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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일
염 상 섭
1
『정말 곧 와주기나 하려나?』
길진이는 허둥허둥 집으로 향하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어차피 돈은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외래환자를 젖혀 놓고 이 폭양에 나오기가 귀살머리적어서, 어름더듬하던 눈치는 뻔한 것이지마는 그래도 생판막이로 아주 모르는 터도 아니요 한데, 죽어가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니…….
『의사란 놈 쳐놓고…….』
하고 길진이는 거진 달음질을 하다시피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뒤범벅이 된 머리에 이런 꼬부라진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저러나 인력 거 삯은 만들어 놓아야지!』
하는 걱정을 또 하였으나, 아무리 궁리를 해 보아야 뾰족한 수가 없다. 아까 병원으로 달아날 때부터도 이것이 먼저 떠오르는 큰 걱정이었으나, 단돈 오십 전인들 만들 자국이 없다. 젊은 두 내외가 이틀째나 밥을 굶은 눈치라든지, 단칸방에는 병자가 깔고 누울 요 한 조각도 없는 꼴을 보이는 것이 창피한 것은 열 두째요, 인력거 삯까지도 의사더러 물라고 할 수도 없지마는, 외상 약인들 주려 할지 그것도 걱정이다.
『역시 × ×사(社) 에 전화나 걸어보는 수밖에!』
길진이는 전화 빌릴 데를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허덕허덕 걷는다.
××사에는, 지난달에 써 준 원고료를 받을 것이 있는 것이다. 명색이 원고료이지, 몇 푼 되지도 않건마는 그까짓 잔돈푼에 꿀려서 그럴 리도 없고 무슨 심사로인지, 선뜻 내놓는 법이 없이 다달이 몇 번씩 걸음을 걸리어서 진땀을 빼일 대로 빼고 나서야, 퉁명스럽게 내던지는 것이 길진에게는 차마 못 당할 모욕같이 생각이 들어서, 이번 ××사에는 밥거리가 없을 때에 두어 번 독촉을 해 보다가는, 아주 단념을 하고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어제도, 종일을 내외가 굶고 들어 앉았으면서도 잡지사에를 가 보거나 전화를 걸어 보려는 유혹을 억제하고 지내왔던 터이다.
그러나 생각다 못하여 오늘 아침에, ××서점에 원고 팔 교섭을 하러 허허실실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는 그 모양으로 널치가 되어서 누웠던 것이었다.
『그동안 또 무슨 짓이나 아니하였을까?』
길진이는 길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또 머리에 떠오르자, 눈이 화끈하고 어찔하였다. 땀이 비오듯 모자 밑으로 흘러내린다. 손수건을 잊어버리고 나온 그는 호주머니에서 휴지가 된 원고지를 꺼내서 얼굴을 쓱쓱 문질러서, 꺼먼 거품이 더럽게 부글부글하는 개천 속에 특 던져 버렸다. 그늘진 처마 밑으로 들어서 가건마는 눈앞에는 노란자가 아물아물 떠돈다. 진땀이 몸에 쭉 배이면서도 착 달라붙은 뱃속에서는 찬바람이 훅 끼쳐 오는 듯하고, 허리 뒤로 기운이 한꺼번에 쑥 빠져 나가는 듯싶다.
『누웠는 사람은 행랑어멈이 지키고 있을 테니까 또 별일이야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좀 마음이 놓였으나 이제는 다리의 맥이 빠지며 허청거려서 빨리 걸을 수가 없다. 큰길로 나서서 상점문 위에 붙은 까만 전화 패만 치어다보며, 전화를 빌려줄 듯한 집을 기웃기웃하여 가며 갔다.
기름때에 찌들은 목판을 주섬주섬 쌓아 놓고, 그 옆에 벌건 제물 목궤가 달린, 고기 담하 오는 짐차가 문 앞에 놓인 설렁탕집 앞을 지났다. 전화 소리가 때르를 때르를 요란스립게 안에서 흘러나온다. 길진이는 무심코 입에 괴는 침을 삼키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또 두어 집 떨어져서 양복점 문안에 탁상 전화가 놓인 것이 길가에서 들여다보이나, 길진이는 옷주제를 내려다보고 차마 들어갈 용기가 아니 났다. 구듯방 앞을 지났다. 역시 까만 쇠 패에 흰 글자가 쓰인 것이 보인다. 맞은편 사진관에서도 전화 패는 붙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발을 멈추지 못하고 네거리까지 나와서 한편 모퉁이에 섰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맞은편의 커단 포목전이 눈에 띄자 생기를 돋워서 길을 건너섰다.
웬일인지 왼발이 부르르 떨리며, 두어 번 발부리가 땅에 탁탁 부딪는 것 같더니, 뒤가 물러나려는 고무신이 헐떡하며 벗겨질 뻔한 것을 깜짝 놀라며 겨우 제대로 신었다. 점방 문앞까지 와서 기웃이 들여다보며,
"전화를 잠깐……."
하고 길진이는 이마의 땀을 씻을 겸 인사삼아 모자를 벗으며 떠듬거리었다. 말쑥한 모시옷을 쌍그런히 입고 앉았는 점원은 귀살머리적은 듯이 훑어보다가,
"전화가 병이 나서 안 되우."
하고 외면을 한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섰다. 대통에서부터 나오는 듯한 헛김이 입에서 나오며 볕이 너무 쨍쨍하여 또 눈이 어질어질하다. 땀을 들일 겸 잠깐 먼 산을 바라보고 섰자니, 불그레한 양산을 접으며, 어느 댁 젊은 마나님이신지 기생 아씨인지 지금 그 포목전 안으로 들어선다.
