사는 굴복의 역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자들은 두려움을 모르고 승승장구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묘역에 들어오면서 여기 늘어선 비석의 주인공들이 일제히 부르는 웅장한 합창을 듣는 듯 했습니다. 벅차오는 감격에 속에서 뜨거운 것이 끊임없이 솟았습니다. 갸냘픈 꽃잎처럼 처참하게 짓뭉개진 죽음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을 보여준 장렬한 서거였습니다.
오늘 저는 광주를 다룬 두가지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피해자로서 하나는 가해자로서 각각 무너진 인간의 아픔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를 통해 광주항쟁이 가진 의미와 무엇이 그 배후에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꽃잎
첫 번째는 광주를 다룬 “꽃잎”이라는 영화입니다. 한 소녀가 머리에 꽃을 꽂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온갖 마을에서 남자들의 겁탈을 당합니다. 그 소녀는 가끔 정신적 충격이 가해지며 발작을 합니다. 그때는 여지없이 자기 팔목을 마구잡이로 긁어댑니다.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데도 더욱 거세게 자신의 팔목을 예리한 것으로 파헤칩니다.
그녀는 광주 근교 농촌의 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대학생 운동권인 오빠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광주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어머니가 오빠의 일이 걱정되 광주로 나갑니다. 어린 계집아이에게는 집에 꼼짝말고 있으라고 여러번 당부도 하고 감금도 하지만 이내 몰래 어머니를 따라 광주행 버스에 까지 왔습니다. 할 수 없이 광주에 어린 딸과 함께 간 어머니는 심상치 않은 거리의 상황에서 어린 딸의 손목을 잡고 다급하게 시위대가 몰려다니는 군중을 헤치며 아들을 찾아봅니다. 그러는 도중, 어머니는 그만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됩니다. 이리저리 밀리는 군중 속에 진홍색으로 물들어진 사람들이 꽃잎처럼 쓰러지고 있습니다.
유혈이 낭자해진 어머니는 당황하여 어린 딸의 팔목을 움켜잡습니다. 그라도 보호해야겠다는 어머니의 최후의 보호 본능이겠지요. 그러나 문득 상황이 다급해진 것을 안 계집아이는 얼른 이 현장을 빠져나와 도망가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다른 손으로 어머니의 움켜쥔 손가락들을 떼어내려고 애를 쓰지만 어머니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와 함께 더욱 강하게 딸의 팔목을 웅켜쥡니다. 마침내 계집아이는 발로 어머니의 손을 짖이겨 어머니를 떨쳐버리고 그 위기 상황을 벗어나게 됩니다.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은 어머니의 호소를 묵살한 채...... 엄마를 죽음의 자리에 홀로 놓아두고 도망쳐 나온 죄책, 그 충격이 이 딸을 실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발작이 시작되면 그 가슴 아픈 상처를 지워 내려는 듯, 피가 솟구쳐 오르도록 자신의 팔목을 후벼 파며 광기의 괴성을 질러대는 가슴 아픈 이야기의 영화입니다.
서울서 내려오는 버스에서 우리는 오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 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 오월이 오면 산천에는 꽃잎들이 피어나지만 우리들 가슴엔 붉은 피가 솟아 오릅니다.
이 어린 딸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그 당시 폭도로 매도되는 광주시민을 보며 ‘저것은 아니라’고 가슴 아파하면서도 우리는 애써 광주 시민의 호소를 못들은 체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 피를 흘리며 우리의 팔목을 움켜잡고 외치는 소리를 묵살했습니다. 그들의 호소하는 손을 우리는 억지로 떼어냈고 발로 짖이기듯 떼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잊어버리고 그 현장에서 도망쳐 나오려고 했습니다. 아직 그들의 숨이 끊이지 않았는데 우리의 발은 서둘러 도망하려했고 우리의 마음은 모든 것을 잊으려 했습니다. 차라리 미쳐 버린 계집아이는 양심의 소리라도 듣지만 우리는 제정신으로 우리의 챙길 것을 확실히 챙겨가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월의 꽃잎은 우리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광주를 잊고 사는 우리들의 실존에 질문을 던집니다.
