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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8
해부·수술 장면 다룬 그림들
▲ 작품1 - 레오나르도 다빈치, ‘팔의 뼈와 근육’, 1510~1511년. /위키피디아
최근 우리나라에선 의사 수를 늘리는 등 의료 개혁 문제를 놓고 정부와 의사들 간의 논쟁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어요. 관련 뉴스들이 보도되면서, 그동안 '의사' 하나로만 알고 있던 직업이 사실은 일반의와 대학병원 전공의, 전문의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됐지요. 의사는 질병에 따른 치료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고, 그 지식을 환자의 몸에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 몸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해요. 그래서 이들은 대학 시절 해부학 수업을 통해, 시체를 열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공부해요.
그런데 예비 의사만 해부학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에요. 인물을 표현하는 화가나 조각가도 해부학에 큰 관심을 갖고 공부했답니다. 피부 아래 뼈와 근육, 혈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얼굴 표정과 신체 동작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거든요. 옛 화가 중에는 시체 해부 장면이나 외과 수술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놓은 이들도 있어요. 그림이 공개됐을 때 평소 그런 장면을 볼 기회가 없었던 일반 관람자들은 충격을 받기도 했답니다. 과연 어떤 그림들이었을까요?
교재로 쓰였던 다빈치의 해부 그림들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철학과 예술, 과학 등이 크게 융성했어요. 당시 해부학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는데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출신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그림 덕분이었죠.
다빈치는 꽃이 피는 과정이나 동물이 움직이는 방식 등 자신이 관찰한 것에 대해 아주 자세히 그림으로 그려 기록해 두곤 했어요. 사람을 그릴 때도 겉모습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근육과 장기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살펴보고 그리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다빈치는 공식적으로 시체를 입수해 해부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몸은 죽은 이후에도 소중하게 생각됐기에, 오직 의사만이 교황의 허락을 받아 해부용으로 허용된 시체를 다룰 수 있었죠. 그러나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는 다빈치가 각종 연구에 천재적이라는 점을 인정하여 특별히 허락했습니다. 교황은 다빈치가 몰래 시체를 구해다가 해부한다는 소문을 듣고, 해부용 시체를 합법적으로 구해 해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입니다.
〈작품1〉은 다빈치가 팔의 뼈와 근육을 해부한 후, 움직임에 따라 근육이 어떻게 당겨지고 느슨해지는지 설명을 곁들인 그림이에요. 다빈치는 이 그림 이외에도 약 1800장의 해부학 스케치를 남겨요. 그는 평생 약 30구의 시체를 해부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빈치가 남긴 해부 그림들은 후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예비 의사들이 참고할 정도로 상세해 오래도록 해부학 교재로 쓰였다고 해요.
지식인들에게 특별한 행사였던 해부학 강의
17세기에 이르면서 해부학 강의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특별한 행사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어요. 극장에서 해부학 강의가 열리면 의사뿐 아니라 학생, 일반인들이 객석에서 관람을 했답니다. 〈작품2〉는 해부학 강의가 열렸던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1606~1669)의 그림이에요. 시체를 해부하는 외과 의사와 해부된 시체의 팔을 흥미롭다는 듯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죠. 제목에 '툴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이라고 의사의 이름이 밝혀져 있듯 이 외과 의사는 실존 인물입니다. 툴프 박사는 팔 근육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네요.
그림 속에 창백하게 누워 있는 시체는 살인을 저질러 교수형을 받은 죄수입니다. 당시 암스테르담 외과 의사 조합은 정부로부터 시신을 제공받아 1년에 한 번 정도 해부하는 장면을 공개했어요. 해부학 강의를 듣고 싶은 일반인도 이 공개 강의가 열릴 때 참관을 신청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신청자들이 지나치게 몰리지 않도록 입장료를 받았고, 참석자는 정장을 갖춰 입도록 요구됐대요. 〈작품3〉은 렘브란트의 또 다른 그림인데, 툴프 박사의 직속 후계자인 데이만 박사가 뇌 해부를 하는 모습입니다.
실제 수술 장면을 기록한 그림도
이번에는 시신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을 수술하는 장면을 볼까요? 〈작품4〉는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1844~1916)가 그린 '그로스 박사의 임상 강의'입니다. 그림 속 수술 장소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제퍼슨 의과대학의 원형 극장입니다. 제퍼슨 의대는 의대생은 아니었지만 인체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 에이킨스가 해부학 수업을 들었던 곳이기도 해요. 가운데 서서 피 묻은 손으로 수술용 칼을 쥔 채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사람이 그로스 박사입니다. 그의 뒤쪽으로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필기하는 의학도들이 보입니다.
보호자도 강의실에 들어간 모양이네요. 수술받는 자식의 어머니가 그림 왼쪽에서 수술 장면을 지켜보고 있어요. 차마 쳐다보기 어려운 듯 팔뚝으로 눈을 가렸고, 자기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는지 열 손가락이 모두 구부러져 있습니다. 다행히 환자는 마취 상태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수술에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가 도입됐거든요. 이 그림에서 흰 천으로 환자의 얼굴을 덮은 채 앉아있는 이가 바로 마취 담당 의사입니다. 수술 장면의 오른쪽 뒤 컴컴한 쪽에는 어떤 남자가 서 있는데, 바로 화가 자신이에요. 그로스 박사가 수술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는 걸 말해주고 있지요.
그런데 이 그림에서 좀 어색해 보이는 게 하나 있죠? 의사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있다는 점인데요. 에이킨스가 14년 후에 그린 〈작품5〉 애그뉴 박사의 수술 장면에서는 의사들이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있어요. 두 그림이 그려지는 사이에 위생 개념이 강조된 것이죠. 또한 보호자는 빠지고 대신 여성 간호사가 환자 곁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 작품2 - 렘브란트, ‘툴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 1632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 작품3 - 렘브란트,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수업’, 1656년(1723년 화재로 그림 일부 손상). /암스테르담 H미술관
▲ 작품4 - 토머스 에이킨스, ‘그로스 박사의 임상 강의’, 1875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 작품5 - 토머스 에이킨스, ‘애그뉴 박사의 임상 강의’, 1889년. /펜실베이니아대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