"어서 옵쇼!"
소리가 졸다가 깬 듯이 기세 좋게 들린다. 길진이의 퀭한 눈에는 파란 비취 옥비녀의 대가리가 어른어른 비칠 뿐이다. 무심코 아내의 해쓱한 얼굴이 ― 눈자위가 폭 꺼지고 머리 쪽지가 흐트러져서 베개 아래로 떨어져 나동그라진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길진이는 도리질을 하여서 죽은 얼굴로 머리에 떠오르는 아내의 환상올 잊으려 애를 쓰며 정신을 차려 전차길을 다시 넘어섰다. 땀에 척 달라붙은 잔등이는 소르르 불어오는 바람에 추근하며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러다가는 시간만 보내 겠다!』˙
하고 길진이는 집으로 줄달음질을 쳤다.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본대야 그동안에 없다던 회계가 들어왔으란 법도 없고, 그 아니꼬운 전화부터 비[借]는 것은 단념해 버렸다. 세상이 모두 저만 살겠다는 것이요, 자기 같은 위인은 이 세상에서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은 쭈뼛쭈뼛한 생각에 모든 것이 될 대로 되려무나 하고 실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이 세상과 연을 끊고 자기는 자기대로 살아볼 도리는 없을까 하는 막연한 반항심(反抗心)에 부르르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오죽지 않은 원고도 쓰지 말고, 원고를 팔지도 말고…… 전화를 빌리지도 말고…… 길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담뱃불 하나라도 빌지 말고…… 나는 나대로, 저희는 저희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은 없을까?』
이런 공상을 하여가며 허덕허덕 급히 결으나, 흥분 한 끝에 더 기운이 빠지니까 마음만 조급하고 발길은 나가지를 않는다.
2
간신히 골목을 휘잡아들어 문전을 바라보니, 인력거는 놓이지 않았다. 자기 없는 동안에 의사가 와도 걱정이지마는 그렇게 빨리 올 리도 없다.
대문 안에는 행랑어멈이 멍석 위에 앉아서 감자 껍찔을 벗기고 있고, 그 옆에는 노마가 벌거벗고 앉아서 어미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다.
"의사 안 왔습니까? 좀 들여다봐 주었소?"
길진이는 대문 밖에서부터 연거푸 물었다. 어멈은 못들은 체하고, 잠자코 앉았다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의사는 웬 의사? 아마 자나봅디다."
하고 핀잔을 준다. 언제라고 이 어멈을 곱살스럽게 본 것은 아니나, 이때껏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것을 참고 온 길진이는 하마터면 또 한번 불끈하고 화풀이가 여기에서 폭발할 뻔하였으나 급한 판이라 꿀꺽 참고 지나쳤다.
"뜨물이 제일이란밖에! 쌀물밖에 더 좋은 게 어디 있누? 못 먹어 죽는 판에 약은 웬놈의 약일꾸!"
어멈은 시어미나 되는 듯시피 역정스럽게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죽네 사네하고 아침결부터 한바탕 부산을 떨어 놓은 것도 성이 가신데, 계집 한 입을 못 먹이고 뻔히 굶기다못해 자살까지 하려 드는 터에 웬 주제에 의사는 불러오는 것이냐고 못마땅하고 꼴 보기 싫다는 말이다. 이 여자의 눈으로 보면 양잿물도 아니요 잿물인데, 아까 뜨물을 먹여서 돌려내게 하였은즉 인제는 죽을 리 만무하니 약보다도 쌀물을 먹이고 고깃물을 먹이라는 것이다.
『쌀물! 쌀물이 천하에 명약이라…… 흐흥!』
길진이는 황급한 걸음을 자기 가구 쪽으로 옮기면서도 혼잣속으로 뇌었다. 밉살스럽기는 하나 말만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갈 적에 머리를 숙여가며 그렇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였건마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비아냥거리며 한다는 소리가 『자나봅디다』라니 이런 냉혈동물도 또 있을까 싶어 사람같지도 않아 보이지마는, 그보다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넘보일 수야 있을까 하고 가슴이 끓었다.
하여간 병인이 잔다는 말에 안심이 되면서 안 중문 옆으로 난 쪽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됫박만한 음침 한 마당은 볕이라고는 구경도 못하건마는 무더운 김이 훅하고 서린다. 오늘은 어쩐지 더 답답하고 사람이 죽어 나간 집 같다. 툇마루 텔을 의˙지삼아 만들어 놓은 부뚜막 저편에는 고무신 한 짝이 되는 대로 벗어 던진 채 나동그라져 있고, 한 짝은 냄비를 떼어낸 자국이 뚱그렇게 텅 빈 아궁이 속으로 굴러 들어가서 엎어져 있다. 맞은편 담 밑에 기대어 놓은 화덕 위의 냄비에는 파리가 한가로이 덤빈다. 쥐죽은 듯이 인기척이 없다.
혜순이는 숨이 꺼진 듯이 활짝 열어젖힌 방문 밑에 널치가 되어서 오그리고 누워 있다.
길진이가 툇마루에 걸터앉으며, 가만히 들여다돠려니까, 혜순이는 자고 났는지 눈자위가 꺼진 눈을 멀뚱히 뜨고 힘없이 바라본다. 눈썹이 깔딱히 치켜올라가고 얼굴빛은 별안간 상기가 되더니 점점 검푸르러 간다. 입은 숨이 가빠서 뒤틀렸다. 길진이는 아무말 없이 외면을 하며, 벌떡 일어나며 모자를 벗어, 누운 사람 뒤로 들이뜨이고 등에 땀이 척 밴, 시꺼멓게 더러운 모시 두루마기를 활활 벗어서 그 위로 내던진다. 어깨가 나간 광당포 적삼이 뒤로 척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다시 앉았다.