박하사탕
또 다른 영화는 박하사탕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79년 자신의 순수한 첫사랑의 해와 그 이듬해 광주에서 벌어진 경험으로 자신의 정신적 세계를 망쳐버린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광주에서 이미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1999년 IMF사태 이후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주인공도 결국 파산하여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집니다. 주인공의 정신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에 이르는 두 비극이 지나간 이십년을 연결시킵니다.
박하사탕의 주인공은 20년전 첫사랑의 순수함에 애태우던 청년이었지만 광주항쟁에 우연히 진압군으로 참여하여 실수로 한 소녀를 쏘아죽이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순수한 꿈을 쏘아 죽게한 사건이었습니다.
그후 주인공은 삶의 순수성을 던져버립니다. 그는 악독한 형사가 되어 노동자와 시민들을 잡아들이고 잔인하게 고문합니다. 그는 이미 막살아가는 선택을 했기에 자신의 순수한 사랑의 대상인 첫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게 됩니다.
그후 그는 아무렇게나 결혼을 하고, 바람을 피고, 부인을 폭행하고, 이혼을 했습니다. 결국 경제적으로도 파산하고 오갈 데가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연명합니다. 주인공은 우연히 광주의 가해자로 참여하여 자신의 삶 전체를 자포자기한 채로 살아갔습니다. 사랑과 꿈을 가진 한 청년의 꼬여진 삶은 광주로 인해 망가진 또 다른 피해자의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 싹텄던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야유회 장면을 생각합니다. 눈부신 햇살 아래서 그는 첫사랑의 애인에게서 ‘박하사탕’을 건네받고 이 사탕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하사탕 하나에 온 몸이 전율했던 순수는 지금 단지 추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인 첫사랑의 장면을 생각하며 광주로 인해 꼬여진 삶을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에 던집니다. 그는 “나 다시 돌아갈래!”고 절규하며 삶을 마감합니다.
전두환은 자본의 꼭두각시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인공인 문부식 씨는 영화 '박하사탕'을 평론하면서 "이 영화가 가진 탁월한 부분은 1979년과 1999년이라는 시간의 시작과 끝이 지니는 '비극적 동일성'을 보여 주었다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1979년 유신의 종말과 군 쿠테타 그리고 1980년 5.18로 이어지는 민중의 좌절은 단지 한 권력욕에 노예가 된 전두환이나 탐욕스런 군부의 광기어린 장난으로 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광대나 배우일 뿐 그 뒤에는 박정희 개발독재에 의해 독점적 특혜를 누려온 자본의 위기의식의 결과였습니다.
1978-80년에 와서 박정희 개발독재는 그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이 증가 했습니다. 공장 가동률의 저하되었고 노동자들 생활조건이 급격히 악화되자, 결국은 박정희를 거꾸러뜨리는 결정적 동기가 된 부마항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후 80년대 민주화의 봄과 더불어 각 단위 사업장에서 노동쟁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노동운동의 지역적, 전국적인 연대가 모색되었습니다. 드디어 4월 21일 부터 사북 노동자들의 무장항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5공화국을 출범시켰고 제일 우선적으로 노동법을 개악합니다. 노동쟁의를 원천봉쇄 했습니다. 그리고 독점 재벌의 강화, 외국 수입의 자유화 등의 조치를 신속하게 취했습니다.
1999년은 한국자본이 마침 또 한번의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IMF를 맞아 또 한번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쫒겨나고, 가정이 파괴되고, 또 집을 잃은 사람들은 지하도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80년 광주와 IMF로 시작된 민중의 붕괴는 주인공의 인간적인 절망을 통해서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1999년, 파산한 박하사탕의 주인공이 달려오는 기차 앞에 마주서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니고 광주로 시작되 IMF로 파괴되는 노동자, 민중의 이야기이며, 광주로 시작되 IMF로 이어지는 국가권력의 또 다른 살육의 연결인 것입니다.
오늘 망월동의 영령에게 묻는다
2016년 5월을 맞이하는 우리는 또 한번 광주 망월동에 서서 오늘 우리들의 위치를 묻습니다. 오늘 우리는 총체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통해서 우리는 그 동안 이루어온 민주 정치의 붕괴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광주의 영령들이 피로써 거부했던 군정과 다름없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정원 통치의 시대라고 합니다. 국가를 움직이는 중요한 직책은 모두 군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각료회의에서 토론은 없고 오직 받아쓰기만 있을 뿐입니다. 받아쓰기(dictation)를 좋아하는 것은 독재자(dictator)의 특징입니다. 장관도 대통령을 만날 수조차 없습니다. 군인 출신들은 기수 높은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그의 명령을 받아 적을 뿐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난 받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는커녕, 야당과 소통하기는커녕, 자기 당의 대표하고도 소통하지 못하고 ‘옥쇄난동’으로 실력행사를 해야하는 판입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이 망월동에 서서 광주정신을 물어봅니다.