혜순이는 꿈속같이 남편의 거동을 바라보며 누웠다가 옆에 놓인 부채를 맥 없는 손으로 간신히 집어주며,
"우, 웃맥이를 벗으시구려……."
하고 겨우 모기 소리만큼 한 마디 하더니 그대로 방바닥에 코가 닿도록 고개를 떨어뜨리며 눈물을 비오듯 홀린다.
"어디가 아푸?"
길진이는 부채질을 하며, 소리없이 우는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물었다. 자기 역시 이야기할 기운도 없지마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관절 정말 죽을 작정으로 잿물을 한 사발이나 먹었는지, 언젠가 실없이 한 말처럼 낙태를 시키려고 먹었는지, 그것조차 길진이는 알 수없는 일이다.
어제 아침에 안집에서 어린아이 생일밥이라고 내보낸 밥 한 그릇을 둘이 같이 나누어 먹고는 이때까지 잔입으로 있는 터이니, 말은 아니하여도 몹시 시장하여 냉수라도 퍼먹는다는 것이 물 항아리와 잿물 항아리를 잘못 알고 그 모양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마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밥 몇 끼 굶었다고 세상을 비관하고 빨래할 작정으로 재를 내려서 받아 놓았던 잿물을 퍼먹고 저 지경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저껜가 혜순이는 별안간 안에 들어가서, 깨어진 조그만 시루를 빌어내다가 화로와 아궁이에서 재를 퐁퐁 퍼서 쏟아 가지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부어서 벌써 사홀 동안이나 두고 잿물을 한 항아리나 가득히 받아 놓았었다. 사실 요사이 같아서는 돈 오 전이 있으면 호떡 한 조각이라도 사다가 둘이 씹고 끼니를 어이는 수밖에 없는 때가 많으니까, 좀처럼 잿물 비누 한 장이나 양잿물 오 전어치도 사지를 못하는 형편이라 그야말로 죽을래도 비상 사먹을 돈이 없어 못 죽을 처신이고 보니 잿물을 받아낼 때부터 빨래를 하려고 저러거니 하였지, 누가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알았으랴. 그야 처음부터 마음에 먹고 계획적으로 한 노릇은 아닐 것이요, 한때 발작적으로 그랬는지도 모르기는 하다.
이때껏 혜순이는 굶으나 먹으나, 요 단칸방살이일망정 꼬물꼬물 바지런히 일을 하는 버릇이요, 결코 대낮에 자빠져 있거나, 쫑알대며 남편의 주변성 없는 것을 탄하는 버릇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같은 고향에서 물끄럼말끄럼 건너다보며, 같이 넉넉지 못한 집 자식으로 자라났으니만큼 이러한 살림에 익숙하여, 예전에 집에서 보고 배운 솜씨로 알뜰히 잿물 같은 것도 제 손으로 받아서 쓰는 것을 예사로 볼 만도 하였고, 또 그만큼 혜숙이는 길진이 자신보다도 구차살이에 낙관적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이 여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고는 누구나 곧이 듣지 않을 만큼 참하고 남편의 마음을 받아도 주고, 또 쏠리게 하였다. 이러한 여자가 왜 잿물을 한 사발이나 먹었는가? 길진이는 암만 생각하여도 모를 일이었다.
"당신이 하다못해 사오십 원짜리라도 붙들거나, 내가 유치원이나 소학교에 가게만 되면……."
이것이 자나깨나 혜순이의 입버릇같이 하는 소리요 또 사실 시골서 쫓아올라와서 이 집 사랑채 한 간을 빌어서 살림이랍시고 벌일 때부터 은근히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있던 것이었다. 피차에 부모가 어엿이 있어서 귀밑머리를 맞풀었다는 것도 아닌 대신에, 정도 깊었지마는 금시로 이 남자가 큰 수가 나서 일생을 흥청망청 살리라는 턱없는 꿈을 꾸고 있는 철없고 무식한 여자가 아니니만큼 그리 큰 것을 바라지도 않고, 구차한 살림에 불평을 품고 지내는 것도 아니었었다. 그뿐 아니라 길진이의 문재(文才)를 믿고, 길진이가 '문인(文人) 답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은 길진이 자신도 감사히 생각하는 바이요, 또 피차에 그만큼 이해가 있다는 것은 두 내외의 사랑을 더욱더욱 믿음성 있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지낸 것이었다.
길진이는 얼이 나가서 벙벙히 앉았다. 자기 자신이 허기가 져서도 그렇겠지마는 복잡하여진 머리와 심중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 돌아왔을 때, 누런 물을 꿀꺾꿀꺾 토하며 좁은 방안을 헤매는 혜숙이를 볼 제는 눈이 뒤집힐 듯이 놀라고 무서운 증토 나다가 좀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가엾은 한편에 분한 생각도 치밀어 올라와서,
"이 지각 없는 것. 망할 것. 뒈질 테면 뭬져 버려라!"
고 화를 버럭 내며 기진해서 앙앙거리며 우는 것을 내버려 두고 뛰어나와서 의사를 청하러 갔었던 것이지마는, 이제는 자기도 지쳐서 그런지 노여운 생각도, 분한 마음도, 가엾은 정희도 다 스러지고 다만 어리둥절하여 앉았을 뿐이다.
"벌써 오정은 되었을 텐데……."
길진이는 뜰에 잠깐 들었다가 맞은편 담 위로 올라선 햇발을 치어다 보며, 혼자 생각하였다. 그러나 의사는 아직 올 가망도 없다. 누웠던 사람은 어느덧 울음을 그치고 혼수상태에 빠져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가슴만이 발랑거린 다.