우리는 이번 총선을 참담하고 비참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끝나고 새누리당의 일당 독재가 개헌선을 넘어 영구히 지속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선거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습니다. 우리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특히 호남의 표심, 광주의 표심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광주의 표심은 무명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세우는 전기가 되었고 민주주의의 위기 때마다 이를 다시 살려내는 원천이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보았고 광주의 민심을 살폈습니다. 그것이 이 역사의 정답이기도 했습니다. 광주는 민주주의의 희망이었고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광주에서 드러난 새로운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열게 될 것인가에 대해 다들 긴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에 대해 실망하거나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광주에 대해서 ‘그동안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를 접겠다.’고 합니다. 저는 그분들이 이 망월동 오월의 영령들에게 “내가 모든 부채의식을 벗어 버려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앞에 보이는 저 수많은 비석들 뒤에 영령들에게 무엇을 갚았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또 호남 소외에 대해서 분개하며 이제 호남이 낡은 정치인들이 선동하는 지역주의의 볼모가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 염려 놓아도 된다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이 망월동의 영령들이 있는 한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망월동의 영령들이 신군부가 그렇게 모함했듯이 단지 광주라는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 단지 지역감정으로 일어났던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그리고 호남의 민심은 여기 망월동의 영령들에게 묻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선택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 다른 배후 미국을 다시본다
광주민중항쟁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한국사회가 미국을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광주시민들은 미국에 대해 기대를 걸었습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우리를 도우러 오고 있다.’고 환호하였으며 ‘미국이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 하물며 인권 대통령이라는 지미 카터씨가 대통령이었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이 그 당시 누구에게 있었습니까? 미국의 지시 없이는 군의 지휘체계상 계엄군의 진압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화려한 죽음의 불꽃놀이를 앞두고 도청에 남아 죽음으로 민주주의의 승리를 증언하려는 최후의 전사들을 향해 시시각각 조여 오는 계엄군의 진압 포위망을 미국 TV로 중계해 가며 마치 스포츠를 즐기듯 즐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광주에 대한 충격이후 한국사회는 미국을 재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미 문화원 방화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더욱 드세지고 있는 외세의 압력 속에서 도대체 우리가 주권 국가인가를 의심케 하는 한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세계열강들의 전쟁 연습터가 되었고 미군에 의해 각종 생화학 세균전의 실험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직 구상 단계에 있고 한번도 써보지도 않은 듯보잡이들, 실물도 없는 항공기와 미사일등을 사들이라고 강요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무기들을 우리의 돈을 들여 사놓을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사드배치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인데 지금 군산, 평택, 부산, 대구, 원주, 천안등이 배치 후보지로 거명하며 지역의 민심을 떠보고 있습니다. 사드는 대 북한용이 아닙니다. 성층권 세배의 높이에서 요격하는 것인데 북의 미사일이 그 정도 높이로 날아가면 이미 한반도를 벗어나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사드(THAAD)는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의 앞글자를 딴 것입니다. 보통 ‘고고도 미사일방어’라고 옮기지만 정확히 하면 ‘종말단계(또는 하강단계) 고고도 미사일방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이 말은 사드를 그 지역에 들여놓게 되면 그곳이 바로 상대의 핵미사일의 종착역이 된다는 뜻입니다. 안전을 위해 들여논 사드가 사실 가장 위험을 불러들이는 선택이 됩니다. 그것이 아니면 위에 후보지로 거론된 곳들이 핵미사일의 목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사드는 마지막 핵전쟁 때에나 쓸 무기니 그 무기를 쓸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야하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더 무서운 것은 사드에 필수적인 엑스밴드 레이더입니다. 이것은 삼천 킬로미터를 안방 보듯 볼 수 있는 것으로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도 그대로 노출됩니다. 이것을 들여 놓는 순간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근에 러시아가 최근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이것은 미사일 방어망을 갖춘 곳이 목표점이 될 것을 공언했습니다.
게다가 엑스밴드 레이더에서 발사되는 고주파의 전자기파는 그 주변 인근 지역을 전자렌지처럼 만들 것입니다. 반경 5.5킬로 미터는 출입제한구역이 되어 철조망으로 민간인 통제가 될 것이며 인근 지역은 전자기파의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이미 일본에 성치된 사드 기지 주변인들은 어지럼증, 두통을 호소하며 강력한 전자파가 발생되는 소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드야 말로 ‘사고뭉치를 들이는 것’입니다.
미국이 작전권을 가지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요합니다. 한미동맹은 익숙한데 낮선 일본과의 동맹이 슬쩍 끼어 들어왔습니다. 일본과 정보를 공유하고 일본군대와 연대하는 것은 우리의 민심이 지극히 반감을 갖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삼각동맹이라는 미명아래 일본군을 언제라도 한반도에 진입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한미일 연대’라는 말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연대하자는데 나쁠 것이 없지만 이것의 실상은 ‘대중국 적대 연대’라고 불러야 합니다. 나아가 ‘북에 대한 선제 핵공격을 위한 연대’라고 불러야 합니다. 아니 이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연대가 아니라 아시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전쟁연대’입니다. 이는 한미일 연대와 북중러 연대가 다시 동아시아에서 부딪혀 다시 냉전을 불러오고 우리는 시장의 반 이상을 잃고 쓸데없는 군비증강에 목숨걸어야 하는 판으로 끌려들어가게 됩니다. 동아시아는 한미일, 북중러가 모두 함께 무기를 내려놓고 연대하여 집단안보체제로 나아가는 길만이 더 이상 외세에 의해 농락당하지 않는 길입니다.
만약 평택에 사드를 배치해 놓는다면 거기서 얻어진 정보를 미국, 일본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대만이나 랴오이타이(센가꾸열도) 문제가 발생하거나 북한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할 때 일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은 물론 한국이 중국과의 전쟁에 자동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외국군대가 남에 땅에 들어와 그냥 갈까요? 미국은 70년째 이 땅에 있으며 한국의 정치를 좌지우지 하고 있습니다. 이 알량한 연대를 이루기 위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하나도 풀지 못한채 단지 90억이란 돈에 그들의 존엄과 자존을 다시 한번 뭉개버리는 정치적 선택을 미국은 강요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체제에 속한 사람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십니다. 월터 윙크는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한성수 역, 한국기독교연구소)이라는 책에서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 특히 정치, 경제, 문화적인 지배체제라는 구조악의 내면에 있는 영적인 실재, 즉 로마제국의 악마적인 영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윙크는 요한복음의 “세상”(kosmos)이라는 단어를 인간을 소외시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인 “체제”(system)라고 번역합니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반박하기를,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23)고 했습니다. 윙크는 이 문장에서 kosmos를 “세상”(world)이라고 번역하면, 마치 예수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딴 세상의 존재, 그리하여 환영만의 사람(docetin person)인 것 같은 인상을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세상”을 “체제”로 보면, 그의 말은 문자 그대로 맞는 것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체제에 속합니다. 그는 로마의 체제에 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코스모스를 거부하는 것은 이 세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kosmos 지배체제)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kosmos 지배체제)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광주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압박하고 겁박하는 지배체제의 가치에 쫄지 아니하고 당당하고 떳떳한 미래, 우리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질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살기의 길입니다. 이는 세상이 가진 어떤 가치나 표준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옛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비록 넘어지고 깨지고 힘있는 자들의 밥이되고 당할지라도 우리는 나아갑니다. 이 불의한 체제를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고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모두가 주인이되는 그 나라를 향하여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그것이 먼저 가신 광주 영령들이 가신 길이며 예수를 따라가는 신앙인들이 나가야 할 마땅한 길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변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저 수많은 비석의 주인공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 역사의 한걸음 한걸음을 여기 계신 망월동의 영령들에게 물어가며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의 해법이 있고 이 민족이 바르게 나아갈 길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치신 이곳의 영령들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광주의 영령들은 우리를 이끄는 지표가 되고 표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령들에게 묻고 이들에게서 답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이 체제)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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