의사가 오나오나하며, 귀를 기울이고 조바심이 나서 앉았던 길진이는 하도 답답하여 신짝을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가 보았다. 우두커니 섰다가 다시 들어와서 집안 ― 한 간 방속과 반 간 통쯤 되는 마당 안을 휘 둘러 보았다. 그거나마 인제는 이 몸을 붙일 곳이 못되나보다고 생각할 제 앞이 캄캄하다.
『이대로 이 여자가 숨이 끊어지면…….』
하며, 그는 가만히 서서 쌔근발딱하는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백랍 같은 얼굴에는 무감각한 실심한 표정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 여자가 이 세상에서 존재를 감추면…….』
길진이는 또 한번 생각하여 보았다. 머릿속은 이상히도 맑게 개어졌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리는 만묵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나의 누구보다고 심한 반역자다. 모반자다…… 이 여자만은 내것이라고 절대로 믿었던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 여자의 무엇을 내가 붙들었던구?…… 이 여자는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고 샅았던구?…… 십삼 전 하는 쌀 한 되면 두 식구가 이틀을 먹고도 남는 요 살림이나마 지탱을 못하는 처신이니 무엇을 바라고 믿고가 없는 것도 나무래 무엇하랴마는, 그럴 양이면 『쌀물이 제일이야!』 하고 비웃는 바깥 어멈과 다를 것이 무언구? 이 여자에게 비취 옥비녀가 있고 분홍 우산이 있었던들 이 지경은 아니 됐을 거라…… 적어도 이 여자만은 내가 돈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믿어 왔다. 혹시는 지금도 이 여자는 내게 돈을 바라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만한 낙관을 하는 것은, 하여간 내게 허락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자는 죽고 싶어한다. 그것이 빈궁에 지기[負] 때문이라 하더라도 이 여자는 벌써 내게서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귀하다고 생각하거든, 밥을 먹야 할 지경이거든, 먹이고 입히고 하는 사람에게 가도록 내놓아 줄 것이다…… 잿물을 먹이려고 붙들어 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서는 잿물을 먹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더 할 일도 없고, 구할 것도 없고, 희망도 없는 다음에야 잿물 아니 먹을 데로 자유롭게 가게 하는 것이다.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요, 보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의사가 아니 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요, 어멈이 비웃고 냉담한 것도 그럴법 한 일이다…….
길진이는 한식경이나 이마에 땀을 술술 흘리며 툇마루 위에 기대면서 열병 치른 사람처럼 벌건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혼자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오오, 대관절 이런 세상에, 산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죽는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런 생각도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대답할 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만 이 여자는 처음부터,
"여보, 같이 죽읍시다!"
하였더면 같이 죽을 생각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길진이는 아까 그 꼴을 처음 볼 때부터 머리에 떠오르던 생각을 또다시 되풀이하여 보았다. 길진이에게 무엇보다도 섭섭하고 분한 것은 피차의 마음이 제각기, 제대로 놀았다는 것이다. 죽으려면 죽겠다 의논을 하고, 뱃속에 든 것을 꺼내 버리고 싶더라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사랑의 결정이고 보니, 한 마디의 의논은 있어야 옳을 것이요, 밥을 얻어먹으러 딴 데로 가 버린다 하더라도 의논을 한 뒤에 이 살림을 파방친다면 그래도 위로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은 사리(事理)와 심중을 한 겹 싸고 물끄럼말끄럼 눈치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길진이는 그것이 분하고 속은 것 같다. 속은 것이 분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같이 죽읍시다! 고 하면…….』
길진이는 둘이 끼고 목이라도 매달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3
뚜우 하고 오정이 불기 시작한다. 길진이는 고개를 들어, 푸르게 갠 하늘을 쳐다보며 오정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섰다. 아지랭이가 아롱아릉하여 금시로 앞으로 거꾸러질 것같이 눈어 아득히 컴컴하여졌다. 그는 툇마루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눈을 감았다.
『의원 놈은 점심을 먹어야 오겠나?』
길진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는 사람을 돌아다보었다. 담 한 겹 너머, 안집에서는 데그럭데그럭 그릇 부시는 소리가 나고, 학교에서 점심 먹으러 달려든 아이들의 소리가 졸린 듯한 여름 낮의 공기를 휘저어 놓는다.
"아아 함……."
하고 혜순이는 몸을 뒤틀며, 힘없이 눈을 뜬다. 맥이 풀려서 이제는 울기운도 없는 모양이나 자는 것도 아니요, 귀에는 모든 소리가 들리는 모양이다.
"배가 또 아프우?"
길진이는 조용히 물었다. 혜순이는 도리질을 칠 뿐이다. 길진이는 한참,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그러나 저 눈이……저 눈이…….』
하며 또다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목이 메어 울며 혼자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저 눈이 원망을 품고 있으면, 조금은 내 속이 시원하지나 않을까!』
미안하다는 듯이, 다만 섧다는 듯이, 자기 몸을 만져 달라는 듯이 양순하고 애처롭게 말끔히 뜨고 바라보는 아내의 눈을 마주보다가, 길진이는 풀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온순하고도 처량해 하는 힘없는 눈길이 무슨 바늘쌈으로 자기의 머리를 찌르는 것같이 길진이에게 생각되었다. 이대껏 속으로 뇌까리던 모든 불평이 스러지고 다만 가엾다. 길진이는 그대로 뛰어들어가서 껴안고 울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참고 외면을 하며 돌아앉았다.
『내 손으로 죽여서는 아니 된다. 우선 살려 놓고 행복을 따라가게 해주어야 하겠다! 그밖에는 내 힘으로는 어찌하는 도리가 없다.』
길진이는 이렇게 생각을 하며 방안으로 들어가서 두루마기를 황급히 팔에 꿰고 모자를 되는 대로 머리에 얹으며 나섰다.
"어디를 가시려우? 응?…… 나가지 말아요."
어린아이가 옷자락에 매달리는 것처럼 입술을 떨며 혜순이는 쉰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하였다. 혜순이는 옆에 누가 없으면 곧 숨이 까부라질 것 같은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길진이는 매려던 두루마기 고름을 붙들고, 그대로 우뚝 서서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머리에 하나도 또렷이 붙들 수 없는 생각이 뒤범벅이 되어 팽팽 돈다. 사실 길진이는 두루마기를 입으면서도 어디를 가리 라는 생각이 분명히 나선 것은 아니다.
의사에게만 갈지, 의사에게 가서 또 한번 따져놓고 ××사(社)에까지 갈지, 잡지사에서 돈을 받으면 다른 의사를 청해서 앞장 세우고 올지, 하여튼 나가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옆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는 양을 보니 그렇지 않아도 마음을 놓고 나갈 수가 없는 터에 훌쩍 발길이 돌아서지를 않는다. 그는 다시 두루마기를 벗고 아무 말 없이 마루로 나와 앉았다. 그러나 무슨 별다른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의사는 여전히 오는 기척도 없다.
누운 사람은 벌겋게 상기가 된 남편의 곁뺨을 바라보다가, 또 까무러지는 소리를 내며 운다. 이번에는 배를 쥐어뜯으며 우는 것이, 다만 설어 우는 것만이 아닌 모양이다. 목은 부었는지 턱 잠겨 버렸다.
길진이 눈은 저편 물독 옆에 모로 놓인 석유 상자 위로 갔다. 이 석유 상자는 이 집의 단 하나의 부엌 세간인 찬장이다. 그 위에는 대접에 씻은 쌀이 허옇게 불어서 담겨 있다. 아까 주인집에서 뜨물을 내어 먹이라고 어멈을 시켜 보내준 것이다.
실상은 그 뜨물 덕에 혜순이 뱃속은 거반 씻겨 나온 것이다.
길진이는 얼른 내려가서 부옇게 불은 쌀을 다시 이남박에 쏟고 물을 한 바가지 퍼부어서 북북 문질러 걸쭉한 그야말로 쌀물을 한 탕기 받았다. 아직도 속에 남은 잿물기가 있으면 죄다 돌려내게 하려는 생각이다.
이런 데에 경험이 없는 길진이는, 그저 다만 죽을 것만 같아서 겁이 벌벌 나고, 마치 어린아이가 앓는 것을 보기가 애처로운 듯이 대신 앓아 줄 수가 있다면 차라리 그편이 나을 것 같다. 속에 든 아이야 떨어지든 말든 그것쯤 문제도 아니다. 설사 이번 일의 동기가 뱃속의 것에 있고, 또 그것만 소리없이 처치하면 자기는 자기로 몸 가볍게 가 버리려는 계획적 수단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금 따지고 나무라고 앉았을 처지는 아니다.
"자아, 이걸 또 한번 마시우."
길진이는 탕기를 놓고 아내를 자기가 앉은 편으로 돌아눕게 끌어당겼다.
"이걸 마시고 괴롭더라두 또 한번 돌려내우."
길진이는 왼손으로 아내의 머리를 껴안아 올리며 대접을 쳐들었다.
"괜찮아요. 난 안 먹어요."
하고 혜순이는 남편의 손에서 머리를 빼려고 한다.
"안 먹는 게 뭐요. 어서어서……. "
하며 길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꾸짖었다.
"가만 내버려 두세요…… 난 이대루 난 이대루……."
하며 혜순이는 한 팔을 짚고 반쯤 일어날 듯하더니, 방바닥에 폭 거꾸러지며 모기 소리 만큼 한 소리로 어깨를 떨며 그대로 운다.
"배가 아파 쩔쩔매면서, 난 이대루…… 어떡 할 테라는 말이야."
길진이는 손에 받쳤던 아내의 머리를 놓으며 초조한 듯이 소리를 꽥 지르더니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침통한 목소리로,
"죽더라도 내 손에서 죽어서는 안돼! 마음대루 나가서 죽든지 내가 죽은 뒤에 죽든지…… 하지만 지금 죽어서는 안돼 안돼! 밥은 어디 가든지 있을 게요. 사내는 나만이 아닐 게다. 밥을 못 먹어 죽을 목숨이었거든, 살아나서 어떤 남자에게든지 밥 먹여 줄 데로 가면 그만일게 아닌가? 아무도 말리지 않을 게요. 아이는 떨어져도 좋으니, 내 앞에서 죽지만 말란 말야! ……자아, 어서."
하며, 길진이는 자기 팔에도 기운이 빠지는 것을 간신히 아내의 몸을 추슬러 올렸다. 이런 꼬집는 소리는 안하자는 것이요, 자기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시 뱃심을 먹고 한 짓이라는, 분한 생각은 혼잣속으로 제풀에 풀어버렸건마는, 다시 한편으로 생각하면 뱃속에 든 것만 없애자는 계획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그것은 자살하려던 것보다도 더한층 자기를 멸시하고 거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새로운 반감이 머리를 들어서 화풀이삼아 나온 말이다.
혜순이는 목 속이 부어서 캑캑 잘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대로 남편의 두 팔에 매달려서 눈물을 좍좍 쏟는다.
“글쎄, 자꾸 울기만 하면 어떡하란 말요? 송장 치를 돈이나 있기에 말이야?"
길진이는 또 소리를 치며 화를 내었으나 속이 비어 헛청 나오는 자기의 목소리에도 울음이 반 섞인 것을 깨달았다.
혜숙이는 인정사정 없이 납편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울기만 한다.
"당신은 이런 말을 하시지만……."
혜숙이는 동강이 나는 목소리를 간신히 울음 섞어 어우른다. 길진이도 맥이 풀려서 아내를 가만히 무릎에 뉘고 먼산만 바라보며 앉았을 수밖에 없다.
"……그런 애매한 소리를 하시지만, 난 당신이 나 하나 때문에, 나 하나만 없으면……."
인제는 아주 사지가 널치가 되어 몸을 척 실리며 느끼기만 한다.
"응, 다 알어! 그만둬, 그만두어요."
자기의 아깟말이 과하였다고 금시로 뉘우친 길진이는 스미는 눈물을 이를 깨물고 참으며 달랬다. 한 손은 아내의 뺨을 괴고 한 손으로는 이마의 땀에 엉겨 붙은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면서,
"나두 임자의 맘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했을까. 화가 나니까 그렇지. 자아, 그러지 말구 어서, 이걸 먹구 가만히 누워 있어요. 의사가 인제 곧 올 거니……."
하며 쳐들어 앉혀 보려 하였으나 헛기운만 빠진다.
"용서하슈…… 미안합니다! "
약하여진 신경은 남편의 애무와 안위가 그지없이 고마워서 감격에 바르르 떨린다. 길진이는 그 말에 한층 더 가슴이 막히었다.
어쩌니어쩌니해도 실상 미안하고 가엾은 생각으로 말하면 자기가 더 하다. 밥 두 끼만 먹여 놓으면, 천하가 태평일 거요, 이런 일을 저지르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 할 일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자기부터 목을 따야 옳을 신세다.
혜순이는 시골 친정에 붙어 있다가 좇아 올라오면서부터 입 버릇처럼 하는 소리가,
"한 식구가 별안간 매달리게 되어서 짐이 되시겠지만……."
하는 인사였고, 돈푼이라도 생겨서 쌀되라도 팔아놓으면 한시름 잊은 듯이 좋아는 하면서도,
"괜히 내가 딸려서 쓰실 것두 조용히 못 쓰시구, 먹기에 눈코 뜰 새 없으니, 책 한권도 못 사 보시구……."
하며 말끝마다 자기는 군식구나 뛰어들어와서 이아치는 듯시피 미안쩍어 하는 것이었다. 그 마음이 길진이에는 고마우면서도 가엾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무능을 채찍질하는 듯싶어 듣기 싫기도 하였던 것이다.
"임자의 심중을 생각하면 열두 번 고맙지마는, 그래,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인가 생각을 해 봐요…… 나더러 죽으라는 것이 낫지, 이 꼴을 보고 당하라니 이게 나를 위하는 거요?"
"아이, 그만두세요."
혜순이는 시름없이 도리질을 한다.
"흉년이 져서 굶어 죽는 사람은 있어도 굶는 것이 무서워서 죽어서는 안될 일이오! 생활난, 생활 불안이야 우리만 당하는 일이겠기에 살기도 힘들지마는 죽기는 더 어려운 것이오. 죽을 용기를 가지고 산다면 넉넉히 잘 살 것 아니오? 내일부터 나는 막벌이라두 하고 당신은 마전장이라두 해서 재미있게 살아봅시다. 살아서 무엇하느냐는 그런 어려운 문제는 별문제요. 남에게 이아치지 않고 남에게 넘뵈지 않게 둘이 힘있게 사노라면 사는 보람이 날 거요……."
길진이는 장황히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맡을 끊고,
"자아, 이걸 마슈. 나를 살리는 셈치구……."
하며 당정히 달랜다.
"그런 못된 맘 먹구…… 자식을 떼련다든지 어디를 가련다든지……."
아내가 또 한번 변명을 하려는 것을 길진이는 가로 막으며,
"알어, 알어요! 기운 없는데 두었다 이야기하구 자아……."
하고 아내를 껴안아 일으키려니까, 혜순이는 남편의 다정한 말에 끌려, 또 좍 하고 소리없는 눈물을 홀린다.
4
혜순이는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쳐들어, 입에 대어 주는 대로 뜨물을 한 모금 마시었다. 그러나 두 모금째 꿀꺽하고 들어가더니 걷잡을 새 없이 꿀꺽꿀꺽 다시 쏟아져 나온다. 옆에 놓인 대야를 미처 집어댈 새 없이 뿌연 걸죽한 물이 길진이의 무릎 위에 그대로 쫙 퍼지었다.
"에구머니 저걸!"
하고 창문 밖에서 누가 놀라는 소리를 친다. 힐끗 쳐다보니, 어멈이 어느 틈에 아이를 업고 들어와서 기웃이 들여다보며 섰고, 맞은편 담 위에서는 빤지르르한 머리가 날름하고 움츠러져 들어간다.
길진이는, 어멈이 구경하고 섰는 것에 모욕을 느끼며 눈이 찌푸려졌으나, 창문을 닫을 겨를도 없었다. 담 밖에서는 여자의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길진이는 거기에까지 반감이 치밀어오르지는 않았으나 역시 싫었다. 길진이는 무릎 위에 토한 뜨물에서, 잿물 냄새가 나는가 안 나는가 은근히 맡아 보면서도 얼굴이 화끈 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집 며느리에게 이 광경을 엿보인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그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에 인간의 따뜻한 맛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듯이 이상히도 새 힘이 나는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한 값싼 동정을 고맙게 여기고 다소곳이 받으려는 자기가 비루하다고도 생각하였다.
길진이는 이 더위에 문을 닫을 수도 없어 그대로 앉은 채 또 한번 뜨물을 먹였다. 아내는 자기 치맛자락을 끌어서 남편의 무릎을 연해 씻으면서 입에 대는 대로 마시었다. 이번에 돌리는 것은 대야에 뱉었다.
길진이는 아내를 곱게 뇐 뒤에 또 한참 얼없이 앉았었다. 누운 사람은 울고 토하고 하기에 기진해서 눈도 못 뜨고 가만히 누웠다. 길진이는 아내가 잠이 들어가는 듯한 기색을 보고, 가득한 요강과 대야를 들고 일어섰다.
나오는 길로 길진이는 이남박 바닥에 붙은 불은 쌀을 화덕에 걸린 남비에 쏟아 넣고 물을 두어 쪽박 부었다. 미음을 쑤어서 어서 아내를 먹이려는 것이다. 다행히 양잿물이 아니고 재에서 받아낸 것이라, 먹은 분량은 좀 많으나 그리 독이 퍼지지 않았고, 곧 돌려낸 까닭에 인제는 약도 약이려니와 그보다도 원기를 돋을 것을 먹이자는 생각이다. 자기는 시장기도 어느덧 잊어버렸다.
"여보슈, 김서방! "
길진이가 화덕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불을 지피느라고 연해 부채질을 하고 있으려니까, 뒤에서 어멈 이 소리를 치며 바가지를 들고 들어온다.
"그거 뭐요?"
"이 거, 안에서 아씨가 내보내십디다."
하며 어멈은 퉁명스럽게 쌀바가지를 내어민다.
"그건 무어라구……."
길진이는 퇴할 용기도 없어, 어색한 낯빛으로 받아 놓았다. 반갑고 고맙기는 하면서도 꾸어 주는 것과는 달라서 구제를 받기가 체면에 창피하였다. 금방 안 중문 밑에서 주인집 며늘아씨가 어멈을 불러서 소곤소곤 하던 눈치였는데, 이걸 내보낸 것을 보니, 아마 안에는 시어머니가 없는 눈치이다. 이 달에 세전을 아직 못 들여보내서 길진이 식구만 보면 눈살을 아드득 찌푸리는 주인마님이 쌀을 한 되씩 퍼낼 리 없고, 마나님이 없는 틈을 타서 며늘아씨가 기죽을 펴고 이러한 구제 사업도 하는 모양이다.
생각하면 이 집 주인마님도 혜순이가 뜨물을 먹는데 한 귀퉁이 거든셈쯤 될지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러 들어가야 하는데 세전 재촉이 나기 시작을 하면 혜순이는 살이 내려 못 견디어 하였다. 게다가 신문값이요, 전등값이요, 하고 긴긴 해에 허기가 져 앉아서 졸리고, 동구 밖만 나서면 쌀 되, 나뭇단, 외상진 것이 일 원, 이 원 하는 것이건마는 보는 대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니 입덧이 난 뒤로 그나마 먹지를 못하여 지친 끝에, 신경만은 송곳끝같이 날카로워지고 약하여진 판이라 이런 것 저런 것이 살기 귀찮다는 생각만 좁은 마음에 점점 오그라져 붙게 한 것이었던지 몰랐다. 그것은 하여튼 길진이는 받은 쌀로 밥을 지어 혼자 먹을 수도 없고 일단 받아 놓은 것을 새삼스럽게 도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하여 망단하였다.
"그건 무얼하는 게유?"
어멈은 화덕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길진이의 뒤에 한참 서서 구경 같지도 않은 구경을 하다가 여전히 핀잔 주듯이 묻는다.
길진이는 잠자코 말았다. 이 여편네도 구차살이는 남만큼 겪었을 것이요, 물론 길진이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서방이 벌이를 못한 날은 굶어도 보았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다같이 시골 사람으로서 제 고향에서도 배기지를 못하여 서울까지 빌어먹으러 올라온 것이 아닌가? 없는 사람끼리면 통사정은 더 있어야 옳을 일인데 길진이 내외를 깔보기를 발샅같이 안다. 길진이로서는 상하를 차리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그럴 계제도 아니지마는, 말버릇부터 한층 더 뛰는 것이 아니꼽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게도 인정머리가 없는 것을 보고는 아주 말 못할 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멈은 덤덤히 섰다가 제풀에 삐쭉해서 나가버렸다.
『……밉살스런 것! 제기나한 년 같으면 이런 때 주인댁보다도 이만 사정은 더 알아줄 것이요, 말 한 마디라도 걱정삼아 하련마는…….』
길진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화덕 앞에서 일어났다. 비지땀을 흘리며 방문 앞으로 와서 아내를 들여다보니 인제는 잠이 푹 든 모양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부채질을 하면서, 그만한 것을 보니 의사가 안 오고 만 편이 도리어 해롭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의사는 웬 의사!』
하며 어멈이 입을 삐쭉하던 것을 생각하고, 아닌게아니라 의사는 웬 의사가 와주랴 하고, 길진이는 인제야 제 정신이 든 듯이 혼자 웃었다. 아까는 다급한 마음에 그래도 의사가 와주려니만 믿고 초조히 기다렸으나, 마음을 늦추고 돌려 생각하니 자기의 옷주제를 보기로 의사가 무슨 정성이 뻗쳐서 이 더위에 자기 집 환자까지 젖혀놓고 와주랴 하는 염량이 나서는 것이다.
화덕의 불이 한바탕 시원스럽게 타오르더니 냄비의 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나무 뚜껑이 들먹거리며 거품이 넘쳐 나온다. 얼른 가서 뚜껑올 젖히었다. 그야말로 쌀물 냄새인지 법 냄새인지 후르르 끼쳐 오르면서 한참 자던 비위를 건드려 놓는다. 잊었던 시장기가 다시 깨어났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게다…….』
여전히 어멈이 괘씸하고 불쾌한 감정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어느 때까지 혼자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제 코가 석 자면 남의 일을 아랑곳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고생에 찌들어서 마음이 모질어지고 그까짓 것쯤 예사로 여기는 것일 거락…… 감정이 말라 붙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저희들도 언제 잿물을 먹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동정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마치 상여를 보고 자기도 미구에 거기 담아 내갈 것이니까 불길하다고 왼발을 구르고 침을 뱉는 그런 심리인지도 모를 거다…… 아니, 자기네도 잿물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신세건마는 딱 결단을 하고 먹지 못하느니만큼 그나마 부러워서 그렇다고 할까? 담 안에서 코를 훌쩍거리고 쌀을 훔쳐내서라도 구제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요, 대견한 일이요, 자기 배가 곯지 않았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마는, 하여간에 여유가 있으니까 눈물도 나오고 인정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넘보고 기웃거리는 그 심리는, 이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두 주변성이 없고, 어설픈 것을 하면 동정이 나오다가도 옴츠러지고 밉게도 보이기는 하지마는…… 그보다도 저희만큼 못살면은, 저희 또래에 섞이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조는 조대로 찾으려 하고 저희보다 지체가 낮거나 하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보다도 없는 사람끼리는 구(求)할 것이 없고 얻을 것이 없으니 저절로 배타적이 되는지도 모를 거다. 있는 사람은 원체 저희와는 인종이 다르니까, 배냇적부터 존경도 해야 할 줄 알고 그런 사람의 불행은 한층 놀랍고 가엾어도 보일지 몰라도, 움속의 거지가 도지개를 트고 숨이 넘어가기로 누가 눈 하나 깜짝할까…….』
한숨 돌린 김에 길진이는 이런 여유 있는 생각을 하고 앉았노라니, 몸이 땅으로 스며들어갈 듯이 고단한증이 일시에 솟아나서, 그대로 쓰러져 한잠 푹 자고 싶다. 그러나 정신을 가누고, 뜰로 내려서 냄비를 또 한번 열어 보고는 화덕의 불을 물리었다.
집안에 체(篩)가 없는 것을 아는 길진이는 대소쿠리를 찾아내어 툇마루에 놓고, 미음을 거르면서 방안을 또 들여다본다. 아내는 여전히 혼곤히 잘 잔다. 숨결이 제대로 발랑발랑하는 것을 보니 고마운 생각이 난다. 웬만큼 걸러지면 깨워 먹여야하겠다 하며 그릇아래에 괴는 미음과 자는 아내의 얼굴과를 번갈아 보고 앉았으려니까 밖에서,
"계셔요. 들어가 보슈."
하는 어멈의 목소리가 난다.
『의사가 오나보다!』
하는 생각으로 일변 반가우며 일변 인력거 삯이 애가 쓰이며 뛰어나가려니 ××사의 G가 문 밑에 딱 마주 섰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없다.
그러나 창피한 꼴을 들여다보았을까 보아 애도 쓰였다.
"여긴 줄 몰랐네…… 한데 좀 어떠신가?"
"응, 틀렸어! 요행 그만해."
아까 ××사에 갔을 때 G에게만은, 차마 밥을 굶어 누웠다고는 말하기가 싫어서 아내가 감기인지 학질인지 앓아 누웠다는 핑계로 급한 사정을 말하여 두었더니, 아마 원고료를 손수 찾아가지고 온 모양이다.
"그저 이 모양으로 사니, 자네두 한번 청하지 못하구……."
길진이는 겸연쩍은 기색으로 변명을 하였다.
"그야 무어…… 한데 급한 모양이기에 이거 찾아가지구 왔네."
하고 봉투를 내어준다.
길진이는 눈이 번쩍 뜨였다. 이렇게 막막한 터에 찾아준 것만도 고마운데, 그야 잡지사에서도 미안해 선뜻 내놓으니 가지고 와준 것이겠으나, 이렇게 고마울데가 없었다. 친구를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으나, 어찌하는 수 없이 돌려보내고 들어와, 걸러진 미음 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여보! "
아내는 간신히 눈을 뜨더니 소스라쳐 눈을 커닿게 뜨며, 입가에 방긋이 웃음을 띠어 보인다. 죽는 꿈을 꾸고 가위에 늘리다가 깨어서, 내가 죽지 않았구나! 하고 안심이 되는, 그런 웃음 같기도 하고 남편을 위로하려는 웃음 같기도 하다.
"이 미음 좀……. "
그 말에 정신이 더 분명히 드는 기색으로 깜짝 놀라며,
"이건 누가?"
하고 오랜 잠에서 깨인 듯이 어리둥절해 한다.
"지금 내가 쑨 건데……."
"어서 잡수세요. 시장하실 텐데……."
하고 아내는 맑은 정신이 들어가니까 또 울상이 된다.
"아냐. 난 먹었어! 여기 이 돈 봐요. 저기 쌀두 많이 있구……."
하고, 길진이는 봉투에서 이십 원 지폐를 꺼내 보이니까, 반가워 웃을 줄 알았던 아내는 눈물이 핑 돌면서 커닿게 한숨을 쉰다.
〈1926년〉
2016년 11월 3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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